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남북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서 동행한 한국의 기자들.
하지만 이들은 갑작스럽게 파행되어 버린 회담의 상황을 보며 연신 수군거렸다.
“이 기자.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은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글쎄요……. 공보실 쪽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전부 묵묵부답이라 저희도 아는 게 없습니다.”
“듣기로는 통일과 관련된 논의를 한다고 했었는데, 이거 설마 전부 쫑 난 건가?”
“어휴, 답답해서 원. 아니 회담이 진전이 있었든 없었든, 무슨 상황인지는 이야기해 줘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그냥 가만히 죽치고 있으라는 거야 뭐야?”
거의 온종일을 아무런 기삿거리 없이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었던 기자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제한되고 있었기에 이들은 아무런 기약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지루함에 점점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에라! 이럴 거면 그냥 가족끼리 휴가나 가는 건데. 기삿거리도 없는 쭉정이 같은 회담에 따라와서 마누라 바가지만 잔뜩 긁혔잖아?”
“뭐 정보라도 공유해 줄 것 아니면 차라리 평양 시내라도 취재할 수 있게 해 주쇼! 돌아다니면서 뭐라도 좀 찍어야 기사를 쓰지.”
“하……. 이거……. 알 만한 사람들이 왜들 이러시나…….”
기대하던 대형 특종을 따내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짜증을 내기 시작한 기자들. 그리고 이들의 항의를 한 몸으로 받아 내며 공보실 담당자들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희도 최대한 상황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신속하게 전달할 테니까 일단 앉아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아! 그 이야기만 몇 번째 하는 겁니까? 우리도 기다릴 만큼 기다리고 참을 만큼 참았잖아요. 뭐든 좋으니까 기사로 쓸 만한 이야기라도 하나 주시라고요!”
“아니, 저희도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라…….”
자기들도 아무것도 모른다며 답답해하는 공보실 담당자들. 하지만 이들이 실랑이를 벌이며 작은 소란이 벌어지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기실 안은 조용해졌다.
[ 꽤에에에에에에에엑! ]
[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 ]
날카로운 고음의 괴성.
어딘가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점점 커져만 오는 그 소리에 기자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건 마치……. 돼지 멱 따는 소리 같은데……?”
“이 사람아. 그게 말이 되나? 뜬금없이 평양 한복판에서 무슨 돼지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철통같은 경호와 보안 속에서 남북 정상이 한데 모여 회담을 나누고 있는 회담장. 이런 곳에 갑자기 살아 있는 돼지가 나타나는 일은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상황이었기에 누군가가 터무니없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들은 돌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 다들 어디 있나 했는데 여기들 있었군요? 한참 찾아다녔네요.”
“꾸에에에에에엑!!!”
“하, 이놈 아까부터 더럽게 말 안 듣네. 진짜 돼지 통구이로 만들어 주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커다란 돼지 한 마리에 목줄을 걸고 마치 애완동물 산책 나오는 듯한 모습으로 기자 대기실에 난입한 멀린. 그리고 그에게 질질 끌려오다시피 하는 육중한 크기의 돼지는 듣기 거북한 괴성을 지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게 무슨……?”
“아니, 갑자기 무슨 돼지야?”
이 상황이 전혀 예상 밖이라는 듯,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는 공보관들.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기자들이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을 그때, 이들은 멀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단어에 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다.
“정은아. 형이 기자회견 좀 해야 하니까 시끄럽게 난동 피우지 말고 조용히 좀 있어라? 이번에도 또 도망치려고 했다가는 오늘 저녁에는 족발 파티하게 될 줄 알아. 알겠지?”
북한의 최고 권력자의 이름으로 돼지를 부르고 있는 멀린. 그리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불안한 표정으로 멀린과 정체불명의 돼지를 연신 번갈아 쳐다보던 기자들. 하지만 이들은 사악한 미소로 단상에 놓여 있는 책상에 앉는 멀린의 한마디에 직감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통일을 빙자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려고 했던 우리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정은과 저의 깜짝 합동 기자회견이 있겠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시죠.”
자신들은 지금 기자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특종 중의 특종을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이 급작스럽게 시작된 기자회견.
하지만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해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 기삿거리에 목말라하던 기자들에게 이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사막을 헤매다 목말라 죽기 직전에 만난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 우리 정은이를 비롯해 그 측근들이 계획한 방안은 바로 ‘나만 아니면 돼’ 이거예요. 나라 하나를 완전히 말아먹고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굶어 죽게 만들고, 수용소에 가두어 온갖 인권 탄압과 국제 범죄는 다 저질러 놨는데 책임 하나 안 지고 자기들만 쏙 내빼겠다는 거거든요. ]
[ 평화 통일을 시켜 줄 테니까 자기들이 스위스로 도망가서 부유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 이걸 들어주면 과연 북한 내에서 남한 정부가 정말 제대로 북한의 인민들을 통제할 수 있기나 할까요? 절대 용서할 수 없을 불구대천의 원수를 옹호하고 비호하고 있는데? ]
북한의 현재 상황과 김정은이 얼마나 교활하고 야비한지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비난하는 멀린. 그리고 그런 그의 폭로에서 나온 통일에 대한 대가를 들으며 기자들의 표정도 점점 아리송하게 변했다.
“통일을 약속한다고 안전을 보장해 준다니……. 그게 맞나?”
“그러게…….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극악무도한 독재자이자 범죄자긴 한데…….”
조금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는 알겠다는 듯이 애매한 얼굴로 수군거리는 기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에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자신한테 반기를 들고일어났다고 해도 수백만의 인민을 모조리 쓸어버리라는 지시를 내리는 독재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는 노릇도 아니잖아요? ]
이미 뮤뷰트에 실시간으로 올라가 있는 증거. 그것을 명분으로 삼으며 나는 기자들에게 내가 저지른 짓을 스스로 밝혔다.
[ 최소 100kg은 더 나갈 것 같은 성인이 총을 들고 난리를 치는데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무섭긴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고, 안 다치게 제압할 자신도 없어서 부득이하게 정은이를 돼지로 만들었죠. 여기 이 녀석이 바로 북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총비서이자 백두혈통이었던 김정은이에요. ]
[ 꾸어어어어어어엉!!! ]
내 소개에 아니라는 듯이 서글픈 울음소리를 내는 정은이.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기자들은 하나같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무서워서 돼지로 만들었다는 부분을 조금도 납득하지 않는 것 같은 기자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나는 뻔뻔하고 태연한 얼굴로 다시금 당당하게 말했다.
[ 왜요. 저도 무서움을 아는 인간이거든요? ]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소란스러워진 바깥 상황을 의식하고는 이내 이 이상의 설득은 포기하고 해야 할 말을 이어 갔다.
[ 자……. 이제 판이 완전히 엎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셨을 테니까 지금부터 본론을 이야기하도록 하죠. 일단 우리 김정은이가 다시 돌아와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것처럼 평화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아요. ]
[ 이건 단순히 일시적인 변신 마법이나 환상 마법이 아니라, 유전자 구조부터 시작해서 김정은의 본질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은 변형 마법이니까요. 다시 말해 어디 키스만 하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개구리 왕자 같은 조잡한 마법 정도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효과가 지속된다는 뜻이죠. ]
시간 제한이 있는 저급한 변신 마법이나 눈속임에 불과한 환상 마법과는 다르게 본질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폴리모프 마법. 엄연히 8 서클에 해당하는 초고위의 마법이었기에 보통은 드래곤이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의 모습으로 변신해 유희를 즐길 때나 쓰이고는 하는 마법이었지만, 사실 이 마법은 사용법에 따라 무척이나 끔찍한 저주가 될 수도 있었다.
[ 뭐, 8 서클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게 가능은 하겠지만……. 그건 알아서 잘 찾아보시고요. ]
자신은 전혀 그렇게 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 멀린을 보며 기자들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지금 정말로 돼지가 되었다는 말인가……?”
“오 이런, 세상에 맙소사…….”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 그렇기에 기자들은 어지러워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내 이 사태가 미칠 여파를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말인데 그걸 통제하거나 진압할 사람이 없어진 상황이라는 건데…….”
“이 사람아. 지금 그게 문제인가? 이거 우리가 평양에서 몸 성히 남한으로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멀린.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한국 정부와도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 야! 이 망할 사고뭉치 새끼야!!!! 이거 당장 열지 못해? ]
잔뜩 열받은 것 같은 매지컬 컴퍼니의 대표 이사가 두 손으로 멀린이 쳐 놓은 투명한 방어막을 연신 두들기며 대기실 밖에서 무어라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멀린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 사실, 저는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
북한과의 통일을 반대한다는 이야기에 순간 멈칫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완벽한 사상이 아니에요. 이 두 사상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가진 잠재성과 효율성을 극한으로 끌어냈으며 어느 한쪽으로만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억제해 가며 비교적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냈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겠죠? ]
[ 무한한 경쟁을 강요하며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며 모두를 불행하게 하죠. 가난한 자는 무력감에 찌들어 부유한 자를 원망하고 질투하며, 부유한 자는 끝없는 탐욕 속에서 오만해지고 방탕해지죠. 권력자들은 서로를 비방하며 헐뜯기에만 급급하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언행 속에서 사회 전체보다는 자신의 추악한 욕망만을 꾀하죠. ]
[ 지금껏 지옥 속에서 살아왔던 북한 인민들에게 있어서, 남한의 사회 시스템은 그저 새로운 지옥일 뿐, 별반 다를 거라고는 없어요. 결국 이들은 언제까지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도구이자 가축의 신세로 전락하게 될 테니까요. 이미 남한 내에서도 출산은 지옥이라면서 스스로 서비스 종료의 절차를 밟아 나가는 중인데, 양심이 있다면 이 사실을 부정할 인간은 없을 거예요. ]
이미 반 토막 나 버린 출산율을 언급하며 한국도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과 같은 곳이 아니라며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멀린. 그리고 그는 기자들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모두를 향해 물었다.
[ 자……. 이래도 수천만 명의 극 빈곤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라고 하는 악성 매물을 남한이 흡수 통일해서 가져가는 게 좋을까요? 과연 여러분은 정말로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자신이 정말로 있으세요? ]
남한과 북한, 그 어디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전개.
그렇기에 기자들은 물론, 그 누구도 그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질문은……. 본인이 직접 북한을 통치하기라도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내 의미심장한 질문에 누군가가 손을 들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뇨? 제가 미쳤다고 그런 귀찮고 성가신 일을 해요? ]
“……?”
내 대답에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기자들. 하지만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이야기해 주었다.
[ 북한은 앞으로 당분간 하나의 독립된 주권국으로 남아 있게 될 거예요. 물론 예전처럼 남한과 적대 관계에 있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로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치와 공산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유지하는 공산 국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할 예정이죠. ]
이미 실패한 사상이자 이론으로 판명이 나 지구상에서 완전히 도태되고 있는 공산주의의 사회 시스템을 고수하겠다는 멀린. 현재의 북한을 만들어 낸 원흉이기도 한 그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찬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 지혜와 이성의 상징이자 한때 대륙을 지킨다는 거룩한 사명을 이행했던 수호자들의 지도자였지만, 지금은 예의범절이라고는 배워 먹지 못한 입에 발린 소리는 죽어도 못 하는 싸가지 없는 중국산 짝퉁 용가리 인형이자……. ]
[ 지구상에 퍼져 있는 마나 링크의 네트워크, 통합사념망의 유일한 관리자이며 킹갓 슈퍼 제너럴 마법 A.I. 그리고 앞으로 북한을 이 무능한 돼지 새끼를 대신해서 통치하게 될, 유능하고, 철두철미하지만 동시에 무자비한 위대한 영도자. 수룡 동지. 용용이에 의해서 말이죠. ]
용용이.
매일같이 컨셉으로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그 귀여운 용가리 인형을 모르지 않는 기자들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이내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 이제 북한의 인민들은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굶주림 없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거예요. ]
내 말에 무한한 불신이 가득한 눈빛을 지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