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용인의 이상한 장소 (1)
(22)
일요일이 되었다.
강시혁은 샤워도 하고 머리도 잘 빗었다. 그리고 아이 브라운 펜슬로 눈썹까지 좀 진하게 그렸다.
다시 만나게 되는 이영진 상무에게 산뜻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어느 성공한 기업가의 자서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세일즈맨이었다.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파는 것이다.]
강시혁은 대리 운전이라는 서비스 상품 대신 자기의 이미지를 팔기로 한 것이다.
구두는 신지 않았다. 대리 기사가 삐까번쩍한 구두를 신으면 안 된다. 나이키 운동화면 되었다.
하지만 흙을 털고 깨끗한 이미지는 주어야 했다.
렌트카 사무실로 갔다.
소형차는 일일 렌트 비용이 10만원 미만이지만 대형차로 분류되는 제너시스 G80이라면 25만 원 이상은 주어야 했다.
렌트카 직원이 강시혁이 주는 카드를 보고 물었다.
“할부입니까? 일시불입니까?”
“일시불입니다.”
강시혁은 신용카드가 없다. 지금 내민 카드는 체크카드였다.
신용카드는 신용불량자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부 같은 거래는 할 수가 없었다.
이럴 경우 오히려 할부를 안 하니 돈이 많이 보이기는 했다.
그래서 강시혁은 목에 힘을 주고 일시불이라고 말한 것이다.
영수증은 꼭 챙겼다. 나중에 이영진 상무에게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제너시스를 끌고 셀프세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세차하며 방향제도 뿌렸다.
“됐어. 이 정도 깨끗하면 윈도우에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지겠어.”
그리고 강시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끌고 이태원으로 갔다.
이 골목은 언제나 조용했다. 오고가는 사람도 없었다.
성 같은 집들만 있으니 누가 오고가지를 않았다.
차를 세우고 클랙슨을 울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 동네에서 클랙슨을 울리는 것은 큰 결례인 것 같았다.
그래서 가사 도우미라는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대리 기사입니다.”
“어머, 오셨어요?”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천천히 나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차량 유리문을 살짝 열어놓았다.
그래야 공기가 순환되어 차내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참 있다가 저택의 육중한 문이 열리며 여자 둘이 나왔다.
한 사람은 뚱뚱한 50대 후반의 여자고 뒤에 따라오는 호리호리한 여자는 이영진 상무였다. 50대 후반 여자는 조금 전에 전화 통화를 한 가사 도우미 같았다.
그런데 가사 도우미라는 가정부 아줌마는 커다란 보따리를 들었다.
강시혁이 차에서 내려 얼른 뛰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대리 기사 강시혁입니다.”
굳이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되는데 일부러 이름을 말했다.
나 좀 기억해 달라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가정부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기사님이 젊은 미남이시네!”
강시혁이 얼른 아줌마가 든 보따리를 받았다.
“이것 차에 실을 겁니까?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모님!”
강시혁이 이모님이라고 불러주자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인사성도 밝네. 차에 실을 거예요.“
그런데 보따리에 뭐가 들었는지 제법 묵직했다.
강시혁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이런 일에 익숙한지 목례만 하고 얼른 차에 올랐다.
“이모님도 같이 가실 겁니까?”
“예, 저도 같이 가요. 저는 앞에 타지요.”
그래서 강시혁은 얼른 앞자리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호호. 나는 문을 안 열어줘도 되는데!”
강시혁이 가정부가 들었던 보따리를 뒤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에 앉았다.
“용인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강시혁이 뒤를 돌아보며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는데 도우미 아줌마가 먼저 말했다.
자기 핸드폰을 강시혁에 비춰주며 말했다.
“여기로 가주세요.”
핸드폰엔 가고자하는 목적지의 주소가 입력되어있었다.
주소가 용인시 산 몇 번지로 되어있었다. 또 산속에 있는 팬션 같은데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얼른 도우미 아줌마 핸드폰에 있는 주소를 자기 핸드폰에 입력했다.
그리고 카카오 내비에 들어가 목적지로 설정했다.
차가 이태원 골목을 서서히 빠져나와 한남동 제3한강교를 지나갔다.
강시혁이 룸미러로 뒤에 앉은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벙거지 햇을 쓴 채 도도히 앉아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옆모습이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얼굴이 전보다 좀 수척해진 듯하였다.
강시혁은 얼른 눈길을 앞으로 향했다. 룸미러로 뒤를 보다가 잘못하면 눈이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차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그때서야 뒤에 탄 이영진 상무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아줌마! 오늘 제가 용인에 가는 것 아무도 모르죠?”
“모릅니다. 김 기사도 오늘 쉬는 날이라 모릅니다.”
강시혁이 생각하기에 김 기사는 벤츠 마이바흐를 모는 기사로 짐작되었다.
요즘은 대기업도 임원들에게 기사를 배정해 주지 않는다. 대표이사인 사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오너드라이버다.
회사에서는 자동차만 사주었다. 그리고 자동차 월 유지비만 지급해 주었다.
그런데 이영진 상무는 말이 상무지 부회장이나 다름없는 신분이라 기사가 있는 것이다.
강시혁은 운전을 하고 가면서도 계속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사도 따돌리고 자기 남편도 따돌리고 도우미 아줌마와 어디를 가는 걸까? 아줌마와 팬션을 함께 놀러가는 것은 아닐 테지.
그런데 트렁크에 실은 물건은 또 뭐야? 묵직한 것을 보니 누구한테 선물할 물건인가?]
그러다가 강시혁은 가는 목적지가 산 몇 번지로 되어있어서 혹시 골프장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골프채를 실은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보따리만 실었다.
[혹시 남편이라는 홍 사장이 먼저 골프장에 와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거기 클럽하우스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골프장도 아닌 것 같았다.
골프장 같으면 카카오 내비에 목적지 주소를 입력할 때 골프장 이름이 뜨기 때문이었다.
톨 케이트에 도착하였다.
톨 박스에서 통행권을 뽑으며 강시혁이 말했다.
“통행료는 나중에 렌트비와 함께 정산해 주시면 됩니다.”
이영진 상무는 고개만 까닥한 채 아무 말도 안했다.
역시 귀족들은 흙수저와 말을 섞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차는 계속 달렸다.
심심한지 앞 조수석에 앉은 가정부 아줌마가 하품을 했다.
“아휴, 나는 차만 타면 졸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의자 옆에 손잡이가 있습니다. 뒤로 젖히시고 주무시면 됩니다.”
“기사 양반은 결혼 했소?”
아줌마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귀족들은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데 역시 강시혁과 같은 레벨의 흙수저인 가정부 아줌마는 남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혼자 있습니다.”
결혼을 했었다고 말하진 않았다. 혼자 있다고만 말했다.
또 지금 혼자 있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시혁이 룸미러로 이영진 상무를 흘깃 보았다. 그러나 이영진 상무는 눈을 감은 채 가정부 아줌마와 강시혁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인물도 좋은데 왜 혼자 있어? 빨리 결혼하지! 고향은 어디요?”
“대전입니다.”
“오마, 그래? 나는 대전 옆에 금산인데 반가워요.”
“하하, 그러세요? 저도 반갑습니다. 이모님.”
“부모님은 계시고?”
참, 못 말리는 여자다. 별걸 다 묻는다.
“예. 대전에 살고 계십니다.”
“운전도 곱게 하는 것 같은데 왜 대리 기사를 하나? 붙박이로 어딜 들어가지.“
“하하. 운전은 특별한 전문직이 아니라서 연고 없으면 정규직으로 어디 들어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강 기사라고 하셨나?”
“예, 그렇습니다. 강시혁입니다.“
“오늘 뒤에 계신 아가씨 모시고 어디 가는 것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하하. 저는 이야기할만한 상대도 없습니다.“
“아가씨에게 드린 명함을 보니까 낮엔 어디 어르신 주간 보호센터에서 근무하는 것 같던데.”
“예, 낮엔 어르신 모시는 일을 하고 밤에 대리 운전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할 상대도 없습니다.”
“열심히 사는 청년이네. 에효, 우리 애도 이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하, 아드님이 계신 모양이네요.“
그런데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는 강시혁의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고개를 옆으로 꺾고 졸았다.
강시혁은 아줌마 덕분에 자기를 파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영진 상무는 내가 혼자 있으며 고향이 대전이고 부모님이 계신 것으로 알 것이다. 그리고 낮엔 주간 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야간이나 휴일엔 대리 뛰는 것으로 알 것이다. 조금씩 나를 알게 하는 것도 좋겠지.]
[누가 아나? 이러다가 삼방그룹 운전직 자리가 비면 나를 추천할지?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