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전원주택의 노인 (2)
(6)
대리 일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 손님과 잘 대화하지는 않는다.
손님들도 말을 걸지는 않는다. 대개는 술 취한 사람들이라 곧바로 잠을 잔다.
하지만 술 취한 손님이 두세 명이 같이 타면 심하게 떠들며 말을 거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운전 집중이 안 된다.
더구나 대리 일은 남의 차라 손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처음 가보는 밤길이 많다. 여간 주의하여 운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잘못하면 내비 언니의 음성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가 건강하시냐고 먼저 질문을 했다.
낮에 편하게 모시고 가는 노인 손님이라 여유가 생겨 그렇게 질문한 것이다.
노인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다.
“마누라는 먼저 갔소.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
그러면서 입을 벌리고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고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아, 사모님이 돌아가셨군요.”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어색해 다시 물었다.
“그러시면 혼자 그렇게 넓은 전원주택에 계시면 외롭겠는데요?”
“아니요. 일주일에 두 번 방문 요양사 아줌마도 오고 또 일주일에 두 번 며느리도 와요.”
“그러면 외롭지 않으시겠네요. 반려견도 있는 것 같으니까요.”
“딸년은 미국에 살아서 못 와요 .내가 아프지만 않아도 되는데 지난달부터 갑자기 몸이 이렇게 되어서.......”
그러면서 노인은 피곤한지 다시 눈을 감았다.
강남 성모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강시혁은 뒷좌석 문을 열고 노인을 부축해 주었다.
노인은 진료실로 가고 강시혁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면 되었다. 차 안에서 스마트폰 동영상이나 보던지 아니면 웹툰이나 웹소설을 봐도 되었다.
그런데 환자인 노인을 혼자 걸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
왼팔을 잡고 부축을 하며 말했다.
“진료실 앞까지 모셔다 드리죠.”
“고맙소. 내가 관절도 좋지 않아서.....”
노인이 좋아하였다.
가는 도중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의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달 같은 놈이기 때문이었다.
진료실에 접수하고 간호원실로 갔다.
간호사가 노인을 보고 말했다.
“아버님. 오늘 내시경 검사하는 날이에요. 마취주사 맞아야 하는데 보호자와 같이 왔지요?”
“여기 옆에 있잖소.”
간호사가 강시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드님 되세요?”
강시혁이 뭐라고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간호사는 노인을 데리고 얼른 다른 방으로 갔다.
강시혁이 쫓아가려고 했지만 다른 간호사가 막았다.
“보호자는 저쪽 대기 의자에 앉아계세요.”
강시혁은 졸지에 노인의 아들 겸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 대기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마 보호자가 필요해서 자기를 불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와 며느리가 일하느라 노인을 모시지 못할 경우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 운전기사 겸 보호자.]
얼마나 좋은 배역인가?
머리 좋은 변호사가 안배해 놓은 훌륭한 배치인 것이다.
강시혁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방금 들어간 노인환자 검사 다 끝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깨어나셔야 되니까 한 시간 정도 잡아야 돼요. 어디 멀리는 가지 마세요. 나오실 때 환자분이 어지러운 경우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노인 환자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통밥을 재어보았다.
[지금이 오후 2시니까 노인이 3시쯤 나오겠군. 다시 백석읍에 모셔다 드리면 오후 5시 정도가 되겠지. 그럼 나오다가 의정부 카페거리에서 콜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야. 시내로 가야돼. 변두리에선 콜을 잡기도 어렵고 의정부에서 포천이나 양주의 오지로 가는 손님이라면 나올 때 또 지난번처럼 개고생할거야.]
강시혁은 대리기사 온라인 카페인 달빛카페에 들어가 무슨 정보가 없나 하고 둘러보았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노인의 아들 전화였다.
“기사님이시죠? 박일규 변호사입니다.”
“아, 예.”
“아버님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시경 검사받으러 들어가셨습니다.”
“아유,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중요한 계약이 있어 아버님을 모시지 못했습니다. 제 와이프도 지방대학 교수로 있는데 오늘 수업이 있는 날이라 모시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보호자 왔느냐고 물어서 제가 졸지에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아유, 미안합니다. 아버님 나오시면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변호사 아들 전화가 걸려온 김에 채권자 소송에 대하여 물어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물어보기는 너무 빠른 것 같아서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였다, 변호사 상담료가 비싸다는데 이런 기회로 물어보면 좋지 않겠는가?
졸지에 보호자가 되긴 했어도 밑지는 장사가 아닐 것으로 보았다.
강시혁은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서 모바일 게임을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유튜브로 음악 감상도 하였다.
계속 앉아있기가 지루해 병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사람들이 엄청 많고 진료 대기판을 보니 환자 진료도 많이 밀려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돈 버는 데는 병원밖에 없는 것 같네.”
돈을 잘 버니 이렇게 병원도 크고 웅장한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면 모두 의과대학을 가려고 혈안이 되어있지 않은가!
강시혁도 다시 태어난다면 돈 잘 벌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고향이 대전이니까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흰 가운을 입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아내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심은혜 보다도 더 많이 배우고 더 멋진 여성을 만났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자 노인이 나왔다.
마취주사를 맞고 검사까지 받았지만 들어갈 때와 표정이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조금 더 흩어진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노인이 강시혁을 보자 반가워했다.
“여기 계셨었네.”
“예, 어르신을 모시고 가야죠.”
“의사 면담을 해야 한답니다.”
의사 면담을 하려고 또 20분을 기다렸다.
노인의 표정은 검사를 받을 때보다도 의사를 만나고 어두워졌다.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 결과에 따라 이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오.”
강시혁은 노인을 부축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노인을 뒷좌석에 모시고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저쪽에서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일규입니다.”
“대리기사입니다. 아버님은 검사 받으시고 나오셨습니다. 의사 말로는 검사 결과에 따라 종양 제거 수술을 한답니다.”
“그래요? 아버님이 보행엔 지장이 없지요?”
“예, 지장 없습니다. 잠깐 계세요. 아버님 바꾸어드리죠.”
노인은 자기 아들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 많이 아픈지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노인이 다시 전화를 강시혁에게 바꾸어 주었다.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한 두번 더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수술 날자가 잡히면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전화 건 김에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제가 얼마 전에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업체에서 소송을 하겠다는데 어떻게 되는 건지요.”
“채무조정 신청했으면 채무독촉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혹시 대부업체에서 별도로 소송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채무조정 했으면 소송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채무조정보다는 법원에 개인회생을 하지 그랬습니까? 개인회생은 부채를 줄여주는 역할도 하는데요.”
“채무조정이나 개인회생이나 다 같은 건 아닙니까?”
“아닙니다. 다릅니다. 하지만 이미 채무 조정을 했다니 성실하게 조정된 금액을 납부하시면 됩니다.”
“통장이 압류되거나 그런 일은 없겠죠?”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사업을 하셨습니까?”
“건대 앞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하하, 힘내십시오. 통장 압류도 없고 회사 취업에 불이익도 없고 채무독촉도 받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 하세요.“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아닙니다. 제가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변호사로부터 직접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창이나 후배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미심쩍었겠지만 변호사가 이렇게 말을 하니 믿음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