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미아리 점집 (2)
(18)
변상철이 초조한 심정으로 점을 치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럼 시험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겁니까?”
“대주께서는 사업을 하시는 사주입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결국 우리 아버지 침대공장을 물려받으려나?“
“사업을 위해서 육대주 오대양으로 만리타국을 돌아다닐 운도 나오니까 지금부터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결혼은 한 2년 정도 더 있어야 운이 들어옵니다.”
“결혼 못할 줄 알았는데 2년 후라도 운이 들어온다니 좋습니다.”
“예술에 대한 안목도 있네요. 하지만 예술은 취미로 끝내야지 빠져들면 안 됩니다.”
“그런 것도 나오는 건가요?”
“배우자로 예술하는 여성을 만날 확률이 많겠네요. 그러면 해로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그런가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게 좋습니다. 사업하는 부인을 만나면 서로 의견충돌이 심해서 권장하지 않습니다.”
“저도 사업하는 여자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다면 옆에 손님 운세를 봐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이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자기의 생년월일을 말했다.
“방금 운세를 본 손님보다 두 살이 많으시군요.”
“예, 제가 학교 선배입니다.”
점치는 여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작은 호리병을 흔들었다.
철썩 철썩하고 병속에 든 콩알 같은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한참 중얼거리더니 호리병을 탁자에 탁 놓으며 말했다.
“대주께서는 두 번 결혼하실 운입니다.”
이 소리에 강시혁과 변상철은 입을 벌리고 서로 마주 보았다.
[와, 이건 정말 족집겐데.]
강시혁이 일부러 딴청을 떨었다.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요?”
“금년 이전에 교제했던 여자와는 무조건 깨지게 되어있습니다. 사주의 월주 천간의 재성이 충을 만나 깨지는 운세가 나옵니다. 대운에서도 깨집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런 사주는 만혼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액땜을 할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변상철이 감탄했다는 투로 말햇다.
“이 분, 그렇지 않아도 형수님과 헤어졌습니다.”
여자도 자기 점괘가 맞는 것 같아 안심했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나는 부인과는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해로할 수 있습니다. 처덕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주께서도 관직의 인연은 없습니다.“
“저도 공무원 시험공부중인데요?”
그러면서 강시혁이 변상철을 향해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했다.
여자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시험공부보다는 쇳소리 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요?”
강시혁이 또 한 번 놀랐다. 지금 자동차 운전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꾸 점치는 여자를 시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비슷한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
“대주께서도 사업가 명조입니다. 나이 40세가 넘으면 천금을 희롱하며 사해에 이름을 크게 떨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그래요?”
이 말은 점치는 여자의 립 서비스라고 강시혁은 생각했다.
천금 희롱을 하기는커녕 지금은 신용불량자에 낡은 원룸에 사는 신세이기 때문이었다.
점치는 사람들이 복채 나오라고 의례적으로 하는 말 같지만 일단 돈을 번다니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천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천금을 희롱한다면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놀린다는 뜻인가 보다 하였다.
더 이상 물어볼 말도 없을 것 같아서 강시혁이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복채가 얼마입니까?”
“한분에 3만 원씩 6만 원 주시면 됩니다.”
“유, 육만 원요?”
말 몇 마디하고 6만 원이라니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6만 원 벌려면 대리 잡콜 세 개는 받아야 벌수 있는 돈이다.
자기는 그 돈을 벌려고 밤에 눈 까뒤집고 다니지만 이 여자는 눈감고 돈을 가볍게 버는 것 같았다.
“너, 너무 비쌉니다. 좀 깎아주세요.”
“호호, 복채를 다 깎아달라고 하시다니!”
“두 사람 합쳐서 5만원만 하세요. 만 원짜리도 없네요.”
여자는 강시혁이 준 5만 원 짜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문질러 보았다.
장님이기 때문에 문질러 보아서 5만 원 짜리인 줄을 식별하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젊은 분들이니까 5만원만 받지요. 그런데 두 분 사주가 참 좋습니다. 이제 시련의 시기가 가고 만화방창하는 호시절이 돌아오네요. 특히 강 씨 성을 가진 대주께서는 부인 덕을 많이 볼 것 같습니다.”
[부인 덕이라니! 심은혜만 생각하면 결혼한 것이 이가 갈리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새로 만나는 여자의 덕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선화원 점집을 나왔다.
여자가 일어나서 쪽마루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점집을 나와 뒤를 돌아보니 성북구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보였다.
강시혁이 변상철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점집도 들렸으니 이제 밥이나 먹으로 가자!“
"여기서 먹지 말고 대학로로 가. 여기서 지하철 타면 두 정거장만 가면 돼. 여기는 동네 분위기가 좀 그래.“
“알았어. 그럼 지하철역으로 가자.“
두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로 왔다.
역시 이 동네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좋았다. 연극을 하는 소극장도 많고 술집도 많고 대학생들도 많았다.
코로나 이전 보다야 못하겠지만 아직도 술집과 카페는 성업 중이었다.
“형, 내가 아침을 좀 늦게 먹고 나왔는데 연극 한편 때리고 먹으면 안 될까? 연극 보고나면 그때는 술을 마셔도 좋을 거야. 지금 술 마시기는 그렇잖아?“
“나는 연극 취향이 아닌데.”
“내 친구가 배우로 나오는 연극이 있어. 한번 오라고 하는데 한 번도 못 와봤어. 형이 내 체면 한번 세워줘.”
“연극한다는 사람이 여자 친구냐?”
“남자야.”
“그럼 그 친구도 불러내어 이따가 같이 밥 먹으면 되겠네.“
“그 친구 계속 공연이 있어 술 못 먹어. 우리가 왔다는 얼굴 도장이나 한번 찍고 밥은 우리끼리 먹으러 가. 그래야 형 돈도 굳잖아.”
강시혁이 변상철 뒤를 따라갔다.
변상철은 대로변에서 멀지 않은 바탕골 소극장이나 대학로 예술극장은 그냥 지나치고 아주 작은 소극장으로 왔다.
오래된 3층 건물 지하에 있는 소극장이었다.
포스타가 하나 걸려있는데 ‘불륜의 시대’ 라는 연극 공연을 한다고 되어있었다.
줄서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인기 있는 연극은 아닌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래도 관객이 절반은 넘어 차있는 것 같았다.
“형! 여기 잠깐 앉아있어. 나 친구 좀 만나고 올게. 내가 왔다는 광고는 해야지.”
“알았다. 다녀와라.”
강시혁은 아직 공연 시작 전이라 스마트 폰을 보았다.
혹시 이 연극의 줄거리가 어떻게 되나하고 ‘불륜의 시대’를 검색했다.
그때 등 뒤에서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어머! 강 선생님 아니세요?”
뒤를 돌아보니 헤어진 아내 심은혜의 친구였던 조미향이란 여자였다.
남자 친구인지 웬 촌스럽게 생긴 군인하고 같이 왔다.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이었다.
언젠가 집에 놀러온 것을 본적이 있는 여자였다.
“혼자 불륜의 시대를 보러 오신 거예요?“
와이프는 박 과장이란 놈에게 빼앗기고 이런 엉큼한 제목의 연극을 보러온 사실이 쪽팔렸다.
“아, 아니, 후배랑 같이 왔습니다.”
“은혜는 한번 만난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그 여자하고는 이미 끝났습니다.”
“에효, 미친년 같으니!”
조미향이란 여자는 혼자 미친년이란 소리를 했다.
아마 심은혜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심은혜가 왜 미쳐요? 좋은 사람 찾아갔는데!“
“그러니 미친년이죠. 애 딸린 남자가 뭐가 좋아서!”
강시혁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박 과장이란 놈이 애가 하나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만났으면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야죠.”
강시혁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신불자에 대리 운전하는 여자에 시집올 여자는 없을 것 같았다. 좋은 사람 만나기는 진작 물 건너 간 것이다.
혼자 살다가 늙으면 독거노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찾아왔다,
그러다가 오전에 가본 미아리 점집 여자의 말도 생각났다.
점집 여자는 강시혁이 재혼할 팔자며 여자 덕도 본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점쟁이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생각을 하면 또 다소 위안이 되기는 하였다.
조미향이란 여자가 또 말을 했다.
“참 은혜 남동생 소식 들었어요?”
“예? 남동생요?”
강시혁은 이 오지랖 넓은 여자가 또 무슨 말을 하려나 하였다.
건달 동생의 소식까지는 들을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