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2화 (12/199)

12화 산정호수의 만남 (2)

(12)

강시혁은 차에서 내려 기사들이 모여 있는 파라솔로 갔다.

기사는 기사들끼리 놀아야지 자기가 모시고 온 사람들처럼 건물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기사 한 사람이 강시혁이 타고 온 차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어? 렌트카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기사들은 회사 소속의 기사들이었다.

강시혁과 같은 프리랜서가 아니고 일정한 월급을 받는 사람이었다.

대기업의 사장님을 모시는 기사는 아무나 못한다. 이른바 연줄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삼성의 이재용이나 현대의 정의선 사장을 모실 수는 없었다.

중년의 기사가 물었다.

“렌트카에 계시면 전국 유원지는 다 돌아다니겠소.”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렌트카를 몰았지만 대리 기사입니다.”

“대리?”

대리란 말에 모여 있던 기사들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치는 것 같았다.

“대리면 한 달에 얼마나 벌고 있소?”

“사람 나름입니다.”

“내 친구는 대리 운전해서 월 500만원 번다는데?”

“아이고, 그건 최고의 베테랑이나 그렇게 법니다. 아무나 그렇게 못 법니다. 또 월 500 벌려면 몸이 망가집니다.”

“그럼 당신은 얼마 벌고 있소?”

또 그놈의 돈이다.

대리기사를 한다면 언제나 사람들은 수입을 물어보았다. 대리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들은 회사차를 운전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 얼굴에 살이 붙어있고 찰색도 좋았다. 그래도 수입을 말하지 않으면 젊은 놈이 건방지다고 할까봐 대충 말했다.

“저는 월 300정도 가져갑니다.”

“별 것 아니네? 난 많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대리 기사들은 투잡도 많이 뜁니다.”

강시혁은 자기도 낮에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 나간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 40대 기사가 무게 잡고 있는 50대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형님은 삼방그룹 계열사인 삼방건설 사장님을 모시는데 회사에서 과장급 대우를 받습니다.”

50대가 팔짱을 낀 채 험, 험. 하며 무게를 잡았다.

삼방그룹 과장급이면 연봉 7천이 넘어간다. 이 사람들은 투잡 뛸 필요도 없다.

또 회사의 과장급 대우를 받으면 그에 따른 복리후생도 다 받으리라 생각했다.

강시혁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말했다.

“어휴, 그러세요? 혹시 삼방그룹 운전기사 채용 안하나요?”

“없어요. 자리가 비어야 하는데 자리가 쉽게 안 나와요. 또 추천하는 사람이 많아 연줄 없는 댁 같은 사람은 힘들어요. 재벌그룹의 운전기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정말 대기업 CEO 운전기사는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태어나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조상님의 음덕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삼방그룹 회장님을 모시는 기사님은 그럼 부장급 대우를 받나요?”

“아니요. 그 분은 임원급이요. 그 분은 오늘 여기 안 나왔지만 회장님을 30년간이나 모신 분이요. 삼방그룹에서 유일하게 이사급 대우를 받는 분입니다.”

“햐, 이사급! 그럼 억대 연봉 되겠는데?”

그런 자리는 아무한테나 안줄 것 같았다. 자기 자식한테나 물려줄 것 같았다.

사실 운전이야 특별한 기술도 아니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대부분이 운전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회장님 출퇴근이나 시켜주고 가끔 저녁에 룸 사롱이나 모셔다주면 되는 일인데 연봉이 억대를 넘어가니 정말 꿈의 직업이었다.

이때 외제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파라솔 밑에 있던 운전기사들이 모두 일어났다.

“상무님 차다!”

“상무님 차다!”

강시혁은 상무님 한분 들어오는데 웬 호들갑을 떠나 하였다. 사장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상무님 차가 고급 벤츠 마이바흐 라 약간 이해가 안 되었다. 자기도 큰 회사는 아니지만 회사를 다녀봐서 아는데 상무면 부사장은 물론 전무 밑이었다.

[이 회사에 있는 놈들은 상무가 와도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참 별난 놈들이네!]

사장차 운전기사가 먼저 뛰어가 벤츠 마이바흐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뒷좌석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두 사람을 보고 강시혁은 크게 놀랐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뉴스에서 보아온 삼방그룹의 딸 이영진 상무였기 때문이었다.

옆에 같이 내리는 사람은 30대 초반인 것으로 보아 이번에 결혼했다는 자기 남편 같았다.

이영진 상무의 미모는 확실히 눈부셨다. 아이돌 연예인 같았다.

그런데 아이돌 연예인들은 성형을 많이 한 성괴들이 많고 약간 천박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영진 상무는 그게 아니었다. 기품까지 있어보였다.

이영진 상무는 서울대를 들어갔다가 미국 유학을 한사람이었다. 역시 똑똑해 보이고 교양미가 철철 넘쳐흘러 보였다,

그런데 남편이란 사람은 키는 훌쩍 커서 185센티는 넘을 것 같았다.

남자는 청바지를 입고 고급 자켓을 입었지만 경박스럽게 껌을 짝짝하고 씹었다.

강시혁이 보기에 여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보자 괜히 심장이 떨렸다. 심장의 맥박수가 갑자기 요동을 쳤다.

[내가 왜 이러지? 이영진 상무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이렇게 떨리지? 오늘 처음 본 여자인데 마치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하네. 돈 많고 예쁜 여자 얼굴을 보니까 숨이 막힐 것 같네. 이런 찌질이가 다 있나!]

이 부부는 파라솔 밑에 옹기종기 있는 가마꾼, 아니 운전기사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도도한 걸음걸이로 팬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시혁이 기사들에게 물었다.

“방금 오신분이 이번에 결혼 했다는 삼방그룹 회장님 따님이죠?”

“그렇소.”

“아휴,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 교양미도 있어 보이고.”

“회장님이 딸 하나는 잘 두었지. 아들이 신통치 않지만.”

“아드님은 따님의 동생인가요?”

“그렇소. 망나니 하나가 있죠..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 묻지 맙시다.”

사장 차를 운전한다는 50대가 점잖게 말했다.

“그래서 회장님이 저 따님을 예뻐하는 겁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러니까 창업 회장님도 손녀딸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었소. 공부 잘하지, 인물 좋지. 예의 바르지. 그러니 어른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 이곳은 팬션입니까? 팬션 같은데 간판은 없네요.”

“팬션인데 단골만 받는 집이요. 더구나 이곳은 유원지를 살짝 벗어난 곳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요. 중요한 밀담을 나누긴 아주 좋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몰라도 호텔에서 방 빌려 하면 될 텐데 이런 먼 곳까지!”

“당신은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군. 이영진 상무 정도 되면 파파라치들이 얼마나 따라붙는지 아시오? 그러니 따돌리려고 여기까지 오는 거지.”

본채 안에서 회의가 길어지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오늘 모임의 성격을 대략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올 때 박 변호사와 법무법인 대표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첫 만남은 건설회사를 사고파는 사람들끼리 양해각서나 체결하는 날 아닌가? 박 변호사도 분명히 양해각서 라는 말을 했어. 양해각서(MOU)는 본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하는 거니까 꼭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긴 해도 서로의 의사는 확인할 수가 있겠지.]

강시혁은 집에 가면 장명건설 회사 현황이나 인터넷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건대 앞 골목에 있었던 가게를 팔고 주식투자를 한 적이 있었다.

애널리스트들이 두 배 이상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결국 남은 것은 빚뿐이었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개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본채 안의 회의가 길어지자 파라솔 밑에 있는 기사들은 하나둘씩 자기가 운전했던 차에 올라갔다. 잠을 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뒷 트렁크 문을 열고 먼지 털이개를 꺼내 자동차를 닦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카톡을 하기도 했다.

강시혁도 차에 올라가 눈을 붙였다.

여기 있는 기사들은 자기 오야지들을 모시고 다시 집에 가면 끝이지만 자기는 야간에 대리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자를 뒤로 빼고 눈을 감으니 조금 전에 본 이영진 상무의 해맑은 얼굴만 떠올랐다.

[제기랄! 그런 여자와 결혼한 놈은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복을 받는 거야?]

껌을 짝짝 씹으며 청바지에 두 손을 집어넣고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든 신문사 사장 아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