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걸려온 전화 (2)
(21)
강시혁은 일단 렌터카 회사에 차를 예약했다.
렌터카 회사에 보유차량이 적으면 필요한 차종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예약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리 찍어 놓기로 한 것이다.
[전에 이용했던 제너시스 G80은 다른 놈이 이용 못한다. 우리 공주님이 이용하실 거다.]
그런데 전에 박 변호사가 렌트카를 빌릴 때는 렌트카 비용을 강시혁 통장에 미리 쏘아주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 댁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 아줌마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미리부터 돈 이야기하면 싫어하겠지? 일단 내 이미지를 좋게 해야 돼. 렌트카 빌리는 비용은 나중에 청구 하지. 재벌가 가문에서 설마 렌트비 떼어 먹겠어?]
강시혁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자동차 핸들을 쥐고 렌트카를 몰고 가는 시늉을 내며 노래를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을 나는 돛단배!“
이 노래는 김광석이란 옛날 가수가 부른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란 곡이다. 가사가 삐딱하고 도전적이다.
강시혁이 이 노래를 왜 배웠냐 하면 이 노래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의 번안곡이기 때문이었다.
꼴에 영문과 출신이라고 이번엔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은 가수지만 작사실력을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밥 딜런 노래 가사 몇 개는 외우고 다녀야 영문학과 체면이 섰다.
“I once loved a woman, a child I'm told!"
(나는 한때 여자를 사랑했어. 어린아이 같다던!)
강남 쪽으로 가다가 을지로 3가에서 콜을 잡았다.
일산까지 가는 손님인데 뿔테 안경을 낀 50대였다. 차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였다.
손님은 머리도 여자처럼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예술가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는데 뒷좌석에서 이 손님이 흥얼대기 시작했다. 술 냄새 푹푹 풍기며 흥얼댔다.
놀랍게도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는 곡이었다.
강시혁도 아는 노래라 같이 따라 부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대리 뛰는 새끼가 건방지다고 할 것 같아서였다.
이날은 14만원만 벌고 그냥 집으로 왔다.
이불속에 들어 누우니 또 이영진 상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날 강시혁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헤어숍에 가서 머리를 커트했다.
보호센터로 돌아오니 복지사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강 기사님 좋은 일 있어요?”
“좋은 일은 없어도 좋게 살아야지요.”
“머리에 힘도 주고 표정도 아주 밝아요.”
“언제는 내가 어두웠나요?”
“그건 아닌데 평소보다 아주 밝아졌어요. 혹시 로또라도 한 장 사놓은 것 아녜요?”
강시혁은 흠칫했다.
노원구 대박 집에 가서 로또를 2만원어치 사놓고 맞추어보질 않아서였다.
자기가 몰고 다니는 스타렉스 차에 올라가서 몰래 로또를 맞추어보았다.
모두 꽝이었다. 당첨금이 5천원인 5등도 없었다.
[개새끼들! 복권회사에서 추첨할 때 무슨 야료가 있는 것 아니야? 평생 4등 짜리 2년 전에 한번 맞고 한 번도 안 맞네!]
차에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후배 변상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장명건설 소식 들었어?”
“소식? 무슨 소식? 타워클레인 농성 멈추었다는 소식 말인가?“
“그게 아니고 장명건설을 삼방그룹 계열사인 삼방건설에서 인수한다는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고 하던데?”
“뭐라고?”
“형이 참. 대단해! 그런 정보도 알고! 정말 빚이라도 얻어 그 주식 샀더라면 돈 좀 벌 뻔했어. 분명히 점쟁이가 우리가 돈을 번다고 하는데 이번 기회를 놓쳤네.”
“정말이야?”
“어제 장 종료 후에 장명건설에서 정식으로 공시했어. 그래서 오늘 장 초반부터 이 회사 주식이 상한가를 찍고 있어.”
“그으래?“
“조금 전에 매도 물량이 많이 쏟아져 나와 조금 흘러내렸는데 다시 사자 세력이 들어와 계속 상한가 유지상태야.”
“그으래?”
“앞으로 내가 형 말 잘 들을게. 그런데 형은 좀 샀나? 장명건설 주식 말이야.”
“안 샀어. 기업을 양도하겠다고 정식 본 계약이 체결된 건 아니잖아. 양해각서야 나중에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단지 그렇게 하겠다는 희망사항일 뿐이지.”
“이런 선배님을 보았나? 본 계약이 체결되든 안 되든 무슨 상관이야. 소문이 나와서 주가나 올라가면 되는 거지! 주가야 원래 소문에 올라가고 소문에 내려가는 것 아닌가? 주식 안 해 봤어?”
“별 이익도 나지 않는 회사를 삼방건설에서 인수했으니 삼방은 반대로 주가가 빠졌겠는데?”
“역시 경험자야. 맞아. 삼방건설은 오늘 마이너스 4% 빠졌어. 장명건설과 달리 삼방건설은 대형건설사라 악재이긴 해도 많이 빠지지는 않은 것 같네.”
“그 정도 빠진 거야 금방 회복되겠지.”
“그런데 삼방의 노조에서 장명건설 인수 반대 성명이라도 낼지 모르겠네.”
"회사의 주인은 노조가 아니니까 그러다가 말겠지.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 인수한다고 노조원들을 설득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삼방은 국내 건설부문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위해 장명건설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어.”
“그래?”
“형, 앞으로 또 좋은 소문 주워들은 것 있으면 알려줘. 내가 돈이 없더라도 우리 엄마한테 투자하라고 귀띔을 해줄 테니까.”
“알았다. 그렇게 할게.”
“일요일 어디 안가지?”
“일요일 VIP고객 모시기로 했어.”
“바쁘네. 일요일도 돈을 벌고! 미아리 점쟁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앞으로 천금을 희롱하겠는데?”
“네가 지금 나를 희롱하고 있다!“
“하하. 알았어. 전화 끊을게!”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우선 장명건설의 주가를 보았다.
장명건설은 정말로 상한가를 찍고 있었다. 작은 회사라 시가총액이 높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 상한가를 친 것 같았다.
[박 변호사는 정보를 먼저 알았을 테니 얼마를 벌었을까? 또 한남더힐 고가 아파트에 사는 법무법인의 대표라는 사람은 얼마를 벌었을까?]
그런데 변호사들은 돈을 벌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해각서에 대한 법률적 검토만 했지 양도양수에 대한 서명을 하는 직접적 당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번다면 장명건설 사장이자 A일보의 사위인 김장명 사장이 벌었을 것이다.
또, 이 일을 주선한 삼방그룹 이영진 상무의 신랑 홍승필 사장이 돈을 벌었을 것 같았다.
홍승필 사장은 김장명 사장의 처남이자 삼방건설과 M&A 다리를 놓아준 사람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사의 임원이나 특수 관계인은 회사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투자를 못하게 되어있다.
금융감독원에 적발된다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본인이 투자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상한가를 쳤으니 10억을 투자했으면 3억을 벌었을 것이다.
100억을 투자했다면 30억을 버는 것이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버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허탈했다.
자기는 1억 정도의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아내와 결혼생활이 찢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빚 갚느라고 아까운 청춘을 다 보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불평등한 게임인가!
강시혁은 오늘 일할 기분이 영 나질 않았다.
주식이 되었던 부동산이 되었던 한쪽에서 누군가 왕창 돈을 벌면 맥 빠지는 것이다. 근로의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강시혁은 최저 임금을 벌기위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모신다.
또 저녁에는 술 취한 사람들을 모시는데 남들은 한방에 돈을 벌어버리니 근로의욕이 나겠는가?
그러다가 강시혁은 삼방건설같이 도급순위 상위권의 대형 건설사가 장명건설을 인수한 것이 잘한 것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이영진 상무가 미국에서 돌아와 경영에 참여 후 첫 번째 작품인 것 같은데 엄연히 알아서 잘 했겠지 하였다.
[전문가들을 풀어 실사 후에 양해각서를 체결했겠지. 나 같은 놈이 뭘 알겠어?]
그러면서 이 계약이 본 계약으로 과연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세력들은 지금 한탕 잘해먹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세력들은 내일이라도 팔아버리고 트림이나 하면 되는 것이다.
장명건설이나 삼방건설이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알 바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