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지구를 침략하는 사악한 악마를 물리치고 난 이후.
전 세계는 어마어마한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어떻게든 평온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 빌어먹을 그 중국 놈들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 중국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이들은 결코 무고하고 죄 없는 자들이 아닙니다. 중국 정부의 만행을 묵인하고, 동조하며, 협력한 인류의 적이나 다름없는 종자들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쓸어버려서 그 후환을 미리 제거해야 합니다! ]
[ 세간에 퍼지고 있는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미혹되거나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유일한 신은 위대하신 하느님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여러분을 유혹하는 마귀들의 농간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기도합시다. 여러분! 할렐루야! ]
[ 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의 생산 기능이 모조리 파괴된 덕분에 앞으로의 세계 경제에 심각한 겨울이 찾아오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의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13억이나 되는 인구가 사라지고, 어마어마한 공산품과 식량을 생산하고 소비하던 주요 시장이 사라진 탓에 세계 전체의 수요와 공급의 글로벌 체인망이 깨어져 막대한 혼란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
[ 국제 연합……. UN이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상임이사국을 선출하기 위한 최종 결정을 눈앞에 두고 막판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언론에 유력한 상임이사국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인도, 그리고 독일이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게 된다면, 앞으로 UN은 7개의 상임이사국을 보유한 형태로 새롭게 개편되며, 이는 앞으로 국제 정치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 세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혼란이 있었고, 어떻게든 이를 수습하고 안정을 되찾으려는 정부 지도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계속 이어졌지만, 상황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 사태도 다 정리됐는데 예비군 소집 제한은 왜 안 풀어 주냐 이 망할 새끼들아!
- 아니, 물가 실화냐? 도대체 일반 서민들은 다 뭐 먹고살라고?”
-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구원을 비십시오!
- 폭동이다! 폭동!
사방에서 벌어진 사재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필품들은 씨가 말라 버렸고, 중국에서 수입되던 막대한 양의 식량을 비롯해 주요 원자재가 부족해져 공장들이 문을 닫자 자연스럽게 물가는 폭등하고 실업자는 급증했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경제 침체로 인해서 직장을 잃고 궁핍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크고 작은 혼란들이 이어져만 갔다.
- 일가족 모두를 비롯해 32명의 이웃을 학살한 20대 여성. ‘악마’가 저지른 짓이라 주장.
- 긴급 속보. 새로운 악마의 등장인가?
- 공포에 질린 사람들. 혼란스러운 세상이 또 다른 악을 불러온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인류의 위협. 해결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비록 중국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은 최상급 마족은 아니었지만, 최하급과 하급에 달하는 마족들이 궁핍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벼랑 끝에 선 인간들을 유혹하며 간간이 세계 곳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놈의 인간들은 학습 능력이라는 게 없다니까? 그렇게 당해 놓고 또 이런다고?”
중국 사태를 해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스멀스멀 또다시 기어 나오기 시작한 악마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용용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그렇게 대놓고 초대형 사고를 쳤는데 당연한 거 아냐? ]
[ 최상급 마족이 허락도 없이 자기 멋대로 강림해서 뛰쳐나가고, 그걸 막겠다고 다리엘의 신성을 이 땅에 직접 강림시켜서 완전히 소멸시켜 버렸는데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겠냐고. ]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채널링조차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 어느 쪽에서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회색지대에 놓여 있었던 지구. 하지만 이제는 한판 아주 뜨겁게 벌이면서 천계와 마계 두 곳 모두가 면밀하게 주시하는 세상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용용이가 살아가던 또 다른 차원의 세상. 판달리아와 같이 말이다.
“결국에는 기본적으로 악마가 출몰했을 때를 대비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말이긴 한데……. 생각보다 그 방법이 복잡하다 이 말이지.”
고작 최하급 악마 하나 퇴치하는 것에 일일이 내가 개입할 수는 없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빌려서 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덜컹.
전 세계에서 모여든 159개국의 정상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끄럽게 웅성거리던 이들은 문이 벌컥 열리며 등장한 나를 보자 이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입을 다물며 모두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반갑습니다. 멀린입니다. ]
인간이지만, 감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규격 외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빛으로 말이다.
[ 모두가 다 바쁜 사람일 테니까 용건만 이야기하죠. 아,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우로보로스의 확장 이전 건설. 우라노스 프로젝트에 동의하고 도움을 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덕분에 이 지구의 마법 발전은 몇 단계나 더 진일보할 수 있게 되었겠네요. ]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몇몇 이들에게 미소를 날렸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불안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며 내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제가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는 한 가지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
[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전 세계가 아주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미국이나 유럽, 혹은 몇몇 부유한 선진국들은 아직은 괜찮은 편이지만 이번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동남아 지역 일대는 식수조차 오염되어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식량을 비롯한 여러 생필품은 모자라는데, 직장에서는 쫓겨나서 돈은 벌 수 없고……. 아이는 아프고, 사방에 강도와 약탈자가 판을 치고 있죠. ]
[ 그야말로 악마가 비집고 들어오기 딱 좋은 환경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죠? ]
중국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구르고 굴러서 전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거대한 똥 덩어리로 커져 버린 상황.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정곡이 찔린 듯, 몇몇 정상들은 불편한 기색으로 연신 헛기침했다.
[ 참 난감한 상황이라는 건 이해해요. 경제 문제가 그렇게 손쉽게 마법처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것도 인구 대국이자 전 세계 경제에서 커다란 공급망 체인 역할을 하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면, 그건 여러분의 통치력과는 별개로 그 누가 와도 답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요. ]
[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이 사태를 가만히 방치하거나 방관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실 겁니다. ]
근묵자흑(近墨者黑).
깨끗한 천에 물들어 가는 검은 먹물처럼, 하나의 작은 악은 더 커다란 악을 불러온다.
주변의 모든 이들을 공포와 절망에 구렁텅이로 빠트리며, 이들의 비극을 양분으로 삼아 강해지고 더더욱 강해지기에, 악마 출몰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과 상황 발생 시의 빠르고 신속한 대처였다.
“그래서……. 우리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자신들도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지적만 하고 있자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느 한 정상.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 여러분도 다들 아시겠지만, 악마와 계약을 한 이상 그 영혼은 그걸로 끝이에요. 본인이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고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노예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에요. 물론……. 아주 간혹 몇 가지 꼼수가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훨씬 편할 테고요. ]
[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들을 상대하고 처리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
“!!!”
한 손으로 목을 쓱 긋는 시늉을 하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깨닫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 구속? 재판? 그런 거 할 시간도 없어요.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 현대 인류의 사법 체계는 참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죠? 한 번에 몇 년이 걸리는 재판을 자그마치 세 번이나 받아야 하고, 사형을 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수십 년동안 하염없이 가둬 두기만 하고 말이죠. ]
각성자들의 처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몇 번 언급했었던 이야기.
하지만 이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발견 즉시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 숨어서 은밀하게 이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일 사악한 계획을 꾸미기 시작하니 말이다.
[ 앞으로 그 누구든 악마와 계약하거나 접촉한 정황이 발견되는 인간은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으로 처단할 필요가 있어요. 사법권이니 어쨌다니, 공소권과 관할권이 저쨌다니, 주권 침해니 내정 간섭이니 이딴 헛소리 하면서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
[ 그게 4살짜리 어린 아이가 되었든, 80대 다 늙은 할아버지가 되었든, 대통령이든 유명 연예인이든, 나이와 성별, 신분과 지위 그 어떤 것도 막론하고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소리죠. 그들은 어차피 겉에 뒤집어쓴 허물만이 그럴 뿐, 인간이 아니라 이미 악마의 하수인인 ‘마인’으로 전락해 버린 타락한 존재에 불과하니까요. ]
결과적으로 그들을 모조리 다 죽이라는 내 말에 누군가가 다급하게 손을 들며 따져 물었다.
“그……그건 너무 비현실적이오. 그런 식의 조치를 했다가는 분명……. 과거에 벌어졌던 마녀사냥과 같은 일들이 팽배하게 될 것이오!”
이미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는 인류.
단순한 원한이나 재산 때문에 이웃이나 가족을 마녀로 모함하고 몰아가며 수없이 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고문했던 중세. 그때와 같이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을 멋대로 악마로 몰아세우며 죽이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에 여러 사람이 동의한다는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누가 본인들보고 처단하래요? ]
“뭐……뭐요?”
[ 이 일에는 아주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 누구보다 추악한 악의 냄새를 잘 탐지하고, 사사로운 탐욕에 일을 행하지 않으며, 오직 공명정대한 정의를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서 헌신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말이죠. ]
내가 손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책상 위에 바쁘게 올려놓기 시작한 미국 정부의 사람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전 세계 정상들에게 나는 제안했다.
[ 따라서, 저는 중국의 사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그 대비책으로서, ‘마인’의 탄생을 방지고 사건 발생 시의 즉각적인 조치와 추후 후속책에 대한 국제 협약을 하나 제안하고자 합니다. 국가의 주권과 관할권을 초월한……. 범국가적인 악마 퇴치 단체의 창설을 말이죠. ]
“악마 퇴치 단체……?”
“그게 무슨…….”
용용이가 살아가던 세계. 판달리아.
법보다 칼과 주먹이 가까운 이 험난한 세계로 이미 오래전부터 마족들의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이 여태까지 마왕이 강림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을 상대하는 전담 담당 일진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계와 상극으로 불리는, 다리엘을 의지를 이 땅에 실현하는 영광스러운 빛의 제국.
신성 교단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지구라는 새로운 영역에 그 머리를 들이대고 있는 이 악마들을 다시 지옥으로 집어넣기 위해서, 새롭게 그 싹을 튀어 내고 있는 다리엘의 신앙을 전폭적으로 밀어줄 생각이었다.
[ 신성 교단. ‘여명의 빛(Light Of Dawn)’을 창설하고, 이 지구상에 나타나는 모든 악마와 이들에게 영혼을 판 인류의 적들을 심판하는 겁니다. ]
[ 불완전하고 조잡한 인간의 법과 규율이 아닌, 진정한 신의 뜻으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