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조선노동당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일당 독재 국가였지만, 사실상 모든 권한은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자 국무위원장인 김정은.
김씨 일가의 3대 세습 체제의 주인공으로 급작스럽게 죽은 아버지 김정일을 대신해 차기 북한의 지도자로 낙점한 이후, 그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같은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 친형을 생화학 무기로 암살하고 큰아버지를 고사포로 처형하는 등의 끔찍한 짓을 저질러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인륜을 저버리고 얻어 낸 권력의 달콤함을 즐기는 것도 잠시일 뿐.
그를 비롯해 북한에 주어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 마법 입국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과 진정으로 공존하며 조화롭게 화합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인류 문명은 지금보다도 더욱 진보하고 번영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의 마법 입국 선언.
이 세상에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마법의 개념과 기술을 도입하여 사회 시스템 전반의 모든 것을 기초부터 모조리 새롭게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한 미국. 그리고 그 이후에 세상은 북한 같은 고립된 나라가 도무지 뒤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해 갔다.
[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최첨단 산업에서 필수적인 인력이 될 것인데,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죠. 따라서 이러한 각성자를 제대로 육성하는 것이 각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
[ 매지컬 컴퍼니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서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과학 기술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마법을 가미해서 해결해 내 시장에 새로운 혁신과 활기를 끊임없이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법이 가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시장에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
과거 증기기관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화와 혁신. 매지컬 컴퍼니와 몇몇 기업이 전 세계의 자금을 무시무시하게 흡수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해 가는 시장 구조와 산업의 판도 속에서 북한 같은 비루하고 나약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살아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어진 중국과 러시아의 몰락.
정말로 국가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구명줄을 내려 줄 든든했던 지원 세력도 한순간에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 긴급 속보입니다. 통일부에서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당국에서 통일에 관한 논의를 해 보자는 제안을 해 온 사실이 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현재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북한에서 보내 온 사절단과 계속해서 관련 문제에 대한 진지한 협상에 임하는 중이며, 몇몇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
통일.
자그마치 75년 동안 갈라져 있던 한반도를 하나로 합치자고 제안한 북한 정부.
하지만 그 발표에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극명하게 반으로 갈렸다.
- 갑자기? 뜬금없이 웬 통일이래?
- 저거 딱 봐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냥 통일하자는 거네 ㅋㅋ
- 중국이 날아가고 러시아마저 골골대니 바로 꼬랑지 내리는 거 봐라. 추하다
- 그냥 하던 대로 살자. 어차피 통일해 봤자 세금만 왕창 늘어날 게 뻔한데?
- ㄹㅇ ㅋㅋ. 북한이 굶어 죽든 말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임?
인제 와서 갑자기 통일을 제안하는 이유와 그 속내가 뻔히 보이는 상황. 거기에 북한에 연고가 있는 이산가족들도 대부분 세월의 흐름을 이겨 내지 못하고 모두 죽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차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통일을 찬성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안 그래도 출산율 떨어져서 인구 소멸 걱정하는 상황인데 통일하면 문제 해결임.
- 이게 맞다. 최소 수천만 명의 노동력이 유입된다는 소리임. 그것도 한국말 하는 노동력으로
- 국토가 2배로 늘어나면 개발사업도 완전 호재지. 건설사 주식 몰빵 가즈아~~~!!
- 설마…… 통일되면 이제 군대 안 가는 거 아니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통일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그렇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려 서로 논쟁을 펼쳐 대며 모두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 와중에 나는 이호준 대통령으로부터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뭐를 어쩌라고요? 어딜 같이 가 달라고요?”
“북한 말이네.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아.”
갑자기 찾아와 북한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는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지그시 바라보는 나에게 그래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북한이 저를 엄청 무섭게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래. 처음부터 우리에게 통일을 제안한 것도 어떻게 보면 전부 자네 때문이네.”
내가 군대에 가니 마니 논란이 생긴 직후에 터져 나온 통일 떡밥. 그리고 북한에서 내가 러시아와 같이 자신들을 향해서 무작정 선전포고를 갈길지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호준 대통령의 이야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하네요. 나 혼자서 북진 통일이라…… 이거 완전 괜찮은 이야깃거리겠는데요?”
얌전히 군대에 입대하고 이등병 신분으로 탈영해 북한에 침투해서 북한 지도부를 쓸어버리고 평양을 장악한다는 어느 삼류 소설 같은 전개를 떠올리며 연신 히죽거리자 이호준 대통령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부디 그런 짓을 벌이더라도 내 임기 안에는 자제해 주기 바라네. 안 그래도 자네가 아니더라도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들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야.”
“뭐…… 노력해 보도록 하죠. 아무튼, 대통령님께서 뭘 원하시는지는 알겠어요. 저를 데려가서 친분을 과시하고 협상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으시다. 이 말이죠?”
얼추 막바지에 다다른 북한과의 통일 협상.
가장 굵직한 안건들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하고 최종적으로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통일을 두 나라의 정상이 공동으로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만이 남은 상황.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질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호준 대통령은 나를 꼭 데려가고 싶은 눈치였다.
“가능하면 김정은이 서울로 내려오면 좋겠는데, 절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더군. 게다가 북한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북한의 군부 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서 자리를 비울 여력도 없어 보이고…… 협상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북한 군부의 쿠데타가 벌어질 수도 있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정보 당국에서는 보고 있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북한의 내부 분위기.
이미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듯, 이곳저곳에서 당의 지시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세력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기에 나는 이호준 대통령의 부탁에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뭐, 우리 대통령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제가 경호원 역할 좀 해 드리죠. 북한은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관광 한번 가 보는 셈 치죠.”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수락에 한결 안도한 얼굴로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는 자리를 뜨던 와중에 문득 한 가지를 빼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내 임기 안에 자네 군대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가요?”
“그래. 이제 북한이라는 가장 위협적인 적국이 사라졌으니, 굳이 징병제를 고집할 필요도 없어지지 않았나? 조속히 모병제로의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네.”
북한 때문에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과다할 정도로 많은 수의 군인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수많은 문제를 불러오며 논란의 중심이기도 한 이 징병제를 굳이 고집하며 기형적인 군의 과도한 규모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호준 대통령은 내 군대 문제까지 한 방에 해결하려는 속셈이었다.
“아쉽네요. 군대 가면 그것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제발 그런 끔찍한 소리는 농담으로도 하지 말아 주게나.”
조만간 방문 일정에 대해서 다시 알려 주겠다고 말하며 바삐 자리를 뜨는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와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용용이는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아, 뭔가 아쉽다. ]
“뭐가?”
[ 북한 말이야. 북한. 이렇게 허망하게 망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
“……?”
갑자기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용용이는 자기 생각을 푸념하듯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 전에도 말했지만, 사회주의 사상은 미개한 인간 따위가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효율적이고 완벽한 국가 통치 시스템이라니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민주주의라는 사상이 훨씬 더 부실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인데 가장 완벽한 시스템을 내버려 두고 더 미개하고 퇴보한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니 너무 아쉽지. ]
과거, 모든 일을 다 끝마치고 판달리아로 되돌아가면 어떻게 그 세계의 멸망을 막아설 것이냐고 물어봤을 때 용용이가 밝혔던 그만의 작고 소중한(?) 사상.
듣기만 해도 새빨간 물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는 아직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연신 아깝다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또 그 이야기야?”
[ 주인네 세상에 이런 말이 있잖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개한 인간들끼리 뭐 하나 가지고도 서로 정치질하고 싸우면서 온갖 협잡질만 반복하는데, 그러면서 뭐 제대로 되는 거 있었어? 시간만 질질 끌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잖아. 주인도 그래서 그 국회의원이니 뭐니 하는 작자들도 엄청나게 싫어했었고. 아니야? ]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공동 생산. 공동 분배. 완전한 평등.
말로만 듣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하지만, 한낱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들의 사회에서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공산주의 사상. 하지만 그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는 용용이는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 하. 진짜 아깝네. 내가 만약 본체만 있었으면 그냥 저 김정은 모가지를 따가지고 강제적으로 북한을 먹어 버리고 공산주의가 얼마나 완벽하고 뛰어난 이론인지 직접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이게 전부 웃대가리라고 할 수 있는 X간 놈들이 모조리 다 멍청하고 무능해서 그런 거뿐인지, 제대로 된 놈이 통치하기 시작하면 진짜 개쩌는 효율을 보여 줄 수 있는데 그걸 몰라서……. ]
“그러면 네가 한번 해 볼래?”
[ 뭐……? ]
내 물음에 순간 얼어붙은 듯, 하던 말도 뚝 끊고 침묵하는 용용이. 그리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혀를 쭉 내밀고 있는 용용이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궁금하기는 하거든. 네가 말한 대로, 공산주의가 정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서 개인의 욕심이나 탐욕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정말 완벽한 이론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글러 먹은 이론인지 말이야.”
격변의 근현대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었던 사회주의 사상.
이제는 완전히 쇠락해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차원의 저 너머에서 넘어온 초월종…… 그것도 가장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알려진 골드 드래곤인 용용이가 이렇게까지 심취하여 빨갱이 드래곤이 되어 버린 것을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 같지 않아? 네가 계획하고 있는 판달리아의 모습을 이곳 북한에서 실현해 보는 거야.”
[ 지……진짜? 그래도 돼……? ]
“그럼.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결국 언젠가는 너도 되돌아가 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홀로서기를 해야 할 텐데, 그래도 나름대로 연습을 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내 세상의 멸망을 막아 내기 위해서 인형의 신세로도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조력했던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내 나름대로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기에 나는 남몰래 사악한 미소를 작게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호준 대통령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통일의 시기는 조금 늦춰야겠네.”
“통일 이전에 혁명이 먼저 일어나게 될 판이니까.”
빨갱이 드래곤이 주도하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