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어떻게든 조용하고 은밀하게 멀린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던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그 떡밥을 덥석 물어 버린 JBMC 때문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 3일 전에 국회 사이트에 올라온 병역법 일부 개정안이 올라와 현제 법사위에서 심사를 이어 갈 예정입니다. 해당 법률안 개정안을 보면 새롭게 신설되는 항목 중, 면제 사유에 해당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는데요, 이 조항을 신설하는 이유가 최근 성년이 되어 군대에 갈 나이가 된 멀린에게 면제를 주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되어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의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한민국은 엄연히 분단국가이며 현재 휴전 중인 분쟁국입니다. 아무리 멀린이 이룬 업적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게 면제를 주는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되죠. 만약 이번 법 개정이 정말 한 개인에게 어떤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하는 심각한 국가 권력의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
[ 안 그래도 요즘 출산율도 낮아져서 군에 입대할 젊은 청년이 얼마나 부족해서 난리인지 아시지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공익을 가야 할 정도의 사람까지도 전부 군대에 가는 상황인데 신체 멀쩡한 멀린이 면제를 받는다면 이게 젊은 청년 남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박탈감을 주겠습니까? 이건 원칙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 누구든 군대 문제에 있어서는 평등해야죠. ]
[ 멀린과 이호준 정권이 얼마나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였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이호준 대통령이 삼진 그룹의 회장일 때부터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공생 관계였고, 그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만들어 준 대가로 이번에 군대라는 의무를 은근슬쩍 빼 주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서로 간의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러지 않고서야 임기 말에 와서 소위 ‘멀린 특별법’이라는 법안을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고 발의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
‘멀린 특별법’이라고 이름 붙이며 자극적인 논조로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정치 이슈 채널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각 이상으로 꽤 많은 여론이 멀린의 군 면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멀린이 군대 안 간다고……? 그럴 수는 없지.
-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나도 갔는데 쟤가 왜 안 감?
대한민국의 군필자라면 참을 수 없는 군대 떡밥.
특히나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끌려갔고, 각자 저마다의 유쾌하지 않은 불쾌한 경험들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이 떡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 물귀신 모드 ON.
- ??? : 나만 X 될 수는 없지 ㅋㅋ
- 이게 맞다. 군필자로서 사지 멀쩡한 놈이 안 가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보지. 암.
- 멀린은 군대 가라! 군대!
20대와 30대의 젊은 남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완전히 불이 붙어 버린 여론.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치고 팔딱 뛰는 이들이 몇……. 아니 무지하게 많이 있었다.
[ 에……. 현행법상 멀린이 군대에 가야 하는 건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국방부에서는 멀린이 군대에 오는 것에 대해서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멀린이 군대에 입대한다면 병으로 오게 될 가능성이 큰데, 그가 가진 무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정말로 그를 감당할 수 있는 부대나 지휘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합참의장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쓴소리할 수나 있을까요? ]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그랬는지, 에둘러 몇몇 국방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했지만 제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지 말아 달라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는 국방부.
[ 미합중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법과 사회 시스템을 존중합니다. 대한민국의 시민권자로서 멀린이 본인의 자유 의지로 주어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에 대해서 별다른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그는 동시에 미합중국이 인정한 적법한 미국 시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를 강제하거나, 일반 병사의 수준을 넘어서는 요구를 하며 그가 가진 힘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
본인이 자발적으로 군대에 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는데, 이상한 수작을 부리면 한국이고 나발이고 가만 안 두겠다는 무언의 협박이 담긴 메시지를 공식 성명으로 발표하는 미국 국무부.
[ 국제 연합에서 각성자들에 대한 강제적인 징병 문제에 대해 인권 침해를 비롯한 노동 착취가 벌어지게 될 위험성이 높다며 관련 사례의 조사와 연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복무 기한을 과도하게 설정하거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강제적으로 해당 각성자의 능력을 군사적인 목적으로 착취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최근 멀린의 징병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했습니다. ]
징병 문제에 대한 인권 침해와 노동 착취와 관련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국제 연합까지…….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외교 문제로 비화하여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하자 의도치 않게 중간에 끼어 버린 이호준 대통령은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끄으응……. 이 망할 기자 놈들이 사고 한번 제대로 쳤구먼.”
관련 보도가 시작되자 즉각적으로 움직인 청와대. 하지만 언론을 관리 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장을 찾아가 한바탕 뒤엎어 버린다고 이미 터져 나간 이야기가 조용하게 수그러들지는 않았다.
“확인해 본 결과, 관련 내용에 대한 제보가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왔었다고 합니다. 의회에서 법안을 발의하는 그 과정에서 몇몇 의원실에도 관련 내용을 파 봤는데 거기서 아마도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익을 위해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움직인 이호준 대통령. 그렇기에 그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는 안면 근육을 연신 실룩거리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 그 망할 매국노 같은 놈들이?”
“그것이……. 일단 관련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한 곳은 ‘DC 아웃사이드’라고 불리는 일종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는데 거기서 가장 최초로 관련 글을 남긴 사람은…….”
“설마……. 또 그 빡빡머리 멀린인가?”
“네……. 그렇습니다.”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멀린에 대한 도배글을 24시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올려 대는 그. 이미 국정원에서 몇 번 요주의 감시 대상으로 확인하고 비밀리에 그의 동태를 조사한 전적이 있었기에 이호준 대통령은 또다시 언급되는 그의 닉네임에 이를 갈았다.
으드득
“그놈. 그냥 국가 보안법으로다가 집어넣는 건 불가능한 건가?”
“일단……. 스토킹 혐의로 경찰에 고발을 넣어 볼 생각입니다만 그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그 악플러를 엿 먹이겠다는 사심이 가득한 이호준 대통령의 질문에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잠깐 고민하다 이내 말을 돌렸다.
“그보다…….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대통령님.”
“국회 말인가?”
비서실장의 말에 이호준 대통령은 눈을 가늘게 뜨며 황당하다는 듯이 성토를 이어 갔다.
“아니, 고작 언론에서 조금 시끄럽게 떠든다고 갑자기 발을 빼면 어떻게 하나? 조용히 있기라도 하면 몰라, 아예 나서서 자기랑은 아예 관련 없는 안건이라고 발뺌하고 다니던데 지금 이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
“그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반응은 북한 쪽입니다.”
“북한……?”
전혀 잘못 짚었다는 듯이 비서실장이 말을 끊으며 답하자 이호준 대통령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북한이 왜 나오나?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통일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그리고 국정원장까지 관련 내용을 보고하러 오고 있습니다. 저도 아까 간략하게 전달받은 내용입니다만, 지금으로부터 30분 전에 북한과 연결된 통신선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과거, 남과 북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은 시기에 설치되었지만, 남북 관계가 경색된 이후로는 한동안 울린 적이 없었던 전화기. 하지만 갑작스럽게 연락을 먼저 취해 온 북한의 제안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내용은 아닙니다만……. 북한 측에서 민족 간의 화합을 위한 대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고 했습니다.”
“민족 간의 화합을 위한 대업……?”
“통일 말입니다.”
“……?”
뜬금없이 통일을 언급하는 북한의 메시지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외교‧안보 라인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여러 보고들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북한이 갑자기 미쳐 버려서 통일을 제안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상태입니다. 동맹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같은 공산권 국가인 러시아가 패전국으로 전락하며 예전처럼 미국과 대등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이고 중국은…….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 자체가 사라졌죠.”
“게다가 최근 몇 년 전에 동남아를 비롯해 전 세계의 금융 기관을 상대로 한 대규모 해킹 공격을 자행한 탓에 현재 북한은 국제적으로 보면 거의 왕따 신세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물자와 자원을 지원해 줄 국가도 없어져서 현재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죠.”
자원도, 경제도, 기술력도,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기형적인 국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북한. 사실 혼자서 자립 자체가 불가능한 이들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세계 경제 대국이 알게 모르게 간신히 명줄이라도 붙잡고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중국과 러시아라는 지원국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북한이 완전히 고립되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아직은 철저한 감시와 무자비한 탄압으로 그 불만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지만, 굶주림을 이기다 못해 일어선 북한 주민들이 계속해서 봉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자신이 놓인 상황을 모를 리가 없는 북한의 수뇌부들. 그렇기에 이호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마친 국정원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권 유지에 실패한 독재자들의 처참한 최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먼저 선수를 치겠다……. 역시 교활하고 약삭빠른 성정은 듣던 대로인 것 같군.”
이미 북한의 운명을 직감한 듯, 자기 살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모색하고 있는 북한의 고위 지도부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인간적으로는 지탄받아야 마땅한 비열한 행동들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오히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보고를 듣고 있자니 아직 북한의 상황이 그렇게 급박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갑자기 이렇게 다급하게 우리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이유가 뭐지?”
연방 정부 구성이니 일국 양제 같은 이상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지 않고 깔끔하게 통일을 이룩하자고 제안하는 북한. 그 교활한 김정은이 협상의 우위를 내주면서까지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호준 대통령이었다.
“저……. 그것이 아무래도 멀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멀린……?”
갑자기 나오는 멀린의 이름에 이호준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국정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그러니까……. 김정은이가 지금 멀린이 군대에 입대하면 그가 복무하는 기간 내에 우리가 북한을 침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건가?”
“김정은이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북한의 고위층 내에서는 파다하게 퍼지고 있는 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실제로 우리가 북진 통일을 실행에 옮겼을 때 이를 막을 힘도, 막아 줄 세력도 북한에 없는 상태입니다.”
“사실입니다. 최근 전략 작전 사령부에서 분석한 북한의 대내외적인 요인을 전부 고려했을 때, 북진 통일을 감행해도 충분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나오기는 했었습니다.”
완전히 끈 떨어진 연이 되어 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북한.
동맹국이라고 할 법한 국가라고는 대륙 저 너머에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독재국가 몇 개가 전부였기에 남한 정부가 독하게 마음먹고 북한을 먼저 친다고 하더라도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끔찍한 인권 탄압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해방한다고 박수를 보내고 환호할 공산이 컸다.
“알겠네. 일단 북한과 이야기해 봐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군.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하게 접촉해서 그들의 요구 조건들을 들어 보도록 하게. 괜히 언론에 흘러가지 않도록 입단속 철저히 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이호준 대통령의 지시에 일제히 우르르 빠져나가는 장관과 보좌관들.
그리고 홀로 남은 이호준 대통령은 문득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보고서를 살펴보며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중얼거렸다.
“이게 다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군…….”
7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분단.
통일을 그토록 염원했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에 부딪혀 좌절되었던 그 꿈이 비로소 눈앞에 드리워지게 된 경위를 하나하나 훑어보다 결국 한 사람에게로 모든 이야기의 인과가 귀결되는 것을 깨닫고는 이호준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멀린으로 인해서 비롯된 그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
그가 일으켰던, 혹은 해결했던 모든 사건이 얽히고 얽혀 이러한 거대한 결과를 불러온 것을 보며 이호준 대통령은 과거 자신을 마법사라고 소개하며 등장했던 반쯤, 아니 아예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았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멀린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때, 마법을 존재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믿어 준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었구먼.”
자신은 참 운이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