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5화 (5/199)

5화 전원 주택의 노인 (1)

(5)

강시혁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그런데 삼방그룹 외동딸 결혼했다며? 지난번 뉴스에 나오는데 예쁘던데?”

“예쁘지. 돈 있고 인물 있고 머리까지 좋으니.”

“서울대 다닐 때 별명이 여왕벌이었다며?”

“서울대생들이 헛물 켰지. 서울대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갔으니.”

“거기서 유학 온 신문사 아들과 연애를 했겠군.”

“연예는 무슨! 누군가 다리를 놓아줬겠지. 원래 하이 소사이어티들은 그런 거 맺어주는 마담뚜가 있어. 그리고서는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든가 우연히 음악회에 가서 알게 되었다고들 하지. 그래야 멋있어 보이잖아?”

“하긴. 스님이 소개해주었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더군.”

“내가 아는 친구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 앞의 식당 아줌마가 중매해서 결혼한 놈도 있어. 그리고는 대학 다닐 때 은사님 소개로 만났다고 떠드는데 그게 더 고상해 보이니까 그런 것 아니야? 형처럼 정말 몸으로 대쉬하여 결혼한 사람도 있지만.”

“그때 내 눈에 뭐가 씌워서 그래. 콩깍지가 씌운 것이 틀림없어.”

“헤어진 형수님은 지금 어디서 살아?”

“몰라. 내가 알 필요도 없겠지.”

“나 한번 봤어. 신세계 백화점에서.”

“그래? 백화점엔 혼자 왔나?”

“그, 그게.....”

후배가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시혁은 헤어진 아내 심은혜가 분명이 그 박 과장이란 놈하고 같이 왔을 거란 생각을 했다. 후배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런 의심이 들었다.

“혀, 형도 새로운 여자 만나야 할 것 아닌가?”

“빌어먹을! 돈이 있어야지. 대리 뛰는 놈한테 누가 시집오겠냐? 난 지금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들다.”

“형은 앞으로 계속 대리 뛸 거야?”

“좋은 직장 나서기 전까지는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너 정말 술 많이 마신다. 이제 대리 불러야겠다.”

“걱정 마. 우리 엄마가 차 가지고 간다고 했어.”

“엄마가?”

“내가 끌고 온 차가 엄마차인 줄은 형도 알잖아. 엄마도 지금 친구들과 도봉산에 왔어. 내가 문자 주기로 했어.”

“그래?”

그래서 강시혁은 생맥주를 다시 또 추가로 시켰다.

대리 기사인 강시혁과 백수인 변상철은 이날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강시혁은 모든 걸 잊고 싶었다. 악몽 같은 이 현실을 술 없이는 못 이겨나갈 것 같았다.

다음날 수유리 원룸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강시혁이 즐겨 찾는 연락처에 등록하지 않은 전화번호가 떴다.

“안녕하세요. 대리 기사님이시죠?”

“그렇습니다. 어디시죠?”

“법무법인 행촌의 박 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요?”

법무법인 소리를 듣고 강시혁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틀림없이 채권자들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빚이 있어 신용회복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는데 채권자들이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으로 가는 것임을 직감했다.

소송을 해도 자기가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소송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기사님이 제 차를 운전해 주었잖습니까? 강남역에서 백석읍까지 대리 운전해준 BMW 차주입니다.”

“아아, 기억납니다.”

“그때 제가 저희 아버님 병원 수송을 말씀드린 적이 있죠?”

“아아, 강남 성모병원까지요?”

“내일 아버님이 병원에 가시는 날입니다. 모셔다 드릴 수 있겠죠?”

“낮 시간이라면 가능합니다.”

“물론 낮에 가십니다. 거동이 불편하시니까 잘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차는 백석읍에 있습니다. 그랜저입니다.”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내일 10시까지 가시면 됩니다. 혹시 모르니까 아버님과 통화를 해보세요. 아버님 전화번호는 문자 찍어서 보내드리죠.”

“알겠습니다. 왕복 15만원은 주셔야 합니다. 진료 대기시간까지 계산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아버님 전화번호였다.

강시혁이 전화를 했다.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다.

탁한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여보세요?”

“아, 박 변호사님 아버님 되시죠?”

“뉘시오?”

“대리 기사입니다. 내일 아버님을 모시고 강남 성모병원에 갈 사람입니다. 몇 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음.... 12시까지 오시오.”

“오전 10시가 아니고요?”

“잘못하면 병원 점심시간에 걸리니까..... 12시까지 오시오. 여기 위치는 알아요?”

“대충 압니다.”

“양주역에서 XX번 버스를 타고 오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강시혁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일은 수입이 짭짤할 것 같아서였다. 낮에 15만원 벌고 밤에 대리 뛰어 20만원 벌면 35만원까지 찍기 때문이었다.

10만원만 번다고 해도 25만원은 손에 쥘 수 있다. 그럼 낮에 직장 안 가져도 대리만 뛰어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채권자들이 소송을 걸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진 빚은 제1금융권인 은행이 아니라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빚이었다. 이놈들은 빚 독촉도 심했던 놈들이라 틀림없이 소송을 할 것 같았다.

“박 변호사라는 사람한테 자문 좀 구해볼까?”

기왕에 인연이 닿았으니 변호사라면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박 변호사 전화번호를 즐겨찾기에 등록을 해놓았다.

다음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이날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속옷도 갈아입고 쓰고 다니는 마스크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일찍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탔다.

양주역에서 내려 어제 노인이 알려준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놈에 버스가 오질 않았다. 정류장에 있는 버스 노선표를 보니까 알려준 버스의 번호가 있기는 하였다. 그런데 배차 간격이 무려 30분이나 되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버스는 오겠지.”

버스가 왔다.

손님이 없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버스라 그런지 마을 버스같은 작은 버스였다.

강시혁은 이 버스를 타고 지난번에 왔었던 백석읍의 전원주택으로 갔다.

주택의 문은 열려져 있었다.

대리기사가 온다고 해서 그런지 일부러 열어놓은 것 같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당이 굉장히 넓었다. 강아지가 뛰어나와 왈왈하고 짖었다.

마당엔 잘 생긴 정원수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었다. 소나무도 있었고 단풍나무도 있었다.

땅값 비싼 서울 같으면 수십억은 나갈 집 같이 보였다.

“계세요?”

“누구요?”

흰 머리에 등이 약간 굽은 노인이 나왔다.

“대리기사입니다. 오늘 어르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올라오시오.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겠소.”

“아닙니다. 어르신이 알려준 버스타고 잘 왔습니다.”

“가만 계시오. 내가 옷 좀 갈아입고 나오리다.”

“예, 천천히 하십시오.”

강시혁이 거실 소파에 앉아 밖을 쳐다보았다.

거실 문을 통하여 마당의 나무가 시원스럽게 보였다. 여기에 앉아서 소설책이나 보면 무릉도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혼자 사는 노인인가 했다.

[혹시 나처럼 마누라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건 아닐까? 요즘 황혼이혼도 많이 한다는데. 에이, 아니겠지. 변호사 아들까지 있는데!]

노인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으나 양복차림이었다.

“갑시다.”

노인의 거동이 좀 불편한 것 같아서 강시혁이 부축을 해주었다.

이런 불편한 노인이 사람도 없는 이런 곳에 혼자 산다니 말이 안 되었다.

차는 그랜저 구형이었다.

그런데 구형 치고는 주행키로가 5만키로밖에 되지 않았다. 차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시혁이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는 좋았다.

계기판을 확인해 보니 연료 게이지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갈 때 기름은 넣어야겠는데요?”

“그래야 할 거요.”

강시혁은 내비를 켜고 출발 기어를 넣었다.

가다가 기름을 만땅 채웠다, 노인이 자기 카드를 주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차는 내비 언니의 지시에 따라 잘도 달렸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자 노인은 괴로운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할머니가 동행하지 않는 게 이상해서 슬쩍 물어보았다.

“저, 어르신 사모님은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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