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리 운전기사 (1)
(1)
대리 운전기사 강시혁.
오늘도 지하철 역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스마트폰에 뜨는 콜을 보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후배인 변상철이었다.
“형, 운전 중 아니지?”
“아니야.”
“뭐해 지금?”
“뭘 하긴. 폰에 콜 뜨는 것 열심히 보고 있지.”
“일요일 등산 갈 거지? 운전 오래하면 하체가 약해져 못써. 운동도 좀 해야지.”
“하체 강해봐야 써먹을 데도 없다.”
“일요일 오전 10시까지 도봉산역 앞으로 나와.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백수 새끼가 돈이 어디서 났어?”
“살다보면 다 들어오는 데가 있어.”
“개새끼! 형님 앞에서 어린놈이 하는 소리가!”
“그럼 오늘 돈 많이 벌어!”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계속 대리기사 콜 프로그램을 보았다. 마지막 한탕을 하기 위해서였다. 카카오T대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로지 프로그램을 보았다.
로지 쪽에 콜 몇 개가 떴으나 맞는 것이 없어서 패스했다. 그러다가 하나가 마음에 드는 것이 나왔다. 강남역에서 의정부 녹양역까지 4만 5천 원짜리 콜이었다.
이곳은 심야버스가 있으니 자기가 살고 있는 강북구 수유동까지는 무사히 올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콜을 잡았다. 강남역 뒷골목 여수횟집이라는 곳이었다.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대리기사입니다. 여수횟집이지요?”
“끄윽~, 맞습니다.”
역시 혀 꼬부라진 소리가 들렸다.
“일, 이분 안에 도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빨리 와요”
강시혁이 횟집 앞으로 갔다.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서로 껴안고 헤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강시혁 또래의 남녀들이었다. 대리기사를 부른 사람임을 직감했다.
“대리 왔습니다.”
“저 앞에 있는 BMW요.”
그러면서 젊은 남자가 자동차 키를 넘겨주었다. BMW는 발레주차가 되어있었다.
손님을 보니 젊은 사람이지만 점잖게 생겼다. 진상고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강시혁이 운전대를 잡고 강변로로 접어들자 뒷좌석의 손님은 이내 코를 골았다. 차내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여 운전석 문을 살짝 열고 달렸다.
[녹양역 근방 아파트에 사는 손님인 모양인데 멀리도 와서 술을 마시는군.]
시간이 이르면 녹양역에서 다시 서울 나오는 콜을 잡고 싶었지만 이제 늦어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벌 만큼은 벌었고 또 내일은 신용회복위원회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손님만 모시고 집에 들어가 일찍 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았다.
차를 몰 때만큼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차는 어느새 동부 간선도로로 접어들었다.
늦은 시각이라 교통량이 적어 막힘이 없었다. 그래서 차는 잘도 달렸다.
강시혁은 달리는 차처럼 자기 인생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차는 녹양역에 도착했다.
뒷좌석의 손님은 아직도 코를 기분 좋게 골며 자고 있었다.
“저, 손님. 녹양역 다 왔는데요?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어, 벌써 왔나? 여기서 백석읍으로 갑시다.”
“예? 백석읍요?”
백석읍이라니 처음 듣는 동네였다.
대전에서 올라와 서울 살이 몇 년을 했어도 백석읍은 못 들어 보았다.
“목적지가 녹양역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서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백석읍이요. 백석이라면 대리기사가 잘 안 올 것 같아서 녹양역이라고 했던 거요. 내가 2만원 더 줄 테니 갑시다.”
“그건 좋은데 나오기가......”
“거기서 조금 걸어가면 대로변에 지나가는 차가 많소. 갑시다.”
“알겠습니다. 모두 합하여 7만원 주세요.”
“그럽시다.”
강시혁은 다시 핸들을 잡고 백석으로 향했다.
정말로 2차선 도로의 언덕을 달렸다. 논밭이 나오는 걸 보니 혹시 오지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했다. 그렇지만 차량은 제법 많아 오지 탈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백석읍은 몰라도 이곳 지리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 근방의 의정부와 동두천, 포천 등은 군 복무시절 자주 지나다녔던 곳이라 알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뒷좌석 손님의 전화였다.
날카로운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 어디야?”
“다 왔어. 녹양역에서 고개 넘어가고 있어. 아버지는 좀 어때?”
“약 드시고 지금은 주무셔.“
“알았어. 곧 도착할게.”
그러더니 손님이 길가에 차 좀 세워달라고 하였다.
손님은 차에서 내리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셔 넘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차 안에서 토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손님이 다시 차에 타자 이번엔 토한 음식 냄새가 차내에 풍겼다.
손님과 강시혁이 동시에 차창 문을 반쯤 열었다. 손님이 미안한지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하니 안와 볼 수가 있나.”
“아, 그래요? 아버님이 백석에 사시는군요.”
“그렇소. 나는 집이 서초동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위중하다고 해서 와이프가 먼저 와있는 중이요.”
“그럼, 또 서초동까지 가시는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부모님 댁에서 자고 갈 거요.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그렇군요.”
“저 앞에서 좌회전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손님의 부모가 산다는 집은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마당에 잔디가 있고 정원수도 몇 그루가 있는 집이었다.
부모는 전원주택에 살고 아들은 BMW 끌며 서초동엘 산다니 중산층인 것 같았다.
“이곳은 그냥 담 밑에 차를 주차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손님이 수고했다고 말하며 지갑 속에서 7만원을 꺼내주었다.
그런데 이곳은 한적한 곳이라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었다. 오지에 잘못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손님이 불렀다.
“저 앞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4차선 큰길이 나옵니다.”
“예, 감사합니다.”
“집이 어디세요?
“수유리입니다.”
“수유리? 강북이네요. 기사님, 미안하지만 명함 한 장 주시겠어요?”
“예? 명함은 없는데요? 대리 필요하시면 나중에 그냥 대리 회사에 연락하시면 됩니다.”
“이곳을 와 보셨으니 필요하면 부탁 좀 하려고요. 혹시 전화번호 하나 주시겠어요?”
그러면서 손님이 자기 명함을 주었다. 변호사였다.
잠시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손님이 다시 말했다.
“아버님이 강남 성모병원에 통원치료 다니시는데 급할 때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수유리는 멀지 않으니까요.”
“그건 콜택시 부르면 됩니다.”
“택시비도 많이 나오고 또 올 때 차가 잘 안 잡히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낮 시간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어차피 투잡 뛰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강시혁은 낮 시간에 다른 직업이 있었지만 너무 멀기도 하고 늦게 끝나 최근에 그만두었었다. 또, 신용불량이 되어 자기 통장으로 월급을 지급받는 정규직은 위험하기도 했다. 신용불량이 되어 채권자들이 통장을 압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는 대리 일도 많습니다. 낮 시간이라면 가능합니다.”
“제 명함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한번 해보시겠어요?”
강시혁이 손님의 명함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손님의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손님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강시혁은 큰길로 나가기 위해서 계속 걸었다.
그런데 이곳은 집이 듬성듬성 있는 곳이라 심야버스도 안 다닐 것 같은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계속 걸어도 큰길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것 같았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어 거리도 어두워 방향을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오지 탈출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폰에 카카오 내비를 켜고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를 살펴보았다. 녹양역보다는 양주역이 가까웠다.
역까지 가기만 하면 심야버스가 있으니 수유리 집까지 얼마든지 갈수가 있다. 그런데 역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2차선 포장 도로도 나오고 연립 주택들도 나왔지만 그 흔한 따르릉이나 전동 킥보드도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트럭이 있었다.
손을 번쩍 들었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클랙슨을 울리고 그냥 가버렸다.
“개새끼! 그렇게 클랙슨을 크게 울리면 어떡해!”
강시혁은 또 계속 걸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이제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