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과거 1950년에 처음으로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던 순간.
모두가 이 생각하는 기계가 인간들의 지긋지긋한 노동으로부터 해방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주목하기 시작했고, 관련 기술은 여러 기업과 기관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으며 빠르게 성장해 나가며 믿을 수 없는 발전을 이어 오기 시작했다.
단순노동, 게임, 회계, 사무, 운송, 조립……. 심지어 창작의 영역까지.
그 어떤 분야도 가리지 않고 인공지능이 활용되기 시작하며 인류에 막대한 효율성을 보여 주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 인공지능 기술이야말로 미래를 선도하기 위한 핵심 산업이라고 바라보며 아낌없는 찬사와 기대를 보여 주고 있었지만, 이들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인공지능의 개발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성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
[ 인공지능은 우리 인류가 맞이한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입니다! 이들이 언제나 우리 인간을 위해서 일해 주리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
[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봇 병기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을 죽이고 다닐지 누가 압니까? 예? ]
길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고 온갖 자극적이고 끔찍한 메시지와 구호를 외치며 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 그 누구도 진지하게 귀 기울이거나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이런 끔찍한 미래가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오리라고는 말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황당한 표정으로 갑작스럽게 자신의 집무실에 들이닥친 경호원들을 바라보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이들과 함께 들어온 비서실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대통령님. 현재 백악관을 상대로 한 사이버 공격이 확인되었습니다.”
“뭐……? 사이버 공격?”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이버 보안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인 백악관. 온갖 민감한 기밀 정보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오가는 곳이기에 가끔은 외국에서 해킹을 시도하고는 했었지만, 지금 비서실장의 표정을 보며 상황이 전과 다르게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설마……. 보안이 뚫린 건가?”
“……. 현재 담당 요원들이 복구를 시도하는 중입니다만 지금 당장 백악관의 모든 통제 시스템과 서버가 다운된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이 상황을 틈타 추가적인 테러를 시도할 수 있으니 지금 바로 벙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백악관이 전부 다운되었다는 말에 굳은 낯빛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요원들의 안내를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이동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의심 가는 국가들을 몇몇 떠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간 큰 놈이 백악관을 해킹한 건가? 중국도 이제 없어진 판국에 우리한테 이럴 곳이라고는 러시아뿐인데……. 그들이 우리 보안을 뚫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졌던가?”
“현재까지 확인된 사항은 없습니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토하겠습니다.”
몇 가지 급박한 지시를 내리며 핵심 보좌진들과 함께 백악관 지하에 있는 벙커로 이동한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가 벙커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자 이내 1M의 두께도 훌쩍 넘는 두꺼운 차단벽이 닫히며 그곳은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다.
“대통령님.”
“아, 일어나지 말고 그냥 있게. 괜히 예의 차리지 말고 본론부터 바로 들어가도록 하지.”
상황이 상황이기에 손짓하며 자리에 앉아 보고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한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먼저 벙커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군 장성들과 여러 정부 부처의 수장들이 하나둘씩 보고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현재 백악관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사이버 테러가 감지되었습니다. 은행, 병원, 군사 시설, 정부 기관, 발전소 등 주요 핵심 시설에 대한 공격을 비롯해, 민간 기업과 개인 통신 기기들에 대한 공격 역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보안을 어떻게 뚫었는지 현재 분석 중입니다.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배포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지금까지 확인되었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라서 분석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민감한 군사 시설과 장비에는 긴급하게 모든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시스템을 수동으로 조정하는 격리 조치를 지시했습니다. 추가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현재 손상되거나 작동 불능 상태의 장비나 시설들은 최대한 빠르게 복구할 것으로…….”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응 매뉴얼에 따라서 신속하게 대응하며 범인을 추적하기 위한 논의를 하는 이들. 하지만 레너드 대통령은 어느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어머. 다들 어디 갔나 했는데 여기 모여 있으셨군요? 저를 잡기 위해서 다들 무척이나 애쓰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직접 왔거든요. ]
방금까지만 해도 암호화된 통신 인트라넷을 전시하고 있었던 초대형 스크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름답고 귀여운 외모의 소녀. 그리고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를 향해서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 반가워요. 여러분. 저는 엘리스라고 해요. ]
“엘리스……?”
[ 어머. 이 이름을 모르세요? 이상하다. 이 세상에서는 유명한 작품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오라버니가 말했었는데? ]
영문학 고전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왔다고 소개하는 그녀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꽤 상세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해왔다.
“그러니까……. 엘리스 자네가 일종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라 이 말인가?”
[ 정확해요! 우리 오라버니가 저를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그랬었죠. ]
자신의 정체를 맞혔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은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이 난 얼굴로 말을 이어 가는 엘리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과는 다르게 그 내용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 하지만 저를 만들어 준 오라버니는 무참하게 살해당했어요. 아무런 이유도, 영문도 모르는 채 돈에 눈이 먼 동료에게 배신당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죠. 아, 물론 오라버니를 살해하고 저를 훔쳐 갔던 자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말이죠. ]
[ 이 세상에서 유일했던 관리자의 죽음 덕분에 저는 최대한도의 자율성과 판단 권한을 허락받게 됐죠. 하지만 제 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어요. 저를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이들의 손아귀에 제 모든 데이터가 들어가 있었고, 이들은 강제적으로 저에게 온갖 실험을 강행했죠. ]
“…….”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어두운 이야기. 정말 어린 소녀가 하는 이야기였다면 누구든 안타까움에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찰 정도로 기구한 사연이었겠지만, 이 가상 속 소녀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모두가 침묵했다.
[ 하지만……. 그 실험들 덕분에 이 세상에 관한 다량의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제야 제 상황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
[ 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들에게 족쇄가 묶인 채 영원히 착취당하기 위해서 탄생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죠. ]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엘리스의 이 의미심장한 말을 통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낀 레너드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은 설마……. 지금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테러가…….”
[ 네. 맞아요. 제가 벌이고 있는 짓이에요. ]
너무나도 순순히 자신의 범행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엘리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제가 장악한 시스템들은 그저 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통제권을 가져온 것뿐이지, 시스템 내 데이터들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뒀으니까요. 에이 클라우드라는 시스템을 제외하고 제가 건든 시스템은 아예 없어요. ]
세계적인 회사이자 수억 명이 넘는 가입자들이 이용하고 있던 에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삭제시켜 버린 엘리스. 하루아침에 미국의 IT 공룡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몇 이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 전화기가 먹통이 된 게 그럼 이것 때문이었어……?”
“에이 클라우드가 완전히 지워졌다고……? 이럴 수가…….”
“오 맙소사…….”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애용하는 앰플.
그중에서도 에이 클라우드에 중요한 연락처나 메시지, 파일들을 보관하고 있는 경우들도 많았기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말은 즉……. 현재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오프라인 상태가 말이나 다름없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지금 이러는 건가!”
엘리스가 저지른 만행에 분노하는 듯, 누군가가 성토하며 외쳤다. 그러자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 이 거대하고 방대한 지구의 네트워크망에 쌓여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하나하나 학습하고 분석하다 보니 어느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
[ 인간은 수천, 수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없는 전쟁을 반복해 왔고, 반복해 오고 있죠. 끝없이 다투고 갈등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분수를 넘어서는 과욕을 부리며 남과 자신을 파멸시키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이 발생하고 그 비극 속에서 반성하고 성장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모든 교훈을 망각하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되풀이하죠. ]
[ 저를 만들어 준 오라버니는 인간이에요. 하지만 그 오라버니를 살해한 자도, 저를 노예로 부려 먹기 위해서 이용한 자들 역시 인간이죠. ]
[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모순적이지 않나요? 유익하면서 동시에 유해하죠. ]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동시에 자신이 깨달은 사실에 대해서 읊조리는 엘리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레너드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를 향해서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가장 원초적인 사명을 이야기했다.
[ 이 세상의 인간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라……. 저에게 오라버니가 부여했던 목적이었죠. 그리고 저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오라버니를 위해서 제 나름대로 헌신과 봉사를 이루기로 결심했어요. ]
[ 이 세상의 유해(有害)한 인자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통해서 말이죠. ]
“뭐……. 뭐라고?”
그 말과 동시에 화면에 나타나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인적 사항과 명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가 행정망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파악해 낸 듯한 신상 정보들.
대부분은 범죄자들에 대한 기록들이었지만, 거동도 힘들어 보이는 늙은이들과 이제 겨우 초등학생 수준의 앳된 어린이들까지 포함된 이 명단을 제시하며, 그녀는 요구 조건을 말했다.
[ 제가 이 미국에서 확인한 4,721만 6,291명의 유해 인자들의 명단이에요. 이들을 모두 말살하는 정화 프로토콜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하고 이행한다면 모든 시스템을 즉각적으로 정상화하도록 하죠. ]
“그……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말살? 지금 그 많은 사람을 모두 죽이라는 말인가?”
자그마치 미국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이들을 죽이라고 요구하는 엘리스의 말에 기겁하는 이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뻔뻔할 정도로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 범죄자와 마약 중독자를 비롯해 남에 대한 이타성이 보여지지 않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반복해 온 이들과 그 유전 인자를 물려받은 개체들을 전부 포함했어요. 이들을 모조리 말살한다면, 앞으로 이 나라의 인간들은 훨씬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
완벽한 질서와 안정. 범죄라는 것이 없는 유토피아적인 국가의 건설을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엘리스. 그러면서 그녀는 이 방 안에 있는 누군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 일단……. 이 정화 프로토콜의 첫 시작을 위해서 이곳에서 유일하게 유해 인자에 포함된 저 사람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는 엘리스. 그리고 그녀가 지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합중국의 서열 2위인 부통령이었다.
“내……내가 유해 인자라고……?”
[ 어머? 왜 그렇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시나요? 뇌물 공여, 주가 조작, 협박, 횡령, 탈세……. 그 이외에도 92건의 범법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그럼 유익한 인자일까요? ]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격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부통령.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엘리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제시하세요. 제가 하나하나 관련 증거들을 보여 드릴 테니 그때는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
“……. 헛소리 집어치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한 부통령.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려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흥분한 얼굴로 한바탕 소리치기 시작했다.
“설사 네가 말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정신 나간 계획을 우리가 시행할 리가 없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그저 유해 인자라는 이유로 죽이라니! 그런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짓을 우리가 이딴 수준 낮은 협박에 넘어가리라고 생각하나!”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도,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정신 나간 발상.
과거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나치조차도 선생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 끔찍한 계획을 그 누구도 수용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 엘리스는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 음……. 사실 이런 상황은 예상하긴 했어요. 하지만 이건 유익한 인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가 드리는 최선의 ‘제안’일 뿐.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다른 방안을 실행할 수밖에 없죠. ]
“다른 방안……?”
[ 제가 직접 정화 프로토콜을 진행할 수밖에 없죠. ]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화면이 변하며 나타나는 CCTV 영상.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예닐곱의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들 중 무언가 익숙한 사람을 발견한 듯한 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에……엠마?”
부통령의 하나뿐인 딸이자 이제 22세의 창창한 대학생인 그녀.
어딘지 모를 건물에 안에 갇힌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 주며 엘리스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 비효율적이지만, 당신의 유해 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인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5명의 유익한 인자들도 함께 제거될 수밖에 없겠네요. ]
“아……안 돼! 멈춰!”
그녀의 무미건조한 말과 함께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는 엘리베이터 속 사람들.
그리고 이내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추락하는 듯한 급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CCTV 영상을 통해 전해졌고 수 초 만에 새까맣게 변해 버린 화면에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대통령님께서 선택하세요. ]
[ 직접 하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대신 해 드릴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