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202화 (202/242)

202화.

만물의 영장이자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스스로 칭하던 인간.

하지만 나는 모두에게 당연하고 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관념에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

[ 인간은 사실 침팬지나 다름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

[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우월하고 고귀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그런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정말 혈통에 따른 우월성을 따질 수 있는 종족은……. ]

[ 정말 대우주를 통틀어서 몇 안 될 정도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요. ]

인간은 열등하다.

인류 전체를 폄훼하는 그 전제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수많은 사람의 반감을 불러왔다.

- 아니, 자기도 인간이면서 무슨 인간을 열등하다고 말하고 다니냐?

-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긴 함. 솔직히 대형견하고 1:1 맞짱 까서 이길 놈도 몇 없을걸?

- 아니, 꼭 그런 신체적 능력으로만 할 이야기는 아니지. 그래서 그 개새끼들이 독자적인 문명이라도 건설함? 우리보고 주인님이라고 하는 신세 아님?

-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다른 육식 동물보다는 부족할지 몰라도, 지능을 비롯한 단결력 그 이외에도 수많은 영역에서 아주 우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부분만을 가지고 한 종족을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인 것 같군요.

- 개새끼보다 우월한 건 맞는데 엘프들보다는 인간이 더 열등한 건 맞는 거 같음.

- ㅋㅋㅋ 백 년도 못 사는 미개한 종족 주제에 뭘 까불어?

멀린의 말에 잔뜩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인간이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이룩한 찬란한 문명들과 역사를 강조하며 인간이라는 종족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뒤틀린 황천의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 그러니까 우리는 엘프 누님들의 개새끼나 다름없는 신세라는 말이잖아……?

- 오히려 좋아……. 헤으응…….

- 이제부터 엘프는 나의 새로운 주인님임. 그리고 나는 기쁘게 그들의 개새끼가 되겠음. 월월!

- ??? : 낑낑! 주인님! 그거 하자! 그거.

엘프들에게 반감을 갖기는커녕 도리어 주인님으로 모시겠다고 자처하며 뒤틀린 이상 성욕을 스스럼없이 내비치는 이들. 그리고 그런 이상 성욕자들의 무리가 인터넷에서 보여 주는 미친 듯한 화력과 집단 행동력을 보며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은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 어휴. 더럽고 추잡한 새끼들. 저런 놈이랑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부끄럽다.

- 멀린이 엘프와 인간의 사랑이 죄악이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 엘프가 사람이고 인간이 개새끼라고 한다면……. 하프 엘프는……. Oh F…….

- 진지하게 저런 미친놈들 전부 다 모아서 쓸어버리면 안 되냐?

- ??? : 이상 성욕자들로부터 우리 인류를 깨끗하게 정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인간이라는 종의 우월성에 대한 진지한 의문과 고찰을 하기 시작한 사이에, 이러한 방송을 접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는 그야말로 격노했다.

[ 사우디 왕가의 일원에게 위해를 가하며 왕실의 명예를 더럽힌 이들의 행태가 그 도를 넘었다! 전능하고 위대하신 알라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감히, 신이 창조한 가장 고귀하고 우월한 작품을 열등한 짐승에 빗대는가? ]

[ 멀린은 우리가 ‘감히’ 고결하고 우월한 엘프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은 매우 심각한 착각이다! 이 지구는 우리 인간의 행성이며 전능하신 알라의 소유물이다.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미개하다고 매도하고 있는 것인가! ]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번에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강하게 규탄한다. 우리 정부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고 상응하는 보복을 할 것이며 이는 신속하고 무자비할 것이다!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저버린 무뢰배 같은 이들에게 위대하신 알라의 정의로운 심판을! ]

방방 뛰면서 방송에서 무어라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변인.

그리고 그 뉴스를 시청하며 나는 조금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개한 거 맞네요. 이 지구를 아직도 인간의 행성이라고 보는 것도 그렇고, 알라의 소유물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아주 답이 없는데요?”

“…….”

미국의 국무장관인 캐서린 듀란트.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에서 그야말로 대형 사고를 쳐 버린 나를 보고는 곧장 달려온 그녀는 이전보다 더 나빠진 사태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들은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국민 대부분이 독실하고 아주 강력한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특히……. 사우디 왕가는 그 정도가 심하죠.”

이슬람 율법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라고 알려진 샤리아 법을 따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캐서린의 말에 따르면, 이런 극단적인 종교쟁이들의 발작 버튼을 내가 이번 인터뷰 방송에서 하나도 아니고 거의 네다섯 개는 연이어 누른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정령 마법. 엘프. 세계수의 존재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불편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격노한 사실은…….”

“그 음침한 스토커 같은 왕손이 미개한 침팬지나 다름없다고 한 것. 그리고……. ‘여자’인 엘프에게 무참하게 박살 나서 중환자인 상태로 있다는 것 때문이겠네요.”

“하나를 딱 고르자면 그게 가장 크긴 하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위계질서가 확실하게 잡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런 나라의 핵심 권력층이라고 할 수 있는 왕가의 일원이 비록 인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여자한테 처맞고 오는 것은 아주 왕가의 체면을 바닥에 내리꽂는 수준이 아니라 아스팔트에다가 갈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엘프는 남자보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강한 종족인데요?”

태생부터 성비가 무척이나 불균형적인 엘프 종족. 통상 일반적인 엘프 부족의 남녀 성비가 2:8에 달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여성으로 치우쳐 있는……. 아주 강력한 모계 사회였다.

그렇기에 한 방에 턱주가리가 박살 나서 골골대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도, 그리고 부끄러울 일도 아닌 상황. 하지만 그런 사실은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들이 중요한 게 아닐 테니 넘어가도록 하죠. 제가 한번 맞혀 보죠.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저한테 보복하겠다고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데 딱히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부들거리고 있죠?”

국가도 아니고 일개 개인에 불과한 나를 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렇기에 이들이 할 수 있는 보복이라고 해 봤자……. 그저 다른 사람을 향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사우디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협적인 무기라고는 석유 하나뿐이고 저랑 가까운 관계의 국가라고 해 봤자 미국이나 한국인데……. 축복받은 대지 아래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미국 정부에 석유 가지고 협박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뿐더러 후환이 두려울 테고…….”

“만만한 한국한테 앞으로 뭐 석유 안 팔겠다고 벼르고 있겠네요?”

딱 봐도 견적이 대충 나오는 상황.

사실은 용용이를 통해서 대충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알아낸 사실이었지만, 이미 다 눈치챈 듯한 내 반응에 캐서린은 일순간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국무부에서 현재 사우디에 주재 중인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에요……. 지금까지 확실하게 확인된 정보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아마 사우디 정부가 석유와 관련한 금수 조치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는 있어요.”

“어련하겠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캐서린은 복잡한 심경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렇게 적대적으로 돌아서 버리면 중동 지역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점이에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시리아. 아랍 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등…….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이슬람 국가들이 모여 있는 중동 지역.

대부분이 사막 지대에 별 볼 일 없는 곳이었지만, 그런데도 이곳에 수많은 강대국이 모여들어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마나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석유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핵심적인 원료예요. 지금 당장 중동에서 우리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다면, 그건 미국의 국익에 반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거예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예전처럼 압도적인 영향력은 아니긴 하죠. 일전에 멀린 님께서 저희에게 제공했던 에너지 치환 기술……. 아니 마법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전력의 효율은 상상 그 이상이니까요.”

과거, 절멸 등급이라고 판단하고 묻어 두었던 마법.

마력 전환.

그 어떤 에너지보다도 상성 우위의 마나를 단순한 전기 에너지의 형태로 변환하는 것은 그 어떤 방법의 발전보다도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미국은 이미 석유라는 자원 자체를 완전히 무가치한 자원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그러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랬다가는 중동 지역의 국가들은 모두 심각한 경제적 파탄에 직면하게 될 거예요. 이들 경제 대부분이 석유에 극도로 의존하는 구조이기도 하고, 또 그 석유로부터 나온 자금으로 현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석유 빼고는 이렇다 할 만한 자원이 없는 황량한 사막과 건조 기후의 국가들.

가혹하기 짝이 없는 빈약한 자연에 제대로 키워 놓은 산업이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기에 결국 석유가 무너지면 중동 전체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건…….

중동 전역에 또다시 거대한 혼돈의 폭풍이 휘몰아치게 될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또다시 수많은 내전이 벌어지게 되겠죠. 다른 종파끼리 서로를 무참하게 죽이거나 서로 간의 전쟁을 벌이게 될 테고 어마어마한 난민들이 조국을 버리고 유럽의 국경을 넘으려고 하겠죠. 유럽 국가들은 수십,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만 명이 넘는 대규모 난민들의 행렬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석유의 몰락은 곧 어마어마한 인권 유린을 불러오는 대참사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내 마법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던 미국.

하지만 나는 그 볼품없는 석유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려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캐서린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 네?”

“그깟 공룡 썩은 물 하나 많다는 이유로 세상 물정 모르고 뻗대는 놈들한테 제가 그럼 뭐 고개라도 숙여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 자멸할 게 무서워서 어떻게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혁신을 앞으로도 계속 막아서야 한다는 건가요?”

이미 수년 전부터 온갖 유독 가스를 뿜어내는 공룡 썩은 물을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나랑 파트너 관계를 맺은 미국의 부탁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참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캐서린에게 말했다.

“자기들끼리 죽이든, 살리든, 지지고 콩을 볶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 되지. 왜 그 똥까지 치울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인권 유린을 막는 것은…….”

“인권이요? 정말로 그걸 이유라고 저한테 들먹이는 건가요?”

“…….”

비릿한 미소와 함께 냉소적으로 되묻는 멀린을 보며 그 순간 캐서린은 깨달았다.

그녀의 앞에 있는 존재는…….

인간이면서도 인권을 그 누구보다 경시하면서 오히려 식물권(?)을 더 존중하는…….

지독히도 모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충 그림은 다 그려진 것 같으니 한번 정리해 보죠. 일단 저는 나름대로 중재하려고는 했어요. 물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뭐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느니 무뢰배 집단이라느니 이런 소리를 들을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옆에서 부채질은 했지만, 직접 때린 것은 아니니 자기는 떳떳하다고 말하는 멀린.

그리고 그는 캐서린을 앞에 두고 선택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뭔가요? 제 편이에요? 아니면 사우디 편이에요? 애매하게 중간노선 타려고 하지 마시고 확실하게 하고 가죠.”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듯한 질문을 하는 멀린.

보통 이런 상황에서 캐서린은 수많은 예상 시나리오들을 만들고 분석하며 고민과 고민을 이어서 하며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겠지만, 지금 이 질문은 그녀에게 그리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조차 없이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거야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바로 대통령님께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프로젝트. 인피니티(Infinity)의 기밀 해제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죠.”

절멸 등급으로 분류되어 지금까지 수년 동안 철저하게 기밀로 묶여 있었던 프로젝트.

인피니티.

그 프로젝트의 기밀을 해제하겠다고 말하며 캐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국에게 있어 멀린이 한 질문은 [ 엄마 VS 아빠 ] 수준의 밸런스 게임이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 엄마 VS 이웃집 동네에 사는 이름 모를 처음 보는 아줌마 ] 수준의 밸런스 게임일 정도로 고민할 가치가 전혀 없는 너무나도 쉬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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