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죽음의 군단.
수백만……. 아니 수천만에 달하는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언데드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중국의 심장부이자 수천 년에 이르는 찬란한 역사를 가진 수도. 베이징이었다.
[ 산 자의 추악한 냄새가 느껴지는군.]
[ 우리들의 한과 분노를 느끼며 처참하게 죽어라. ]
[ 크크크. 아주 싱싱한 고깃덩어리들이로군. ]
베이징이 처음 보는 흉측한 괴물들에게 공격당하는 상황. 고작 수십만 명에 불과한 수도 방위군 따위가 지켜 내기에는 그 수세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기에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고 있던 베이징의 시민들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죽음의 군대에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끄아아악!”
“흐아아아앙! 엄마아아!!”
“자기야! 정신 차려! 제발!”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끝도 없이 들려오고 새빨간 피가 베이징의 바닥을 물들인다.
공포에 가득한 눈빛으로 죽어 간 흉측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음산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뿌드드득. 뿌득.
그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베이징 전체를 잠식해 나가는 검은색의 대지. 데스 필드.
죽음의 안식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저주의 기운이 죽은 이들이 몸을 누인 땅에 물들자, 이들은 하나둘씩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 그으으으으……. ]
[ 키키킥. 키키키키키 ]
방금까지만 해도 사랑하던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던 부모가, 자식이, 연인이…….
흉측한 좀비가 되거나 새하얀 백골의 해골 병사가 되어서 새로게 재탄생하는 순간.
그렇게 계속해서 죽음의 군세가 빠르게 늘어 가고 있는 모습은 이미 중국 정부가 모든 통제력을 잃은 그 순간부터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생생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세상에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으으으…….”
베이징의 수도가 죽은 자들로 인해서 함락되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전 세계 인류.
그리고 그 모두는 경악했고, 두려움을 느꼈다.
-충격! 완전히 파괴된 수도 베이징.
-좀비가 현실에 나타났다?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다는 제보 빗발쳐.
-중국 정부가 실험 중인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이라는 괴소문 확산.
-공포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지금껏 상상해 보지 못한 악몽과도 같은 사태.
전 세계가 공포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전 세계의 수장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모든 상황을 정리하며 혼란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 긴급 속보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사태가 단순한 테러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백악관에서 발표한 긴급 성명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언데드 아웃브레이크’라고 언급했으며 과거 뉴욕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이 악마가 등장한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경위로는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던 군사 기밀 프로젝트. ‘키메라’와 관련한 실험 때문으로 보인다며 관련 증거 자료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
이게 지금 무슨 일이고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인지 그 경위를 상세하게 밝히며 모두에게 상황을 이해시켰고.
[ 세계 각국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모든 국경을 폐쇄하는 비상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중국으로 향하는 모든 입국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전면 차단되었습니다. 이에 중국을 벗어나지 못한 외국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어마어마한 수의 탈출 인파가 인도나 러시아, 동남아 일대의 주변국 국경으로 몰리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국제 사회 전체가 피난에 필요한 구호 조치를 지원할 계획을 준비 중입니다. ]
죽음의 군대의 군세를 늘리지 않기 위한 억제책을 마련했으며.
[ 중국에서 발생한 사태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주변국들이 군사 대비 태세를 일제히 상향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데프콘 1을 발령했으며,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군 제7함대를 비롯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략 자산이 동북아시아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
[ 이호준 대통령이 오늘 긴급 성명문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사 동원령을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은 모든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철통같은 경계 태세를 이룰 것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대한민국의 영토를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인류 나름대로 이 지구에 처음으로 도래한 절멸의 재앙에 저항하기 시작한 상황.
하지만 그러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안정을 되찾고 일사불란하게 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 각성자들에 대한 강제 동원령이 처음으로 발동되어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조치가 최근 신설된 ‘각성자법’에서 규정한 국가와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비상사태에 따른 것이므로 문제가 없단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며 동원령에 불응하는 각성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
[ 대형 마트를 비롯해 상점가에서 사재기 행위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상점들은 라면이나 휴지와 같은 생필품들의 가격을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올려 큰 공분을 사고 있으며 영업을 일시 중단한 은행 앞에는 맡긴 돈을 찾으려던 사람들의 대규모 인파가 격렬하게 항의며 한때 심각한 상황까지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
[ 미국에서 크고 작은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종말을 예언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주변 상점가를 약탈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고 있으며, 그 어떤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도 좌시하지 않고 엄벌할 것임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
동원령을 거부하고 잠적하는 것을 넘어 생필품 사재기에 폭동과 약탈까지…….
그야말로 곳곳에 숨어 있던 온갖 인간군상들이 튀어나와 자기 살길만을 모색하고 있는 이 개판 오 분 전 상황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다를 게 하나도 없네.”
[ 뭐가……? ]
“인간 말이야.”
과거, 수백, 수천 발의 핵미사일이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을 향해 날아가는 멸망의 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용용이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인류 전체가 중대한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제대로 결집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네. 핵무기로 인한 멸망이든, 마왕의 강림으로 인한 멸망이든. 똑같이 자기 혼자 살길 찾아보겠다고 온갖 추한 짓은 다 저지르고 다니는 건 완전히 똑같아.”
나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국들이나 적극적으로 군사적 태세를 갖추며 대처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이외의 국가들은 전력을 다해 협력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다들 속내는 그러지 않았다.
[ 안 그래도 난민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중국인 난민들을 받으라고? 어차피 우리 유럽하고는 특별하게 관련 없는 문제이지 않나. 적당히 구색만 맞춰 주도록 하게. ]
[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성자들의 전력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물자 지원과 일반 병력의 지원으로 보내고, 각성자 지원 인원은 최소한으로 축소하도록 하죠. 어차피 우리가 아니더라도 미국이나 한국의 우수한 각성자들은 많지 않습니까? ]
[ 이건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습니다. 단순히 그 언데드라는 것들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중국 국경을 넘어서 이들을 소탕하게 된다면 추후 그곳을 우리의 영토로 편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국과의 국경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되겠죠. ]
어떻게든 손해는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할 방법을 찾아 고심하는 이들.
그리고 그 모든 내부 상황을 용용이의 감시망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던 나는 이들 대부분이 공통으로 떠올리는 한 가지 생각에 매우 어처구니가 없었다.
[ 어차피……. ]
[ 뭐가 되었든……. ]
[ 멀린이 해결해 주지 않겠는가? 과거 뉴욕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
[ 멀린이라면 이 사태를 별다른 문제 없이 마무리해 주지 않겠습니까? ]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마지막에 튀어나오는 한 가지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돌이켜 보면 내가 문제였어.”
[ 주인이 문제라고……? ]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용용이.
하지만 나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지금까지 인간들한테 너무 친절하게 대해 줬던 거야.”
[ 뭐……? ]
“잘 생각해 봐. 지금까지 내가 인간들한테 얼마나 잘해 줬어? 마법이 뭔지 잘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뮤튜브에다가 온갖 마법 강의까지 매일매일 만들어서 제공해 줘. 학교를 설립해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과정까지 설립하고 개인 교습까지 시켜 줘. 거기다가 각성자들의 처우도 사전에 확실하게 정립해 줘서 마녀사냥이나 시빌 워 같은 상황도 안 찍게 만들어 줬지.”
“러시아의 폭주로 일어날 핵전쟁도 막아 줘. 환경 파괴에 주역인 화석 연료도 안 쓰게 만들어 줘. 저번에는 하다 하다 뉴욕에 갑자기 튀어나온 악마 퇴치까지도 다 해 줬잖아?”
이 인류에게 닥쳐온 수많은 혼란과 위기 상황 속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해가며 피해를 최소화하며 인간……. 아니, 지구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는 수호자이자 위대한 대마법사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온 멀린.
그리고 그러한 노고들 덕분에 이 지구의 인간들에게는 아주아주 그릇된 관념이 하나가 머릿속에 박혀 버리고 말았다.
자기들이 싸지른 모든 똥을…….
멀린이 전부 말끔하게 치워 주고 정성스럽게 뒤처리까지 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말이다.
[ 그러니까……. 주인이 너무 인간들한테 잘해 준 게 잘못이라는 말이야? ]
사람들 앞에다 거침없이 X간을 외쳐 대던 주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건 정말로 심각한 문제야.”
[ 그래……? ]
모든 문제를 나한테 의존하려는 인류. 그리고 이건 단순히 마법에 잘 몰라서 그러는 범주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버려지는 쓰레기들과 소비되고 낭비되는 무수한 자원과 파괴되는 생태계. 비록 매지컬 컴퍼니의 천문학적인 금력에 의해서 과거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 인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한정된 자원이 당연하기라도 한 듯이 아낌없이 써 댔고. 지구의 인구는 어느새 80억을 넘어서고도 무서운 기세로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아무리 지구가 풍요로운 자원을 가진 축복받은 행성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한계. 그리고 그 한계에 도달했을 때 벌어질 일을 떠올리며 나는 이브가 말했던 경고가 단순히 지금 이 상황 하나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이 세상은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거든.”
그 어떤 강대한 세력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향력과 무력을 가진 규격 외의 존재.
나에 의해서 본래 예정되었던 핵전쟁의 멸망은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또 다른 멸망의 트리거를 작동시킨 인류. 설사 이번 상황을 안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세 번째, 네 번째의 새로운 멸망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했다.
[ 그러니까……. 주인의 말은 이제 이 인류가 자기 혼자 자폭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줘야 한다는 거야? ]
“그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뭐든 다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하는 저 배은망덕한 버릇은 고쳐 줄 필요는 있지.”
자기 똥은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신세계의 인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지금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야.”
앞으로 최소 40일 이상은 마법을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상황.
단순한 신체적 부담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법칙’과도 같이 작용하고 있는 금제였기에 이브가 언급했던 절대적인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의 나는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 ‘김철수’에 불과했다.
[ 그러면……? 이미 마계가 이 세계에 침식하기 시작했는데 지켜만 보려고? ]
“설마.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는 건데?”
히죽 웃으며 나는 TV에 나오고 있는 어느 한 부랑자가 들고 있는 피켓을 바라보았다.
[ 예수 천국 불신 지옥 ]
[ 구원받고 싶은 자. 지금이라도 회개하라! ]
지옥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고 싶다면 신에게 구원을 구걸하라는 어느 한 자극적인 메시지.
평소라면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문구였지만, 지금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에게 먹혀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히죽 웃었다.
“이이제이라……. 지금 이 상황에서 아주 딱 들어맞는 말이겠네.”
[ ……. 갑자기 또 무슨 해괴한 소리야? ]
또 무슨 짓을 꾸미냐는 듯이 불안하다는 목소리로 물어 오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전지의 권능이 제시하는 하나의 방향을 떠올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는 관심이 뚝 끊어져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주인을 애타게 찾아 우는 이 길 잃은 어린 양들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 줘야지.”
[ 뭐……? ]
영성(靈性)을 가진 문명은 절대 아무렇게나 탄생할 수 없다.
신성의 개입으로 탄생한 인과의 결과.
하지만 이 버림받은 세계에는 이미 아득히도 머나먼 과거부터 신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온갖 종류로 갈라진 헛된 신앙 속에서 끝도 없이 싸우고 반목하는 이 한심하고 멍청한 어린 양들에게 진정한 신앙을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마계라는 절대악에 대항하려면……. 역시나 절대선의 신성이 제격이겠지.”
판달리아에 개입하는 수많은 신격. 비록 그 격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꽤 상위의……. 그것도 마계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가 있었다.
[ 너……. 설마……. 이제는 아예 천계까지 대놓고 끌어들이겠다는 거야? ]
경악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묘한 눈빛으로 TV에서 기도하고 있는 어느 사이비 종교 집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도하라. 그리고 찬양하라. 이 미개한 인간들이여.”
드높은 천상에 기거하는 왕. 찬란한 빛과 드높은 명예와 영광의 수호자.
진리의 구도자이자 태초부터 존재했던 첫 번째 빛.
“다리엘이 너희들을 구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