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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0화 (10/199)

10화 투잡 (2)

(10)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박일규 변호사의 전화였다.

노인이 이제 퇴원하기 때문에 전화를 하나 하였다.

그러면 어르신 주간 보호센터에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하루 빠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보호센터엔 운전기사가 자기 말고 또 있어 하루 정도 부탁은 들어줄 것 같았다.

나중에 자기도 다른 기사의 부탁을 들어주면 되었다.

“예, 강시혁 기사입니다.”

“잘 계셨어요? 박일규 변호사입니다.”

“아, 변호사님! 어르신이 이제 퇴원할 때가 되었죠?”

낮에 한탕하면 7만 원 이상은 들어올 것 같았다.

잡콜 여러 개 받는 것 보다는 장거리 하나 잘 잡는 것이 영양가 있었다.

“아버님은 다음 주에 퇴원하십니다. 아버님 일은 아니고 다른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혹시 이번 일요일 시간이 있으십니까?”

일요일이라면 대리 운전도 쉬는 날이었고 어르신 보호센터도 쉬는 날이었다.

일요일 일이라면 더 좋았다.

“예, 일요일 시간 있습니다.”

“일요일 저희 집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집으로요? 자택이 서초동 어디라고 그랬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입니다.”

“아아, 대통령이 사셨던......”

“맞습니다. 법원 앞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아크로비스타는 강시혁도 잘 안다.

언젠가 여의도에서 술 취한 손님을 이곳까지 태워준 적이 있었다.

“일요일 몇 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아침 9시까지 오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자택에서 어디까지 모시면 되겠습니까?”

“포천 산정호수입니다.”

장거리였다. 현금 결제를 해준다면 해 볼만 하였다.

아마 일요일 거기까지 놀러가는 것 같았다.

“아, 놀러 가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실 때 렌트카를 빌려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언젠가 이 사람은 BMW를 탔던 것 같고 아버님 차인 그랜저도 있는데 이상했다.

“렌트카를 빌려요?”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주시면 렌트비는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너시스 G90이나 G80으로 빌려오시면 됩니다.”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박 변호사가 BMW를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난 것 같다고 추측이 하였다.

[좋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지만 운전이 서툴면 별 수 없이 정비공장 신세를 져야지.]

후배 변상철이 전화를 했다.

“형! 나야. 일요일 어디 안가지?”

“왜? 나 갈 데 있어.”

“일요일 이태원에 한번 놀러가지 않을래? 물 좋은 곳 내가 알아 논 데가 있어.”

“일요일 나 산정호수 가야돼.”

“산정호수? 여자 친구 하나 사귀었구나! 그래놓고 나한텐 말도 없고! 응큼 하기는!”

“그게 아니고 대리 예약이 있어.”

“대리? 일요일은 대리 안하잖아.”

“단골 고객이 생겼는데 내가 거절하기 힘든 사람이야. 또 수입도 짭짤하고.”

“헹, 한번 대리면 영원한 대리구나! 잘 해봐!”

그러면서 후배는 전화를 끊었다.

후배한테는 술을 한번 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날 때 마다 얻어먹는 편이었으니 이번엔 자기가 한번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무조정을 했기 때문에 빚 독촉도 없고 요즘 투잡 뛰니 돈이 조금 여유가 생겨나가기 때문이었다.

역시 사람은 빚이 없어야 한다.

그동안 몇 년 동안 빚 때문에 고통 받았던 일을 생각을 하면 이가 갈렸다.

빚쟁이들은 영혼까지 갉아먹는 놈들이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강시혁은 옷장 속의 옷들을 이리저리 들춰보았다,

[단골 VIP 고객들에게는 깔끔한 인상을 주어야지!]

그래서 강시혁은 넥타이는 메지 않더라도 양복을 입을까 하였다.

양복은 전에 회사 다닐 때 할부로 장만한 것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할 때는 양복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세탁 후 곱게 비닐 포장에 넣어 옷장에 모셔만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가게 되는 산정호수는 유원지인데 양복을 입고 가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역시 옷장 속에 모셔만 놓았던 패딩 자켓을 꺼냈다.

오래 간만에 이 옷을 꺼내 입어보니 한 인물 났다.

이 모습을 하면 강남 거리를 돌아다녀도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신발장 빈 구두상자에 모셔 논 나이키 운동화를 꺼냈다.

강시혁은 다시 한 번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흠.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리 운전이나 하고 살기엔 아까워.]

빚을 다 갚고 돈이 조금 모이면 다시 건대 앞이나 홍대 앞에서 장사를 하고 싶었다.

월급쟁이를 해서는 쇼부가 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가게가 15평 정도라면 보증금 1억에 임대료 이백이나 삼백이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벌면 이태원에 가서 근사한 호프집이라도 하고 싶었다.

가게에 인테리어 소품을 진열하는 건 자기도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면 많은 여자 손님들이 자기 가게에 와서 사진도 많이 찍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손님 중에서 예쁜 여자가 있으면 사귀고 싶었다.

이태원에서 가게를 가지고 있다면 여자들이 자기를 달리 인정해 줄 것 같았다.

대리 기사보다는 가게 사장이 돈 벌이는 물론 여자를 사귀기에는 더 유리하지 않겠나!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에게는 더 잘 사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싶었다.

렌트카 사무실로 갔다.

렌트카는 어제 예약을 해두었었다. 렌트카 사무실에서는 제너시스 G90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G80을 빌렸다. 출고 된지 3년 미만 차라 겉모습은 삐까번쩍하였다.

강시혁은 이 제너시스가 자기 차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자기가 타고 다녔던 중고차는 법원 명령으로 압류가 되었었다. 팔아보았자 500만원도 안 나올 차지만 빚쟁이들은 법원을 통하여 이것도 빼앗아 갔다.

그후 강시혁은 차가 없어 어디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다시 차를 사기는 엄두가 안 났고 또 신불자가 되어 할부로 살수도 없었다.

강시혁은 제너시스에 기름까지 만땅을 채우고 박 변호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렌트비와 주유비 금액을 알려주었다.

강시혁이 제너시스를 몰고 한강다리를 넘어올 때 입금 되었다는 알림 톡이 왔다. 박 변호사가 렌트비와 주유비를 입금한 것이었다.

강시혁은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앞에서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아파트 앞에 도착했습니다.”

“빨리 왔네요. 알겠습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강시혁은 깜박이를 넣고 기다렸다.

잠시 후 박 변호사가 왔다. 그런데 박 변호사는 혼자였다. 자기 부인이랑 놀러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더군다나 옷도 넥타이는 안 매었지만 양복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어도 변호사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산정호수 같은 유원지를 놀러가는 사람치고는 수상한 복장이었다.

[옳아. 박 변호사는 자기 와이프가 지방에 있으니 여기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모양이네. 틀림없이 가다가 묘령의 아가씨를 픽업할거야. 돈 잘 버는 변호사니까 젊은 년 하나 낚아 챈 것 같군. 소문날까봐 자기 차는 안 가져가는 것이 틀림없어.]

강시혁은 자기가 조금 한심했다.

남들은 저렇게 렌트 차까지 빌려서 놀러 가는데 자기는 운전이나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옛날 같으면 상전 말 타고 기방 출입하는데 말고삐 잡고 가는 따라가는 종놈이나 마찬가지 신세인 것이다.

그러나 돈만 벌면 되었지 누구와 놀러가든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 하였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G90은 없다고 해서 G80으로 가져왔습니다. 출고 된지 얼마 안 되어 차는 새 차입니다. 엔진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좋군요. 휘발유는 넣었지요?”

“예, 만땅 채웠습니다. 산정호수까지는 충분히 다녀올 수 있습니다.”

강시혁이 부드럽게 차를 운전하며 사평대로 쪽으로 나왔다.

박 변호사가 운전하는 강시혁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했다.

“가다가 한 분을 픽업해야 합니다. 같이 갈 사람이 있습니다.”

강시혁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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