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이어트 약품 (1)
(19)
헤어진 아내 심은혜에게는 건달 끼가 있는 남동생이 있었다.
부천에서 양아치처럼 노는 놈이었다.
그래도 장모는 이 아들이라면 껌벅 죽는다. 해달라는 것은 다해주고 있었다.
“남동생이 어디 취업이라도 했나요?”
“대리 운전하는 놈이 취업은 무슨 취업이에요?”
[뭐? 대리 운전? 그럼 이놈이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언제가 영업현장에서 한 번 볼 수도 있겠는데? 참 재수 더럽게 없네!]
강시혁은 심은혜 동생과 매일 밤 서로 먼저 좋은데 콜을 받으려고 경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찝찝했다.
심은혜의 친구인 조미향은 강시혁이 대리 운전을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뭐...... 대리 운전도 열심히 하면 좋겠죠.”
“그런데 착실히 운전이나 하지 강남역 근방에서 캔디사탕을 팔다가 걸렸데요. 그래서 구속되었답니다.”
“예? 캔디사탕요? 캔디사탕을 파는데 구속이 되요?”
조미향이란 여자가 물끄러미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캔디사탕 모르세요?”
“예? 잘 모르겠는데요.”
조미향이란 여자 얼굴에 약간 비웃음이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러니까 네가 마누라를 빼앗겼지. 이상한 여자 만나서 가스 라이팅이나 당할 찌질이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캔디사탕은 다이어트 약품이랍니다.”
“아!”
그때서야 강시혁은 이 사탕이 환각제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왜, 그런 짓을!”
“그러게 말이에요. 소등을 하는걸 보니 연극이 시작되는 모양이네요. 그럼 관람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때 후배가 슬그머니 들어와 강시혁의 옆자리에 앉았다.
강시혁은 후배와 함께 불륜의 시대를 관람했다. 심은혜의 친구인 조미향은 시골 출신인 듯한 군인과 함께 와서 불륜의 시대를 관람했다.
강시혁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조미향은 군인을 꼭 껴안고 연극을 관람했다.
강시혁은 부디 그들의 사이가 불륜의 관계가 아닌 장래를 약속한 결혼 상대자이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런데 연극 내용이 어째 강시혁의 사정과 비슷해 소름이 끼쳤다.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 불량자가 되자 여자가 바로 바람을 피우는 줄거리다.
남자는 여자를 끝없이 의심했고 여자는 여자 나름대로 남자의 집요한 추궁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걸 못마땅해 했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살림에 참견하는 것이 싫었고 친정 엄마는 아이가 없을 때 헤어지는 것이 현명하다고 바람을 넣었다.
배우들은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연기했다.
변상철은 재미없다고 하품을 했지만 강시혁은 연극내용을 보고 자꾸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슬그머니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기도 했다.
특히 연극에서 엄마라는 사람의 연기는 강시혁의 엄마와 정말 똑 같았다.
“살다보면 남자가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날마다 남자를 쪼아대? 빌라 임대료는 자기가 한번 내주면 어디 덧나나? 계속 남자 등골만 파먹겠다는 말이지? 자기 친정엄마가 남자들을 셋이라 호렸다니 그 피를 받은 모양이네!”
그날 엄마가 왔을 때 심은혜는 야근이 있다면서 밤 11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도 기다리다 막차 늦어진다고 하면서 가버리자 심은혜는 만취가 되어서 왔다.
심은혜가 거실 소파에 앉아 양말을 벗다가 전화를 받았다.
남자의 음성이 작게 들렸다.
“잘 들어갔지? 사랑해, 자기야.”
분명히 박 과장이란 놈의 목소리였다.
강시혁이 꼭지가 돌았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몇 시인데 이렇게 술이 취해 들어오는 거야? 자기 결혼한 여자 맞아?”
“왜? 나도 일하고 온 사람이야!”
“방금 박 과장 전화지? 사랑해 자기야가 뭐야!”
“그 사람 원래 스타일이 그래서 그런 것뿐이야. 별걸 다 오해하네.”
“불륜의 맛은 언제나 짜릿하지.”
“흥! 나도 이제 지쳤어. 우린 빨리 헤어질수록 좋아!”
“그놈하고 마음 놓고 붙어먹겠다는 건가?”
심은혜는 입술을 파랗게 한 채 떨었다. 그리고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심은혜도 지쳤지만 강시혁도 그때 엄청 지쳐 있었다.
그 대사 장면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지금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대사가 똑 같았다.
이 연극대본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날 밤 심은혜와 다툴 때 몰래 집안에 들어와 메모를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연극을 하는 동안 뒷좌석의 조미향이란 여자는 군인과 함께 계속 애무를 하였다.
변상철은 뭐가 좋은지 계속 낄낄거렸다.
하지만 강시혁은 연극을 하는 동안 내내 마음속으로 울었다.
연극이 끝났다.
나이 젊은 학생 관객은 재미 더럽게 없다고 투덜거렸고 나이가 좀 있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관람객 중에선 강시혁과 같이 자기 일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미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람 잘 했어요?”
“예? 자, 잘 했습니다.”
조미향의 웃음 속엔 이 연극이 당신들과 똑같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과 변상철은 소극장을 나왔다.
둘이 삼겹살집으로 갔다.
삼겹살을 시키면 된장찌개가 딸려 나오므로 밥과 함께 먹으면 제격이었다.
밥과 술안주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은 이것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너 전에 나하고 살던 심은혜에게 남자 동생이 하나 있는 건 알지?”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건달 동생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아.”
“그 자식이 또 사고 친 모양이야.”
“사고라니? 누구하고 싸웠나?”
“그게 아니고 강남역에서 캔디사탕을 팔다가 걸려 들어간 것 같아.”
“캔디사탕? 그런 거 하면 안 되는데!”
“역시 너는 주변에 딴따라 친구들이 많아서 캔디사탕이라고 그러니까 금방 알아듣는구나. 나는 캔디사탕이 뭔가 그랬어.”
“내 친구들이 예술 하는 애들이 있지만 그런데 손 안대. 잘못했다간 신세 조져. 아무리 달콤한 것이라도 그런 건 사람의 정신과 몸을 황폐시키는 거잖아.”
“너도 건달 끼가 있지만 건전하니 좋다,”
“앞으로 내가 경찰이 되면 그런 놈 잡으러 다니는 역할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점쟁이 여자가 경찰과는 인연이 없다고 하니 어째 절망적인 것 같아.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빨리 주세요.”
그러면서 변상철은 삼겹살집 주인아줌마를 불렀다.
“낮술이니 많이 마시진 마라.”
“소주라도 한잔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아. 내가 캔디사탕 씹는 것도 아닌데 낮술 한잔 하는 거야 뭐 어때?”
“그런데 캔디 사탕이란 게 도대체 뭐야? 달착지근한 환각제인가?”
“아냐. 독일 제약사에서 만든 MDMA라는 식욕감퇴제야. 엑시터시라고도 많이 불리는데 환각작용이 있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파티용으로도 많이 써. 나도 이야기만 들었어.”
“역시 너는 경찰관 하려고 범죄연구도 많이 한 것 같구나.”
변상철은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한숨을 푹 쉬었다.
“에효.”
“점쟁이 말 때문에 그러냐? 그런 장님 여자가 뭘 아냐? 그냥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해라. 안되면 경위시험 포기하고 순경시험 봐라.”
“형도 알다시피 그래도 우리는 서울에 있는 이류대학이라도 다녔잖아.”
“그건 그렇지.“
“취업이 잘 안 되는 어문계열이지만 명색이 4년제 인서울 나와서 순경하기는 싫어.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어린놈들하고 순경노릇하려면 그건 죽어도 못하겠어. 경위가 좋은데......”
“9급보다는 7급이 낫고 7급보다는 5급이 나은 것 누가 모르나? 잘 안되니까 그렇지.”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 점쟁이 여자 말이 맞는 것 같아. 경찰은 정말 인연이 없을 것 같아. 이번 시험만 보고 떨어지면 돈 벌 생각이나 해야겠어.”
“너는 점을 철저히 믿는구나.”
“점은 미신이지만 그래도 통계 아닌가? 통계에 바탕을 둔거니까 점도 생명력이 있는 것 아니겠어. 그 여자 말이 맞을 것 같아. 아까 연극 구경하면서도 내내 그 생각만 했어.”
“아버지 침대공장에 가라.”
“거긴 싫어! 하지만 하다하다 안되면 가야겠지. 그런데 헤어진 형수씨 남동생 이름이 뭐지?”
“왜?”
“인터넷 검색 해보게. 캔디사탕 팔려다 걸렸으면 인터넷에 뜰 거야.”
“심종학이야.”
“판매책을 할 정도면 이미 본인도 투약을 했을 가능성도 많다는 뜻인데.......”
“설마 그러겠어? 그거 한다는 이야기를 내가 듣지 못했는데.”
“있네. 인터넷 검색이 되네. 한 달 전에 일본 야쿠자에게 건네받은 물건을 강남 클럽에 판매하려다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