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대리 기사의 애환 (2)
(8)
집에 와서 강시혁은 샤워를 했다.
오늘 자기가 운전한 엑센트의 차주는 분명히 민폐를 끼친 것이다. 경찰관이 두 명이나 출동했으니 민폐가 아니고 뭔가.
자기도 어디 가서 술을 마실 때는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어 민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는 샤워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겠지? 내일 아침에 글로브 박스와 시트에 묻은 오물을 닦으려면 고생 깨나 하겠군.]
강시혁은 그 여자의 하얀 목덜미가 또 떠올랐다.
오늘 자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추행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입이라도 맞추었다면 그 여자가 의식이라도 했을까.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착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는 것은 여자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헤어진 아내 심은혜는 그 박 과장이란 놈에게 어떤 흐트러진 자세를 보여서 그렇게 밀착하게 되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주식회사 자원전자의 박문도 과장을 강시혁이 처음 본 것은 결혼 일 년차가 되었을 때였다.
그 당시 기억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때 월급도 밀려 우울하기도 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 좀 일찍 퇴근했던 날이었다.
강시혁은 동네 앞 이디야 커피숍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와이프와 어떤 남자였다. 그때 그 남자는 분명히 아내의 왼쪽 어깨를 짚고 나왔었다.
결혼한 남의 여자의 어깨를 집은 것이 불쾌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히히덕거리고 나오고 있었다.
심은혜가 강시혁을 보자 저승사자를 본 듯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자도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 오늘 웬일이야?”
“응, 몸이 좀 아파서.....”
“참, 인사해. 우리 회사 박문도 과장님이야. 내가 핸드폰을 놓고 나와서 가지고 오셨어.”
강시혁이 박 과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인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 뭘요. 흠, 흠. 결혼식장에서 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니 잘 모르겠네요.”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흠, 흠.“
“저희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 않고.....”
“아닙니다. 차는 방금 마셨습니다, 그럼.“
박 과장은 그러면서 이디야 커피숍 앞에 세워둔 자기 차로 갔다. 산타페 하이브리드였다.
회사원이라 그런지 외제차는 아니었다.
강시혁은 집을 향해 말없이 걸었다.
심은혜는 그 뒤를 호들갑을 떨며 따라왔다.
“핸드폰을 잊어버린 줄 알고 한참 찾았네. 박 과장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신축빌라 투룸짜리 자기 집으로 왔다.
강시혁은 심은혜에게 따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핸드폰을 가져왔으면 주고 갈 것이지 이디야에서 왜 커피는 마셔? 틀림없이 저녁을 같이 먹고 커피 마시러 간 것이 분명해. 그리고 왜 남의 유부녀 어깨를 잡고 나와? 기분 나쁘게!]
그런데 이 말을 했다간 또 무슨 사단이 벌어질 줄 몰랐다.
남자가 왜 그렇게 옹졸하냐며 대들 것이 분명했다.
심은혜는 최근에 강시혁이 월급이 밀리니까 짜증을 많이 냈다. 당장 때려치우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라고 목소리 높인 여자였다.
남자가 옹졸하니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었었다.
투룸 임대료를 처음으로 심은혜가 부담했던 달이었다.
사실 강시혁도 회사의 월급이 밀리자 옮기려고 하였다.
그래서 몰래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냈지만 잘 안 되었다.
심은혜가 화장실에서 치아를 닦고 나오더니 쌀쌀하게 말했다.
“나는 회사에서 저녁 먹었으니 먼저 차려먹어. 국은 반찬가게에서 사다 놓은 것 있어."
그리고 자기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는 끝이었다.
대전의 엄마는 심은혜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그건 장모가 될 심은혜의 엄마가 세 번이나 결혼을 한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은혜의 집도 잘 살지 못했었다. 강시혁의 부모님은 대전의 아파트라도 살고 있었지만 심은혜는 부천시 오정동의 낡은 빌라에서 살았다.
심은혜의 엄마는 60대의 나이에 짙은 눈 화장까지 한 사람이었다. 약간 불량 스러워보이는 남동생도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장모될 사람이 세 번이나 결혼했다는 것이 탐탁치않다.”
“그것도 다 어쩔 수 없어 그런 것 아녜요? 본인 처신만 잘하면 되지 그 부모가 세 번 결혼한 것이 무슨 이유가 되요? 안 그래요? 아버지?”
마침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이렇게 동의를 구했다.
아버지는 끙 하는 소리를 내고 이렇게 말했었다.
“둘이 좋으면 해라.”
그런데 상견례 하는 날부터 또 엄마의 비위가 상했다.
그것은 심은혜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집이야 못 사더라도 아파트 전세부터 출발해도 좋지요. 신혼이라고 남들은 새 아파트에서 출발한다지만 직장 가까운 서울 변두리 25평 작은 아파트 전세라도 좋지요. 저희는 그런 것 따지지 않습니다.”
많이 양보하고 많이 이해하여 변두리 아파트 전세라도 좋다는 투로 말 하였다.
자기들은 신랑 쪽에 크게 바라는 것이 없는 투로 말했지만 요즘 아파트 전세 값이 어디 한 두 푼인가?
강시혁이 그만한 돈을 벌어 놓았을 리도 없고 대전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강시혁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난감했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를 얻어주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엄마가 죄인처럼 말했다.
“수저 한 벌만 가지고도 열심히 살면 좋은 집이야 금방 장만하겠죠.”
이렇게 말했지만 엄마는 그 후로 심은혜의 집안을 안 좋게 보았다.
엄마 또래의 60대 여자가 속눈썹 한 것부터가 못마땅해 했다.
아버지는 별말 없이 끙 소리만 냈다.
강시혁의 부모님은 강시혁과 심은혜가 이미 깊은 관계까지 맺었다는 소리에 별수 없이 결혼을 승낙했었다.
강시혁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을 똘똘 말아 껴안았다. 심은혜와 헤어졌지만 심은혜의 따듯한 체온이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오늘 낮에 본 술 취한 엑센트 차주 목덜미를 보고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심은혜를 놓아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심은혜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강시혁이 인터넷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후배 부부의 일이라고 하면서 상담을 했다.
남자가 빚이 많고 여자의 카드를 써서 부부 싸움이 잦고 이혼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했다. 여자에게 남자가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답변이 왔었다. 아이가 없다면 헤어질 확률이 많다고 하였다.
남자가 여자의 돈을 상습적으로 쓰고 여자에게 폭행을 했거나 애인이 생겼다면 아이가 있어도 헤어질 확률이 많다고 했다.
힘내시고 새 출발하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네가 그 여자라면 같이 살고 싶겠냐? 나부터도 헤어진다. 이 등신아!]
며칠이 지났다.
강시혁은 대리 일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자기의 돌파구라고 여겼다.
빚 갚느라 30대 청춘은 다 가고야 말겠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대리 수입이 조금 늘었다. 그것은 경력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할 때보다는 콜을 잘 잡았다.
어느 것이 영양가 있는 콜인지도 잘 알고 어느 지역에서 콜이 잘 나오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디가면 데이트하는 남녀가 많이 나오고 어디가면 호스트바 손님을 많이 태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시혁은 대전 사람이지만 서울과 수도권 길도 많이 알게 되었다.
처음엔 길치나 다름없었다. 차를 출발해서 멈출 때까지 계속 내비를 보았지만 지금은 내비를 안 켜고 가는 곳도 있었다.
오지에 들어가 탈출하는 방법도 잘 알았다.
그래서 대리기사 커뮤니티 사이트인 달빛 카페에 들어가 어느 지역 오지 탈출하는 법에 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날씨도 좋은 어느 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광고 전화인줄 알고 받지 않을까 하다가 받았다.
“기사님이죠?”
나이 든 사람의 음성이었다.
“예? 어디시죠?”
“나, 지난번에 강남 성모병원까지 타고 갔던 백석읍에 사는 사람이요.”
변호사 아들이 전화를 한 것이 아니라 이번엔 노인이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아 예, 어르신이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수술 날짜가 내일 모레 잡혔소.”
“아, 그러십니까? 그럼 이번에도 제가 모셔드리죠.”
낮에 현금 들어오는 이 일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