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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4화 (14/199)

14화 재벌의 딸 (2)

(14)

강시혁은 다소 흥분되었다.

뉴스에서나 보는 재벌 집 딸을 직접 보게 되고 또 직접 모실 줄은 꿈에도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출발 기어를 넣고 엑셀을 밟는 것을 중립에다 놓고 밟았다.

차는 움직이지 않고 엔진 소리만 크게 나자 파라솔 밑에 있던 기사들이 쳐다보았다.

[아휴, 쪽팔려!]

강시혁은 다른 기사들에게 좀 창피했다.

대리 뛰는 놈이 엔진 공회전을 시켰으니 말이다.

다시 기어를 넣었다.

차가 서서히 팬션을 빠져나가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강시혁이 운전하는 제너시스에 대고 인사를 한 것이다.

역시 재벌 오너 딸의 위상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도도히 앞만 쳐다보았다.

차가 산정호수를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로 접어들었다.

그때야 이영진 상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밖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룸미러로 슬쩍 이영진 상무를 쳐다보았다. 옆모습 또한 예뻤다.

사람을 비교해서는 안 되지만 헤어진 아내 심은혜와 미모로는 게임이 안 되었다.

이제까지 자기가 접촉했던 사람 중에 최고의 미녀였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우수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말을 걸어볼까 했다.

일생에 한번뿐인 이 우연한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었다. 오늘이 가고 헤어지면 다시는 이 여자를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두었다.

천한 대리 기사가 말을 걸면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운전만 하자! 뒤에 탄 저 여자는 나와 신분이 다른 사람이다. 나는 신불자인 대리 기사이고 뒤에 탄 고귀한 분은 이 나라 굴지 재벌의 따님이시다. 안전운전이나 하자. 넓은 길 좁게 보고 좁은 눈 크게 뜨며 운전이나 잘 하자!]

또 한 번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영진 상무의 얼굴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수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오늘 건설회사 M&A인가 뭔가 한다는데 협상이 잘 안되어 그런가?]

이영진 상무는 한숨까지 쉬는 것 같았다.

[어? 한숨까지 쉬네. 재벌 여자도 불만인 것이 있나? 재벌 딸이면 내가 생각하기에 날마다 축복의 하루를 보낼 텐데 아닌가? 스트레스라도 받는 일이 있는 것 같네.]

차가 의정부를 지날 때였다.

이영진 상무가 뒷좌석의 창문을 살짝 여는 것 같았다.

그때야 강시혁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에어컨 틀어드릴까요?”

“아니, 됐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꼭 ‘상관 말고 운전이나 잘해 이놈아!’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미소만큼은 정말 아름다웠다.

강시혁이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오늘 본 것 같았다.

이런 여자의 차를 운전 할 수만 있다면 평생을 공주님처럼 떠받들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이 여자와 이 여자의 남편을 모시고 온 벤츠 마이바흐 운전기사는 중년의 기사였었다.

차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잘도 달렸다.

요즘은 대한민국이 어디나 도로가 잘 발달되어있어 좋았다.

차가 한남동과 이태원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많이 밀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강시혁은 조심해서 운전했다. 뒤에 타고계신 공주님을 잘 모시고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태원 입구에서 신호가 걸렸을 때 이영진 상무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리움 미술관 쪽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차는 리움 미술관 쪽으로 올라갔다가 이영진 상무가 알려준 대로 좌회전했다.

중세의 성 같은 집들이 나타났다.

축대가 있어 그 안을 넘볼 수 없는 어떤 저택에 이르자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여기입니다. 세워주세요.”

강시혁이 차를 세우고 주차 기어를 넣었다.

그리고 비상등을 켰다.

“예상보다 빨리 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지갑에서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강시혁에게 주었다.

강시혁이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대리비 계산은 박 변호사님이 하셨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으니 받으세요.”

강시혁이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다가 돈을 받았다.

두 손으로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받았다.

돈을 받고 강시혁이 자기 명함을 주며 말했다.

“저는 대리 기사입니다. 언제든지 대리가 필요하시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명함은 최근에 들어간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서 해준 것이다.

혹시 어르신들이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보호센터에 입소하는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라고 만들어준 명함이었다.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다.

강시혁은 이 공주님이 자기의 명함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웬 대리기사 따위가 천한 명함을 나에게 주는 거야? 하면서 쌍심지를 돋운다면 어쩌나 하였다.

이영진 상무는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강시혁의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명함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강시혁도 따라서 내렸다.

그리고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이영진 상무는 고개만 까닭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가는 택배기사가 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지나갔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는걸 보니 당신이 모시고 다니는 오야지 맞지? 하는 행동이었다.

강시혁은 렌트카 회사로 향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 만나기도 어려운 재벌 딸을 모시고 10만원 팁까지 받았으니 이게 웬 횡재야! 오늘 여신을 모셨으니 금년은 운세가 풀리겠는데? 맞아 내 띠가 올해부터 운세가 풀린다는 말이 있어.]

강시혁은 가면서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보고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상무님을 무사히 이태원 자택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벌써 도착했어요? 빠르기도 하네. 수고하셨습니다.”

“어르신 병원에서 퇴원하실 때 알려주십시오. 제가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차를 렌트카 회사에 반납했다. 그리고 후배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같이 기분좋은날 한잔 빨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오늘은 대리 일을 하는 날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돈도 생겼으니 오늘은 변상철에게 술을 사줄 여력도 있어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야, 나와라!”

“나오다니, 어딜?”

“만나서 한 잔 하자. 오늘은 내가 쏜다.”

“돈 생긴 모양이네. 그런데 오늘 산정호수 간다고 하지 않았나?”

“갔다 왔지. 우리 어디서 만날까?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창동역에서 만날까? 거기서 삼겹살이나 먹자.”

“알았어. 그럼 한 시간 후에 만나.”

“그래 1번 출구에서 기다릴게.”

둘은 창동역 근방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강시혁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야, 나 오늘 이영진 상무 봤다.”

“이영진 상무가 누구야?”

“삼방그룹 외동딸 이영진 상무 몰라?”

“아, 그 이영진이? 이영진 상무가 술 처먹고 대리 불렀나? 형이 그런 여자를 보려면 대리 일하다가 만날 일 밖에 더 있어?”

“아냐, 오늘 산정호수에서 만나서 이태원 집에까지 태워줬어. 인물 정말 죽이더라. 실물을 보니까 정말 걸 그룹은 저리 가라야.”

“예쁘다고 하더군. 나도 인터넷 기사에서 봤어. 그런데 이미 결혼한 여자 예뻐 봤자잖아? 더구나 그 여자는 재벌 딸이고 형은 대리 기사니까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지. 같이 차타고 온 것만 해도 영광이었겠네.”

“일생일대에 영광이지. 마치 선녀를 모시고 온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여자가 자기 차가 없나? 더구나 기사까지 있을 텐데. 술 취했다고 해도 전속 기사가 있으면 대리 부를 일도 없는데 그거 이상하군.”

“차를 바꾸어 타고 온 거야. 파파라치가 따라붙었다는 정보가 있어 차를 바꾸어 타고 온 거야. 오늘 내가 손님 부탁으로 렌트카를 가지고 갔었거든.”

“하긴 그런 여자라면 파파라치나 극성 유튜버가 붙을 만 하겠지. 여신 급 인물에 재벌 딸이니 한건만 해도 돈이 생기겠지.”

“돈이 생겨?”

“술 먹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거나 교양 없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든가 교통위반을 했다면 바로 먹잇감이 되겠지. 이런 것 찍어놓고 용돈 안주면 SNS에 뿌리겠다고 해봐. 입 막으려고 돈 좀 안주겠어?”

“흠. 그런 것이 있겠구나.”

“아마 입 막으려고 삼방그룹 비서실이 움직일 거야. 형도 그런 일 한번 잘 해봐. 잠 못 자가며 투잡한다고 개고생하지 말고.”

“나는 그런 짓은 못하겠어. 아무리 내가 궁해도 그러면 되나? 더구나 이영진 상무는 점잖고 교양이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이었는데.”

“형도 돈 벌긴 틀렸군. 돈을 벌려면 빌런이 되어야 해. 자, 술이나 마셔! 고기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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