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아라비아반도의 최대 부국이자 지역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수많은 전쟁과 내전이 빗발치는 전 세계의 탄약고인 중동(Middle East) 지역에 있지만, 나름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든든한 뒷배 덕분이었다.
[ 중동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중동에서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적극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서라도 에너지 안보를 지켜 나갈 것입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지역으로 알려진 중동.
산업 시대부터 핵심적인 에너지원으로서 자리매김한 이 석유 자원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외국 세력이 치열한 다툼을 벌여 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대놓고 이 중동 지역에 개입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은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하게 지켜 왔던 미국. 하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우호적인 것은 사실 아니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과거 봉건 시대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 빠져 야만적이고 비인도주의적인 샤리아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성은 스스로 운전하지 못하며 수많은 분야에서 탄압받고 있으며, 언론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습니다.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수장이라는 미국이 이런 부도덕한 국가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까? ]
폭압적이고, 불평등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매일같이 자행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자유와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추구하는 미국으로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안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사우디의 왕가를 두둔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방금 뭐라고 했소?”
돌연 만남을 요청한 미국 대사. 그리고 그가 전달한 미국 정부의 메시지에 사우디의 외무장관인 반다르 빈 사우드의 얼굴은 참혹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방금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미합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지금까지 이어졌던 우호 관계를 부득이하게 종결(Terminate)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따라서, 현재 당사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들의 철수에 대해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논의를 시작할 것이며 또한…….”
우호 관계를 끝내겠다는 말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사이에서 맺은 협약과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종료해 나가겠다는 미국 대사의 말에 사우디의 외무장관은 도무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금 진심이오? 우리 사우디와의 관계를 이렇게 버리겠다고? 그게 가져올 여파를 정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란을 비롯해 수많은 적대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대내외적으로 압박하고 뒤흔들 것이고, 전제주의적인 왕권을 타파하고 모두가 평등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아랍 혁명의 움직임이 내부에서부터 끊임없이 벌어지겠죠.”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던 미국.
그 덕분에 수많은 전쟁과 분쟁으로 끝없는 혼란의 중동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짝 벗어나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해 올 수 있었지만, 언제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보호막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사우디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사상자들이 발생할 것이네. 사우디를 비롯해 중동의 수많은 아랍인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고, 수십,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쳐 어마어마한 난민들이 발생하게 될 텐데 정말 그런 인도주의적 재앙을 감수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석유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네. 유가 상승이 불러오게 될 경제적 혼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우리에게 석유 생산량을 줄이지 말고 늘려 달라고 요청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예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오일 쇼크를 조장하려고 작정한 건가?”
단순히 중동 지역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오게 될 문제.
하지만 그 혼란의 도가니를 감수하고도 사우디와의 관계를 끊어 내겠다고 말하는 미국 대사는 정말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우디의 외무장관을 바라보며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합중국 정부도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자기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이 손을 펴 보이며 고개를 젓는 미국 대사.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우디의 외무장관을 바라보며 질책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상황을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만든 것은 바로 사우디입니다.”
“뭐라……?”
그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외무장관은 이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 설마……. 우리한테 이러는 것이 멀린과의 충돌 때문인가?”
당사자도 아니고, 엄연히 삼자인 미국이 고작 일개 ‘개인’과의 분쟁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냐는 의미가 담겨 있는 질문. 하지만 그런 그 질문에 미국 대사는 진지하게 답했다.
“……. 그러게 적당히 넘어가라고 조언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로 사우디 왕가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귀담아들었다면, 최소한 신의 심판이니, 무뢰배니 하는 극단적인 단어로 그를 공격하는 성명을 발표하지는 말았어야 합니다.”
고작 비판 성명 하나 발표했다고 자기들과 아예 손절하겠다는 미국의 반응에 외무장관은 잠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돌연 험악한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고작 조금 특별한 마법사 하나 때문에 미국이 우리를 버리겠다고 한다면 좋소. 그런다고 우리 사우디가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소? 우리가 가진 막대한 양의 석유를 이용해 러시아나 중국과 얼마든지 새롭게 손을 잡을 수도 있지.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도움 따위는 조금도 필요 없을 거요.”
석유만 있다면 미국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차선책으로 다른 뒷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외무장관은 이내 조소 어린 표정으로 미국 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리 잘됐군. 이렇게 우리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한다면, 앞으로 우리도 미국의 편의를 봐 줄 필요가 없으니 말이오.”
“앞으로 사우디를 비롯해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결제할 때 위안화나 루블화로만 결제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지 참 기대되는군.”
미국이 전 세계에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인 기축 통화국의 지위.
그리고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자원인 석유 결제에서 달러를 사용하도록 한 페트로-달러(Petro Dollar)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 시스템을 무너트리고 미국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위협하겠다는 사우디 외무장관의 협박. 하지만 그 협박에도 미국 대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작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좋습니다. 이것으로 양국의 뜻은 서로 확실하게 전달된 것 같군요. 앞으로도 중동 지역의 평화와 사우디 왕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배반자를 마중할 시간 따위는 없으니 멀리 나가지는 않겠소.”
그야말로 싸늘하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를 종결한 사우디와 미국 정부.
사우디의 외무장관은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이 손을 떼더라도, 조금 혼란스럽기는 하겠지만 큰 문제 없이 현재의 정국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 시간까지만 해도 말이다.
* * *
[ 그럼 지금부터 백악관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국제 정치의 중심이자 전 세계의 국가가 주목하는 백악관의 공식 브리핑.
주요 언론들의 백악관 출입 기자가 빽빽하게 앉아 있는 그 브리핑에서 백악관 수석 공보담당관인 페이지는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자신이 가져온 원고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 오늘 대통령님께서는 국무부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우호 관계의 중단을 지시하였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당사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공식적으로 통보하였습니다. ]
시작부터 충격적인 소식.
그렇기에 그녀의 첫 마디가 끝나자마자 기자실 안은 시끄럽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중동 지역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인 사우디와의 우호 관계를 끊겠다니?”
“저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루어진 깜짝 발표에 일제히 손을 드는 기자들.
하지만 페이지는 그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이어 갔다.
[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미국인을 희생시켰던 중동 지역의 분쟁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국방부가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에서의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외교 전략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해서 국무부가 국방부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
“뭐……. 뭐라고?”
“중동 정책의 폐기?”
국제 정치에 빠삭한 정치부에 한평생 몸을 담고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기자들. 그렇기에 이들은 성명 발표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손을 들며 앞다투어 온갖 질문을 쏟아 냈다.
“중동 정책을 폐기하겠다면, 앞으로 중동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입니까?”
“미군이 전면 철수를 시작하면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교 갈등이 격화되고 내전이 시작될 텐데 그에 따른 여파는 고려한 결정입니까?”
“이스라엘에서도 군사적 지원을 모두 끊을 계획인 겁니까?”
“사우디 정부의 보복은 어떻게 할 겁니까? 석유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물가는 또다시 급등할 텐데 서민들의 경제 부담이 가중되지 않을까요?”
단순히 한 나라와의 관계를 끊는 것치고는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게 될 수없이 많은 문제.
그 수많은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사우디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인도적인 행위들을 묵인해 왔습니다. ]
[ 인권을 부르짖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고문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무참히 짓밟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잡아 가두고 있습니다. 여성은 자기 스스로 운전조차 하지 못하며, 교육을 받을 권리도, 자유롭게 외출할 권리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죠. ]
[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의 사회 속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이러한 수많은 탄압과 억압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을 묵인하고 옹호하는 것이 정말 우리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
“…….”
백악관 대변인의 말에 조용해진 기자들. 그런 그들을 잠깐 둘러본 페이지는 이내 쉬지 않고 발표를 이어 갔다.
[ 그렇기에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중동 지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는 이들에게 언제까지 계속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
[ 또한, 방금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우려는 대통령을 비롯해 각료 모두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안들입니다. 앞으로 발생할 경제적, 에너지 안보의 위협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레너드 대통령님께서는 오늘 프로젝트 ‘인피니티’의 기밀 해제 및 기술 상용화를 최종적으로 허가하셨습니다. ]
“프로젝트 인피니티……?”
“저건 또 뭐지?”
전혀 생소한 단어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기자들.
그리고 그들은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앞으로 미국 정부는 매지컬 컴퍼니와의 협력을 통해서 깨끗하고 청정한 에너지원……. 마나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것입니다. 그 어떤 제품에서도 호환이 가능한……. 일반 가정용부터 산업용까지 세분화하고 체계화된 마력 활용 시스템을 만들어 배포할 것입니다. ]
[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발전용 ‘인피니티’ 1기가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은 ……. ]
[ 원자력 발전소 5기 수준입니다. ]
어떠한 에너지 손실도 없이 100%의 효율을 자랑하는 청정에너지. 마나.
그 마나를 통해서 중동 지역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수많은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겠다고 선언하며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기자들과 전 세계를 향해서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천명했다.
[ 앞으로, 석유는 에너지원으로서의 그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될 것입니다. ]
중동은 이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 어떤 이유에서도 별 볼 일 없는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