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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화 (2/199)

2화 대리 운전기사 (2)

(2)

비는 점점 거세어졌다.

강시혁은 그냥 비를 맞고 큰길까지 가려고 했지만 그 정도의 비가 아니었다.

천둥 벼락까지 치며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 공장 창고 같은 것이 보였다.

그 창고 앞으로 가서 비를 피했다. 그런데 창고의 지붕 처마가 짧아서 그런지 비가 사정없이 들이쳤다.

우산과 우비도 없어 꼼짝없이 비를 다 맞게 생겼다.

“씨팔! 여기서 밤 새게 생겼네!”

맞은편 공장 건물엔 캐노피 문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쪽으로 뛰어가 비를 피했다. 뛰어가는 동안 비를 주르륵 다 맞았다.

강시혁은 여기서 핸드폰이나 보았다. 혹시 밧데리가 다 나갈까봐 동영상은 안보고 인터넷 뉴스나 대충 보았다.

어디서 똥냄새가 났다. 공장 뒤에 있는 밭에서 풍겨오는 것 같았다.

비가 오니까 흙이 씻겨가며 거름 준 것이 들어나 그런가 하였다.

강시혁은 비 맞은 생쥐가 되어 쪼그리고 앉아 자기 신세를 돌아보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까지 나온 놈이 신용불량자에, 이혼남에, 비 맞고 똥냄새나 맡고 앉았으니 눈물만 흘러내렸다.

지금 이 시각 헤어진 아내가 그놈과 붙어 운정동 그놈 아파트에서 그 짓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속에서 분노만 불같이 일어났다.

[흑흑. 다 돈 때문이야!]

강시혁은 돈 때문에 아내인 심은혜와 헤어졌다. 다행히 아내와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아내는 우리 사이에 아이까지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잠자리를 거부했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미 애정도 식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놈 때문에 그런 거냐고 하자 아내는 도끼눈을 뜨면서 말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유치하냐고 하면서 당신이란 인간은 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서 베개를 들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었다.

그냥 가면 좋았을 뻔 했는데 ‘그러니까 가게를 말아 먹었지!’ 하는 말에 꼭지가 돈 강시혁이 아내를 폭행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 저녁에 강시혁은 주차장에서 아내와 그놈이 차 안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차 문을 열고 고함을 터트리며 이놈들! 하고 외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비실비실 자리를 피했었다. 법원에서 자동차 압류통보가 왔던 날이었다.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았다.

멀리 자동차 불빛들이 보이며 큰 도로가 보였다.

큰 도로로 나왔지만 아직도 역까지는 멀었다. 내비를 찍어보니 걸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이 시각에 버스도 끊기고 여기는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메인도로도 아니다.

심야버스도 여기는 없을 것 같았다. 택시를 잡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여기서 택시를 타면 역까지 기본요금 조금 더 나올 것 같았다.

백석까지 오는 대리비 7만원을 합하여 오늘은 18만원을 벌었으니 택시비 정도는 큰 부담도 아니었다.

그런데 택시가 지나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놈의 동네는 택시도 안 타고 다니나?”

한참 걸어가니 작은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택시가 있어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택시가 되돌아 나오자 얼른 잡았다.

“양주역까지 갑시다.”

“아이고, 비를 다 맞으셨군요.”

“대리 기사인데 백석 전원단지에 갔다가 비를 다 맞았습니다.”

“전원단지요? 그럼 여기까지 걸어 나왔어요?”

“별수 있나요? 따르릉도 없는데.”

“나도 대리를 해볼까 하는데 못하겠군. 그런데 대리 뛰면 한 달에 얼마를 버나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강시혁을 만나면 한 달에 얼마를 버느냐고 묻는다.

강시혁이라는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긴 강시혁도 돈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양주 역에 오니 택시비가 기본요금이 아니었다. 더 나왔다.

하지만 택시기사가 심야 할증료는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덕담까지 해주었다.

“돈 많이 버세요. 세상은 돈 벌어야 대접받는 세상입니다. 역 앞에 기다리면 수유리까지 가는 심야버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심야버스가 오지 않았다.

건너편 정거장에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심야버스는 잘 도착하는 것 같았는데 이쪽은 소식도 없다.

건너편 정거장에 서있던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늦도록 어디서 놀다가 이제 집으로 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문득 헤어진 아내 심은혜가 생각났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해서 뭣 하는가 하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생각났다. 심은혜를 데려간 아내의 직장 상사 박 과장이라는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돈 못 벌고 아내까지 빼앗겼다는 생각에 자괴감만 들었다.

대전에 계신 엄마의 얼굴도 떠올랐다.

“남자가 돈 못 번다고 가버리는 여자가 사람 년이냐?”

올빼미 심야 버스가 도착했다. 36번 수유리가는 버스였다.

이것 놓치면 새벽 첫차까지 기다려야한다. 강시혁은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다.

수유역에서 벽산 아파트 쪽으로 한참 가다보면 미로 같은 연립주택 골목이 나온다.

여기에 낡은 연립 1층에 강시혁이 살고 있는 원룸이 나온다. 깨끗한 신축 연립은 월세가 비싸 이곳을 얻었다.

그래도 지금 강시혁의 처지로는 이 월세도 부담이 된다.

방안은 언제나 쾌쾌한 냄새가 났다.

지대가 낮고 습해서 그런지 벽 사이에 곰팡이도 껴있어 언젠가 약까지 뿌렸었다.

또 강시혁도 두꺼운 겨울잠바 같은 것은 세탁을 제때에 하지 않아 냄새가 났고 싱크대에서도 냄새가 났다.

강시혁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먹다 남은 소주가 있었다.

소주를 마시며 오늘 번 돈을 세어보았다.

대리 일을 해도 빚만 없다면 저축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놈의 빚 때문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자기는 10년 안에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공포감도 들었다.

다시 또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놓고 냉수 마시듯이 벌컥대고 마셨다.

이불 속에 들어 누우니 눈물만 흘렀다.

잠도 오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았다. 수컷 사자끼리 싸우는 유튜브였다.

사자들은 서로 암컷을 차지하려고 격렬하게 싸웠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결국 한 마리는 살점이 뜯겨나간 채 비실거리며 도망을 가고 암컷은 힘센 사자의 차지가 되었다.

강시혁은 도망가는 사자가 자기 같고 힘센 승리의 사자는 아내가 다니는 회사의 박 과장 같았다. 얼굴이 약간 누르스름하며 쌍꺼풀 진 눈에 눈웃음을 살살치는 박 과장 같았다.

강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강시혁은 지금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밥을 해먹기도 귀찮아 라면으로 식사를 때웠다.

그리고 남대문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 사무실로 갔다.

강시혁이 보니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인생 패배자들 같았다.

어제 유튜브에서 본 싸움에서 진 사자와 같았다. 살점이 떨어져나가 다리를 절며 도망을 가던 사자와 같았다. 루저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홀에 루저가 꽤 많았다.

상담사와 면담을 하려면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강시혁과 같은 젊은 남자도 있고 50대 후반의 퇴직한 아저씨 같은 사람도 있었고 20대의 젊은 여자도 있었다.

제각기 삶이란 현장에서 싸우다가 상대에게 물려 사지가 절단이 된 채 살려달라고 이곳에 온 사람들 같았다.

강시혁의 상담 차례가 되었다.

강시혁은 채무 조정을 받았다. 상담사는 강시혁에게 지금 하는 일과 수입 같은 것을 물었다. 부채관련 서류를 보면서 표정 없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부채가 많군요. 채무 통합 후 5년간 분할 상환하는 조건으로 조정하면 되겠어요?”

“그렇게라도 해야죠.”

“월 100만원가지고 생활해야 합니다. 하지만 강시혁씨는 젊은 분이라 금방 일어날 겁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채권기관엔 조정 통보가 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빚 독촉은 없을 것입니다.”

“빚 갚으라는 독촉만 없어도 사람 살겠습니다.”

“여기서 채무 조정 받고 다시 일어선 사람도 많습니다. 아직 미혼이신 것 같은데 힘내세요.”

[미혼? 아니요. 나는 결혼했었습니다. 결혼 2년차입니다. 돈이 없고 빚만 지자 와이프란 년이 달아났지만 말입니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다.

그러나 이 말은 다시 목구멍 아래로 삼켜야 했다.

강시혁은 신용회복위원회 건물을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높았다. 폰으로 시간을 보았다.

대리를 뛸 시간은 아니므로 후배나 불러낼까 하였다.

지금 강시혁의 동창들은 모두 취직을 하여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불러낼 사람도 없었다. 만만한 것이 백수인 후배뿐이었다.

후배는 아직도 무슨 시험공부를 한다는 데 만날 놀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 후배는 시험으로 어딜 들어가기는 진작부터 날 샌 놈이다.

그렇지만 술만 먹고 빈둥거려도 후배는 빚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처럼 장사를 한 사람도 아니었고 장가를 간 것도 아니었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택에 놀고먹어도 용돈은 궁색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가끔 술을 사기도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후배였다.

전화 걸기 전에 후배 전화가 먼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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