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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5화 (25/199)

25화 인연의 꼬리 (2)

(25)

복지사의 전화 음성은 참 좋았다.

마치 라디오 성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복지사가 인물도 목소리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였다.

복지사가 은방울 굴러가는 소리로 말했다,

“뭐 하세요?”

“오늘 쉬는 날이라 밀린 일 합니다. 방 청소도 하고요.”

“호호. 수유역 근방에 사신다고 했죠?”

“역에서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강시혁은 이 여자가 혹시 집에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여 겁이 덜컥 났다.

"내일 상계동 사시는 이복동 할아버지 수송은 안 해도 됩니다.“

“예? 그럼 보호센터로 바로 가면 됩니까?”

“이복동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요양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센터장님 말씀 들으니 강 기사님이 복지사 자격증 공부하신다면서요?”

“생각은 있지만 시간이 안 나서.......”

“공부를 하신다면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공부를 하게 되면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시혁은 복지사에 흥미가 없었다.

차라리 영어는 좀 할 줄 아니까 학원 강사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 고등학교 학생은 가르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학원 시장에서도 강사는 스카이대학 출신이 휩쓸고 있다.

일단 아이들은 선생이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어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더욱 환영받았다.

영어는 미국대학 유학 출신, 합기도는 용인대학 체육학과 출신, 미술은 홍익대 미대 출신.....

저마다 학원 시장에서 선호하는 학교들이 있었다.

다음날 강시혁은 주간 보호센터에 출근해서 또 센터장의 복지사 시험 권유를 받았다.

강시혁은 이제 슬슬 복지센터가 싫증나기 시작했다.

복지사의 과도한 관심도 부담스러웠다.

강시혁은 보호센터를 떠나고 싶었다.

낮에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나 하고 채용정보 사이트 검색을 해보았다.

하지만 저녁까지 연장 근무하는 곳이 많아 가기가 어려웠다.

저녁시간까지 일하게 되면 대리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며칠이 흘렀다.

강시혁은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했다.

잠을 많이 못자 눈에 열심히 티어드롭 인공눈물까지 넣어가며 일했다.

그래야 빚 갚고 생활비 하고 다만 100만원이라도 저축할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후배 변상철이 전화를 했다.

변상철은 후배지만 이상하게 강시혁을 좋아했다.

강시혁도 변상철이 코드가 맞는 것 같아 잘 어울렸다.

“형, 왜 이렇게 전화가 없어?”

“나, 바빠. 투잡 뛰잖아.”

“나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술 한 잔 할까?”

“무슨 기분 나쁜 일인데?”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 아버지와 싸웠나? 침대공장 안 온다고 해서 싸웠나?”

“그게 아니라 아버지가 날 결혼시킨다고 해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결혼을 해야 침대공장에 올 것 같으니까 그랬구나. 그런데 결혼 상대자가 있는 모양이네.”

“아버지가 날 결혼시키겠다고 어제 결혼상담소를 찾아갔어.”

“백수면 곤란할 텐데...... 신랑이 직업이 있어야겠지.”

“형,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직업이 뭔지 알아?”

“그거야 의사, 판사 같은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겠지.”

“물론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원보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인기지.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도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쳐준데.”

“흠. 그것도 말이 되네. 그런 사람은 일단 재산 상속이 많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이런 기사를 보고 결혼상담소를 찾아갔어. 내가 침대공장 상무이사라고 구라치고 상담을 받은 거야.”

“하하, 그래? 침대공장을 물려받을 상속자라고 했겠군.”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결혼상담소에서 코피를 흘리고 나왔다는 거지.”

“코피를? 왜?”

“아버지가 눈은 높아 신부 감으로 약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종을 원했다고 했어. 상담소 원장이 내가 스카이대학 출신이 아니라도 조건이 좋으면 전문직 신부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간 거지.“

“아버지가 그래서 결혼상담소를 찾아갔구나.”

“그런데 결혼상담소의 원장이란 년이 대뜸 아버지의 재산을 물어 보드래. 공장 자산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이나 현금보유 같은 것을 물었다더군.”

“결혼이야 당사자들이 좋아하면 되지 아버지의 재산을 그렇게 물어봐야 하나?”

“우리 아버지가 무슨 재산이 있나? 이문동에 아파트가 있지만 강남에 있는 아파트도 아니라 얼마 안가. 그리고 포천의 침대공장도 임대공장이거든.”

“그래서 여자를 소개하지 않겠다고 했나?”

“결혼상담소 원장이 비웃으며 그 정도 재산이면 전문직 신부는 꿈도 꾸지 말고 9급 공무원이나 일반기업에 다니는 여성도 어렵다고 하면서 가보라고 했다더군.”

“그건 너무하네. 상대의 장래성이나 인격은 무시하고 부모의 재산이 결혼 기준이라니!”

“형! 우리나라가 무슨 공화국인지 알아? 헌법 제1조가 뭔지 알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거 아냐?”

“틀렸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야.”

“뭐라고?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말이야?”

“대한민국은 자산공화국이야.”

“뭐라고?”

“자산이 있는 집구석은 학교도 좋은데 다니고 취업도 잘돼. 결혼도 잘 하고. 우리 집이 이문동이 아니고 강남 대치동에서 살았으면 난 좀 더 좋은 학교를 다녔을 거야. 그리고 유학이라도 다녀왔으면 지금 좋은 직장 안 다녔겠어?”

“그, 그건 맞는 말이지만.”

“우리 아버지 침대공장이 있는 포천에서는 공부를 잘해도 인서울 대학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래. 강남에서 공부를 잘하면 인서울만 가겠어? 스카이를 가지?”

“에효. 그놈의 돈돈. 하긴 나도 돈 때문에 여자에게 채이고 대리 일을 하지만.”

“나 경찰 시험공부 때려치우기로 했어. 돈이나 벌어야겠어. 미아리 점쟁이 말이 맞는 것 같아. 관직에 인연이 없고 돈은 잘 번다고 했잖아? 자산 공화국에서 돈만 있으면 되지.”

“그, 그건 그렇지만.“

“결혼상담소 원장이 이런 말을 했데. 돈 많으면 신랑 될 사람이 좀 부족하더라도 전문직 여성이 줄을 선다고 하더군.”

“하,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돈하고 결혼하는 것 같군.”

“세상이 그래.”

“에효, 그렇지만 돈 벌기가 어디 쉬운가? 나도 투잡 뛰며 발버둥 치지만 한 달 100만원 모으기도 힘들어. 10년에 일억 모으기도 힘들지. 그런데 요즘 강남 아파트는 30억, 40억 한다며?”

“형은 괜찮아. 점쟁이가 천금을 희롱한다고 했잖아.“

“너 ‘사’자 들어가는 직업여성을 원하면 사람 하나 소개 할까? 복지사는 어떠냐?”

“입 사려! 내일 내가 수유역에서 전화 할 테니 저녁이나 같이 해.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세월은 잘도 갔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강시혁은 어르신 주간보호센터를 그만 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다.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특별한 경력도 없어 탈출을 못했다.

인터넷 뉴스에 보니 삼방그룹에 인수된 장명건설이 또 노동쟁의가 있다고 하였다.

장명건설 노동자들은 장명건설이 삼방에 흡수되었으니 대우를 삼방 수준에 맞추어달라고 농성을 한다고 하였다.

[작은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던 장명건설이 이제는 대기업 수준의 대우를 원하네!]

그러면서 강시혁은 삼방그룹의 후계자 이영진 상무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지금 잘 있을까? 창업 회장님 묘소에서 눈물을 흘린걸 보았었는데.]

이영진 상무 측에서 다시는 자기를 불러주지 않아 정말 인연이 다 끝났나 하였다.

말이 좀 많았던 가정부 아줌마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영진 상무 집에서는 아무리 보아도 대리 기사를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지난번 용인에 다녀온 것은 특별한 케이스였다.

운전 잘하고 신원이 확실한 회사소속 기사들이 있는데 대리 기사를 쓸 일이 있겠는가?

또 대리 기사를 쓴다면 회사의 총무과에서 알아서 처리를 다 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번처럼 자기를 부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부른 것도 서초동 법무법인의 박 변호사가 추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벌가에서 아무나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강시혁은 오늘도 주간보호센터 일을 끝냈다.

시계를 보았다. 얼른 저녁을 때우고 대리 일을 나가야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자장면이 먹고 싶어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자장면을 먹는 게 아니라 후룩후룩 마시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후배 변상철의 전화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영진 상무 댁의 가정부 전화였다.

강시혁은 놀라서 얼른 입안에 든 자장면을 뱉어내고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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