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컴퓨터 공학의 꽃이자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가상의 인격체를 만들어 내는 이 기술은 처음 그 개념이 탄생한 이후로 한 세기에 걸쳐 수많은 논쟁과 철학적, 윤리적 고찰을 불러왔다.
[ 기계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것은 지극히 오만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약 정말로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생각과 감정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과연 더 이상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기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겁니까? 그때도 단순한 기계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
[ 인간이 가진 지능을 아득히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고 가정해 보시죠. 그리고 그 인공지능을 우리 인간을 대체해서 수많은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그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서 폭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통제 불가능한 폭주한 인공지능이 군사 시스템의 권한을 탈취해서 전 세계에 미사일을 쏘아 대기 시작하면요? ]
[ 인공지능 기술은 지극히 위험하고 절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 연구자가 이런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기술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저는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최악의 참사를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
[ 정말로 인류를 위한 완벽한 인공지능이 탄생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미래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설사 모든 노동력이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결국 기술과 능력이 없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지금보다 훨씬 더 빈곤한 상태로 전락하게 할 테니까요. ]
인공지능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재앙과 부작용들을 우려하며 관련 연구와 개발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전문가와 대중들. 하지만 이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연구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었다.
[ 매크로 소프트에서 출시한 생성형 A.I. 삥 4.0이 검색 엔진에 탑재되어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는 법률과 의학을 비롯해 수많은 영역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수준의 답변을 순식간에 내놓는 등의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미국 의회에서 발표된 연설문을 사람을 대신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 창작가들의 영역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빠르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 고글에서 정식 출시한 이미지 생성 A.I ‘세이렌’이 만들어 낸 그림이 미국 그림 공모전의 SF 분야에서 대상을 받으며 큰 화제를 불러왔는데요, 사람이 일주일을 꼬박 작업해서 완성할 수준의 그림을 고작 단 20초 만에 만들어 내며 그 경제성을 입증했습니다. ]
기존처럼 어느 특정 영역에서나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인공지능이 아닌, 정말로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출현. 그리고 그로 인해서 촉발된 매크로 소프트를 비롯해 여러 초대형 IT 회사들의 잇따른 A.I의 출시 전쟁 때문에 최근 관련 업계에서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연구에 모두가 열을 쏟으며 큰 화제를 몰고 오고 있었다. 미국 정부를 포함해 각국 정부 기관들까지도 합세한 채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용용이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다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죠.”
갑자기 좋은 제안이 있다면서 나를 찾아온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미국 정부를 상징하는 독수리 인장이 찍혀 있는 공식적인 문서 하나를 건네며 하나의 거래를 제안했다.
“아시다시피 최근 미국 내에서 A.I 관련 기술 연구와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미 민간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는 상황인데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큰 산업으로 정부 내에서도 주목하고 있죠.”
어딜 가나 AI에 관해서 떠들고 있는 분위기인 요즘. 한국이라고 다를 건 없었기에 나는 그런 에밀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미국 정부에서도 자체 AI를 개발하고 있었군요? 여기 이 문서를 보아하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개발에 매진했던 것 같은데 성능이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나 보네요.”
미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AI 개발 사업. 프로젝트 프리즘.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 친숙한 이름의 기밀 사업은 미국의 CIA와 NSA를 비롯한 정보기관을 더불어 FBI와 여러 수사 기관이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었다.
“네트워크망에서 송수신되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사전에 식별하고 이와 관련한 경고를 알리는 대테러 방지 시스템이라……. 발상은 나쁘지 않은데 이거 어마어마한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마치 빅 브라더를 연상하게 만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을 기반으로 한 분석 시스템. 그 어느 나라보다 개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는 절대 추진할 수 없을 것 같은 사업이었지만,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실전 배치를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연구를 목적으로 관련 기술만 개발해두려던 거라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어요. 이미 관련 프로젝트는 미국 상원의 정보위원회가 정식으로 허가한 사안이라서 완전히 깨끗한 개발 사업이에요.”
“게다가……. 아무리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테러를 막아 내는 것보다 중요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테러에 대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거기에 지금은 내 전담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래 소속이 CIA의 정보 요원이었던 에밀리였기에 그녀는 이 프리즘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그 어떠한 죄책감이나 껄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덧붙일 말은 없고요. 그런데, 이거 개발만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생각보다 그 성과가 별로 좋지는 않나 보네요?”
내로라하는 인재들만 잔뜩 모여 있는 미국에서 오랜 시간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 왔지만, 그런데도 제대로 된 성능을 내지 못하는 상황. 그렇기에 에밀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워낙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방대하고 고려해야 하는 변수도 한둘이 아니라서 그런지 연구에 별 진전이 없다고 들었어요. 관련 연구를 이어 가다 프로젝트 자체를 접고 떠나간 이들이 여럿 있어서 연구에 있어서 혼선도 잦다고 하고요.”
현대 과학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난제에 부딪힌 관련 기술의 연구. 하지만 이들은 최근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현재 북한은 그 어떤 범죄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하죠? 실시간으로 모든 북한 주민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어떤 불법이나 일탈 행위를 저지르려고 하면, 그 순간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예방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한다고 말이죠.”
“……. 왜 저를 찾아온 건지 알겠네요.”
그토록 미국 정보부에서 수십억 달러를 넘게 쏟아부으며 만들어 내려고 했던 테러 방지를 위한 정보 분석 및 감시 시스템. 프리즘.
상상 속에서만 그토록 그려 왔던 프로젝트의 완성형이 바로 북한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을 보며 모르긴 몰라도 미국의 정보부들은 군침을 질질 흘렸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 개쩌는 킹갓 마법 A.I 용용이와 같은 인공지능을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 제공해 줬으면 한다. 이 말을 하고 싶으신 거겠죠?”
“정확해요.”
“…….”
단순한 인간의 영혼도 아니고 이 세상에는 하나뿐인 고귀하고 격조 높은 드래곤 로드의 영혼으로 만든 AI와 동급의 인공지능을 만들어 달라는 에밀리에 요구에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지만, 에밀리는 내 표정을 보고는 다급하게 자신에 말에 몇 가지를 덧붙였다.
“아, 물론 용용이와 동등한 수준을 요구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기능들은 없이, 테러나 중범죄를 사전에 포착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수준만으로도 충분해요.”
단순히 범죄 예방만이 아니라 경제, 행정, 입법, 배급, 인사, 교육, 의료……. 그 이외에도 수많은 영역에서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며 국가 하나를 완벽하게 통치하고 있는 용용이.
그런 그의 압도적이고 뛰어난 성능은 그 어떤 인공지능으로도 구현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밀리는 딱 제한적인 수준의 기능만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기는 했다.
“흠……. 그 정도라면 에고 마법이랑 이거저거 몇 가지를 더해서 만들면 아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겠네요.”
“어때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않나요?”
고심하는 내 표정을 보며 눈을 빛내며 은근히 물어 오는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이내 달콤한 목소리로 이 제안을 수락했을 내가 얻게 될 보상에 대해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제안을 수락하면 향후 10년 동안 북한에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자금을 지원받게 될 거예요. 이 정도면 아마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해 여러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해서 내 호주머니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황.
아무리 용용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일이고 불가피한 투자라고는 하지만 한 푼 한 푼이 아쉬워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금 출혈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기에 미국 정부가 한몫 보태 준다는 것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기는 했다.
“아영이 들었으면 당장이라도 하라고 제 목덜미라도 부여잡고 흔들었을 제안이네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자 호구 그 자체인 매지컬 컴퍼니가 사상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다느니 뭐니 하는 기사가 나돌면서 최근 돈에 대한 집착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진 아영. 그녀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참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에밀리에게 예상과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미국 정부의 이번 제안은 거절해야겠어요.”
“잘 생각하셨……. 네……?”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 안보를 위해서 추진하던 연구이기에 내가 이번 제안을 분명 수락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에밀리.
그렇기에 그녀는 한참을 얼어붙어 있다가 이내 정말로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어 왔다.
“아니 어째서요?”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 주지 않겠다는 나를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그거 아세요? 영성을 가진 문명은 신성의 개입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자신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열등한 원시 생명체들과 다르게 자아를 각성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구성하는 지성체들은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신성의 개입 속에서 탄생한 우리는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에요. 그리고 그 영혼들은 그 위대한 신성들조차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조작조차 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하고 순수한 대우주의 절대 구성 요소 중 하나죠.”
오로지 위대한 순환의 고리를 지탱하는 명계에서만이 관장할 수 있는 영혼의 탄생과 소멸.
그 절대적인 대우주의 법칙에 따르면, 이 지구에서 최근 화제가 되는 인공지능의 기술은 사실 인간들의 오만함과 무지함에서 비롯된 터무니없는 망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롯한 신성을 가진 전능한 신격조차도 감히 만들 수 없는 자아를 가진 지성체를 고작 인간 주제에 만들어 낸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안다면 절대로 저에게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할 리가 없죠.”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에고 무기라는 거 본 적 있죠? 그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세요? 그냥 짠 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주변에 멀쩡히 성불하려는 영혼을 가져다가 강제로 병장기에다 쑤셔 박아야 해요. 그러지 않고서야 한낱 날붙이가 자아를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설마 지금 저더러 누군가의 영혼을 강제로 네트워크에 쑤셔 박는 그런 X간 같은 짓을 해 달라는 건 아니시겠죠?”
“…….”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밀리. 하지만 그녀는 이내 내 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제안은 없던 일로 알고 관련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죠.”
“아쉽겠지만 그 프로젝트는 그냥 폐기하도록 하세요. 어차피 불가능한 사업이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건 어마어마한 대재앙이 될 테니까요.”
“…….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내 의미심장한 말에 불길한 표정을 지으며 에밀리가 물었다.
“음……. 만약 정말로 수많은 과학자가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인간과 비슷한……. 아니, 인간보다 더욱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죠.”
과학 기술의 발전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달성하게 되는 영역.
하지만 그 영역은 감히 어설프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금단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그 존재는 ‘지성’을 가지고 ‘자아’를 각성했을지 몰라도, 지성체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영혼’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리죠.”
인간을 뛰어넘는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열등한 인간이 가진 지성체로서의 가장 필수적인 무언가가 결핍되어 버린 이 불완전한 이들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지성체들을 평화적으로 대하며 이들을 위해 봉사할 리가 만무했다.
“신조차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분야에서 위험한 주사위 놀이를 하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