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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4화 (24/199)

24화 인연의 꼬리 (1)

(24)

룸미러로 본 이영진 상무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청초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니 여신의 살인적 미소가 이런 것이리라.

그런데 계속 말을 하라는 것은 강시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정부 아줌마를 배려한 것 같았다.

음식 잘하는 아줌마에게 잘해야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아줌마도 집에서는 대화 상대가 없을 것 같았다.

성처럼 생긴 넓은 집에서 대화 상대가 누가 있겠는가? 기껏해야 출퇴근 때 만나는 벤츠차 운전기사와 가끔 정원을 다듬어주는 정원사 정도일 것이다.

아줌마는 옆 동네 사람을 만나서 신이 났다.

“내가 금산서 처녀 적에는 인기가 많았는데!”

강시혁이 보기에 아줌마는 눈이 작고 입술이 두꺼웠다.

인기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맞장구를 쳐주었다.

“젊었을 때는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호호, 역시 기사님이 사람을 볼 줄 아는군. 그럼 그렇지. 대리 기사를 한다니까 여러 사람을 겪어보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눈썰미가 있지.”

강시혁이 룸미러를 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과 아줌마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창밖만 내다보았다.

아줌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주고받으면 오히려 실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강시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운전만 했다.

옆에서 산타페 한 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조수석에 탄 아줌마가 크게 놀랐다.

“에구머니!”

강시혁은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뒤에 탄 이영진 상무가 놀라지 않게 브레이크를 여러 번 나누어서 밟았다.

산타페가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강시혁은 묵묵히 산타페 뒤만 따랐다. 아줌마가 입을 내밀고 말했다.

“강 기사님은 참 얌전하시네. 김 기사 같으면 개새끼, 소새끼하고 욕을 했을 텐데.”

“상대방이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내주었으니 봐줘야죠.”

“에고, 강 기사는 매너도 좋네. 그렇지요? 아가씨?“

그러면서 아줌마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살짝 미소만 보내주었다.

이후 강시혁은 말을 아꼈다. 아줌마가 몇 번 질문을 하다가 강시혁이 단답형으로 대답하니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핸드폰을 열심히 보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강시혁은 이태원으로 오는 동안 말 한마디 안했다.

이영진 상무는 졸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말은 한마디도 안했다,

같이 탄 사람들이 시종이나 다름없는 가정부와 대리 기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 이태원 집에 도착할 무렵이 되었다.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을 쳐다보며 처음으로 먼저 말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렌트카 비용과 기사님 수고비를 드려야지요.”

강시혁이 얼른 렌트카 영수증을 이영진 상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렌트카 비용은 여기 렌트카 회사 영수증이 있고 제 일당은 최저임금 시급 계산해 주시면 됩니다.”

“영수증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서 봉투 하나를 강시혁에게 주었다.

“50만원입니다.”

“헉! 너무 많은데요?”

“그냥 넣어두세요.”

옆에 있던 아줌마도 말했다.

“그래요. 넣어두세요. 아가씨가 특별히 배려해 주셨군요. 운전 곱게 해줘서 그런 거예요.”

“고맙습니다. 상무님, 그리고 이모님.”

“호호, 고맙긴!”

대답은 이영진 상무가 하지 않고 아줌마가 대신했다.

차가 이태원 이영진 상무 집의 대문 앞에 정차했다.

강시혁이 얼른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줌마는 자기가 내렸다.

그런데 육중한 대문은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 저절로 열렸다. 무슨 전파신호라도 보낸 것 같았다.

강시혁이 뒷 트렁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음식보따리를 꺼내 아줌마에게 주었다.

그 순간 강시혁은 얼른 짱구를 돌렸다.

[이영진 상무는 접근을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니까 이 아줌마를 친해놓자. 그러면 인연의 끈을 더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객관리 차원에서 그렇게 하자.]

강시혁이 얼른 품속에서 자기 명함을 꺼냈다.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의 명함이었다.

“이모님. 오늘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명함인데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또 불러주십시오. 운전 아니고 다른 잡일이라도 좋습니다. 그때는 더 잘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나도 고향 이웃에 살던 사람을 만나 반가워요.”

그러면서 아줌마는 강시혁이 준 명함을 자기 옷 주머니에 넣었다.

강시혁은 문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해주었다.

강시혁은 오늘 기분이 좋았다.

꿈에도 보고 싶었던 여신을 모시고 돈이 생겼으니 말이다.

50만원 받았으니 렌트카 비용 25만원과 통행료 비용을 빼면 24만 원 이상 남는다. 통행료는 가까운 거리라 왕복 해보았자 1만원도 안 된다.

낮일 하고 24만원 벌었으면 아주 좋은 럭키 콜인 것이다.

[정말 자주 나를 불러주면 좋겠다. 저렇게 큰집이니까 아마 운전 말고 잡일도 많을 거야. 그때 나를 불러주면 좋겠다.]

[벤츠차 기사는 회사 직원대우를 받으면 틀림없이 가정부 말은 안 들으려고 할 것이다. 지난번 산정호수 팬션에서 보니까 기사가 중년의 나이니까 아줌마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가 없겠지.]

[아줌마가 벤츠 기사에게 무거운 물건이라도 들어달라고 하면 눈을 부라릴게 틀림없어. 식모 년이 자기를 함부로 부하직원 다루듯이 한다고 성을 내지 않겠어? 그렇지만 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강시혁은 렌트카 회사에 차를 반납했다.

돈 생겼으니 집근처에서 밥을 사먹기로 하였다. 수유역 앞에 있는 먹자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달래 해장국집에서 국밥과 소주를 시켰다.

소주를 마시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다.

-

[이영진 상무가 나를 다시 불러줄 일이 있을까?]

아무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재벌 집 딸과 어떻게 해서든지 인연이 닿는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벤츠차 기사는 보아하니 10년 이상은 더 근무할 것 같았다.

직원 대우면 4대 보험에 고정월급까지 있고 퇴직금도 있으니 그만 둘리는 없을 것이다.

또 나이가 차서 그만둔다면 회사의 임원급이 추천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을 것 같았다.

아무 연고가 없는 자기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리라.

[그런데 창업 회장 산소에 가서 왜 울었을까?]

아마도 뭔가 일이 잘 안 풀려 거기 가서 운 것이 아닌 가 했다.

부모와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무슨 괴로운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전보다 얼굴이 수척해진 것으로 보아서도 그럴 가능성이 많았다.

[혹시 이번에 남편의 입김으로 장명건설을 인수한 것이 그룹에 손해를 끼쳐서 그런 건 아닐까?  향후 그룹을 맡게 된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능가하여 경영수완을 보이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새로 결혼한 A일보 장남과 성격이 안 맞아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사유가 생긴 건 아닐까?]

강시혁은 혼자서 다각도로 분석을 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이영진 상무가 산소 앞에서 운 건 자기 대갈빡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모와 남편 몰래, 그리고 날마다 출퇴근을 시켜주는 회사 기사도 따돌리고 울은 이유가 과연 무얼까 하고 강시혁은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전화가 왔다. 복지사의 전화였다.

오늘 일요일이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는 전화가 아닐까 하였다.

솔직히 말해 부담스러웠다. 복지사의 과도한 자기에 대한 관심은 정말 부담스러웠다.

자기의 이상형도 아니고, 또 한 번 이혼 경력이 있는 자기가 숫처녀인 복지사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신용불량에서 벗어나고 돈을 모으면 과거가 있었던 여성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았다.

지금 자기가 이영진 상무를 좋아하는 것은 팬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차원이지 결혼상대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고 신분도 자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지금 자기는 신용불량에서 벗어나기 위한 돈을 부지런히 모아야하는 시기라고 보았다.

여자를 생각할 때는 아니라고 보았다.

신호가 계속 울렸다.

강시혁은 전화를 받지 않을까 하다가 할 수없이 받았다.

파트타임 운전기사가 정직원인 복지사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입니다.“

“강 기사님이세요? 저 복지사입니다.”

“아, 복지사님, 웬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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