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이호준.
본래 삼진 그룹의 회장이자 평생을 경영자로서 살아오며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왔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통령님. 국제연합의 상임 이사국 선출과 관련해서 긴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다고 미국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제 침체를 대비하기 위해 기재부에서 검토했던 옵션들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 진돗개 해제와 예비군 소집령 해산 조치 완료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측으로 넘어온 중국인들에 대해서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위험한 악마를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한국 영토 안에 끌어들인 일과 관련해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엄포를 넣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님…….”
“끄으으으응!!!!”
온갖 곳에서 끊임없이 날아드는 수많은 보고 사항과 결정해야 할 사안들. 그 무엇 하나 단순하거나 사소한 것 없이 깊은 숙고와 논의를 거쳐야 할 중대한 일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행하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능력의 한계를 처음으로 느껴 보고 있었다.
“골치 아프군…….”
휴가는 고사하고 하루라도 제대로 쉴 틈이 없는 대통령으로의 삶.
물론 한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낮이고 밤이고 온갖 이들에게 불려 다니며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시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처리하고 처리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 이렇게나 많다니.”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보고서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여러 안건들을 처리한 그를 보며 비서실장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이것까지만 처리하고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제도 미국 대통령이랑 화상 회의한다고 새벽녘까지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어제 너무 무리하기는 했지.”
UN의 새로운 상임 이사국이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서로 협력해 국제 사회에서 긍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온갖 낯간지러운 소리를 이어 간 레너드 대통령.
그와 양국의 미래 협력을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다가 꼬박 밤을 새웠던 이호준 대통령은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며 비서실장이 건네주는 보고서 하나를 받아 들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자네 말대로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게 좋겠군. 이것만 간단하게 결정하고…….”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 잠이나 잘 생각을 하는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그는 손에 들려 있는 보고서의 제목을 보고는 말을 뚝 멈추었다.
“자네…….”
“이제 슬슬 이것도 처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고 매번 제일 아래에 보고서를 밀어 넣을 생각이십니까.”
“끄으응…….”
일부러 자신에게 이 보고서를 넘겨주었다는 것을 눈치챈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일부러 지금까지 보고도 못 본 척 뒷전으로 미뤄 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는 연신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멀린의 국방의 의무 문제 처리에 관한 해결 방안 ]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라면 모두가 가야 하는 군대.
이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최강의 대마법사이자 세계를 지킨 수호자이자 영웅이라고 해도 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서 그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그냥 나 말고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한테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면 안 되나? 내가 왜 굳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한테 군대 가라는 소리를 해야 하는 건가.”
이제 겨우 임기가 1년하고도 몇 개월 조금 더 남은 상황.
어차피 멀린도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였기에 아직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가게 되면 그거야말로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일단, 이 대한민국 정부 내에서……. 아니, 아마 이 나라에서 멀린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대통령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으니 조금은 들은 척이라도 하지만 아마 누가 되었든, 다음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아마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불어닥칠 겁니다.”
“…….”
“게다가 이미 일각에서는 멀린을 두고 군대 언제 가느냐고 하는 기사들이 간혹 삼류 언론에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멀린의 병역 문제를 지적하며 그를 공격하는 기사들이 계속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 방치했다가는 계속해서 곪고 곪아 나중에는 심하게 썩어들어 갈 것이 분명한 후환.
그렇기에 비서실장은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 싶은 기색이었다.
“자꾸 그런 문제로 귀찮게 했다가는 한국을 아예 뜨고 다른 나라로 가 버릴 걸세……. 그가 여기 남아있는 이유는 그냥 다른 곳에서 적응하기 귀찮아서 그런 것뿐이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이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법적으로 따진다면 멀린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군대에 가는 것이 맞지만…….”
“그에게 그 의무를 강요했다가 만약 미국을 비롯한 다른 제3국으로 떠나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하고 치명적인 국익의 손실이 될 것입니다.”
“…….”
비서실장의 말에 많은 것을 고민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는 이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론적으로는 내 임기 안에 해결하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무언가를 고민하던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지시했다.
“……. 국무회의를 소집하게.”
“국무회의……. 말입니까?”
“그래. 일단 나는 지금 이 보고서에 나와 있는 옵션들이 마음에 안 들어.”
멀린의 병역 의무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게 깔끔하게 해결할 방안을 1안부터 시작해서 8안까지 마련한 국방부.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관계자와 공무원들이 피를 토해 가며 밤낮을 고민하며 만들어 온 방안들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그의 마음을 당기게 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보더라도 전부 별로인데 멀린이 이 옵션들을 받아들일 리가 있겠나? 최소한, 그가 혹할 만한 제대로 된 당근이라도 가지고 가야지 이야기라도 하지.”
이것보다는 더 좋은 제안을 준비하라는 이호준 대통령의 지시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옵션이 뭐가 있는지 다시 한번 검토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가고 홀로 집무실에 남은 이호준 대통령.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그의 손에 들린 이 보고서의 문제가 얼마나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또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호준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끄으응…….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다른 사안을 검토하기 위해서 다른 보고서를 든 이호준 대통령. 그렇게 오늘도 청와대 집무실의 불은 늦은 새벽 시간이 될 때까지 꺼질 줄을 몰랐다.
* * *
이호준 대통령이 오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고민하는 사이.
안건의 주인공이자 모든 사태의 당사자인 멀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으음……. 아영?”
“왜 그러세요?”
“혹시 최근에 휴대폰으로 뭐 했어요?”
“뭐요? 특별하게 한 건 없는 거 같은데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아영.
하지만 나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게임 같은 거 한 적 정말 없어요?”
“……. 장난하세요? 제가 그런 거 할 시간이 있어 보여요?”
조금도 쉬지 못하고 매일같이 일에 시달리는 아영.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게임을 했냐고 추궁했지만, 곧장 발끈하며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손에 든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그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결제액인데요?”
“이게 뭔데요?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너무 많은 0의 향연에 눈을 가늘게 뜨며 하나하나 그 수를 세어 보기 시작한 아영.
그리고 이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배……. 백억? 지금 이번 달에만 백억이 결제됐다고요?”
“……. 전혀 모르셨나 보네요?”
반응을 보아하니 나보다도 더 깜짝 놀라는 아영. 그리고 다급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결제 기록을 살펴보기 시작한 그녀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지금……. 이 많은 결제가 전부 튀니지라는 게임에서 이루어졌다는 건가요?”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그 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결제 이력.
평소에 사치라고는 부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싸돌아다니는 나나, 거의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며 법인 카드로 대부분을 결제하는 아영이 내 카드를 가져다가 자그마치 백억 원이나 되는 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었기에 나는 일순간 해킹을 의심했다.
“용용아.”
[ 누가 주인의 카드를 긁었는지 찾아보라는 거지? 잠깐만 기다려 봐. ]
내 말에 알아서 척척 움직이기 시작한 용용이. 그리고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엥……? ]
“왜. 찾았어?”
[ 어. 찾기는 찾았는데……. 이거 해킹이나 도용은 아닌 것 같은데? ]
“그게 무슨 소리야?”
[ 잠깐만……. 직접 보여 줄게. ]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집무실 안의 놓여 있는 92인치 초대형 TV가 켜지더니 어느 한 뮤튜버가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방송이 틀어졌다.
[ 아! 형님들! 미친 요정이 드디어 떴습니다! 우리 암행 혈맹과 육포 혈맹을 비롯해 21개 연합 혈맹에 전면전을 선포한 저 요정 놈의 모가지를 오늘 반드시 따고야 말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
압도적인 1위 매출을 자랑하는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튀니지.
돈을 넣으면 넣을수록 캐릭터가 한없이 강해지는 악랄하고 사악한 과금 구조를 가진 이 튀니지에서는 모두가 경쟁자이고 혈맹끼리는 대부분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이 벌어지는, 일반 라이트 유저가 감히 손을 대기에는 너무나도 하드코어한 세상.
하지만, 이 험악하고 정 없는 세상에서 모두가 연대하고 힘을 합치는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와……. 저 요정 진짜 뭐냐? 도대체 돈을 얼마나 지른 거야.
- ㅋㅋㅋㅋㅋ 저렇게 수십 명이 떼로 달려들어서 동시에 공격하는데 대미지 1씩만 박히는 거 실화냐?
- 무한 스턴도 안 먹히네. 도대체 속성 저항이 얼마나 높다는 건데?
- 모든 장비가 초월 등급이라고……? 저거 한 파츠 뽑는 데만 최소 10억 아니었나?
- 도대체……. 현실에서 뭐 하는 인간일까? 만수르 같은 인간 아니냐?
온갖 혈맹들이 연합해 수백 명이 몰려드는 이 전투에서 홀로 외로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어느 한 요정. 하지만 외롭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요정이 화살을 한 번 쏠 때마다 누군가가 회색빛으로 물들며 사라져 갔고, 그녀의 스킬이 하나 발동할 때마다 수십 명의 캐릭터가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 아오! 저 또라이 같은 미친 요정. 진짜 더럽게 쎄네! ]
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한 방에 죽어 버린 뮤튜버. 그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담배를 꼬나물고는 중얼거렸다.
[ 시청자님들 중에서 저게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겠는데, 저 요정 진짜 제대로 미친 새끼예요. 누구든 혈맹에 가입된 사람만 보면 그냥 무작정 공격하고 통제하고 있는 사냥터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냥 막피 갈긴다니까요? 아니, 통제를 아예 하지 말라는데 그게 튀니지에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 예? ]
[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라는지 아세요? 인간의 그 추악함을 바로잡기 위해서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하여간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아주 컨셉질은 제대로라니까요? 말투도 아주 튀니지 요정 그 자체예요. ]
튀니지의 기본적인 룰을 어지럽히고 있는 정신 나간 요정.
그로 인해서 피해가 막심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한탄하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문득 자신에게 덤벼든 모든 인간을 몰살시키고 홀로 남아 한마디를 남기는 그 미친 요정의 채팅을 보고야 말았다.
[ 일곱 번째 가지 : 푸르른 대자연의 일족으로서,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자비란 없어요! ]
어딘가 익숙한 닉네임과 인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말투.
그리고 그것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내 옆에 서 있는 아영은 창백해진 얼굴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중얼거렸다.
“잠깐……. 그럼 그때 나한테 인앱 결제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게……. 설마……?”
그 아름다운 외모와 가냘픈 체형으로 폭력이라도 전혀 모를 것 같은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던 아스테리아. 일곱 번째 가지이자 엘프 일족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이 지구에 온 그녀가 게임 속의 폭군이자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내 신용카드로 자그마치 백억 원이나 되는 돈을 고작 두 달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동안 튀니지에 태워 버린 그녀. 그것도 악마가 출몰해서 중국을 쓸어버리는 이 인류의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정신없는 틈을 타서 저지른 짓이었기에 황당함은 더더욱 컸다.
“돈을 버는 인간이 따로 있고, 쓰는 엘프가 따로 있었네요……?”
화는 딱히 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이라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백억원을 쓴 것 정도야 나에게는 재벌 그룹 총수가 사탕 하나 사 먹은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누가 봐도 충분히 발칙한 짓을 저지른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요정의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며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 정신 나간 요정을 어떻게 해야 하려나……?”
사악함으로 잔뜩 물든 눈을 반짝거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