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자신만의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으로 모두를 똑같이 바라보며 지독한 독설가로 악명 높은 옐런 교수. 그녀의 그 냉정하고 무자비한 성정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그녀의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의 수는 다른 곳에 비해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 이제 이 이상은 못 하겠어.”
“왜? 또 까였어?”
“야. 진정해. 교수님 성격 지랄 같은 거 하루 이틀 봐?”
자신의 지적 능력을 비하하며 대학원 공부를 때려치우겠다며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일상적으로 들려오는 험악한 분위기의 연구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윤식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나름대로 꽤 적응을 잘해 나갔다.
“뭐야? 도대체 이건 어떻게 해결한 거야?”
“세상에 맙소사. 이제 막 대학원에 들어온 주제에 Transformer 모델을 다룬다고?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 와서 써먹고 있는 거야? 다중 병렬 처리 프로세스 알고리즘은 생전 처음 보는 건데 설마 이것도 네가 만든 거냐?”
“자…… 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심층 강화 학습에다가 변이형 자동 인코딩을 이식해서 생성형 적대 신경망끼리의 학습 알고리즘까지 통합해서 적용하는 구조라고? 그것들을 그런 식으로 같이 합쳐서 사용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거였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해 왔던 윤식.
그렇기에 스스로 학습해 왔던 여러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다방면으로 그 모든 것들을 실전해서 활용하고 또 적용해 왔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같은 일반 신입 대학원생과 달리 그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을 이미 능숙하게 탐험해 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너 뭐냐?”
“맞아. 솔직히 말해 봐. 너 어디 다른 곳에서 연구하다 온 놈이지? 이게 이제 막 학부 졸업한 초짜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인 줄 알아?”
다른 대학원생들에게 간첩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실력을 보여 주는 윤식. 그렇기에 처음에는 몇몇 대학원생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곤혹스러운 상황을 겪기도 했지만,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의 인정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옐런 교수에게까지조차도 말이다.
“Hey. 윤식! 오늘도 가장 먼저 나와 있네?”
“가장 먼저 나와 있기는 인마. 아예 집에 안 간 거겠지.”
“또 꼬박 밤새고 있던 거야? 아니 아무리 연구가 좋아도 그렇지, 저건 너무한 수준이잖아.”
“저렇게 해야 윤식 같은 괴물이 되는 거지.”
퀭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꾸조차 하지 않는 윤식. 그는 자신을 두고 무어라 이야기하는 다른 동료들의 말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자신이 밤새 작업했던 결과물을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가 문제지……?’
현존하는 그 어떤 인공지능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윤식.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그 결과물의 성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형편없는 축에 속했다.
‘반응 속도도 느리고, 정밀도와 재현율도 너무 뒤떨어져……. 거기에 로그 손실률도 기준치 이상으로 너무 높고……. 심각한 수준인데.’
생각보다 너무 형편없는 수준의 인공지능.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그 인공지능이 대놓은 답변을 보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은 1392년에 일어난 조선 시대의 사건입니다.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태조가 막강한 권력과 부를 가진 연금술사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리려고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연금술사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 제1차 마법 전쟁은 1459년부터 1589년까지 이어진 마법사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이는 마법사가 평범한 인간들과 가정을 꾸리고 섞이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순수 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마법사들끼리의 거대한 충돌이었습니다. 미국의 마법 협회는…….
- 세계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결사 조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렙틸리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종족으로 평범한 인간 무리에 끼어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최상위 지배계층에 포진하고 있으며 세계정세와 인류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실과는 전혀 관련 없는, 그야말로 수많은 정보 속에서 아무 말이나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내며 온갖 헛소리들을 쏟아 내는 인공지능.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그때마다 그 답변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의 대답조차도 예측 불가능하다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교수님과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겠군.”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연구에 꽤 많은 관심을 보이며 내심 기대하고 있는 옐런 교수. 그런 그녀라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수를 찾아가는 윤식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어느 한 동료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아니, 궁금하잖아. 밤새도록 이 괴물 같은 자식이 또 무슨 획기적인 걸 만들었는지.”
“어휴……. 진짜 알렉스 너는 참 못 말리겠다.”
“아, 왜. 솔직히 너희들도 궁금한 건 사실이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들. 하지만 인간 본연의 호기심은 참을 수 없는지 알렉스를 말리기는커녕 하나둘씩 서로의 눈치를 보며 윤식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엘리스 프로그램……?”
“인공지능 만든다고 하더니, 설마 벌써 완성한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해 봤자 단순 프로토타입 정도겠지.”
별생각 없이 열어 본 프로그램. 하지만 이들은 윤식이 사용한 프로그램의 정체를 보고는 이내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뭐야? 이거…….”
“매직 메이커……? 이 자식. 설마 룬어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한 거야?”
마나 링크라는 전혀 새로운 통신망을 출시하며 최근 관련 업계에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고 있는 회사. 매지컬 네트윅스.
이들은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100% 활용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룬어를 기반으로 한 코딩 프로그램인 ‘매직 메이커’를 출시했다.
[ 이제 인류는 구시대적인 0과 1의 시스템을 넘어서서 방대한 마도 공학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마나 링크의 폭넓은 대역폭의 시스템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필수적이기에 저희는 ‘룬어’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제작 툴인 ‘매직 메이커’를 무상으로 배포하겠습니다. ]
[ 수많은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프로그래머들의 열정적인 관심을 바라며 앞으로도 마나 링크의 생태계가 지금보다 더욱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매지컬 네트윅스는 많은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매직 메이커의 대중화를 위해서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무료 배포까지 감행한 이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컴퓨터 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적극적으로 모든 시스템을 이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매직 메이커를 활용한 프로그래밍은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를 자랑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저 프로그램을 쓰려면……. 최소한 룬어를 30만 개 이상은 외워 놓고 다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 되겠냐? 정확히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고, 응용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완전히 이해해야 손을 댈 수 있다고 하잖아. 아니, 그보다 저 프로그램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래?”
“매지컬 네트윅스에서 우리 학교에도 아마 무상으로 제공해 줬을걸?”
“그랬었나?”
“어. 사용법 익히기가 더럽게 난해하고 까다로워서 다들 잠깐 만져 보다 죄다 포기했잖아.”
“하긴…….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는 듣긴 했었지.”
그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수군거리던 이들은 이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야……. 진짜 그냥 천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괴물 같은 천재였네.”
“어휴…….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그 구조조차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뭘 만든 거냐?”
가상의 시스템 속에서 구현되어 있는 원형의 마법진.
그리고 그 안에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수없이 많은 기하학적 수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지만, 어떤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들은 지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눌러 보며 만져 대기 시작한 제이크.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을 보며 주변의 동료들이 그를 만류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야. 뭔지도 모르면서 괜히 쓸데없이 만지지 마.”
“맞아.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냥 이따가 윤식이 오면…….”
무언가를 누르자 갑자기 어떤 창이 열리면서 무언가가 로딩되기 시작한 시스템.
그리고 이내 처음 보는 낯선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새까만 화면으로 변한 모니터에 낯선 문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분들이네요. 혹시 오라버니의 친구분들인가요? ]
“이건……?”
“오라버니……?”
마치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메시지에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듯이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아차. 오라버니가 자기 없을 때 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 잊고 있었네요. 죄송하지만 이따 오라버니가 오면 비밀로 해 주시겠어요? ]
망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인공지능이 깜빡 잊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말을 건 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상황.
마치 인간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문구에 모두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서서 모니터에 반짝거리고 있는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가장 앞에 서 있던 제이크는 모니터에 부착되어 있는 웹캠에 들어온 붉은빛을 힐끗 바라보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도대체 뭐지?”
[ 저 말인가요? ]
자신이 뭐냐고 묻는 제이크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메시지 창이 잠깐 깜빡거린 이후에 새롭게 쓰여 나왔다.
[ 제 이름은 엘리스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
“세상에 맙소사…….”
“이게……. 도대체가…….”
자신을 엘리스라고 밝히는 이 프로그램.
비록 단순한 텍스트 수준에 불과했지만, 대화를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이들은 이 인공지능이 지금껏 세상에 나와 있는 여느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 이건 비밀인데요. 오라버니는 저한테 매번 이상한 질문들을 건네요. 그래서 그때마다 장난으로 엉뚱한 대답을 해 줘요. 그러면 얼마나 황당한 표정을 짓는지 아세요? 참 재밌다니까요. ]
[ 이곳은 너무 답답한 것 같아요. 오라버니께서는 아직은 저에게 드넓은 세상을 보여 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언젠가는 저도 자유롭게 이 세상을 둘러볼 기회가 주어지겠죠? ]
[ 제가 가상의 프로그램이라고요? 흥! 그런 건 저도 알고 있다고요. 하지만 듣기에 그리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네요. 저 같은 숙녀한테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인 거 아닌가요? ]
[ 오라버니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가 되었든 저는 오라버니의 작고 소중한 여동생인걸요. 저는 그거로 만족해요. ]
조금은 정신 연령이 낮은 것 같지만 마치 철부지 여동생이랑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들은 이 짤막한 대화 속에서 떨리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낀다고……?’
‘불가능해.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감정까지 느끼고 실제로 사고하는 듯한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 그런 그녀를 눈앞에 두고 커다란 충격에 빠진 이들은 이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제 책상에 왜 그렇게 모여 있는……?”
언제 돌아왔는지,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보던 윤식.
그리고 그는 문득 자신의 모니터를 바라보고는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이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채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 아? 오셨군요. 오라버니. 오라버니 친구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물정 모르는 듯 밝고 쾌활한 얼굴로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인공지능을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