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205화 (205/242)

205화.

중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 후에 일사천리로 철수를 진행하기 시작한 미국.

그리고 그 이후로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인피니티 발표 이후 석유 가격이 연일 급락하고 있습니다. 현재 선물 시장에서 WTI 유가가 전년 동월 대비 89% 추락한 7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향후 원유 수요가 급감하고 재고량이 폭증할 것으로 전문가들의 예측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OPEC을 비롯한 산유국들의 경제 전망은 계속해서 어두워질 전망입니다. ]

[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미군이 향후 2년에 걸쳐 중동 전체에서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미국과 긴밀한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국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 ]

[ 유가 급락으로 정유사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석유 산업의 몰락은 향후 전 세계의 경제 성장률을 5% 이상 하락시킬 것이라는 IMF의 발표가 있었으며, 향후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각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주문하고 있으며……. ]

인피니티의 발표 이후에 연이어 쏟아지는 수많은 언론 보도들.

단순히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변화였기에 뉴스는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내용의 소식들을 계속해서 전달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발 수위가 어마어마하긴 하네.”

나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발하며 성토하고 있는 사우디의 사람들. 이들이 벌이고 있는 나에 대한 대규모 규탄 시위를 TV를 통해서 얼핏 구경하는 것이었지만, 스크린 너머로 느껴지는 이들의 분노는 상당히 거대했다.

[ 중동 지역을 모조리 파괴하려는 멀린을 규탄한다! ]

[ 인피니티 결사반대! 멀린 타도! ]

온갖 구호를 외쳐 대며 나와 프로젝트 인피니티를 반대하고 있는 수천, 수만 명이 모여 있는 대규모 집회. 그리고 그걸 보며 용용이는 어느 정도 이들의 처지를 공감한다는 듯이 말했다.

[ 주인 때문에 나라가 쫄딱 망하게 생겼는데 저럴 수밖에 없지. ]

“뭐……?”

[ 내가 인터넷에서 요즘 유심히 관련 정보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말이지. 주인이 이번에 진짜 그 중동 지역의 인간들한테 제대로 엿 먹였던데? 죄다 거기는 이제 망했다는 보고서밖에 안 올라가고 있더라고. ]

전 세계의 유명한 정보기관들의 첩보망을 하나하나 뒤져보고 다니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용용이. 그는 최근에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중동 지역의 새로운 전략 보고서들을 들춰 보고는 나에게 너무하다는 듯이 말했다.

[ 대충 분위기 보니까 중동에서는 미국이 손을 떼면 어떻게든 중국이나 러시아에 손을 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데 그쪽도 분위기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더라고. 이러다가 진짜 중동 전체가 전부 끈 떨어진 연이 될 조짐이야. ]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릴 중동.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 자기 지역을 꽉 잡은 군벌들과 토호 세력을 비롯해 극단적 원리주의에 빠져 있는 광신도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그야말로 춘추 전국 시대와 같은 혼란이 벌어지게 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저러는 거 보고도 내가 뭐 도와줄 마음이 생기겠냐?”

바짓가랑이 붙잡고 사정사정해도 모자랄 판엔 나의 얼굴이 붙여진 허수아비를 불태우며 열광하고 있는 시위대.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용용이도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뭐……. 그건 틀린 말이 아니네. ]

“처음부터 자기들이 헛짓거리했으면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고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왕가의 자존심이니 명예 운운하다가 당한 건데 뭐가 불쌍하냐? 에밀리가 말하는 거 들어 보면 사우디가 미국에다가 협박도 했다던데. 이 정도면 아주 자업자득이지. 안 그래?”

[ ……. ]

중동 전체가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 상황인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멀린. 그런 그를 보면서 용용이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 이럴 때 보면 주인은 진짜 인간 같지 않다니까. ]

“또 갑자기 뭔 헛소리야?”

[ 아니, 그렇잖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과거로 되돌아왔지만, 막상 어마어마한 수의 인간이 죽을지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냉정한 것 같아서. ]

너무나도 태연한 내 반응에 위화감을 느끼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피식 웃으며 조금은 씁쓸한 어조로 답했다.

“글쎄다……. 이미 수십억 인류의 99%가 다 뒤지는 꼴을 보고 와서 그런가? 아니면 그 핵전쟁 이후에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이 얼마나 추한 꼴은 보이고 다니는 적나라하게 보고 와서 그런가? 솔직히 별반 감흥이 안 오네.”

같은 인간을 식량으로 삼고 사냥하는 미친놈들이 가득하고, 부족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온갖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세상.

고작 6살짜리 어린아이가 잠자던 성인 남성 목에다가 칼침을 놓을 정도로 그 비정하고 메마른 곳에서 구르다 온 덕분인지, 나는 지독히도 냉정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건 필연적인 일이야. 누군지 이름조차 모르는 중동 사람들 지키자고 언제까지고 공룡 썩은 물을 불태우게 놔둘 수는 없는 거잖아?”

시기가 문제였을 뿐, 언젠가는 벌어질 일.

그렇기에 추호의 망설임이나 후회도 없이 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한테 일은 어마어마하게 던져 놓으시고 본인은 아주 태평하네요? 참 좋으시겠어요. 예?”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아주 킹받는다는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는 아영이였다.

“어? 언제 왔어요? 미국 정부랑 회의는 잘 끝났고요?”

늘 그렇듯이 피곤함에 절어 있는 얼굴의 아영. 과거의 미숙하고 부족한 신임 대표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누구보다 노련한 세계적인 초거대 기업, 매지컬 컴퍼니의 총괄 대표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다니는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하아……. 제 사무실이 무슨 놀이터도 아니고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가요?”

“아영은 모르는 그런 게 있어요. 여기만큼 쉬는 느낌이 드는 장소를 찾기도 힘들다고요.”

팝콘을 들고 누구보다 편안한 복장으로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영.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한바탕 무어라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낌새를 눈치챈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서, 미국이랑 협상은요?”

“……. 일부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순조롭게 마무리가 됐어요.”

“양보요?”

“가장 수요가 많을 가정용, 일반용, 그리고 차량용 인피니티는 미국의 정유사들이 매지컬 컴퍼니로부터 관련 기술을 제휴 받고 자체적으로 생산 및 보급하기로 했어요. 대륙별로 어느 회사가 독점 판매권을 얻을지는 양산 실적에 따라 추후 논의할 예정이고요.”

“마나석 제조 수식을 공개하겠다고요……?”

“……. 준비도 안 상태에서 전 세계에 전면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대로 일을 추진해 놓고 그 수요량을 매지컬 컴퍼니가 전부 감당하라고요?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소리인지 알기나 하세요? 자체 생산하려고 해도 공장 건설부터 시작해서 최소 2년 이상은 걸려요.”

“게다가 이번 발표로 하루아침에 나락 가게 생긴 정유사들은요? 지금 레너드 대통령과 미국 의회에 정유사들이 보낸 로비스트가 얼마나 게거품을 물고 압박 주고 있는지 아세요? 그 회사들도 숨 쉴 구멍은 만들어 줘야죠.”

기존 공장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물량. 거기에 미국 정계와 긴밀하게 줄이 닿아 있는 정유사들의 세력도 달래 줄 필요가 있었기에 아영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단호했다.

“마나석 제조와 유통의 독점권은 포기하세요. 그래도 최상급 마나석의 필수 원료인 탄자나이트는 우리 회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최상급 마나석이 들어가는 발전용과 국가산업용 인피니티는 매지컬 컴퍼니에서 일임하기로 했으니 전적으로 저희가 양보만 한 건 아니에요.”

마나석 제조와 가공에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최상급 마나석.

그 최상급을 지켜 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로열티는 낭낭하게 챙겨야 해요.”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고요.”

피식 웃으며 화답하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문득 기억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그 아스테리아라는 분 말이에요.”

“아스테리아가 왜요?”

“뉴욕 인근에서 생활할 곳을 여러 곳 알아봐 줬는데, 버지니아 인근에 자리한 멀린의 정원에서 지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네. 그래서 그곳에서 머무는 걸 허락했어요. 특별하게 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잠자고 주변에서 산책하고 명상하는 정도밖에 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겠죠. 원래 자연과 조화의 일족이라서 엄청 고상하거든요.”

“그러게요……. 생긴 건 진짜 이슬만 먹게 생겼더군요.”

내 말에 피식 웃으면서 키보드를 두들기던 아영.

하지만 그녀는 문득 무언가 기억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요청이 하나 있었어요.”

“독특한 요청이요……?”

“그……. 인앱 결제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던데요?”

“인앱 결제요……? 왜요?”

“그야 저도 잘 모르죠?”

“……?”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고 답하는 아영. 하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나 역시도 그저 호기심에 물어본 것인가 싶어 넘어가고는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그녀가 멀린의 정원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지 전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말이다.

* * *

수많은 지갑 전사들의 무덤. 모바일 게임 최고 매출 랭킹 부동의 1위인 게임. 튀니지.

0과 1의 조잡한 데이터와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이 게임에 숭고한 사명을 떠받들고 일족과 세계수의 품을 떠나 머나먼 지구에까지 넘어온 일곱 번째 가지인 아스테리아가 손을 대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 난세의 이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영웅인 당신을 기다린다! ]

어느 빌딩에 붙어 있는 커다란 전광판에서 발견한 광고.

그리고 그 아름다운 광고에서 아스테리아는 매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저곳은……. 우리가 살던 고향과 비슷한 모습이네…….’

판달리아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검과 갑옷을 입은 기사가 비장한 기세로 전장에 뛰어드는 박진감 넘치는 광고. 그것을 묵묵히 감상하고 있던 아스테리아는 그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어느 한 인물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뾰족한 귀. 날렵한 움직임. 거기에 적의 미간을 정확히 적중시키는 신묘한 궁술까지.

그야말로 자신과 같은 일족으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아스테리아는 경악했다.

“이곳에는……. 우리 일족만이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크나큰 충격을 받고 조사를 시작한 아스테리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본 인물이 ‘요정’이라고 불리는 게임의 한 캐릭터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안도했다.

“우습구나. 고작 인간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했다니.”

하지만 뛰어난 그래픽으로 인해서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며 아스테리아는 문득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잠깐만 즐겨 볼까……?”

요정 캐릭터. ‘일곱 번째 가지’에 몰입해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던 아스테리아.

그리고 그녀는 문득 마주한 어느 인간 캐릭터에게 무참하게 썰려 버리고 말았다.

“뭐지……?”

낯선 인간에게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당혹감에 물든 아스테리아. 그리고 그는 말했다.

- 여기 통제 사냥터입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사냥하세요~

“통제……?”

통제라는 개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아스테리아. 하지만 그녀는 설명을 듣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간들의 불의에 분노했다.

- 통제라니! 푸르른 대자연은 생명체 모두의 것. 이곳이 어찌 너희들의 소유물인가?

- ??? 이건 또 뭔 헛소리래?

- 저기요. 딱 봐도 초보자 같은데 튀니지는 원래 이런 게임이에요.

- 하, 그거 엄청 끈질기네. 저기요. 오면 죽는다니까요? 템도 후지면서 왜 그래요?

- 한 번만 더 와서 까불면 무한 척살 갑니다. 좋게 대해 줄 때 딴 데 가세요.

불의에 분노하며 항거하는 아스테리아.

하지만 일개 쪼렙의 아스테리아가 하는 항의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을 반복해서 사냥터를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죽임을 당하던 아스테리아.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이곳 역시 판달리아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검과 칼이 난무하던 판달리아의 세상과 이 미지의 지구라는 세상의 인간들은…….

똑같이 이기적이고 나누거나 베풀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생명체라는 것을 말이다.

“좋다. 나 역시 일족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너희들에게 패배하지 않겠다.”

그렇게……. 아스테리아는 한마디의 의미심장한 문구만을 남기고 떠나갔다.

- 우리 일족은 오늘의 치욕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튀니지 역대 최악, 그리고 최강의 미친 괴물 요정.

‘일곱 번째 가지’가 탄생하게 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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