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어설픈 M&A 정보 (2)
(16)
다음날 강시혁은 아침 일찍 어르신 주간보호센터로 출근했다.
오전 어르신 수송을 끝내고 복도에서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았다.
산정호수에서 M&A 말이 오갔던 장명건설에 대한 정보가 있나 해서 보았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서 근로자 한 명이 계속 농성중인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기업매각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M&A 말이 오고갔지만 이루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네. 양해각서인가 뭔가는 서명을 못한 모양이군. 그런데 어제 내가 변상철이한테 장명건설 주식을 사두라고 했으니 나도 내 입이 방정이야!]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자기 입을 몇 번 찰싹 거리며 때렸다.
지나가던 사회복지팀의 복지사가 이것을 보았다.
“어머! 강 기사님! 여기서 뭐하세요?”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입을 찰싹 찰싹 때리는 거예요?”
“아니, 입 안에 뾰루지가 좀 나서요......”
강시혁과 나이가 비슷한 사회복지사는 강시혁에게 관심이 많았다.
요양사나 센터장이나 기사들이 모두 나이가 많은데 강시혁은 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녀였다.
강시혁은 명색이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 완전히 노가다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기사치고는 지적인 분위기도 있어서 그런지 강시혁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럴 때면 강시혁은 부담을 느껴 밖으로 나가곤 하였다.
“저.... 다음시간에 입소하신 어르신들을 위한 인지케어 프로그램이 있어요. 외부에서 종이접기 강사가 와서 인지발달을 위한 종이접기 행사를 할 거예요.”
강시혁은 이 여자가 뜬금없이 스타렉스 기사인 자기에게 왜 이런 말을 하나 하였다.
“그래서 교육실 테이블을 재배치할거예요. 제가 혼자 못하니 강 기사님이 좀 도와주세요. 요양사 아줌마들은 바빠요.”
테이블을 좀 들어달라는 말이었다.
힘 좋은 강시혁이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하죠.”
강시혁이 땅딸막하고 안경을 낀 복지사와 함께 테이블을 날랐다.
그런데 둘이 테이블을 맞들고 나르니까 복지사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계속 생글거리며 좋아하였다.
센터장이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보고 말했다.
“둘이 잘하네! 강시혁씨 아직 결혼 안했지요?”
이 말에 강시혁은 당황했고 복지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강시혁은 점심을 먹고 스타렉스 차에 올라갔다.
오후에 어르신 수송하는 일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점심 먹고 다소 여유가 있었다.
강시혁은 이때 토막잠을 자기도 했다. 투잡을 뛰면서 가장 힘든 일은 잠을 잘 못자는 것이었다.
운전석을 뒤로 젖히고 폰으로 인터넷을 하다가 다시 장명건설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아무 소식도 없었다.
네이버에 들어가 주가를 확인해보니 장명건설은 오늘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노동쟁의 기간 중엔 계속 음봉 차트만 보였다.
이틀 전 장명건설 사장 김장명의 인터뷰 기사가 하나 있기는 하였다.
[노조의 요구는 비상식적입니다. 우리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이 회사를 다른 회사에 양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강시혁은 이 기사를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매도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기는 했네. 그런데 누가 매수하겠다는 것은 없네. 누가 사겠다고 입질이라도 해준다면 주가가 오르긴 할 것 같네. 이놈의 회사는 그동안 주가가 너무 과대 낙폭이 되었어.”
강시혁은 당장에 박 변호사와 통화하고 싶었다.
장명선설 M&A건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양도양수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겁니까? 안한 겁니까? 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면 그 순간 박 변호사는 자기를 이후 상대하지 않으리라고 보았다. 박 변호사는 대뜸 이렇게 소리칠 것 같았다.
[남의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듣고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기업 M&A건에 끼어들려고 하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친구네! 그렇게 안 봤는데 대리기사 따위가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어!]
그러면 정보도 캐내지 못하고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강시혁은 후배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야, 상철아! 어제 내가 한말 취소한다.”
“형이 무슨 말을 했는데?”
“내가 장명건설 주식을 한번 사보라고 했잖아? 그거 취소한다.”
“난 또 뭐라고. 형이 말하는 건 신뢰성이 없어서 안 사. 형이 말하는 것 반대로 하면 아마 돈을 벌 거야.“
변상철은 이런 부문에 대하여는 강시혁을 철저히 무시했다.
하긴 모든 걸 다 엎어먹고 지금 대리운전이나 하는 주제에 족집게 애널리스트 같은 소리를 했으니 믿겠는가!
“안 샀다니 다행이다.”
“글쎄, 형이 말하는 것은 안 믿는다니까. 차라리 미아리 점쟁이 말을 듣겠다. 일요일 미아리 점집에 가는 것 잊지 마.”
“알았다. 알았어. 전화 끊자.”
핸드폰을 끄고 잠깐 눈을 붙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떠오르는 것은 삼방그룹의 딸 이영진 상무였다. 어려서부터 생각해온 완전 자기 이상형 스타일의 여자였다.
재벌끼리 결혼한다고 미국에서 환각제나 들고 다녔던 놈에게 시집을 갔으니 여자가 정말 아까웠다.
그러다가 헤어진 아내 심은혜도 생각났다.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돈에 환장한 여자, 그리고 자기보고 생명보험에 가입하라고 날마다 권했던 여자,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기만 한 여자 심은혜가 생각났다.
강시혁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조금 전에 만났던 복지사 얼굴도 떠올랐다.
그래도 복지사가 고마웠다. 자기가 정직원도 아닌 파트타임 운전기사인데 관심을 가져주니 말이다.
복지사가 분명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복지사도 아마 자기가 이혼남이란 것을 알면 달아날 것으로 보았다,
주간 보호센터에 면접을 볼 때 강시혁은 센터장에게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운전기사로 들어오면서 고학력인 것을 숨기기 위해 대전에서 고등학교 나온 것만 기록했다.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의 이류대학 영어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숨겼다.
이런 것 밝혔다간 괜히 쪽만 팔리기 때문이었다. 학교의 명예도 있었다.
동창 중엔 아직 백수도 있지만 좋은데 취직한 놈도 있긴 있었다.
언론사에 취직한 놈도 있고 교직과목을 이수한 놈은 기간제 교사로도 갔고 또 여자애 하나는 전혀 전공과 다른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동창도 있었다.
어느 날 센터장이 자기를 불러 한 이야기도 생각났다.
“강시혁씨는 아직 젊으니까 2급 복지사 시험 한번 볼 생각이 없어요? 복지사 자격도 있고 운전도 잘하면 급여도 많아지니까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이버 대학이라도 다니세요. 복지학과가 있어요. 복지사 시험 보러 간다면 내가 편의는 봐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조금 더 일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센터장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 노인 인구가 많아지니까 복지사나 물리치료사, 그리고 1종 운전면허가 있다면 밥 굶는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복지사나 간호사를 만나 둘이 번다면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빚이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매월 납부해야하는 돈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방값 임대료다.
이것만 없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것 때문에 자기 인생은 늪에 빠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심은혜와 헤어진 것도 다른 원인도 많지만 결정적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닌가?
해결방법은 단 하나 로또를 사는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오후 3시가 넘었다.
강시혁은 부지런히 어르신들을 모셨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일이 끝났다. 강시혁은 노원구의 로또 명당을 검색해 보았다.
마흔 번 넘게 1등을 배출한 대박집이 있었다.
이런 집은 토요일에 가면 줄이 길어서 사기 힘들다. 평일에 사야했다.
강시혁은 스타렉스를 몰고 로또 명당으로 갔다. 차를 세워놓고 얼른 뛰어가 로또 2만원어치를 샀다.
강시혁은 로또 용지에 대고 입을 쪽 맞추었다.
이거라도 사서 안 포켓에 집어넣으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