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196화 (196/242)

196화.

용용이가 살아온 세계. 판달리아.

그에게서 그곳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끔 들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세상인지는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곳이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아.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세계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숲.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식물들이 잔뜩 피어나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식물들과 관련한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판달리아에서 자라나는 식생을 아무것도 없는 이곳 화성에서 그대로 재현해 내다니. 역시 만물의 어머니라 불리는 그 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건가?”

모든 생명의 탄생과 시작을 상징하는 존재인 세계수의 고유 권능.

[ 세피로트의 영역(Realm of the Sephiroth) ]

자신만의 절대적인 성역을 선포하고 그 일대에 순식간에 판달리아의 생태계를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을 보며 내가 감탄하고 있을 그때, 용용이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 주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

“그럼 뭐가 중요한데?”

[ 지금 이 지역 일대를 떠돌고 있는 녀석들을 봐. 보여? ]

세계수가 만들어 낸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잔뜩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뛰놀고 있는 순수한 존재들.

정령.

그런 그들을 모습을 보며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정령들? 어차피 해 봤자 최하급 수준인데 뭐 이거 가지고 호들갑이야?”

[ ……. 지금 이게 의미하는 게 뭔지 정말 몰라서 그래? ]

“알지. 계약자도 없이 이렇게 자연적으로 넘어올 수 있을 정도면 그만큼 이 주변 일대의 마나가 풍부하다는 의미잖아.”

내 호흡을 통해서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농밀하고 풍부한 양의 마력.

그 어느 멀린의 정원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느껴져 오는 마나에 나는 새삼 세계수가 얼마나 강력하고 사기적인 마력 생성 기관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이 세계가 정령계와 직접적인 연결이 이루어졌다는 말이잖아! ]

대자연의 근원에 가까운 존재이자, 가장 순수한 원소의 본질 그 자체나 다름없는 정령들이 살아가는 세계. 정령계(精靈界).

천계와 마계와 같이 판타지 세계를 떠받치는 하나의 독립적인 계에 속한 곳이자, 마법의 개념을 기반으로 탄생한 문명들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기에 사실 이 연결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정령계와의 채널링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세계수가 뿌리를 내렸는데 당연한 일 아냐?”

세계수가 있는 이 영역에서 정령들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

하지만 용용이는 지금 이 상황을 바라보며 너무나도 혼란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

“뭘 그렇게 아까부터 어버버하고 그래?”

[ 아니, 그냥 내가 생각하던 계획과 너무 안 맞아서 그렇지. ]

“뭐가 안 맞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용용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잠깐의 침묵 끝에 한숨을 푹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 나는 주인이 언젠가는 이 세계에 마법의 위대함을 전파하고 미개한 인간들을 계몽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사실 지금까지 아주 순조롭게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고 있었고. ]

“그런데?”

[ 그런데 이건……. 단순한 계몽이나 변화를 넘어서……. 그냥 이 세계에 판달리아 그 자체를 이식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잖아……. ]

자신이 살고 있던 판달리아의 세계와 비슷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예 판달리아 그 자체를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다 붙인 격이 되어 버린 상황. 그리고 그걸 보면서 용용이는 진심을 담아 나에게 말했다.

[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어. 왜 주인에게 그런 부탁을 했었는지. ]

“무슨 말이야?”

[ 주인처럼 완전히 미친 새끼가 아니라면, 이런 발상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거든. ]

“……. 진짜 오랜만에 터보 모드 맛 좀 볼래?”

[ 아니, 욕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장담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영혼을 데려다 주인하고 똑같은 일을 시키더라도 이렇게 제대로 판을 벌여 놓는 놈은 없을 거야. 이건 주인이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

“…….”

칭찬인지 욕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소리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하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회화가 덜 된 것 같은 버르장머리 없는 그를 가만히 째려보다 말했다.

“터보 모드 10시간.”

[ 아! 왜! ]

“이게 아직도 교육이 덜 됐네. 주인한테 미친 새끼가 뭐냐? 미친 새끼가.”

[ 아니, 사실은 사실이잖아! ]

억울하다는 듯이 꽥꽥거리고 있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항의를 가뿐히 무시하고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역이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진귀한 녀석들이 많네…….”

[ 애초에 세계수의 영역은 항시 막대한 마나가 퍼져 있는 곳이니까 모든 식물이 죄다 영향받을 수밖에 없지. ]

판달리아에서도 무척이나 희귀하게 자라나 어마어마한 가치를 자랑하는 약초와 식물들이 사방에 피어나 있었고, 그중에서는 아주 낯익은 반가운 녀석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리 꽃순이의 원조가 여기에들 모여 있었네……?”

어느 한 커다란 나무 밑동 주변에 조그맣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낯익은 식물의 무리.

살살이풀이라고 명명한 그 블러디 허브가 특유의 핏빛 선홍색 빛을 내며 그 존재감을 가감 없이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하게 밀려오는 반가움에 피식 웃으며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한 손으로 블러디 허브들을 매만졌다.

[ 여기다가 그 삼진 바이오 연구 단지 지으면 꽤 효과 좋은 약품들도 개발할 수 있겠네. ]

“그게 무슨 소리야? 연구 단지라니?”

내가 용용이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그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 무슨 소리긴? 여기다가 재배 단지 조성하면 아마 지금 멀린의 정원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생산량에서 최소 100배는 더 늘어나잖아. 당연히 지어야 하는 거 아냐? ]

“그게 왜 당연해?”

[ ??? ]

내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정성스럽게 블러디 허브들의 무리를 매만지면서 그에게 도리어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용용아, 내가 왜 지구를 떠나서 이렇게 머나먼 화성에까지 와서 세계수를 심었는지 알아?”

[ 응……? 그거야……. ]

“바로 세계수와 그 주변의 여러 생명체를 노리며 탐욕스럽게 침을 질질 흘려 대는 X간 새끼들을 모조리 차단하기 위해서야.”

잎사귀 하나만 우려먹어도 만병이 낫고 수명이 백 년은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는 세계수.

실제로 세계수의 나뭇가지 하나가 극상의 아티팩트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였으며, 그 수액은 전설 속에서나 내려오는 물약. 엘릭서(Elixir)를 만들 때 필요한 핵심 성분이기도 했으니 만약 세계수가 그 뿌리를 지구에 내렸다면 아마 70억에 육박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이유가 다양하겠지. 누구는 죽어 가는 딸아이를 살리겠다며 수액 몇 방울 뽑아 가겠다며 찾아올 테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잎사귀 주워 가겠다고 얼쩡거리고 나중에는 뭐 세계수의 뿌리가 자기 땅 침범했다면서 세계수의 일부 소유권을 주장하며 뭐라도 좀 뽑아 먹어 보려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쏟아 내겠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내가 있을 때는 뭐 군침만 질질 흘리며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얼마나 갈까?”

엄연한 신성과 신위를 가진 존재라고는 하지만, 그 어떠한 자기방어의 사명조차 가지지 못한 그녀는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 수많은 인간의 이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착취당하게 될 것이 뻔했다.

[ 그건……. 그렇긴 하겠네. ]

내 말에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이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수긍해 버리는 용용이.

그런 그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간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도록 화성에다가 심어 놨는데 여기다가 연구 시설을 짓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한다? 대가리에 총 맞았어도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지.”

[ 그러면, 정말로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거야? ]

“현재로서는 그렇지. 뭐 나중에 필요하면 아주 제한적인 조건들 속에서 출입을 허가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최소 수 년 동안은 없을 예정이야.”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세계수와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행성으로 화성을 내버려 두겠다는 나의 말에 용용이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되물었다.

[ 그런데 주인. 앞으로 몇 년 후에 그 파이오니어랑 비슷한 우주선들 다른 인간들에게 팔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 아니, 아무리 이 행성 전체가 전부 주인 거라고 하더라도 아마 다들 한 번씩은 몰래 여기에 접근하려고 시도하지 않을까? ]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고, 가지 말라면 더욱 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그 특유의 청개구리 본성을 억누르지 못하고 불법 침입을 시도하는 이들이 없을 리가 없었기에 용용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 아무리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행성 전체를 지키면서 돌아다니기에는 무리가 좀 있지 않을까? 평생 여기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

결국 내 경고를 무시하고 세계수에 그 더러운 손을 가져다 대는 X간 새끼들은 분명 어딘가에는 꼭 있을 거라는 용용이의 우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격하게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렇겠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나는 내 경고를 무시하고 이 화성에……. 그것도 세계수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 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판달리아에서도 세계수를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걸?”

[ 그렇긴 하지……? ]

세계수를 중심으로 사방에 수십……. 아니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자라나는 거대한 밀림.

세계수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그 지형이 뒤바뀌는 이 영역은 허락받지 못한 존재가 감히 이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미로나 다름없는 녹색의 미궁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세계수가 뿜어내는 그 농밀한 마력을 먹고 자란 생명체들은 하나하나가 위험천만하고 치명적인 존재들인데……. 과연 이 비정하고 냉정한 약육강식의 밀림 속에서 최하위 피식자인 X간 따위가 살아남을 수야 있겠어?”

지금 당장만 해도 곳곳에서 보이는 치명적인 식물들.

피부에 조금만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독을 품고 있는 꽃가루를 뿜어내는 꽃들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죽는 거 말고는 아예 답이 없는 악랄한 기생 벼룩에 그 이외에도 하나하나가 인간 따위가 생존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는 그야말로 생태 지옥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 하긴……. 그렇긴 하네……. 판달리아에서도 마나를 일정 수준 이상 운용할 수 있는 상급 엑스퍼트 수준의 검사나 5 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감히 살아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는 하지. ]

마나를 운용하지 못하면, 기본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한 구역. 그만큼 농밀한 마나가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는 곳이었기에 용용이는 납득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어찌어찌 각성자나 마법사들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똑같을 거야.”

“완전히 무방비의 세계수의 주변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충실한 수호대가 24시간 상주하며 철저하게 지키고 있잖아?”

[ 수호대……? 그게 무슨……. ]

그리고 그 순간, 용용이는 완전히 충격에 빠진 듯, 하던 말도 멈춘 채 완전히 얼어붙었다.

파사사사사사삭.

스스스스슥.

사방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낯선 인기척.

분명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던 이 화성에 최소 십수 명은 되어 보이는 알 수 없는 사람의 형체를 한 무리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이들을 맞이했다.

“당신인가요? 위대하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사도가.”

거대한 나무의 뒤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어느 한 아름다운 여성.

딱 보기에도 현실에서 절대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이 벌어지는 미모를 가진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두 귀가 뾰족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세계수가 만들어 낸 첫 번째 자식이자, 세계수의 보호를 사명으로 하며 그녀를 위해서는 일족의 목숨까지도 모조리 바칠 수 있는 충실한 수호대이자 친위대인 숲의 종족.

엘프(Elf).

이들을 처음으로 마주한 나였지만, 전지의 권능을 통해서 떠오르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들의 언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사드립니다. 저는 위대한 어머니의 숲을 수호하는 거룩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푸르른 잎사귀 일족의 수장이자 어머니의 첫 번째 가지. 엘리시아입니다.”

엘프들 사이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자 엘프들의 여왕인 하이 엘프.

그녀가 직접 나와서 나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나는 피식 웃고는 이내 완전히 얼이 빠져 있는 듯한 용용이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거 알지? 이 녀석들, 인간 혐오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을 경멸하고 혐오한다는 거?”

인간이 조금만 세계수의 영역에 허락 없이 발을 디뎌도 일말의 자비도 없이 가차 없이 족족 죽여 버릴 정도로 인간 사냥에 진심이고 또 전문가인 이들.

이런 엘프들이 세계수의 영역에 상주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때? 이래도 여기가 어디 마나 좀 다룰 수 있는 X간 따위가 살아남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으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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