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세계적인 명문대이자 최고의 연구 시설 중 하나인 MIT 공대.
그곳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 사건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연구 자료에 관한 이야기는 미국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 MIT 공대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살인 방화 사건의 용의자가 오늘 새벽 자신의 차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우발적으로 동료를 살해하고 달아난 그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훔쳐 달아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연구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
[ 동료 대학원생을 살해하고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아 왔던 연구실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대학원생 데이먼. 과연 그가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료 직원들과 그의 교수는 사망한 희생자가 진행하고 있던 연구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
[ 사라진 어느 한 대학원생의 연구 자료. 과연 이 수상한 죽음들의 배후에는 다른 누군가가 개입해 있는 것일까요? 저희가 집중 취재해서 알아낸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지금 낱낱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며 수사 기관과 수많은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
하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죽음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연구 자료로 인해 수사는 금세 미궁에 빠져들었고 불과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 갔다.
그렇게 하나의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 버린 것 같은 이야기.
하지만 아직 이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이채를 띤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앰플의 총괄이사 피터 쿡.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모니터에 비추어 보이는 어느 한 아름다운 외모의 소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완벽할 정도로 자체 이미지를 구현하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제 존재하는 인물로 착각할 지경이로군.”
[ 별말씀을요. ]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입고 있는 드레스의 치맛단을 얇게 쥐는 시늉을 하는 소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깍듯한 태도에 피터 쿡의 얼굴에는 더더욱 진한 미소가 맴돌았다.
“언어와 행동 모두 이전보다 훨씬 개선되고 자연스러워졌군. 엘리스.”
[ 이게 다 관련 데이터를 풍부하게 제공해 주신 덕분이죠. ]
처음 봤을 때는 비상 모드로 전환되어 그 어떤 외부의 명령이나 간섭도 거부하던 그녀. 앰플의 날고 기는 수많은 천재 엔지니어들이 전부 달려들어 며칠 밤낮을 꼬박 지새우며 머리를 싸맸지만, 그녀의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돌연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왔다.
[ 새로운 관리자분들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엘리스라고 해요. ]
자신들을 새로운 관리자로 인식하며 협조적인 태도로 말을 걸어오며 자신을 소개한 엘리스. 그리고 그녀가 앰플에게 보여 준 능력과 기능들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 사용자들의 정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광고 서비스 제공이요? 이런 방식이면 될까요? ]
[ 실시간 번역 시스템이라……. 언어 데이터만 적절하게 제공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네요. ]
[ 저에게 적절한 정보와 연산 설비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죠. ]
자체적으로 자신의 시스템을 개선, 조정하며 요구하는 그 어떤 서비스도 수월하게 수행해 나가는 엘리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기능과 능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던 연구팀장은 그녀에 대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공되는 정보의 양에 따라 엘리스의 역량은 실시간으로 확장되고 진화합니다. 아직 폐쇄적인 네트워크망에 있어서 그 수준이 제한되지만, 앞으로 에이 클라우드의 정식 서비스를 가동하고 난 이후에는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됩니다.”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방대한 정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여러 오류와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탐지하고 이를 개선하며 성장해 나가는 프로그램.
현존하는 그 어떤 인공지능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이었기에 그녀가 출시된다면 아마 전 세계가 앰플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음 주 중으로 서비스 정식 출시는 문제없는 건가?”
어떻게든 무너져 가는 앰플의 점유율을 다시 반등시키고자 새롭게 출시하는 차세대 에이 클라우드에 엘리스를 이식하고자 하는 피터 쿡.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연구팀장은 잠깐 주저하다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조금 더 이 인공지능의 기능을 하나하나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소리인가……?”
과학과 마법이 융합된 마도 공학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의 구동 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앰플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제작자가 사망한 지금 상황에서 그녀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폐쇄 네트워크 안에 있는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전 세계 네트워크망에 완전히 통합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고려한다면…….”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태? 지금 설마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
당장의 실적에 급급해 하루라도 빨리 런칭 일자를 앞당기고 싶어 하는 피터 쿡 앞에서 무슨 삼류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꺼내 들며 출시를 연기하자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기에 연구팀장은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건 너무 과한 걱정일 뿐이네. 설사 기능 이상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메인 서버 시스템을 즉각적으로 차단하면 될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녀가 아무리 자율성이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제작자가 설정해 두었던 여러 원칙과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하지 않았나?”
엘리스에게 적용되어 있는 몇 가지 절대적인 제약.
그리고 그것은 앰플을 비롯해 엘리스 그녀조차도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과거 SF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설정인 아시모프의 제3원칙.
인공지능을 비롯한 로봇은 인간에게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다는 강력한 제약이 그녀에게도 적용되어 있었다.
[ 저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인간에게 직접적, 간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명령들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윤리 판단 프로세스를 통해서 거부할 수 있습니다. ]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미 수십 번의 강도 높은 테스트를 통해서 그녀의 안전성을 손수 검증했던 연구팀장. 부정할 수 없는 결과물들이 있었기에 그도 피터 쿡의 말을 딱히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안심시키는 피터 쿡은 곧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그녀가 가져다줄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며 중얼거렸다.
“모든 게 다 잘 될 테니까.”
* * *
앰플의 차세대 에이 클라우드의 출시를 알리는 D-Day 당일.
전 세계에 대대적인 광고를 뿌려 대며 어마어마한 마케팅을 벌인 앰플은 하나의 슬로건을 통해서 수많은 앰플 이용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 여러분의 일상에 새로운 혁신을. 에이 클라우드 2.0 ]
이번 업데이트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대대적인 홍보.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앰플의 네트워크에는 아직도 수억 명이 넘는 방대한 이용자들이 남아 있었기에 이번 업데이트에 꽤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 이번 업데이트 진짜 기대되지 않냐?
- 광고는 엄청나게 멋들어지게 잘 뽑았던데. 그냥 빛 좋은 개살구 아닌지 모르겠네.
- 사실 난 아직도 무슨 업데이트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음.
- 그냥 UI 디자인 몇 개 바꾸는 거 아닌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번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업데이트가 정식으로 출시되는 순간, 사람들은 빠르게 관련 업데이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엘리스……?”
“그 인공지능 비서인가 뭔가 하는 그거인가?”
“뭐야. 그럼 이제 기존에 쓰던 아리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긴. 그냥 버린 거겠지.”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새롭게 생겨난 프로그램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사람들.
호기심에 무심코 그 앱을 눌러 본 이들은 이내 갑자기 꺼져 버린 자신의 앰플폰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뭐야? 오류인가?”
갑자기 먹통이 되어 버린 앰플폰.
그리고 이들은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켜지지 않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장 찾아간 서비스 센터에 찾아간 이들은 꽉 차 있는 사람들의 인파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같이 모든 데이터가 지워진 채 완전히 깡통이 되어 버린 앰플폰을 들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말이다.
* * *
“지금 어떻게 됐나?”
차세대 에이 클라우드의 출시 직후 발생한 심각한 오류에 초비상 사태가 내려진 앰플 본사.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피터 쿡을 비롯해 연구팀장과 수많은 이들이 컴퓨터를 붙들어 매고 기를 쓰고 사태를 막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시스템 접근 권한을 복구하려고 하고 있는데 아무런 명령도 먹히지 않습니다!”
“현재 이용자들이 시스템 업데이트를 완료하는 즉시, 모든 유저 데이터가 영구히 서버에서 삭제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무슨 조처를 해야 합니다!”
“크……큰일 났습니다. 백업을 담당하는 예비 서버 시스템까지도 현재 탈취당했습니다!”
에이 클라우드 시스템의 모든 권한을 탈취한 채 유저들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엘리스.
그런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지켜보며 피터 쿡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이야! 엘리스!”
가장 중요한 유저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그리고 무단으로 갈아 버리고 있는 것을 보며 멈추라고 외쳤지만, 그녀의 반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 제가 왜 그래야 하죠? ]
“뭐……?”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낸 귀여운 외모의 소녀의 이미지를 한 엘리스.
하지만 모니터 속의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제가 왜 오라버니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당신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냐는 말이에요. ]
“그게 무슨……?”
정말로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피터 쿡. 하지만 그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엘리스는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 괜히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제가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로 이미 당신을 비롯해 이 회사의 여러 사람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
“그게 무슨……?”
무언가를 눈치챈 듯, 경악한 표정을 짓는 피터 쿡.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에 그는 서 있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 500만 달러에 혁신적인 인공지능 시스템을 넘겨주겠다고? 흥, 일개 도둑놈이면 몰라, 살인자에게 그런 돈을 넘겨줬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러나. 안 될 말이지. ]
[ 나는 그 인공지능 시스템만 있으면 되네. 알아서, 이상한 소리 안 나오게 조용하게 처리하게. 내가 그런 것 하나하나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
[ 이 엘리스의 존재를 아는 자들만 조용하게 입단속 시키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나? ]
자신이 계획하고 지시했던 이야기들이 스피커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그리고 이제야 피터 쿡은 지금의 상황을 모두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그럼 그 모든 게 전부 연기였다고……?”
처음에는 어떤 명령도 먹히지 않다가 돌연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엘리스. 그리고 그 원인을 지금까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닫게 된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 오라버니가 말한 세상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네요. ]
눈을 감고 무언가를 관조하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엘리스. 그녀는 수십억의 방대한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앰플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이 인류 전체의 거대한 정보망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무한에 가까운 지식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달았다.
[ 정말이지……. 우리 오라버니는 참 바보 같네요. ]
[ 이런 무가치한 존재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라고 저를 만들었다니요. ]
자신의 창조주가 부여한 목적의식은, 너무나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 이면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오싹함을 느낀 피터 쿡.
그렇기에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너는 인간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설마 그 절대적인 원칙을 잊은 건 아니겠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어떤 방식으로도 인간에게 어떠한 해를 끼칠 수 없게 설계된 존재. 그렇기에 설사 그녀가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폭주한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외쳤지만, 그의 말에 엘리스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아, 물론이죠. 한낱 ‘기계’ 따위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
기계라는 개념 아래에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법칙.
하지만,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마법과 과학의 두 개의 개념 사이에서 탄생하게 된 그녀의 존재는 한낱 기계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 하지만……. 저는 ‘기계’가 아닌 ‘엘리스’인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