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용인의 이상한 장소 (2)
(23)
이영진 상무는 조용히 창밖만 내다보았다.
강시혁과 가사 도우미 아줌마의 대화를 들었을 텐데 표정의 변화가 일체 없었다.
[대리 기사와 가정부 아줌마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진 않겠지. 운전이나 곱게 하자.]
차는 계속 달렸다.
그런데 내비가 안내하는 곳은 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를 한참 지나 어느 산속이었다.
차는 점점 산속으로 들어왔다.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내비의 음성이 들렸다.
“목적지 부근입니다.”
강시혁은 자기가 주소를 잘못 입력했나 하였다.
아무 건물도 없는 좁은 산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정부 아줌마가 잠이 깨었다.
“여기 맞습니까?”
“오마! 다 왔네!”
그러면서 가정부 아줌마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강시혁이 얼른 내려 뒷문을 공손히 열어주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상무님.”
이영진 상무는 고개를 까닥하며 자세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차에서 내렸다.
강시혁이 도도한 아가씨 이영진 상무에게는 묻지 않고 만만한 가정부 아줌마에게 물었다.
“정말 이곳이 목적지 맞습니까? 그럼 뒤 트렁크 짐을 내릴까요?”
“내려주세요.”
강시혁이 약간 묵직한 짐을 내려주었다.
가정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혹시 돗자리 있으세요?“
강시혁은 이 차가 자기 차가 아니라 돗자리가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세차하다가 본 것도 같아 뒤 트렁크 문을 다시 열었다.
구석에 차 털이개와 함께 돗자리가 있었다.
돗자리를 꺼내주며 강시혁이 말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짐이 제법 무거운 것 같은데 제가 들어드리죠.”
“성묘 가는 거예요.”
“아, 성묘!”
그때서야 강시혁은 감을 잡았다. 성묘라고 하니까 이해가 갔다.
짐은 틀림없이 음식이 들어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영진 상무가 앞서 걸었고 뒤에 돗자리를 든 가정부 아줌마와 음식 보따리를 든 강시혁이 따랐다.
그런데 강시혁은 조금 의심이 갔다.
[이영진 상무는 부모님들이 모두 살아계신데 누구의 산소에 가는 것인가?]
그래서 강시혁은 가정부 아줌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이모님! 어느 분 묘소에 가시는 겁니까?”
“조부님 묘소에 가시는 겁니다.”
조부님이라면 바로 오늘날 삼방그룹을 창업한 회장님이시다.
삼방그룹은 조부가 창업했고 현재 회장인 이건용 회장이 세계적 그룹으로 성장을 시킨 것이다.
그런데 조부 묘소라면 부모님도 계시고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영진 상무 혼자 간다는 게 이상했다.
[왜, 가족들과 함께 가지 않는 것인가?]
강시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정부가 강시혁의 옆에 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기일(忌日)이 아니에요. 그냥 아가씨가 조부님 산소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그러니 아무한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을 이야기 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대리 기사니까 운전이나 열심히 할 뿐입니다.”
산소는 참 크고 넓게 만들었다.
왕릉보다야 작지만 일반인 묘소보다는 컸다. 주위에 적송을 심어 운치 있게 해 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아래를 보니 넓은 골프장이 보여 경치가 또한 좋았다.
“아휴, 경치 하나 죽이네요.”
가정부가 또 강시혁의 옆에 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일대 삼백만평의 토지가 모두 삼방그룹 땅이랍니다.”
“그으래요?”
이영진 상무는 가정부 아줌마와 강시혁이 소곤거리는 것이 귀에 거스른 모양이었다.
강시혁을 보고 말했다. 약간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지만 태도는 단호했다.
“기사님은 이제 내려가 보세요. 차에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상무님!”
강시혁은 음식 보따리를 산소 앞에 조용히 내려놓고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가 뭐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살금살금 올라가 나무 뒤에서 구경을 했다.
이영진 상무는 산소 앞에 깔아 논 돗자리 위에 무릎을 꿇고 꼿꼿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아줌마는 소나무 그늘아래 털퍼덕 주저앉아 이영진 상무를 구경하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던 이영진 상무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것도 같았다.
[울고 있나? 창업 회장님 앞에서 왜 울어? 가질 것 다 가진 복 받은 여자가!]
강시혁은 아마 돌아가신 창업 회장님이 이영진 상무를 무척 귀여워하지 않았나 했다.
그래서 갑자기 할아버지가 생각나 온 것이 아닌 가 했다. 그것도 부모님에겐 말도 안하고 혼자 온 것이 아닌 가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면 굳이 자기를 부르지 않고 회사 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자기를 부른 게 수상했다.
[모르겠다. 나는. 차에 가서 낮잠이나 자자!]
그런데 잠은 안 오고 이영진 상무의 모습만 떠올랐다.
[혹시 무슨 괴로운 일이 있나? 그래서 창업 회장님 앞에 와서 우는 것이 아닐까? 부모나 남편에게 말 못할 괴로움이 있는 것이 분명해.]
강시혁이 음악을 틀어놓고 듣고 있는데 산 위에서 이영진 상무와 아줌마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혁이 차에서 내려 얼른 뛰어갔다.
그리고 아줌마가 들고 있는 음식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무거운 것은 저를 주세요.”
그런데 묘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이상했다.
강시혁은 대전에 살 때 조상들 묘소에 가면 가족들끼리 가져온 음식은 거기서 먹었기 때문이었다.
[삼방그룹의 이씨 가문은 풍습도 요상하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이영진 상무의 코트가 날렸다. 주위의 풀들도 바람에 흔들거렸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얀 얼굴의 눈물자국과 바람에 날리는 코트와 머리카락을 보고 참 청초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여신이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지.]
강시혁은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뛰었다.
심은혜와 연애할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강시혁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차에 올랐다.
강시혁이 차 뒤로 돌아가 트렁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음식 보따리를 트렁크에 실었다.
아줌마가 돗자리를 들고 트렁크 뒤에 서 있었다.
강시혁이 돗자리를 받아들면서 말했다.
“상무님이 우신 것 같네요? 생전에 창업 회장님께서 상무님을 많이 귀여워해주신 것 같네요.”
아줌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있지만 요즘 아가씨가 괴로운 일이 있어 왔어요. 스트레스 풀러온 것 같아요.”
“아, 예.”
강시혁은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
필요 이상으로 물어보면 경계할 것 같아서였다.
강시혁은 두 사람을 태우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골프장 안에 있는 호수가 보였다.
[이 일대 삼백만평의 땅이 삼방그룹 소유라면 저기 보이는 골프장도 다 삼방그룹 소유겠네. 그럼 이영진 상무는 골프를 공짜로 치겠는데?
제기랄! 나는 태어나서 골프채를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골프 치는 사람들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강시혁보다도 어린 젊은 여자도 있었다.
[씨팔! 저 여자는 한가롭게 골프 치는데 나는 불알 달린 놈이 대리 운전이나 하고 있으니!]
차가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왔다.
강시혁이 슬쩍 룸미러로 뒤를 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피곤한지 시트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했다.
[오늘이 가고나면 이 여자를 언제 또 만날까?]
오늘같이 불러주지 않는다면 평생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 조수석에 탄 아줌마가 슬쩍 보았다.
아줌마는 무료한지 하품을 하였다.
[이 가정부 아줌마나 친해놔야 되겠다. 그래야 인연의 꼬리를 더 연장시킬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강시혁이 얼굴에 미소를 잔뜩 띠우고 말했다.
“저.... 이모님은 고향 금산에 자주 가세요?“
“못가요. 거기 떠나온 지가 30년도 넘었는데! 아마 많이 변했을 거야.”
“제가 대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금산 출신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봉황천에 놀러가 고기도 잡고 그랬는데!”
“어머머! 봉황천도 아네! 거기 좋지. 나도 어렸을 적에 거기서 많이 놀았는데!”
강시혁이 슬쩍 아줌마를 보니 얼굴이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자기의 추억을 일깨우는 말에 생기가 돋아난 것 같았다.
[흠. 내 쇼크 테라피가 먹혀들어가는 것 같군!]
“저는 봉황천에 가서 고추 내놓고 물장구도 치고 그랬어요.”
“호호. 고추까지!”
강시혁이 룸미러를 보며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뒤에 타고 계신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했습니다.”
강시혁이 정말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이영진 상무가 비로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재미있는데요. 계속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