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223화 (223/242)

223화.

1990년대 후반, 수많은 게이머가 밤을 지새우며 미친 듯이 몰입하게 만들었던 게임. 튀니지.

불후의 명작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게임 산업의 한 시대를 상징하기도 했던 게임이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명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 아니, 이번 패키지 가격 실화냐? 현질도 적당히 시켜야지.

- ㄹㅇ;; 이제는 무슨 VIP 등급이니 뭐니 하면서 유저들 급까지 나누더라? 싸가지 없게

- MC 소프트가 초심 잃은 게 언젠데? 유저들은 이제 개돼지로밖에 안 본다고

- 아 ㅋㅋ. 이래도 아직도 안 접음? 하여간 튀저씨 새끼들은 진짜 독하다 독해.

현질 과금을 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플레이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극한의 난이도와 진입 장벽을 자랑하는 BM 구조. 특히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그 방식과 수법이 사악하다 못해 악랄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있었기에 대부분의 평범한 유저들은 상식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과금 요구량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 100만 원을 태웠는데 결국 꽝. 정신 나갔나 ㅋㅋㅋㅋㅋㅋ

- 아니 영웅 등급 장비 하나 만드는 데 9연속 실패가 말이 되냐?

- 이 정도면 확률 조작하는 거 아닌지 까 봐야 하는 거 아님?

- 신화 장비 하나 뽑으려면 최소 2~3억은 드는데 그 정도면 준수하지. 별문제 없을걸?

정상적인 월급쟁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자금력이 필요한 게임이 되어 버린 튀니지. 그렇기에 이 튀니지의 생태계를 지배하고 유지하는 세력은 이런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다수의 유저가 아닌,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보유한……. 그야말로 돈이 썩어 나가는 극소수의 유저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아, 형님들. 이번에 제가 있는 혈맹에서 세력전 진심으로 준비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제대로 한번 해 보려고 대형 콘텐츠 하나 준비했습니다. 1억! 이걸로 신화 무기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

튀니지 방송을 주력으로 먹고사는 100만 구독자 수를 보유한 대형 뮤튜버들과.

[ 제가 사업체 좀 굴리고 있는 게 여러 개 있어서요. 제가 번 돈으로 제가 좋아하는 게임 즐기겠다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상관없죠. 자신의 형편에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뭐 10억이 됐든 100억이 됐든 그게 중요한가요? ]

수십억……. 아니, 수백억을 게임에 쏟아부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고래 유저들 같은 이들로 말이다.

그렇게 극소수의 유저들이 만들어 내는 매출을 통해서 유지되고 운영되는 게임이기에, 운영사로서도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저지르는 불합리함과 횡포에 일반 유저들이 온갖 항의와 불만을 제기하는 민원을 넣어도 그저 묵살하고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튀니지 세상의 원칙이자, 매출을 뽑아내야만 하는 운영사로서의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인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튀니지의 현재 상태에 갑작스러운 이변이 생겨났다.

- 당신들의 추악한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악행을 우리가 막아설 것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혈맹.

[ 푸르른 잎사귀의 자매들 ]

모든 캐릭터가 전부 요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캐릭터와 직업 밸런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비효율적인 조합으로 짜여 있었지만, 이들을 이끄는 수장이 누구인지를 파악한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일곱 번째 가지……? 설마 그 막피나 갈기고 다니는 그 또라이 요정?

- 맨날 혼자만 다니더니 언제 혈맹 만들었대?

- 아니, 그것보다 저 혈맹도 완전히 마쳤는데? 캐릭터가 전부 요정들이잖아?

- ㅋㅋㅋㅋㅋ. 도대체 어디서 자기 같은 놈들만 모아 놓은 거냐?

사냥터 통제라는 아주 기본적인 튀니지의 규칙에 반기를 들고 나서 튀니지를 지탱하는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모두와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던 일곱 번째 가지.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혈맹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튀니지의 게시판은 시끌시끌했다.

[ 푸르른 잎사귀의 자매들? 그냥 모조리 다 털어 버릴 계획입니다. 이미 다른 혈맹에도 다 이야기해 놨어요. 그냥 보이는 족족 막피 걸어도 된다고요. ]

[ 그 미친 요정 놈은 몰라도 다른 놈들은 뭐 만만하겠죠. 혈맹에서 탈퇴할 때까지……. 아니, 캐릭터 삭제하고 튀니지 접을 때까지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복수할 겁니다. ]

[ 다른 혈맹원들도 억 단위로 지르면 어떻게 하냐고요? 흥, 그 정신 나간 요정처럼 수백억 단위로 지른 거면 모르겠는데 그거 아니면 억으로 되겠어요? 우리가 무조건 이기죠. ]

게임 하나에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백억에 달하는 자금을 지른 일곱 번째 가지.

절대 정상의 범주에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이를 갈고 있는 대형 뮤튜버들과 고래 유저들은 그녀가 만든 혈맹에 소속된 일반 혈맹원들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튀니지의 운영사인 MC 소프트를 비롯해 여러 관계사에서 얼마나 이 상황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는지를 말이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도대체 무슨…….”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결제 정보.

그 내역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 MC 소프트의 사장. 김영신은 떨리는 눈동자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그 132개의 신규 계정이 실시간으로 우리 튀니지에서 과금하고 있다는 거지? 그것도 모두가 같은 결제 수단으로……?”

“네. 그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장 비싼 11만 원짜리 패키지 상품을 쉴 새 없이 지르고 있는 132명.

고작 버튼 몇 번 누르면 11만 원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아주 간단하고 신속한 고글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고작 1분 동안 이들이 결제한 금액은 자그마치 3억 원에 달했다.

1분에 3억. 1시간에 180억.

최대 하루 매출이 170억이었던 튀니지의 기록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작 한 시간 만에 그 수치를 넘겨 버리고는 아직도 모자란다는 듯이 무서운 기세로 결제를 이어 가는 이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김영신은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우리 게임을 이용해서 무슨 범죄 조직이 돈세탁이라도 한 거 아냐?”

상식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CTO가 답했다.

“저도 가장 먼저 그런 의심을 했었습니다만, 해당 캐릭터들에게서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부 재화를 인 게임 시스템 내부에서 소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고글과 카드사와의 긴급한 연락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답변도 받았고요.”

“지금 이게……. 문제가 없다고……?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자그마치 180억을 게임에다 돈을 태웠는데?”

그게 말이 되냐는 얼굴로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김영신 사장.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CTO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제가 아는 지인들이 몇 있어서 개인적으로 알아봤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원래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 하지만,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인지 그가 어딘가에서 찾아와 내민 한 장의 종이에는 믿을 수 없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 김철수.

“김철수……? 잠깐만. 이거 설마……?”

평범하다 못해 흔해 빠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

하지만, 그 이름이 가진 또 다른 이명이 무엇인지 눈치챈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렇습니다. 그 132명의 유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멀린의 카드를 이용해서 지금 과금하고 있습니다.”

이건 엄마 카드로 몰래 게임에 현질 하는 자식들 수준이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 * *

“아. 네. 아뇨, 알고 있어요. 문제없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시면 돼요.”

“결제 대금이 4천억을 넘겼다고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 카드 한도 무제한 아니었어요?”

“네네. 돈 모자라면 매지컬 컴퍼니 지분 팔아서라도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카드 분실 당하거나 해킹당한 거 아니에요.”

미친 듯이 알림이 울리는 결제 내역과 함께 계속해서 이곳저곳에서 오는 확인 전화들.

그 전화들을 상대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알리고 전화를 끊으며 나는 진심으로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 요정들의 과금 정신에 탄복했다.

“야……. 그새 4천억 원을 썼다고? 진짜 백 명이 아니라 천 명 정도 있었으면 일주일 만에 아주 대기업 하나 살 정도로 돈을 썼겠네.”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번듯하고 잘나가는 중견 기업 하나는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의 자금을 게임에 쏟아부은 엘븐 킹덤의 엘프들. 그리고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아영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어 왔다.

“…….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짓에다가 돈을 버리는 건가요?”

“쓸데없는 짓이라뇨. 아주 유용하고 가성비 좋은 짓인데요?”

지금 아영과 대화하는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결제 완료 메일.

차곡차곡 쌓여 가는 이들의 빚을 보면서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설명을 이어 갔다.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아스테리아가 하는 걸 보면서 엘프들에 대해서 제가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 그게 뭔데요?”

“이 귀잽이 자식들은 지독한 INFP라는 사실이죠.”

“……?”

자신들의 영역에서 조금도 나오지 않으려고 하고 외부와의 소통이나 이종족과의 접촉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소극적인 성향의 소유자인 엘프. 전혀 경험한 적 없는 지구라는 외딴 세상에 오게 된 아스테리아가 멀린의 정원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뼛속까지 집돌이, 집순이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외출도 안 하고 숲속에 틀어박혀 동식물들이랑 자기들끼리만 놀고 다니는 녀석들보고 제가 뭐 밖에서 나가서 뭐라도 좀 하라고 잔소리하게 생겼어요? 무슨 엄마도 아니고?”

지능이면 지능. 외모면 외모. 신체적 능력이나 심지어 마력 적성까지…….

그 모든 분야에서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는 엘프 종족.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굴려 먹고 써먹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그래야 한다는 그 필요성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각인시켜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엘프들을 외출시키겠다고 모조리 게임 중독자로 만드는 건가요? 일반인은 평생을 벌어먹어도 갚을 수 없는 빚까지 만들어서요?”

“뭐……. 그런 셈이죠.”

“역시……. 악랄해.”

목적이 뭐가 되었든, 이건 너무 과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이 나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알겠으니까 일단 계획이라도 좀 알고 있죠. 도대체 이 엘프들한테 뭘 시키고 싶은 건데요?”

“음……. 뭐 여러 가지로 써먹을 수는 있겠죠. 일단 춤이나 노래에 소질 있는 녀석들로 몇 명 꾸려서 아이돌 그룹 만들어서 연예계에 데뷔시키면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전 지구적인 대스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걸요?”

기본적인 종족 특성에 다른 생명체에 대한 강력한 매혹 효과를 가지고 있는 이들.

그렇기에 아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어마어마한 격변을 가져다줄 괴물들이 되어 줄 것이 분명했다. 전 세계에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며 말이다.

“…….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니죠?”

“설마요. 이건 그냥 부차적인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죠. 그것보다 제가 목적으로 하는 건 다른 곳에 있어요.”

다른 모든 것들을 다 제쳐 두고도 엘프들에게 가장 특화된 힘이자 축복.

그것이 바로 내가 엘프들로부터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이건……?”

“아영도 처음 보죠? 인사해요. 운디네라고 해요.”

내 앞에 푸른빛의 어린 소녀로 형상화한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주변을 날아다니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그녀를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아영은 이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신기하네요……. 마치 산속에서 흐르는 개울가에 손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리 나쁘지 않은 듯, 눈을 감고 운디네와의 교감을 즐기고 있는 듯한 아영.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이제 화성에 자리한 세계수를 통해서 정령들이 이곳에 등장할 수 있을 정도로 정령계와의 채널링이 충분히 강해졌어요. 이제 슬슬 이 세상에 정령사도 육성할 준비도 해야죠.”

대자연 그 자체이자 원소의 본질을 상징하는 존재.

정령(Spirit).

이 정령들과의 강력한 친화력을 선천적으로 무조건 타고나는 종족은 엘프가 유일했기에 이들은 우로보로스에서 새롭게 창설될 학파인 서모너 학파를 이끌기에 아주 제격인 인재……. 아니, 엘재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수들 몇 명 필요하다고 이렇게 모조리 다 빚더미에 앉힐 이유는…….”

“아, 그리고 이 정령들을 잘 활용하면 지금 중국에서 퍼져 나가고 있는 방사능도 깔끔하게 제독시킬 수 있어요.”

“충분히 있군요.”

매지컬 컴퍼니를 비롯해 전 세계가 고민하는 중국의 방사능 오염 문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엘프들이라는 내 말에 아영은 반짝거리는 눈을 빛내며 나에게 물었다.

“UN에서는 대충 정화 작업에 필요한 비용으로 15조 원을 추산하고 있던 것 같은데 이왕 할 거면 그 정도랑 엇비슷하게 빚더미에 앉히는 건 어떨까요? 아니다, 혹시 모르니까 넉넉하게 한 20조 정도를 막 쓰게 내버려 두죠.”

나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이들을 빚의 늪에 빠트릴 계획을 짜면서 묘하게 음흉하고 사악한 웃음을 연신 흘려 대면서.

그렇게…….

MC 소프트는 역대 최대의 매출과 실적을 경신하며 급격하게 폭등한 주가와 함께 시장의 경악과 경탄 속에서 샴페인을 터트렸다.

반기 매출 32조 원 달성이라는 터무니없는 기염을 토해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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