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전 세계의 인구 대국 중 하나인 중국.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동부 지역에서 탄생한 죽음의 군대는 그야말로 그 세를 불리기에 아주 최적의 환경이나 다름없었다.
“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뭐……. 뭐야 이것들!”
“키이이이이이이!!!”
“크에에에에엑.”
이지를 잃은 시체들이 사방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산 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으며.
무디고 녹슨 병장기를 들고 있는 해골 병사들이 무자비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도륙 내었다.
“으으으으! 사……살려 줘!”
“여보! 여보!!!”
“얼른 도망쳐! 이러다가 우리 모두 다 죽는다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죽은 자들의 군대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대처는 그야말로 안일하고 무자비했다.
[ 오늘 새벽부터 랑팡시 일대에서 모종의 대규모 테러 조직의 쿠데타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이에 현 시간부로 중국 정부는 허베이성 전체에 긴급 군사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테러 조직의 소탕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해당 지역에는 그 누구의 출입도 불가합니다. 또한, 그 어떠한 이유로도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며 인민들의 불안을 조장할 시에는, 그 모두를 반역 행위로 간주하며 엄격하게 처단할 것입니다. ]
[ 우리 인민 해방군은 가능한 모든 화력을 동원해 테러 조직의 쿠데타 시도를 격퇴하고 격멸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현재 당과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중국 인민은 불필요한 불안과 동요를 삼가고 생업에 충실하며 조국을 위한 과업에 평소와 같이 열심히 임할 것을 당부합니다. ]
아무런 일도 없으니 동요하지 말라며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차단하는 동시에,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랑팡시 일대를 탈출하려는 모든 이들까지 모조리 막아서고 도시 일대를 완전히 봉쇄한 중국 정부.
그로 인해서 도시 전체가 어마어마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아무런 이변도 없다는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극소수의 몇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으음……. 이게 지금 중국에서 입수한 영상이라는 말이죠?”
[ 그렇네. 우리 쪽 요원이 연락이 끊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낸 영상이야. ]
태블릿을 통해서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의 단편을 보여 준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네. 현재 우리가 가진 감시 자산으로 봉쇄된 랑팡시 일대를 확인해 본 결과, 이미 그곳에서는 대규모 폭발이 관측됐네. 중국 공군과 전차들이 도시 전체에 전면전을 펼치듯이 화력을 투사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그 ‘테러 조직’이라고 발표한 상대와 거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야. ]
이미 비상 NSC 회의를 소집한 미국 정부.
미국은 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위급 각료와 보좌관들이 전부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가며 아무런 자격과 권한도 없는 일반인에게 미국의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레너드 대통령.
엄격한 기밀 관리 규정까지 위반해 가며 그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 세상에서 내가 아니고서야 그 누구도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현재 중국 전체의 네트워크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입니다만, 그전까지 SNS를 비롯해 인터넷에서 떠돌던 정보들에 따르면……. 좀비……. 그러니까 죽은 자들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조심스럽게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보고하기 시작한 국토안보부 장관. 하지만 그는 조금은 자신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이는 정확히 확인된 정보는 아닙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파악되지 않은 미상의 바이러스로 인해서 벌어진 사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
“바이러스요?”
국토안보부 장관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 예. ]
“뜬금없이 바이러스가 왜 나와요?”
무슨 클리셰 범벅의 좀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을 들먹이는 국토안보부 장관. 하지만 나의 질문에 국무장관이 대신 답을 해 주었다.
[ 최근 중국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된 군사 기밀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게 있습니다. ]
“기밀 프로젝트요……?”
[ 네. 키메라 프로젝트라고……. ]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소상하게 이야기하는 미국 정부. 하지만, 그 내용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나는 눈을 감고 고민하다 이내 나지막하게 말했다.
“용용아. 지금 바로 키메라 프로젝트와 관련된 정보들. 부스러기 하나까지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싹 다 긁어모아 와.”
[ 전부? ]
“어. 전부.”
[ 그렇지만 중국은 마나 링크가 상용화된 곳이 아닌데……? ]
“뭣하면 대놓고 해킹해서라도 모조리 다 찾아와.”
[ 일단……. 알겠어. ]
평상시와 다르게 구시렁대지 않고 즉각 마나 링크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남아있는 모든 정보를 들추어 보기 시작한 용용이. 그리고 그는 슈퍼 킹갓 마법 AI라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게 관련 정보를 금방 찾아내 나에게 제공해 주기 시작했다.
[ 찾았어. 중국 정부에서도 엄청 은밀하게 다루고 있었네. 이중 삼중 폐쇄 네트워크에, 암호화도 엄청나게 복잡하게 해 놨더라. 키워드를 몰랐으면 아마 절대로 못 찾아냈겠어. ]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방대한 분량의 문서와 영상 자료들을 가져온 용용이.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본 나는 이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아……. 이 빌어먹을 짱깨 새끼들이 사고 한번 거하게 쳤네.”
[ 왜 그러나……? ]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는 수많은 미국 각료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중국이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저질러 왔던 만행을 낱낱이 설명해 주었다.
[ 그러니까……. 우리가 예상하던 대로 중국 정부가 체포한 정치범이나 사상범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한 것은 맞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생물학 병기 개발이 아니라……. ]
“마나 변이에 대한 실험이었죠.”
인간을 상대로 한 마나 변이 실험.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인 수백,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 명이 넘어가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중국이 저지른 그 끔찍한 실험을 본 백악관의 각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 세상에……. 신이시여……. ]
[ 어떻게 같은 인간을 두고 저런 짓을……. ]
[ 우욱……. ]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이들. 몇몇 비위가 약한 이들은 토라도 하려는 듯이 헛구역질하며 어딘가로 뛰쳐나갔다.
“아마도 베이징에서 터져 나갔던 최상급 인피니티의 여파로 방대한 마력에 급격하게 노출된 생명체들이 변이하는 것을 보고 착안한 실험 같아요. 대충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평범한 인간을 강화하고 개조해서……. 생체 병기로 써먹으려던 거겠죠.”
너무나도 악랄하고 위험하기에 흑마법사나 몇몇 정신 나간 마법사들이 가끔 손을 대는 영역인 마나 변이. 판달리아의 모든 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 금단의 실험을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대로 손을 댄 중국의 정신 나간 짓거리에 나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은 그 마나 변이로 인해서 폭주한 변이체들이랑……? ]
“아뇨. 그러면 차라리 상황이 수월하죠. 그랬다면 변이한 놈들만 제거하면 끝나는 거니까.”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에 지나지 않은 변이체들. 하지만 지금 입수한 영상에 등장하는 이들은 절대로 변이체라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니, 살아 있는 생명체 자체가 아니었다.
“대통령님이나 여러분 모두 기억하고 계실 텐데요? 바로 얼마 전에 뉴욕에서 벌어졌던 9.11 테러 사태 이후에 벌어진 최악의 참사를 말이죠?”
[ 뉴욕……? 그 말은 설마……! ]
내 말에 무언가를 눈치챈 듯,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맞아요. 이건 분명 마족……. 그러니까 악마가 개입한 거예요.”
[ 그……그게 정말인가? ]
[ 이럴 수가……. ]
악마가 개입했다는 말에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한 이들. 하지만 나는 용용이가 건네준 키메라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악마들은 순수한 영혼들의 강렬한 고통과 원한, 증오, 절망, 시기, 탐욕, 질투……. 우리가 말하는 음의 감정들에 이끌려요. 파이크가 그랬었던 것처럼 말이죠.”
술주정뱅이 아빠 밑에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며 사회 전체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었던 파이크. 그리고 그런 그에게 여지없이 다가와 꼬드긴 악마를 언급하며 나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모두에게 되물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와 실험 쥐 취급을 받으며 온갖 생체 실험에 시달리며 죽어 가던 수많은 희생자가 만들어 낸 그 음의 감정들은 얼마나 강렬할까요?”
[ ……. ]
악마가 출몰하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아니, 나타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최악이었던 환경. 그렇기에 레너드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 그렇다면……. 그 영상 속 시체들은 악마가 부리고 있는 것들이란 말인가? ]
“그렇죠. 기본적으로 사령 마법(Necromancy) 계열로 보이기는 하는데, 제가 마법과 관련해서는 어지간한 건 자유롭게 다 알려 줬지만, 마계나 천계와 관련된 흑 마법이나 신성 마법 계열은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것이 없으니 그것 말고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전혀 없죠.”
“게다가……. 지금이야 저 뛰어다니는 좀비만 있다면 다행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마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질 거예요.”
[ 그게 무슨 소리인가……? ]
그냥 뛰어다니는 일반적인 좀비 수준으로 보이는 시체들만 보이고 있던 상황.
판달리아보다 훨씬 진보한 기술력을 가진 현대 병기의 강력한 화력으로는 아마 저런 시체들은 그리 큰 무리 없이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무식하게 민간인이고 좀비고 피아식별을 포기하고 모조리 다 날려 버리면서 희생자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게 된다면 그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악의 수죠.”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네크로맨서.
일으킬 수 있는 시체만 있다면, 무한정 그 힘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이들에게 지금의 이 상황은 그야말로 그 군세를 폭발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중국 당국은 무슨 바이러스라도 출몰한 줄 착각하고 도시를 완전히 봉쇄하고 저렇게 포격으로 쓸어버리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 완전히 헛다리 짚은 거죠.”
[ 자……잠깐만. 그러니까 자네 말은……. 만약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
“네. 방금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랑팡시의 인구가 대충 540만 명 정도 된다고 나와 있는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 540만의 죽은 자들의 군대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겠군……. ]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래서 아직 이 세상이 멸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구나?”
최근에 다시 조우했던 이브의 장난스러운 경고 한마디.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전지의 권능이 나에게 속삭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결말을 엿보고는 나는 묘하게 밀려오는 아이러니함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이놈의 세상은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뭐만 하면 멸망 플래그가 이렇게 바짝 서냐?”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을 막아섰더니 이제는 전혀 다른 형태의 멸망 시나리오가 불쑥 튀어나온 상황.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헛기침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이내 모두에게 말했다.
“잘 들으세요. 대충 보아하니 이번에 넘어온 악마는 지배의 권속 중 하나일 것 같기는 한데……. 만약 제가 예상한 대로라면 상당히 강한 놈이 넘어왔을 거예요. 과거에 미국에서 깽판 쳤던 녀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위급의 격을 가진 놈으로.”
“그리고……. 아마 그 악마가 가진 계획은 분명 하나뿐일 거예요.”
[ 계획……? ]
그게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레너드 대통령.
불안한 감정이 내비쳐지는 그의 떨리는 눈을 잠깐 응시하며 나는 긴장한 얼굴로 숨소리도 내지 않는 모든 이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한 어둠의 군주를 이 세상에 소환하는 것.”
[ 위대한 군주……? ]
“이 세상을 비롯해 수많은 세상에서 그는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죠.”
“어느 특정 세상의 영혼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아주 가장 깊은 암흑에 빠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을 때,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존재이자…….”
“묵시록의 짐승. 종말의 나팔수. 모든 타락한 자들의 군주.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이라 불리며, 세상의 멸망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그 ‘절대적인 사명’을 이행하는 집행자.”
[ 설마……. 설마……. ]
내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사색이 된 얼굴로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듯이 신음하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드래곤 로드였던 용용이조차도 막아 내지 못한 최후가 이 세상에도 도래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렸다.
'마법'의 개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멸망 시나리오.
마왕강림(魔王降臨)이 이곳 지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