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북한의 수도이자 소위 최상류층으로 인정받은 계층만이 머무를 수 있는 중심지인 평양.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해 보이는 외관에 시설과 규모가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은 되는 것 같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삭막한 기운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도로는 8차선 10차선으로 만들어 뒀는데 돌아다니는 차가 없네. 무슨 유령 도시도 아니고.”
대략 300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적막한 도시. 주변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죄다 총을 들고 있는 군복 입은 군인들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는 밖에 나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통금령을 내렸을 테니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안경을 쓴 채로 진지하게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읽고 있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자동차 창문 너머로 비치는 평양의 풍경을 힐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남한에서 이렇게 대규모 사절이 평양으로 오는 광경을 외부에 노출해 봤자 좋을 게 없겠죠. 결과적으로는 거의 항복을 받아 내러 온 상황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북한 당국과 긴밀하게 접촉하여 오랜 시간에 걸친 협상을 이어 온 이호준 정부.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그리고 외교부를 비롯해 수많은 관계 부처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내려진 결정을 김정은이 받아들이면서 타결된 이 협상은 다름 아닌 북한의 흡수 통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김정은을 비롯한 그 최측근이 정권을 내려놓고 스위스로 망명하는 것을 허락하고, 여생을 풍족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둔다니, 이호준 대통령도 참 물러터졌죠. 수천만 명의 인민을 가난의 구렁텅이 속에 밀어 넣은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호사스러운 조치 아닌가요?”
“뭐……. 이호준 대통령이라고 별수 있었겠어요? 그 요구를 안 들어주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버틸 텐데요. 궁지에 몰아도 도망갈 틈은 만들어 줘야죠.”
북한을 평화롭게 넘겨주는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을 비롯한 최측근들의 안전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던 김정은. 그 요구 조건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불필요한 희생을 원치 않았던 이호준 대통령의 결단으로 지금 수많은 이들이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건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병력까지 데리고 가는 거죠? 누가 보면 아예 침공 중인 걸로 알겠는데요.”
단순한 정상 회담을 위한 사절단이라고 하기에는 과한 수준의 국군이 북한으로 들어오는 상황. 군용 트럭에 몸을 실은 채로 뒤따라오고 있는 군인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어려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훈련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남북 정상이 공동으로 기자 회견을 통해 전 세계에 한반도의 통일을 공표하게 되면, 즉각적으로 정권 이양에 대한 절차가 시작될 거예요. 아마 북한에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 될 테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사전에 대비하는 거겠죠. 아마 반발하는 군벌 세력들의 쿠데타를 우려한 조치 아닐까요?”
이미 심각한 경제난과 물자 부족으로 인해 민심을 잃어버린 김정은 정권. 각 지방의 군대에 제대로 된 보급품조차 지급하지 못한 탓에 생각 이상으로 북한 내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험악한 상태였다.
“뭐,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예요?”
“청와대에서 보내 준 제안서예요.”
“제안서요……?”
청와대에서 아영에게 보낸 제안서.
그것은 바로 새롭게 열리게 된 북한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제안서였다.
“북한의 현재 경제 여건은 매우 취약한 상태예요. 식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 기술, 인프라, 뭐 하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낙후되어 있죠.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되어 봤자 어떻게 되겠어요?”
“죄다 돈 벌러 남한으로 넘어오고 난리 나겠죠?”
“그래서 당분간은 북한과의 왕래를 차단하고 대기업들만 북한에 진출시켜서 집중적으로 대규모 경제 개발부터 추진할 예정이라고 해요. 북한의 기초적인 경제 기반을 세우고 어느 정도 생활 여건을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통일시켰다가는 남북한 모두가 어마어마한 경제적 혼란에 빠지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보고 북한에다가 수십, 수백조를 투자하라, 그 말인가요?”
“그런 셈이죠. 뭐……. 투자에 대한 여러 이권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끌리는 제안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북한은 지금 당장 투자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최소 10년은 이상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모든 것이 불투명한 위험 천지의 투자처죠.”
“아아……. 그래서 아까 그 경제 사절단인지 뭔지 하는 아저씨들 표정이 죄다 똥 씹은 얼굴들이었구나?”
“그렇죠. 아마 다른 기업들은 이번 투자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 같은 눈치예요.”
“엥? 왜요?”
“지금 당장은 손해지만, 이야기한 대로 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좋은 투자처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호준 대통령이 한 약속이 과연 정말로 지켜질지, 아니면 공수표가 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죠.”
이제 겨우 1년 3개월의 임기만을 남겨 두고 있는 이호준 대통령.
원래라면 레임덕에 빠져 국정 운영의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려야 할 시기였기에 그가 하는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호준 대통령이 지금 통일을 비롯해 앞으로의 북한 개발 계획을 세워 둔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결국 다음 정권을 쥐게 된 차기 대통령에 의해서 아예 없던 일로 엎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돈은 돈대로 투자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기에 기업들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죠.”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려 있는 북한의 개발 사업.
그렇기에 정치권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기에 모두가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끌고 있었기에 아영 역시 이호준 대통령의 제안서를 보며 고심하는 눈치였다.
“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왜요?”
그게 무슨 의미냐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 오는 아영.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허리춤에 달린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북한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게 될 테니까요.”
* * *
북한의 지도자이자 백두 혈통의 3대손인 김정은.
비교적 젊은 나이의 독재자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삭은 얼굴이었다.
“크흠…….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구만 기래. 내래 김정은이요.”
뒤룩뒤룩 살이 찐 얼굴.
턱살이 세 개나 접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이 불쾌감이 들 정도로 추한 외형이었지만, 그보다 더 불쾌한 점은 너무나도 오만하고 거만한 그의 행동거지와 언행이었다.
“민족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 부하 놈들이 간청하는 통일 제안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결정은 아니지비. 우리 인민들은 흔들리지 않는 총폭탄 정신으로도 얼마든지 자력갱생을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니 말이야.”
“허허허……. 그렇습니까?”
항복이나 다름없는 정상 회담 중에 대놓고 협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야기하는 김정은. 그런 그를 앞에 두고 이호준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애써 흘려넘겼지만,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래도 이제는 한 민족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골육상쟁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대국적인 결의에 내 양보하는 것이네. 부디 앞으로도 우리 북조선 인민들을 잘 보살펴 주기 바라네. 혹시라도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연락드리죠.”
현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은 김정은.
하지만 다 마무리된 협상을 엎어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이호준 대통령은 그의 거만한 태도에 살짝 분노한 듯 볼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김정은 뒤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눈동자로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게 무슨 상황이래?”
태연한 걸 넘어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김정은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의 측근들. 그리고 그런 내 물음에 용용이가 답을 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번 협상을 주도한 게 김정은이 아니라 최측근들이고, 김정은 자체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똥 멍청이라는 거야?”
[ 그렇다니까? 지금 여기 네트워크 뒤져 보는 중인데…….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
마나 링크가 아닌 구닥다리의 폐쇄적인 네트워크망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북한의 세부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용용이. 하지만 평양 한복판에 용용이의 본체가 들어선 이상 이곳은 이제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세부적인 북한의 실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그가 나에게 전한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뭐야? 이미 대규모 봉기가 일어난 상태라고?”
[ 어. 치안이나 물자 상황이 괜찮았던 평양이라서 이 정도지, 이미 함경북도와 평안북도를 비롯해 한반도 북부는 이미 무정부 상태라고 할 정도로 초토화된 상태야. ]
마족 강림 사태에서 북한으로 목숨을 걸고 넘어온 수십……. 아니, 수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의 난민들. 목숨을 건지고자 무작정 국경선을 넘어온 대규모 난민들이 한반도 북부에 밀려들었지만,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이들을 먹여 살릴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굶주림에 죽자 살자 달려드는 난민들을 인민군은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리고…….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육전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북한 전체의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 먹을 것조차 없어서 굶어 죽는 북한 주민들과 중국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김정은 타도를 외치면서 지금도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어. 그리고 그 움직임에 인민군 몇 개 사단도 동조해서 이미 반란을 일으킨 상태고. ]
이미 오랜 시간 계속해서 누적되어 온 북한 인민의 분노가 폭발해버린 상황.
그리고 그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의 김정은과 그 주변의 초조한 얼굴로 서 있는 최측근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향락에 빠져 사는 무능한 왕과 그 주변에 가득한 간신들이라…….”
그야말로 망국이 몰락하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보는 듯한 북한의 상황.
이미 북한의 내부 상황이 텅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이호준 대통령에게 어떻게 말해 줘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문득 누군가가 빤히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그건 그렇고……. 동무가 그 말로만 듣던 멀린이구만 기래?”
“……?”
갑자기 거만한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김정은. 그리고 그는 나를 위아래로 연신 훑어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듣던 대로 광대 같은 차림새를 하고 다니는구먼.”
“???”
갑작스러운 시비에 내가 할 말을 잃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순간.
방금까지만 해도 조금은 아슬아슬하지만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이어 가던 회담장 안은 순식간에 개미 기어가는 소리조차도 들릴 정도로 깊은 침묵에 빠졌다.
그저 구색 맞추기이자 협상에서 압박의 수단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구경만 하기로 약속하며 회담장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 이 회담에서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폭탄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바로 나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협상이고 나발이고 단신으로 북한이고 남한이고 모조리 다 엿 먹여 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단순히 말을 거는 것을 넘어 도발을 시전해 버린 김정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인 상황이었는지, 북한이고 남한이고 가릴 것 없이 그를 제외한 모두가 마치 ‘저 새끼가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숨조차 쉬지 않고 입을 벌린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 인형은 또 뭔가? 어린 동무들이나 들고 다닐 법한 물건이군 기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계속해서 내 복장을 지적하고 있는 김정은. 그리고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의 측근들이 다급하게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지……지도자 동무…….”
“제발 그만하시라요.”
그제야 주변의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챈 김정은은 묘한 표정으로 연신 헛기침하며 말했다.
“크흐흠…….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데 뭐 다들 그러나.”
“…….”
농담이라는 그의 변명에 반응조차 하지 않고 차가운 침묵과 정적이 이어지는 상황.
한번 던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호준 대통령조차도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만 보며 연신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그 이외의 다른 보좌관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오히려 잘된 건가……?’
처음부터 용용이 때문이라도 이 협상을 엎어야만 했던 상황.
하지만 명분이 부족해서 언제 어떻게 끼어들지 고심하고 있었기에 나는 제 발로 끼어들 건수를 준 김정은을 보며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이 인형 말인가요? 소개해 드릴게요. 용용이라고 하는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산 짝퉁 인형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판달리아에서 온 고귀한 드래곤 로드 출신이죠. 싸가지가 없는 게 조금 단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똑똑하고 쓸 만한 친구이기도 해요.”
전혀 화난 기색 없이 기존 컨셉에 충실한 소개를 웃으면서 하는 나를 보며 조용히 넘어가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이어지는 내 말에 또다시 입을 벌렸다.
“그리고……. 앞으로 북한을 통치하게 될 새로운 지도자 동무기도 하고요.”
“………?”
“???”
저건 또 무슨 농담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향해 앙증맞게 혓바닥을 쭉 내밀고 있는 용가리 인형 용용이를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뭐 해요? 얼른 우리 지엄하신 새로운 최고 존엄에 인사부터 박으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