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대리 기사의 애환 (1)
(7)
강시혁은 노인을 태우고 다시 양주 백석읍으로 향했다.
사실 대리 기사에게는 단골이 없다. 일회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일 뿐이다.
술이 취했거나 몸이 피곤한 사람을 위해서 대리로 운전하고 돈만 받으면 되었다.
손님들도 차를 타면 대리에게 잘 말을 걸지 않는다.
대리 기사 역시 손님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을 붙이면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운전 방법에 대하여 간섭하는 사람은 있지만 침묵이 최고다.
그런데 강시혁이 생각하기에 이 노인은 단골로 몇 번 더 모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직장이 있으며 투잡으로 대리 뛰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리 기사 중에는 강시혁처럼 쫄딱 망한 사람도 있지만 번듯한 아파트에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더 좋은 동네로 이사를 하고 싶어 한다.
자녀들 학군을 위해서 아니면 신분상승을 위해서 그렇다.
한국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그래서 좋은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싶어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버는 근로소득보다는 몇 배나 뛰어올라 결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되어만 가고 있었다.
강시혁은 지금 집을 더 늘려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신용불량을 어서 탈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낮에 일할 수 있는 것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미러로 뒷좌석에 탄 노인을 흘깃 보았다.
노인은 피곤한지 졸고 있었다. 다행히 노인은 강시혁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서초동에서 목동까지 가는 60대 손님을 태운 적이 있었다.
대다수의 손님들이 조용하게 가는데 이 손님은 이상하게 강시혁에게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는 고향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결혼은 했느냐, 지금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심지어는 종교도 묻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월세냐 전세냐를 묻는다.
대리 기사가 자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행동만 같았다.
그리고는 끝에 가서 자기 아들 자랑을 하였다.
아들이 서울대를 나와 의사가 되어 지금 30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자랑을 하였다.
자식의 성공 스토리를 누구엔가 들려주고 싶었는데 만만한 대리 기사를 보니까 생각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때 강시혁은 혹시 팁이라도 줄줄 알고 서비스 차원에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대단하네요를 연발해 주었다.
그런데 내릴 때 보니까 팁은 안주고 젊은이도 교회를 다니라는 말을 하고 그냥 가버렸다.
그런데 오늘 강남 성모병원까지 모시고 가는 노인은 점잖았다.
환자라 아프기도 하겠지만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도 점잖은 것 같은데 부자가 모두 점잖았다. 이런 손님은 단골로 잡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 기사에게 단골은 없지만 아주 드물게 단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어쩌다가 자기 얼굴이 알려지길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단골을 두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다. 그것은 서로 신뢰를 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노인이 눈을 떴다.
“기사 양반, 좀 세웠다 갑시다. 내가 전립선이 약해서 오줌이.....”
마침 강시혁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런데 차를 댈만한 곳이 없었다. 한참을 더 달렸다.
“싸겠는데!”
마침 주유소가 보여 주유소로 들어갔다.
둘이 같이 오줌을 누었다. 역시 오줌 줄기는 강시혁이 더 거세었다.
노인은 강시혁이 있는 옆으로 돌아보지 않고 앞만 쳐다본 채 말했다.
“역시 젊은 사람이라 오줌발이 좋군. 어디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잘 빌리겠어.”
강시혁은 그냥 웃기만 했다.
담보 없이 누가 돈을 빌려줍니까? 요즘 세상에 누가 오줌발만 가지고 돈을 빌려 줍니까 하려다가 그러면 되바라진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웃어주는 것이 최상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노인이 오만 원짜리 세 장에 수고했다며 만 원짜리 한 장을 더 얹어주었다.
현금을 받으면 언제나 즐거웠다. 대리운전 중개업체에 수수료를 뜯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서울 시내로 들어가 콜을 잡으면 되었다.
콜이 뜨는 러쉬아워 시간대를 충분히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났다.
정말 채권자의 채무 독촉은 없어졌다.
박 변호사 말대로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이 되어 독촉이 없어진 것 같았다.
낮에 하는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열심히 워크넷 검색을 하였다.
그런데 모두 지방이고 대리 투잡을 뛰기엔 적당하지가 않았다. 그런 일을 하려면 대리 일을 포기해야 한다.
강시혁은 이제 대리 일도 슬슬 요령이 생겨 처음보다 수입이 많이 늘었다. 대리 일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날도 마지막 한건을 잡기위해 강남에서 앱을 열었다.
띵동 소리가 울리며 한건이 떴다. 강남에서 종암동까지 가는 손님이었다.
종암동이라면 강시혁이 사는 수유리가 멀지 않은 곳이라 얼른 콜을 잡았다.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이것만 벌고 여기서 끝내고 싶었다.
“대리 기사입니다. 일, 이분 안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술 취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자카야 앞에 있는 엑센트입니다. 차에 타고 있을게요. 끄윽.”
강시혁이 이자카야 앞으로 갔다.
차는 비상등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엑센트 신형이었다. 여자는 조수대 쪽에서 졸고 있었다.
여자는 머리도 물들이고 옷도 요상한 걸 입은 20대 여성이었다.
그런데 입이 크고 코가 높아 강시혁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은 술이 몹시 취해 흐트러진 상태였다.
“아저씨, 종암동 숭례 초등학교 쪽으로 가시면 되요. 끄윽.”
그러면서 여자는 바로 목이 꺾어졌다.
여자가 코를 골므로 강시혁은 볼륨을 낮게 한 음악을 틀었다.
어느덧 엑센트는 숭례 초등학교 앞까지 왔다.
“손님,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런데 여자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큰 소리를 쳐도 일어나질 않는다. 어깨를 툭툭 치려다가 강시혁은 멈칫하며 황급히 손을 거두어들였다. 잘못하여 여자를 만지면 성추행 범으로 걸리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꿈나라를 헤매는지 한번 입맛을 다시고 이제는 아예 옆으로 쓰러져 잠을 잤다.
여자의 하얀 목덜미가 들어났다.
강시혁은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야릇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하여 눈을 한번 소매로 비볐다.
그리고 에어컨을 강하게 틀었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가 있으면 잠을 깨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일어나질 않았다.
시간은 자꾸 갔다.
강시혁은 할 수없이 경찰을 불렀다. 대리 기사인데 여자 손님이 일어나질 않는다고 하였다.
경찰이 금방 왔다.
남자경찰 한 명과 여자경찰 한 명이 왔다.
여자 경찰이 손님을 흔들었다. 뺨도 톡톡 쳤다. 그때야 여자가 눈을 떴다.
“집이 어디세요?”
그런데 여자가 일어나다가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토했다.
차내가 온통 오물천지가 되었다. 경찰이 황급히 피했다. 강시혁도 옷에 오물을 조금 맞았다. 차내에 냄새가 진동했다. 여자 경찰이 손님의 얼굴을 휴지로 닦아주며 말했다.
“집이 어디세요?”
참 그러고 보니 경찰도 못해먹을 직업인 것 같았다.
손님이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지?”
“숭례 초등학교 앞이에요.”
“저기, 저 앞 골목으로 들어가세요.”
여자 경찰이 손님을 부축하고 갔다. 강시혁이 차를 슬슬 움직여 뒤를 따라갔다.
손님은 새로 지은 신축 빌라에 살았다. 주차가 만원이라 주차하는데 애를 먹었다.
여자 경찰이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여자 손님이 신발 한 짝을 잃었다고 하네요.”
초등학교 앞까지 가봐 달라는 표정이었다.
강시혁이 학교 앞으로 가보았다. 초등학교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여자 구두가 한 짝 있었다.
강시혁이 여자 구두를 들고 갔다. 아내 심은혜의 신발도 들어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남의 여자 신발을 들고 가는 것이었다.
남자 경찰이 말했다.
“이제 기사님은 들어가 보세요. 수고했습니다.”
강시혁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얼른 대로변으로 뛰어나왔다.
오물이 튀어 아직도 옷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수유리 집까지 버스를 탈까 하다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가 냄새를 맡았는지 운전석 유리문을 조금 여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