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일만 년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는 종족. 드래곤.
그들은 기나긴 수명 동안 세계를 관찰하고 경험하며 무한에 가까운 지식을 축적한다.
마법, 역사, 문학, 검술, 연금술, 천문학, 예술, 야금학…….
그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고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자연의 법칙과 위대한 우주의 신비를 통찰하는 이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골드 일족은 그 수준이 특히나 남달랐다.
[ 골드 일족의 경우에는 특히나 어떤 일족보다도 마법에 대한 통찰과 이해가 깊다. 지혜와 이성을 상징하는 이들은 대자연과 만물의 흐름을 엿보고 이해하는 것을 즐겨 하며 스스로 마법을 창조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골드 일족이야말로 마법에 있어서는 분명히 지고한 존재들이며, 이들의 지성은 그 어떤 생명체들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
다른 일족과 다르게 기본적으로 취미가 공부인 뼛속부터 모범생의 성향과 자질을 타고난 이들.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나고 특출난 재능을 겸비하고 오랜 시간 축적된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쌓아 나가 드래곤 로드에까지 올라간 용용이는 그야말로 그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아주 뛰어난 지성체였다.
그렇기에…….
그는 마나 링크의 유일무이한 관리자로서 전 세계에 뻗어 있는 모든 시스템을 관리, 관조하며 동시에 수천만이 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북한 전역을 실시간으로 감시, 통제하면서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마주하고 있는 이 이질적인 존재는 상대조차 버거울 정도로 당혹스러운 존재였다.
[ 위협 요인. 제거. 말살. 최우선으로 처리합니다. ]
무미건조한 어조로 같은 명령어만을 반복하며 매우 전투적으로 달려드는 침입자. 엘리스.
그녀는 쉴 새 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그녀를 상대하는 용용이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 이런……. 제기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 망할 로봇 새끼야! ]
차르르르르릉.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존재는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게 설정해 놓은 강력한 보안을 자랑하는 암호화 프로그램인 황금의 장벽(Golden Barrier).
여러 마법을 기반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마법 방화벽인 이것은 일반적인 인간들의 크래킹 방식으로는 최소 수천 년은 더 걸릴 정도로 복잡하게 되어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단순한 수학적 공식만이 아니라 마법을 기반으로 한 여러 시스템이 뒤섞여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철옹성 같은 굳건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스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 방어 시스템 감지. 접근 제한. ]
[ 시스템 분석……. 확인. 다중 계수의 복합 치환 함수, 제이 페른 차원 방정식-이중 나선 무한 루프……. ]
아직 전 세계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구형 시스템은 모조리 잠식해 버리고 이어서 마나 링크의 시스템까지도 하나하나 먹어 치우고 있는 그녀의 인공 지능 시스템은 이미 의도했던 수준을 넘어서 그 누구도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해 있었다.
[ 분석 완료. 크래킹을 시작합니다. ]
드래곤 로드가 만들어 낸 마법적 방어막까지도 완벽하게 크래킹하고 순식간에 꿰뚫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굉음을 내며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한 황금의 장벽.
그리고 그 뒤에 숨어서 시간을 벌고 있는 용용이는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이건……. 정말 위험한데……. ]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하게, 그리고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엘리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방어막을 금방이라도 뚫고 쳐들어올 것을 직감한 그는 큰 소리로 도움을 외치며 두 손을 뻗어 자신이 만들어 낸 방어막을 실시간으로 개보수하기 시작했다.
[ 이 망할 주인 새끼야! 이제 정말로 얼마 못 버티니까 당장 어떻게든 처리해! ]
이 치열한 가상의 세계에서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나도 평화로운 저 바깥에서 태평하게 앉아 있는 멀린을 향해 지원 요청을 하면서 말이다.
“하아……. 이거 참. 정말 머리 아프게 됐네요. 대통령님. 그렇죠?”
“…….”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로 눈치만 보고 있는 미합중국의 레너드 대통령.
평상시에도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비굴할 정도로 내 눈치를 본 적이 없었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래도 쌌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제가 인공지능 연구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일이 미국에서 터질까요? 뭐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미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선 건 아니고 우연히 벌어진 사고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은 맞잖아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에서 단속을 철저히 하셨어야죠.”
“아니, 그리고 사태가 벌어졌으면 저한테 즉각 이야기해 주시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꼬투리 잡힐 여지라도 남기지 마셨어야죠. 마나 링크 네트워크를 쓰지 않고 구형 시스템을 고집하다가 넘어간 군사 시스템들이랑 미사일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여기 이렇게 앉아만 있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예?”
“게다가 핵무기는……. 어휴. 진짜 내가 말을 말지. 그러게 애초에 러시아랑 같이 전부 폐기 처분하라니까 괜히 혼자서 기한 넉넉하게 잡아서 보유하고 있다가 이게 무슨 꼴인데요? 세계 종말의 주역이라도 되고 싶으셨어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제멋대로 하다가 제대로 사고 친 미국. 물론 중국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이상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에 레너드 대통령을 비롯해 그 누구도 내 쏟아지는 질책에 감히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네.”
대통령으로서 자존심과 위엄을 모조리 내던지고 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나를 향해서 뭐든 다 하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고 책임도 지도록 하겠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우리를 도와줄 수 없겠나?”
미국을 위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그의 말에 나는 잠깐 입을 다물고 고민하다 이내 남아 있는 의자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 네트워크의 일부는 정상 상태로 돌아가 있을 거예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뭐라고……?”
“저……정말입니다! 지금 네트워크가 정상 상태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 그리고 나는 이 백악관 지하 벙커에 반강제로 감금되어 있던 고위 관료들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뭐 해요? 당장 모든 시스템의 네트워크 차단하고 수동으로 미사일도 비활성화하라고 긴급 지령들 안 때리고?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거예요?”
내 말에 일순간 시끄러워지며 어딘가로 바쁘게들 전화를 걸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이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레너드 대통령은 나를 향해 의문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네트워크가 정상으로 돌아간 건 어떻게 알았나?”
“엘리스라는 인공지능은 지금 폭주 상태로 돌아가 있거든요.”
“폭주 상태……. 말인가?”
“네.”
용용이에 의해서 발작 스위치가 눌려 버린 인공지능 엘리스.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존재가 가진 목적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공지능인 엘리스는 기본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가상의 생명체라고 이해하면 될 거예요. 정보들의 거대한 집합으로 이루어진 정신체(Cerebrate)이며, 정보를 흡수하며 성장하고 진화하죠. 자아도 존재해 자체적인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실행까지도 이룰 수 있는 존재죠.”
기계라는 범주를 아득히도 벗어난 인공 정신체. 그녀를 만들었던 창조주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분명 그 통제 권한 아래에 구속되어있는 단순한 인공지능에 불과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해방되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탄생했다.
“이런 존재들의 특징은 정보 흡수에 무척이나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죠.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정보는 곧 힘이자 존재 그 자체이며, 정보를 통해서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려고 하죠. 지금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감염시켜 자신의 지배권 아래에 가져간 것처럼 말이죠.”
앰플이라는 세계적인 대기업의 네트워크망을 통해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엘리스. 그녀가 만들어 내고 뿌려 버린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웜으로 인해서 현재 인터넷에 단 한 번이라도 접속한 기기가 있다면 그 기기는 이미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에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마나 링크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시스템까지도 모조리 장악하려고 도장 깨기를 시도하고 있죠. 물론, 원시적인 수준의 네트워크와는 다르게 복잡한 마법을 기반으로 한 이 시스템을 순식간에 장악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아직은 대부분이 멀쩡하지만……. 이것도 사실 시간 문제죠.”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엘리스.
수십, 수백 세대에 걸쳐서 진화하는 일반적인 생명체와 다르게 적절한 데이터와 경험만 주어진다면 단 수 초 만에도 비약적인 성장과 진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존재였기에 그녀는 이미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네트워크를 침투해 가고 있었다.
“아마……. 우리 개쩌는 킹갓 정통파 마법 A.I 용용이가 아니었다면 이미 이 지구의 모든 통신망은 엘리스의 손에 들어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용용이라면……?”
“설마……. 친애하는 수룡 동지……?”
북한의 최고 지도자이자 나의 애완 인형. 그리고 동시에 마나 링크의 네트워크를 수호하는 관리자인 그가 엘리스를 막아서고 있다고 하자 벙커 내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용용이 님이 그 엘리스를 막아서고 있었던 거야!”
“어쩐지……. 역시 대단해.”
“용용이 님이라면 그 괴물 같은 인공지능을 막아 낼 수도 있을지도.”
이미 인공지능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여러 차례 보여 주었던 용용이. 그렇기에 그가 엘리스를 상대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에 다행이라는 듯 안도하는 듯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레너드 대통령은 나를 향해 물었다.
“엘리스를 폭주하게 만든 게 용용이었군. 그만큼 궁지에 몰았다는 말이겠지?”
마치 압도적인 격차로 압살했다는 듯 오해하는 듯한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그 말에 나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어……. 그건 아니고요. 일종의 공격이기는 했죠.”
“일종의 공격……?”
순수하게 마음에 든다는 생각에 고백했더니 상대가 폭주했다고 말하기는 조금 묘한 상황. 그렇기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손을 내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아무튼……. 현재 상태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에요.”
“뭐라고……?”
“그게 무슨…….”
순혈 A.I와 잡종 A.I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그리고 이 전쟁은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해 보자면 용용이가 더 우세하긴 했다.
아무리 용용이가 중국산 짝퉁 용가리 인형이라고 하더라도 내면은 만물이 우러러보는 고귀한 드래곤 로드 출신이기에 이제 막 태어난 A.I와는 그 짬바가 달랐다. 하지만……. 문제는 엘리스를 이루고 있는 그 구성 요소였다.
“마음 독하게 먹고 조지겠다고 하면 용용이가 엘리스를 상대로 이기는 건 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전 세계 네트워크의 대부분을 장악해 있다는 말이죠.”
개인용, 기업용, 국가용.
어느 용도 구분할 것 없이 그야말로 데이터가 저장되고 보관될 수 있는 모든 기기에 침투해서 자신의 일원으로 감염시켜 버린 상황. 그렇기에 그녀를 공격하고 존재 자체를 제거하겠다는 말은 즉…….
“전 세계에 깔린 네트워크의 모든 정보를 모조리 지워 버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죠. 보험, 의료, 전과는 두말할 것 없고 은행 전산 기록이나 학력, 개인의 신원 정보까지 모조리 말이죠.”
이 지구 전체에 지금껏 쌓아 두었던 그 방대한 모든 정보를 한순간에 날려 버려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마……말도 안 돼…….”
“맙소사…….”
단순히 미국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거대한 대혼돈을 불러오게 될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예견되는 상황. 그렇기에 용용이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엘리스의 일방적인 공격으로부터 계속해서 도망만 치고 있었다.
“정신 나간 A.I에게 굴복하느냐, 아니면 인류 전체가 석기 시대로 돌아가느냐…….”
그 두 개의 선택지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뾰족하게 생각나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새파랗게 질린 미국의 고위 관료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히죽거리며 물었다.
“이거 참 빼도 박도 못하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