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용용이를 이용해 마나 링크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전 세계의 통신망을 해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저질렀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은 잠잠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깟 ‘사소한’ 일 하나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 전 세계에 마나가 아닌 밝혀지지 않는 새로운 힘을 발휘하는 각성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느 특정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가진 힘은 ‘다리엘’이라는 신이 내려 준 은총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
[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신성력’이라는 힘을 인정했습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각성자들과 비슷하게 뉴욕에서 벌어진 악마 사태에서 비슷한 힘을 발휘하는 소년을 한 명 발견했으며, 당시에도 그 힘을 각성하는 과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비교적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들이 발휘하는 힘은 중국에서 출몰하는 죽음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 이 세상에 진정으로 신이 등장한 걸까요? 정말 ‘다리엘’이라는 이름의 신이 존재하고 그분께서 우리 인류에게 은총을 내려 준 것이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있었던 종교들은 전부 뭐라는 말입니까? ]
초월적인 신격의 신성(神聖)을 빌려 수많은 이적을 발휘하게 하는 신성력의 발현.
이것을 보며 전 세계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 우리들의 아버지인 다리엘 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
[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저것은 사탄의 소행입니다! 여러분! ]
[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유일한 신은 오직 알라뿐이다! 알라는 위대하다! ]
[ 나무아미타불. 부처를 믿는 것은 그의 가르침인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
[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탄의 혓바닥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보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기존의 종교 단체들. 이들은 동요하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바탕 내부 단속을 벌였지만, 그런다고 모든 신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아아아……. 신이시여. 지금까지 어디 계셨던 것입니까……. ]
[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다리엘 님……. ]
기존의 믿음을 저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신도들과 이를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종교 단체들. 이 모든 상황은 가히 ‘마법’이 처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비견될 정도로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진짜 개판이네…….”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기존의 종교 단체들. 그리고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결국 중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전부 다 왔나요?”
“네! 지금 우로보로스 대강당에 착석해서 대기 중이에요.”
“종교인들은요?”
“최대한 많이 불러 모으려고 하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국내 종교인들 몇 명뿐이에요.”
대강당으로 온갖 기자들을 비롯해 이해 충돌의 당사자나 다름없는 종교인들을 모두 불러 모은 나는 아영의 말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뭐…….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럼 시작할까요?”
펄럭.
마법사 복장으로 차려입고 망토를 휘날리며 무대에 오르려고 하자 아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 복장으로 나가시게요……?”
“왜요.”
“아니……. 자리도 자리인데 조금은 진지하게 양복이라도 입고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차피 마법도 못 쓰는 상황인데 왜 굳이 마법사 복장을 고집하냐는 아영.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런 그녀의 물음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여기는 우로보로스거든요? 마법 학교에서 이거 말고 더 단정한 복장이 어딨다고 그래요?”
그렇게 황당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영을 뒤로하고 강당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나는 일순간 눈이 멀었다.
“멀린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플래시가 터져 나오는 상황.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아니, 광기에 가까운 기자들의 취재 열기는 내가 하는 말 하나, 몸짓 하나까지도 모조리 기록해 기사로 써 내려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엄청나네.”
[ 당연한 일이겠지. 이 인류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인 일일 테니까. ]
인류 문명이 생기고 수많은 종교가 탄생한 이래로 최초로 그 힘이 증명된 상황. 그렇기에 나는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는 기자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해 나갔다.
[ 다들 표정을 보아하니 하고 싶은 말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아 보이네요. ]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 마치 먹이를 달라며 어미 새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한 아기새와 같은 표정의 기자들에게 나는 히죽 웃으며 무제한 끝장 Q&A를 시작했다.
[ 질문 시간도, 횟수도 무제한입니다. 오늘 궁금한 건 모조리 다 끝장내고 가도록 하세요. ]
* * *
농담이 아니라 정말 수천 개도 넘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질문을 던진 기자들.
엉뚱하거나 터무니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대우주의 진리를 아주 예리하게 파고들어 핵심을 꿰뚫는 질문들까지 아주 각양각색이었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궁금해한 사실은 신성력이 어떤 식으로 작동(作動)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 기존에 이 지구상의 종교들은 무엇이 맞고 틀리다 할 수 없어요.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린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모든 영혼은 저마다의 업(業)을 가지고 있고, 그 업의 무게에 따라 정해진 운명(運命)을 가진 채로 자기의 삶을 살아가죠. ]
[ 그리고 그 운명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은 새로운 업(業)을 만들어 가죠. 누군가는 악업(惡業)을, 누군가는 선업(善業)을 쌓아 가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음 생의 운명이 형성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몇몇 종교에서 소위 ‘윤회’라고 부르는, 명계의 관할 아래에서 관리되고 운영되는 거대한 순환의 고리(The Greatest Entropy)죠. ]
시공간을 초월하여 대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영혼을 관리하는 주체인 명계.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나는 흥분해서 미친 듯이 타자를 두들기는 기자들에게 말을 이어 갔다.
[ 하지만……. 그 영혼의 업이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쏠리게 된다면, 그때는 이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게 되죠. ]
어느 한 영혼이 한계 이상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완전히 타락해 버리거나, 혹은 모든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겨 내고 진정으로 모든 만물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거나.
기존의 격을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러 한쪽으로만 그 방향성이 쏠리게 되었을 때…….
이들의 영혼은 중립인 명계가 아닌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되었다.
[ 우리가 소위 천국과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의 존재들과 접촉하고 이들의 힘을 빌리는 일종의 계약(契約)이 성립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인 이적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수많은 죽음의 군단을 부리는 악마가 될 수도……. 아니면 다 죽어 가는 병자를 말끔히 치료하는 성자가 될 수도 있죠. ]
다시 말해서 천상과 계약된 이에게만 허락되는 권능인 신성력. 내가 설명하는 내용들을 잠자코 들으며 적고 있던 어느 한 기자가 손을 들며 물었다.
[ 그 말씀은…….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 신성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라는 것 같군요? ]
[ 그럼요. 신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호구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한없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철한 재판관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 ]
[ ……? ]
[ 혹시나 해서 말해 두겠는데, 단순히 신을 믿는 것만으로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고 강력한 힘을 내려 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신은 여러분의 징징거림에 뭐든 다 들어주는 그런 존재는 아니니까요. ]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달려들어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줄이 잔뜩 서 있는 인기 클럽의 정문과도 같이, 천상의 기준은 엄격하고 또 철저했다.
[ 단순한 신앙심 이전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선을 실천해 왔어야 하죠. 수많은 유혹과 욕망을 이겨 내고 진정으로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선을 아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잖아요? ]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고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학교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동급생을 위해서 대신 얻어터지더라도 맞서 싸워 주고……. 자신의 수중에 오늘 저녁밥 먹을 돈도 없으면서 있는 돈을 다 털어서 길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에게 건네주고 더 나아가 전 재산을 다 털어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까지…….
우리가 소위 ‘호구’라고 부르는 미련하고 우직한 이들이 진정으로 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주 유능하고 참된 인재들이었다.
[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다……. 불교에서 이런 말이 있죠? 멋들어지고 웅장한 교회나 절에서 풍요로운 삶을 보내면서 강단에서 몇 마디 하면서 신도들을 감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행’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리어 추악하고 온갖 썩은 내가 풍기는 사례도 많겠죠. ]
신도들을 대상으로 온갖 추악하고 악랄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신부가.
교회를 새로 건축하겠다며 거둔 어마어마한 액수의 성금을 횡령해서 호의호식하는 목사가.
고기와 술을 먹으며 온갖 도박과 노름을 하고 다니는 승려가.
고귀하고 드높은 천상의 힘을 빌어다 쓸 수 있는 권능을 거머쥘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악마와 계약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 있는 가정이었다.
[ 그렇기에 저는 지금 전 세계의 종교계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이적’을 보고도 반발하며 애써 부정하려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평생을 신을 섬기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이들이 일개 신도가 발휘하는 신성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힘들겠죠. ]
용용이가 제공한 찌라시에 따르면, 바티칸에 저 높으신 교황이나 추기경들마저도 다리엘을 향한 기도를 했음에도 단 한 줌의 신성력도 발휘하지 못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상황.
그렇기에 내 말에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는 듯, 몇몇 종교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 제가 지금 전 세계의 종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태양을 하늘로 가리려는 같잖은 시도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다고 신이 여러분에게 은총을 내려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
[ 자신의 부덕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백의종군하여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진심으로 모든 욕망과 탐욕을 저버리고 가장 고통받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을 베푸세요. 가식과 위선을 저버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할 때……. 여러분은 비로소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될 테니까요. ]
수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피어나는 해탈.
단순한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영혼의 본질적인 풍요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나는 모든 설명을 마무리했다.
[ 자……. 그럼 이제 질문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네요? ]
자그마치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끝장 Q&A.
그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 기자들을 향해 나는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만 기자 회견을 마치려고 하는 그 순간, 어느 한 기자가 돌연 손을 들었다.
[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중국에서 창궐한 언데드 군단이 동부 지역 일대 전체를 장악하고 현재 여러 개로 나뉘어 동남아 일대와 인도,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까지도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기존의 언데드 병력에 더해서 무참히 학살당한 중국인들의 어마어마한 시체들이 합쳐지면서 자그마치 수억에 달하는 규모로 늘어난 언데드 군단.
이들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아직 장악하지 못한 중국의 일부 지역과 더불어 다른 국가의 국경지대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 기자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 신성력을 가진 이들을 앞세우면 이 악마들의 공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자그마치 하나의 군세만 해도 수천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언데드 군단.
과연 이들을 막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가득한 표정의 기자를 보며 나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당연히 못 막죠. ]
[ ……? ]
그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아니, 무슨 신성력 좀 쓸 수 있다고 악마는 모조리 다 퇴치하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하급 좀비 정도는 몰라도, 데스 나이트 정도 되는 녀석들은 상급 사제나 팔라딘 여럿이 붙어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언데드들이에요. ]
[ 이제 막 신성력이 뭔지 깨달은 이들보고 상대하라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라는 말이나 다름없죠. ]
[ 그럼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못 막는 건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까……? ]
마치 그럼 어쩌라는 거냐고 따지는 듯한 기자의 물음.
그리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그럴 리가요. 우리에게는 아주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 있는걸요? ]
[ 예……? ]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멍청한 표정으로 되묻는 기자.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언데드들의 진군을 막기 위한 아주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진짜 아이러니하기는 하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돌아왔지만,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필요악.
과학 기술의 문명이 만들어 낸 최악의……. 하지만 최강의 병기.
미국과 러시아에서 거의 강제로 봉인시켜 둔 ‘그것’을 꺼내라고 나는 인류를 향해 주문했다.
[ 핵 쓰면 되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