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산정호수의 만남 (1)
(11)
강시혁은 픽업을 해야 할 사람이 박 변호사의 숨겨 논 애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박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은 국내 5대 로펌 중에 하나다. 여기는 들어가기도 힘들고 보수도 엄청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 많으니 몰래 애인을 둔 것으로 짐작했다.
[흥! 대학교수 마누라가 있고 애인도 있으니 정말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네. 나는 마누라 하나 있는 것도 건사하지 못해 깨졌는데!]
강시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픽업하러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한남동 한남 더힐로 가주세요.”
“한남 더힐요?”
여기는 아파트 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다.
대기업 CEO나 일부 돈 잘 버는 연예인이 사는 동네였다.
[옳아! 박 변호사가 걸 그룹 연예인이라도 한 명 사귄 것이 틀림없어. 오늘은 그 여자의 손목을 주물럭거리며 산정호수까지 가겠네!]
강시혁이 생각하기에 박가들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늘 유원지까지 놀러가는 사람도 성이 박 씨이고 아내 심은혜와 붙어버린 그놈도 박 씨였다. 변호사의 이름은 박을규이고 박 과장은 박문도란 놈이었다.
한강다리를 넘어가면서 박 변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목소리는 아리따운 20대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고 굵은 장년의 목소리였다.
“지금 어디쯤 오고 있소?”
“이제 한강다리 막 넘었습니다. 5분 안에 도착이 될 것 같습니다.”
“박 변호사 차를 이용하지 않고 렌트카를 빌려서 오는 게 맞죠?”
“예, 맞습니다. 아마 우리가 오늘 가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해요. 기자들이나 골치 아픈 유튜버들이 알면 일 추진이 힘들어집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강시혁은 자기가 오해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이라고 하는걸 보니 법무법인의 대표가 아닐까 짐작을 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니까 한남 더힐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남 더힐이 있는 한남동은 고급 아파트인 나인원 한남도 있고 유엔빌리지 쪽으로 분위기 있는 찻집이나 레스토랑들이 있다.
그래서 강시혁은 이곳도 손님이 제법 나오는 곳이라 콜을 잡으려고 이곳을 배회하기도 하였었다. 그래서 이곳 지리는 훤했다.
수도권의 신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신도시에서 놀지 않는다.
서울의 유명한 거리에 와서 잘 놀았다. 기왕이면 물 좋은 곳에서 놀자는 심사다.
아마 이태원 거리에서 행사라도 한다면 대부분 이태원 근방에 사는 사람은 아니리라.
한남 더힐 아파트로 갔다.
이 아파트는 층수가 높지 않았다. 그래서 시원해 보였다.
선 그라스에 잠바를 입은 중년 남자가 어린이 놀이터 위쪽에 서 있었다.
“저분입니다.”
강시혁이 비상 깜박이를 넣고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어서 타기를 바랐다. 그런데 강시혁이 기왕이면 철저하게 서비스 해주자는 차원에서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대형 로펌의 대표라면 그렇게 해줘도 밑질 것은 없다고 보았다.
중년남자가 기분이 좋은지 강시혁을 쳐다보고 말했다.
“고맙소.”
중년남자가 박 변호사에게 말했다.
“여기 기사 양반은 렌트카에서 온 분인가?”
“아닙니다. 대리 회사에 계신 분인데 저희 아버님 병원 수송을 몇 번 하셨습니다.”
“오, 그래요? 산정호수까지 얼마나 걸릴까?”
“글쎄요. 두 시간이면 가겠지요.”
강시혁은 말없이 운전만 했다.
차가 강변북로로 접어들었다.
중년과 박 변호사가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노사분규가 있는 건설 회사를 M&A를 하려고 하나?”
“말은 노사분규가 골치 아파서 매도 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억에 포괄양도방식인가?”
“그렇습니다. 장명건설 오너인 김장명이 삼방그룹에 포괄 양도하며 200억을 받기를 원한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나?“
“글쎄요. 그건 CPA들 투입해서 실사를 해봐야겠지요.”
“형식적 실사는 아니어야 할 텐데.......”
“장명건설 오너인 김장명이 보수언론인 A일보의 사위 아닙니까?”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이번의 M&A는 삼방그룹 회장 딸인 이영진 상무가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이 A일보 회장 아들이니까 남편이 이영진 상무에게 부탁을 했겠지요.”
“삼방그룹 회장은 이 일을 알고 있나?”
“글쎄요. 하지만 나중에라도 알겠죠. 그룹의 돈이 200억이 빠져 나갈 테니까요.”
“아무튼 우리는 오늘 삼방그룹 이영진 상무와 장명건설 사장의 협상에 끼어들 필요는 없소. 나중에 양해각서라도 체결한다면 법률적 검토만 해주면 되겠지.”
“그렇습니다. 회사를 사고파는 것은 그들끼리 일이고 우리는 법률적 검토만 해주면 되겠지요.”
“잘 해야 할 텐데....... 내가 삼방그룹 회장님과 교분이 있어 나중에라도 적정가격이 아닌 것으로 인수한다면 원망을 들을 텐데......”
강시혁이 운전을 하고 가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분석해 보았다.
[흠. 이번에 결혼한 삼방그룹 회장 딸이 야심차게 회사 하나를 인수하는 모양이네. 그런데 인수하는 건설회사가 A일보 사위라면 이번에 결혼한 A일보 장남이 소개를 한 것 같네. 그래서 있는 놈들끼리 끼리끼리 결혼하는 거야.]
[그러면 오늘 삼방그룹 회장 딸도 산정호수에 온다는 말인데..... 히히, 잘하면 얼굴 구경하게 생겼네. 수천 명의 서울대생들이 여왕벌이란 별명을 지어주고 졸졸 따라다녔다는 여자의 상판대기가 어떻게 생겼나 봐야겠네.]
[그런데 장명 건설은 이번에 노사분규가 있는 곳이 아닌가? 민노총과 연결되어 분규가 세게 일어났던 것 같던데......]
어느덧 차가 의정부를 벗어나 구리 포천간 29번 도로를 달렸다.
뒷좌석의 중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했다.
“여기가 어딘가?”
“의정부 벗어났습니다. 지금 구리 포천간 29번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왔습니다.”
“기사님 운전 잘하네. 내비도 없이 말이야.”
“하하, 자동차 전용도로로만 달리기 때문에 특별히 내비 없어도 됩니다. 또 대리 운전을 하다 보니 이쪽에 몇 번 와봤습니다.”
와봤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원래 이쪽 지역은 대리 일감이 별로 없는 곳이었다. 차는 계속 달렸다.
강시혁은 조금 전에 이 두 사람이 하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장명건설을 삼방이 인수해? 만약 그렇다면 장명건설 주가가 오르겠는데? 원래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 인수되면 주식은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강시혁은 주식투자를 조금 해봐서 이런 것쯤은 안다.
그때 식당 판돈을 빚 갚지 않고 주식투자해서 홀라당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내가 돈이 있어야 장명건설 주식을 사던지 말 던지 하지. 또 장명건설을 확실히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잖아? 오늘 만나서 양해각서라도 체결한다면 모를까.]
강시혁은 정말 오늘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면 주식 차트가 출렁할 것으로 보았다.
역시 정보력 없는 개미들은 주식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수저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
강시혁은 부자들 옆에 있어야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어느 기업인도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사귀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뒤에 탄 박 변호사와 대표라는 저 중년 신사는 앞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가까워지도록 노력해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리 기사가 무리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무리한 접근은 오히려 경계를 유발 하게끔 한다.
우선은 오늘처럼 가끔 불러주기를 원하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산정호수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목적지는 산정호수에서 더 위로 올라간 어떤 팬션 같은 건물이었다.
그런데 숲속에 있는 이집은 팬션 간판이 없었다. 무슨 별장 같기도 했다.
이미 고급 승용차들이 몇 대 와있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인 듯한 사람들이 야외용 파라솔 의자에 앉아 담소들을 나누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강시혁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데 대한 수고비는 드리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저는 차 안에서 음악이나 듣고 있겠습니다.”
“멀리 가지는 마시고 이 근처 산책이라도 하십시오. 중식은 여기와 있는 기사님들 모두 산채 정식을 제공해 드릴 겁니다.”
“고맙습니다.”
박 변호사가 야외용 파라솔 의자에 앉은 기사들에게 말했다.
“이영진 상무님은 아직 도착 안했죠?”
“예,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
강시혁은 운 좋게 대재벌 외동딸의 얼굴을 보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후배 변상철을 만나면 나 산정호수에 가서 삼방그룹 딸을 직접 봤다고 자랑 좀 해야겠다. 언젠가 후배는 가수 아이유의 실물을 봤다고 자랑을 했던 적이 있었다.
“형은 못 봤지? 나는 봤어!”
서민들은 유명인 얼굴만 보아도 영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