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재벌가 혼사 뉴스 (2)
(4)
동창을 태운 차는 마침내 신길동에 도착하였다.
동창은 신길동의 좀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다.
“나, 여기 살아. 25평짜리 전세야. 부모님이 해주었지.”
잘 나가는 제약회사 대리라도 집은 역시 부모 찬스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세금이라도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출발부터가 달라진다. 없으면 수입의 반 이상을 월세로 지불하게 된다. 그러면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또, 거기다가 빚까지 있다면 금생은 실패한 인생이 된다.
그래서 강시혁은 결혼 한지 2년 만에 와이프와 갈라서지 않았던가? 갈라선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돈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아파트 사니 부럽다. 그리고 차도 새 차라 잘나간다. 기름이 앵꼬 직전이니까 내일 아침에 기름이나 넣어라.”
“그래? 수고했다.”
동창이 대리비를 계산해 주었다.
동창은 아직도 술기운이 있는지 몸이 휘청거렸다.
“안 받아도 되지만 나도 영업이라 받는다.”
“무슨 소리! 받아야지. 그리고 너 낮에 다니는 직장 명함이나 한 장 줘라.”
이 말에 강시혁은 뜨끔했다.
낮에 다니는 직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명함을 안 가져 왔네. 네 명함이나 줘라. 나중에 연락할게.”
동창이 명함을 주었다. 유명 제약회사의 영업부 대리였다.
강시혁은 대리 운전을 하는 대리이고 동창은 영업부 대리였다. 일하는 분야는 틀리지만 똑같은 대리였다.
“어, 대리네? 나도 대리인데. 그럼 난 간다. 푹 쉬어라.”
이 날도 강시혁은 새벽까지 대리를 뛰었다. 19만원을 벌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후배 변상철과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등산을 전문적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하체운동 때문에 조금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와 술이나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변상철은 캠핑 마니아라 등산 장비도 제법 갖추고 다니지만 강시혁은 장비도 없었다.
등산화 한 켤레가 전부였다.
강시혁은 시간에 맞추어 잠바 하나를 걸치고 도봉산역으로 갔다.
강시혁은 지하철을 타고 갔지만 후배 변상철은 승용차를 끌고 나왔다. 자기 엄마 차인 SM5를 끌고 나왔다.
이 녀석은 지하철을 잘 안탄다. 가까운 거리도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차 막히고 기름값 들어가는데 왜 가까운 거리를 승용차 타고 다니냐고 하면 들은 척도 안한다.
운동 삼아 차를 놓고 다니라고 해도 귀만 후빈다. 운동은 캠핑 가서 남들보다 더 많이 한다고 말한다.
변상철은 화려한 등산잠바에 비싼 등산화를 신고 왔다. 모자도 근사한 것을 썼다.
변상철은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작은 침대공장을 하니 궁해보이지는 않았다. 놀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막 되먹은 놈도 아니었다. 이놈은 이상하게 강시혁을 좋아했다.
등산은 높은데 가지도 않았다. 중간에 있는 무슨 절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래도 땀을 내었으니 강시혁은 막걸리나 한잔하자고 했지만 변상철은 통닭을 먹자고 하였다.
“산에 와서 통닭을 먹어?”
“여기 잘하는 통닭집 있어. 싸고 맛있어. 가서 통닭 네 마리 시켜놓고 생맥주나 하자고.”
“네 마리? 그걸 어떻게 다 먹어. 그리고 너 차를 가지고 왔는데 술 먹을 거야?”
“옆에 대리기사 형님이 있잖아.”
“야, 나도 한잔 할 건데!”
“그럼 다른 대리 부르지.”
“돈도 못 버는 놈이!”
“형님은 벌잖아!”
“그럼 대리로 번 돈을 대리도 쓰자는 말이냐?”
“일단 마셔. 저기 통닭집 보이잖아. 짱구 통닭이라고!”
역시 등산로 입구라 통닭집도 넓어서 좋았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니 통닭 값이 엄청 쌌다. 두 마리 칠천 원이고 세 마리 만 원이었다.
“통닭 값이 뭐 이렇게 싸? 병아리를 잡았나?”
변상철은 정말 통닭을 네 마리나 시켰다.
병아리는 아니지만 닭이 작은 편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맛도 괜찮았다,
옆자리의 아재 등산객들이 소주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잔을 부딪치며 오징어를 외쳤다.
강시혁이 아재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통닭 시켜놓고 웬 오징어는!”
“형, 오징어 몰라?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는 뜻이야.”
“그, 그런가? 그럼 우리도 건배사를 오징어로 할까? 그런데 우리는 오래도록 어울리는 것 보다는 빨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나하고 너만 남고 주위 애들 다 취업을 한 것 같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러면서 변상철은 생맥주 500CC잔을 단숨에 절반이나 비웠다.
“네 친구 오인환도 어디 들어갔다며?”
“좃소기업 들어갔어. 우리가 나온 학교가 어중간해서 대기업은 잘 안 되는 것 같아. 대기업 간 놈이 한 놈 있기는 하네. 유병희란은 놈이 있는데 그놈이 운 좋게 삼방그룹에 들어갔지.”
“삼방? 이번에 회장 딸이 언론재벌과 결혼한다는 그 삼방 말인가?”
“맞아. 요즘 애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업이지. 초봉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던데? 삼성이나 현대보다도 높다는 이야기가 있어.”
“잘 들어갔네.”
“잘 들어갔지. 그놈은 조상의 음덕이라도 입은 것 같아. 그런데 그 새끼하고는 잘 안 만나. 새끼가 좀 건방져! 중소기업 다니거나 9급 공무원이면 사람 더럽게 깔보는 경향이 있어.”
“넌 아버지 침대공장 물려받으면 대번에 사장될 사람인데 뭔 걱정이냐?”
“그럼 그 자식이 나를 더 무시할거야. 종업원 몇 명 안 되는 영세 침대공장 사장을 사람대접이나 하겠어?”
“설마!“
“말이 침대공장 사장이지 우리 아버지는 반 노동자야. 그러니 내가 경찰시험이라도 보려고 하는 거지.”
“야, 공무원은 월급이 적다는데 정말 경찰할거야?”
“우리 아버지가 나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넌 공부할 놈이 아니야 라고 하더군.”
“킥킥. 아버님이 잘 보았네.”
“형도 알잖아.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대갈빡은 좋은 놈 아니야? 그래도 대전에서 공부깨나 했다는 형이 다니는 학교에 나도 들어갔으니 기본기는 있다고 봐야지.”
이 말은 맞았다.
강시혁은 대전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제법 공부를 잘했다. 일등이나 이등은 아니더라도 중상은 넘었다. 그래서 인서울 대학을 가려고 하였다. 스카이나 서성한은 못가도 중경외시는 갈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입시에 실패했다.
그래서 노량진에서 재수하며 마침내 중경외시 중에서 한군데를 들어갔다.
그런데 상과대학이나 공과대학 출신이면 취업이 잘 될 텐데 어문계열이다 보니 취업이 안 되었다. 아니 되긴 되었었다. 졸업하던 해에 취업이 되었지만 마음에 안 들어 한 달 만에 나왔다.
그런데 이후 지원서만 내면 1차엔 붙지만 면접에서 꼭 떨어졌다.
1년 동안 지원서 낸 곳만 100군데가 넘은 것 같았다, 그래서 중소기업에 들어갔고 여기에서 와이프 심은혜를 만났다.
심은혜는 결혼 후 180도로 달라졌지만 연예시절에는 심은혜가 더 적극적이었다,
강시혁을 보고 자기가 기댈 수 있는 남자라고 하더니 속아서 결혼했다는 말을 했다. 월급의 절반 가까이가 신혼빌라 월세와 차량 할부금으로 나가는 것도 불만이었다.
사실 강시혁이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없었다.
월급도 남들 받는 것만큼 받고 대전에 계신 부모님도 먹고 살만은 하다고 말 했었다.
그런데 강시혁이 월급도 적고 부모님도 찢어지게 가난하고 요구사항만 많다고 불만이었다.
강시혁도 와이프가 빌라 월세를 조금 보조해 주면 좋겠는데 자기 월급은 일체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결혼 생활은 유지를 했었다.
그 후 강시혁이 다니는 회사가 부도가 나고 월급이 밀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더구나 대전에 있는 엄마와 반목만하더니 결국 마음이 떠난 것 같았다.
강시혁은 아내와 헤어진 것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자기와의 애정이 식어버리고 남자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되었다.
강시혁이 생맥주를 더 시키며 말했다.
“상철아, 정말 차 놓고 가라.”
“걱정 말라니까!”
강시혁이 기름 뭍은 손을 휴지로 닦으며 계속 말했다.
“너, 아버지 공장에 가라. 아버님 연세도 많으시다며? 가서 일을 배워라. 나도 우리 아버지가 그런 공장을 하셨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는 요즘 일거리가 없어 취로사업이나 다니신다.”
“형, 침대공장 가보았어? 합판을 자르는 톱날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아프고 톱밥 날리고 원단 재단하느라 허리 필 새도 없어.”
“그런 고생은 이겨 나가야겠지.”
“유병희처럼 삼방그룹에 들어간다면 내가 얼마나 좋겠어. 그 자식은 아마 5년만 지나면 우리 아버지보다도 돈을 잘 벌 거야. 삼방그룹 과장이면 다 억대 연봉이 넘잖아.”
그러면서 변상철은 맥주를 꿀꺽대며 마셨다.
강시혁은 지난번 TV에서 잠깐 본 삼방그룹 외동딸이 생각났다.
[언론재벌과 결혼한다는 그녀는 삼방그룹의 주식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아마 자기 같은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