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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0화 (20/199)

20화 걸려온 전화 (1)

(20)

강시혁은 심종학이 일본 야쿠자와 연결되었다는데 놀랐다.

“하, 그놈이 일본 야쿠자와 거래를 해? 물건이네.”

“심부름이나 했겠지. 진짜는 따로 있겠지. 적발된 수량도 별것 아니네.”

“그래도 그놈이 그럴 줄은 몰랐네. 자기 누나가 그놈한테 돈을 많이 뜯기긴 했지.”

“약을 산다고 돈을 달라고 했나?”

“그건 모르겠는데 친정 엄마 약값하고 동생 학원비 지원한다고 자기 월급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럼 생활비는 그동안 형이 혼자 다 부담했나?”

“그런 셈이지. 투룸 임대료와 관리비, 공과금은 물론 식자재비는 다 내가 부담했지. 나중엔 월급이 밀려 그것도 못했지만.”

“그 이후로 부부싸움이 잦았겠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제 그 심씨 집안하고는 인연이 끊어졌다. 아이 없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그래서 결혼을 잘해야 돼.”

“살다보면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 자기부인이 위로해주고 마음으로 격려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엄마 말처럼 여자는 확실히 집안도 봐야하는 게 맞아.”

“요즘세상 그런 여자가 있을까?“

“가풍이 좋은 집안이라면 있겠지.”

“형은 운 나빠 식당 차린 것 실패했지만 살아보려고 애쓴 사람 아닌가?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고 폭력적인 사람도 아니잖아. 형은 다시 일어설 거야.”

“고맙다. 상철아.”

“점쟁이가 형은 천금을 희롱한다고 했으니 잘 될 거야. 기 죽지 마.”

“한 병 더 할까?”

“형, 돈 모아야지. 내가 얻어먹는 건 좋은데 이렇게 돈 써서 되겠어?”

“아무리 내가 빚을 진 놈이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삼겹살이라도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더 이겨나가기 힘들어.”

“알았어. 그럼 딱 한 병만 더하지.“

며칠이 지났다.

강시혁은 여전히 야간에 대리 일을 했고 낮에는 어르신 주간 보호센터 일을 했다.

새벽까지 대리 일을 하고 아침 7시에 다시 보호센터 일을 나가면 언제나 잠은 부족했다.

먹는 것도 입맛이 없어 빵이나 우유, 아니면 김밥 같은 것으로 때우니 몸이 야위어 갔다.

꺼칠해진 모습을 보고 복지사가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위로의 말을 했다.

“강시혁씨 야간에 투잡 뛴다고 하셨죠? 돈 조금만 버세요. 돈 벌어 다 뭐하세요?“

빚이 있다고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빚 갚는데 쓴다고 하면 빚을 어떻게 해서 졌느냐고 또 질문을 할까봐 그만 두었다. 그냥 미소만 지었다.

“젊었을 때 부지런히 모아야지요.”

이 복지사는 심은혜처럼 돈 문제가지고 까칠하게 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듣자하니 부모님도 상계동에 사시는데 은퇴하시고 전기 소켓 조립 일을 하신다고 했다. 정상적인 집안 같았다.

그런데 복지사의 스타일이 이상하게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계란형이 아니고 약간 턱이 넓은 얼굴이라 싫었다. 인물 뜯어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인물은 심은혜보다 떨어졌다.

그렇지만 인성은 심은혜보다 훨씬 나았다.

하지만 삼방그룹의 이영진 상무는 심은혜나 복지사와 또 달랐다. 압도적 아이돌급 미모에 우선 분위기가 귀족적이다. 심은혜나 복지사 같은 서민 형이 아니었다.

이영진 상무는 잘 먹고 자라서 그런지 키도 크고 피부도 달랐다.

양반 상놈이 없어진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 양반집 규수 아니면 귀족의 종자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금생엔 틀렸지만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그런 여자와 한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면 2세도 우수한 종자가 태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전히 박 변호사나 이영진 상무 측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이제는 점점 잊혀져가는 사람이 되었다.

장명건설 노사분규가 타결되었다는 경제신문 보도가 나왔다.

회사 측과 노동자 측이 서로 양보하여 합의를 했고 40여 일간 투쟁했던 타워클레인 농성도 푼다고 하였다.

경제지 기자는 끝에 이런 기사를 썼다.

[노사문제가 타결됨에 따라 장명건설의 매각이 급물살을 탈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명건설 대주주인 김장명 대표이사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매각가가 너무 높고 최근 건설경기가 많이 식어 원매자가 나올지는 의문시되고 있다.]

강시혁이 장명건설 주가를 보았다.

노사분규 타결로 주가가 5%정도 상승했다.

[헹, 오너 가족이 아닌 노조 간부만 되어도 우리 같은 개미들보다 정보는 많을 것 같네. 노사분규 타결 전날 몇 푼 장명건설 주식에 찔러 넣었으면 5%는 먹었을 것 아닌가!]

강시혁은 자기 신세가 건설회사 노조원만큼도 못된다고 생각했다.

전에 아무 정보도 없이 차트 분석만하고 주식투자를 했던 것이 후회만 되었다. 책에 나오는 차트 기법만가지고 덤빈 것이 얼마나 무모했었나 하였다.

그야말로 자기는 맨땅에 헤딩한 호구였던 것이다.

비가 갠 어느 날이었다.

이날도 보호센테에 오신 노인들을 퇴근시켜주고 있는데 조금 전에 퇴근 시켜준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 기사요?”

“네, 강시혁입니다.”

“내가 보호센터에 안경을 두고 왔소. 미안하지만 갖다 줄 수 없겠소? 그거 없으면 내가 핸드폰도 보질 못해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노인에게 안경을 갖다 주고 나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오늘은 대리 일을 조금 늦게 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왔다. 입력되지 않은 모르는 전화였다.

[또 보호센터 이용하시는 어르신인가?]

전화를 받았더니 웬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보호센터의 요양사 아줌마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요양사 아줌마는 강시혁에게 전화를 걸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하였다.

“강 기사님이시죠?”

“그렇습니다. 누구시죠?”

“여긴 이태원입니다.”

“예? 이, 이태원요?”

“저는 이영진 상무님 댁의 가사 도우미입니다.”

이영진 상무라는 말에 강시혁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삼방그룹의 이, 이영진 상무님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차를 쓸 일이 있는데 일요일 오전에 이곳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무, 무슨 차를 가지고가면 되겠습니까?”

“잠시 기다려보세요.”

이영진 상무는 직접 전화를 걸지 않았다.

역시 귀족답게 가사 도우미를 통해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

가사 도우미는 아마 옆에 있는 이영진 상무에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제너시스를 가지고 오시면 된답니다. 오전 10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이태원에서 용인까지 가는 것입니다.”

“용인이요? 알겠습니다. 하루만 쓰실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12시간 이용하는 것으로 차를 빌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다른 분에게 말씀하시지 말고 조용히 오셔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갑자기 전화를 받고 얼떨떨하였다.

일단은 끊어질 것 같은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아서 기뻤다.

하지만 용인은 왜 가는지 궁금했다.

[용인 민속촌이나 애버랜드에 놀러가려는 것일까?]

아마 이영진 상무와 같은 귀족들은 그런 사람 많은 유원지는 놀러가지 않을 것 같았다.

산정호수에 가서도 간판도 없는 팬션에 있다가 조용히 오지 않았던가.

자기는 운전만 잘하면 되었다.

어쨌든 꿈속의 이상형인 월궁항아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모시게 되어 반가웠다.

그동안 보호센터에서 건강도 신통치 않은 어르신을 모시고 다니느라 고생한 것을 하느님께서 가상히 여기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선물도 내려주시나 했다.

[하느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은혜 듬뿍 받았사옵니다.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종교인은 아니지만 하늘에 대고 감사의 기도까지 했다.

일요일이 되면 일찍 차를 빌려 세차부터 깨끗이 하고 방향제도 사서 시트 구석구석에 뿌려놓기로 했다.

차 안에 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해야 이영진 상무의 마음을 살 것 같았다.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은 대리 기사의 본분이 아닌가!

그러면서 또 용인을 왜 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인은 남편 되는 A일보의 장남 홍승필 사장하고 같이 가겠지? 그렇다면 골프 치러 가는 것이 아닐까? 부부가 함께 치는 것도 보기 좋겠지.]

그러면서 또 이 부부가 부러웠다.

이 세상은 이들이 주인공이고 자기는 한낱 스쳐가는 보조 출연자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런데 골프를 치러간다면 회사 소속의 기사를 데리고 벤츠 마이바흐를 끌고 가지 않는 게 또 수상했다.

렌트카를 이용해야만 하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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