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메마르고 황량한 붉은색 사막만이 가득했던 죽음의 행성.
화성.
하지만, 지금 이 행성의 모습은 불과 며칠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쿠구구구구궁.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화성의 대지가 강력한 지진의 여파로 산산이 깨어졌다.
깨어진 조각의 틈새로 흘러나오는 새빨간 용암은 거대한 산맥을 만들고, 협곡이 만들어졌으며.
어딘가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얼음의 층은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며 방대한 양의 물을 쉴 새 없이 게워 냈다.
솟구쳐 오른 물은 뜨거운 용암의 열기에 수증기로 만들어져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그 수증기들은 이내 어마어마한 규모의 태풍을 만들어 내며 행성 전역을 쉴 새 없이 나돌아다니며 모든 대기를 순환시켰다.
하나하나가 가히 대재앙의 필적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며 화성 전체에 휘몰아치는 자연의 현상들은 마치 처음 태어나 울음소리를 내뱉는 신생아와 같이 이웃 행성인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화성은…….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화성의 이변은 제아무리 미국이 병적인 정보 통제를 하더라도 감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그런 것이 아니었다.
[ 현재 화성에서 이상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여러 천문학자의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세계 정부 당국 어디에서도 이 정보와 관련한 사실 여부는 현재까지 확인해 주지는 않았지만, 몇몇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에 의하면 화성에서 현재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
[ NASA는 화성과 관련해 현재로선 그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할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세간에 떠돌고 있는 낭설과 관련해서는 어떤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으며 아직은 정보 수집과 분석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고만 짧게 논평을 남겼습니다. ]
[ 한 천문 관측 연구소에서 발표한 화성의 사진이 큰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해당 사진의 화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산화철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황량한 사막의 모습이 아닌, 우리 푸른 별 지구와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사진이 합성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
아무리 NASA가 이를 악물고 모르쇠를 시전하고 있더라도 아마추어 천문 망원경으로 살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화성의 변화.
거기에 이와 관련해서 온갖 언론사들이 달라붙어 경쟁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며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어 보자, 결국 미국이 숨기고자 하는 내용들이 하나둘씩 세상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과연 화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저희 BMC가 단독으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는 멀린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지구 어디에서도 멀린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며, 스페이스 S사의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서 그가 현재 파이오니어를 타고 현재 화성으로 비밀리에 여정을 떠난 것으로 공식 확인했습니다. ]
[ 스페이스 S의 CEO인 엘런 더스크. 그가 멀린과 손을 잡고 맹목적으로 그를 추종한 이유가 화성의 행성 개조를 현실로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었습니다. 현재 화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바로 멀린이 화성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비밀리에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멀린이 비밀리에 화성에 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한 언론들. 이들은 화성의 변화가 멀린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기사로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그 의혹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 뭐야? 멀린이 진짜 화성에 있다면, 지금 화성에서 벌어지는 이변이 정말로……?
- 화성을 테라포밍하고 있다고? 혼자서?
- 에이 설마…….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건 선 넘는 거 아니냐?
- 그놈이 지금까지 해오던 거 보면 혹시 모르지.
- 만약 그게 가능하면 앞으로 나는 멀린을 신으로 부르고 찬양하겠음.
아무리 기적과도 같은 힘을 발휘하는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한낱 인간인 멀린.
그런 그가 행성 전체를 혼자만의 힘으로……. 그것도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완전히 뒤바꾸었다는 이야기를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세 사람만큼은 달랐다.
“끄으응……. 그 앞뒤 안 가리는 녀석이 도대체 또 뭔 짓을 벌인 거지.”
“어휴 진짜.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게 생겼네.”
“내 동생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세상에서 제일 미친놈이라니까.”
대한민국 대통령. 이호준.
매지컬 컴퍼니의 대표이사. 이아영.
그리고 우로보로스의 부학장이자 친누나인 김영희까지…….
멀린의 일반적인 성향과 행동 양식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비록 그에게서 직접적으로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지만, 대충 감을 잡은 이들은 떠들썩해진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는 조용히 대비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긴급하게 논의할 사항이 있으니 지금 당장 미국 대통령과 통화 연결 요청하게.”
“지금부터 우리 회사로 전화 오는 건 그냥 받지 마세요. 아니, 아예 전화선을 뽑아 버리세요.”
“우로보로스 전역에 비상 경계령 2단계를 발령합니다. 그 어떤 외부인의 출입도 철저하게 막아 주세요. 특히 기자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고 괜히 외부에 쓸데없이 입 놀리는 학생들은 다 퇴학시킬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아시겠어요?”
그렇게……. 세상은 멀린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시끄럽게 떠들며 이웃 행성인 화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연신 계산기로 두드려 가며 말이다.
* * *
“끄으으응…….”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전력으로 내려친 것 같은 어마어마한 두통.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강렬한 통증에 나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용용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인? 이제 좀 정신이 들어? ]
“뭐야? 얼마나 지난 거야?”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빠르게 떠오르는 기억들.
마법을 시전하고 이브에게 반강제적으로 소환당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까지 떠올리며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용용이는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정신은 회복되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 아니, 그보다 도대체 주인이 쓴 마법은 뭐야? 어떻게 그런 엄청난 짓을 벌이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는 건데? ]
“……. 어째 내가 죽었으면 하는 듯한 말투다?”
[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이건 드래곤……. 아니,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짓이라고! 어떻게 하잘것없는 그 인간의 몸으로 그 엄청난 마력을 운용하고도 타격 하나 없을 수가 있냐니까? 말이 안 되잖아. 말이. ]
곧 죽어도 사실만을 말하는 올곧은……. 아니, 예절 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싸가지 없는 도마뱀. 용용이.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서서 내가 만들어 낸 기적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우우우웅
화성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초록색의 향연.
도무지 그 규모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그 주변에는 도무지 화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
딱 보기에도 기름기 넘치는 비옥한 흙이 사방에 잔뜩 깔려 있었으며, 어딘가에서 듣기만 해도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날것으로 들이마신 청량하고 상쾌한 공기가 내 폐부 깊숙한 곳까지 간지럽히고 있었다.
“아름답네…….”
가히 기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순간.
비록 아직 세계수의 영향력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다른 지역들은 대지진과 더불어 화산 폭발, 홍수, 해일, 메가톤급 태풍과 같은 엄청난 대재앙들로 인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면 분명 내가 서 있는 이곳과 같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발아하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우우우우우웅.
세계수가 뿜어내는 강대한 마나의 힘을 양분으로 삼으며 말이다.
그렇게 내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서 있는 그 순간, 처음 듣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 정신을 통해 직접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 당신이군요. 저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인간이. ]
나와 용용이를 존재하고 그 어떤 지성체도 존재할 수 없는 행성인 화성.
하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 지으며 답했다.
“맞아.”
[ 뭐야? 갑자기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 ]
세계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용용이는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나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거야. 이 세계는……. 지금까지 아득히도 기나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의 세계였거든.”
불과 일주일 사이에 행성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적으로 안착한 세계수.
그 과정에서 이미 화성의 환경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오며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최소한도의 조건을 충족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인 건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이 세계를 수많은 생명으로 번성하게 만들어 줬으면 해.”
만물의 어머니이자 생명의 근원인 세계수.
비록 그 방향성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존재 자체가 세계에 얽매여 있지만, 엄연히 초월적인 신성을 가진 존재이자 비록 그 격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행성 전체를 관장하는 그녀는 엄연히 신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정말로 이 상황이 혼란스럽고, 당혹스럽지만 동시에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재밌군요. 어떠한 신성도, 신위도 가지지 못한 필멸의 존재가 저를 소환한다니. ]
나에게서 무언가를 엿본 듯한 세계수.
본래 자신이 존재할 수조차 없는 세상에서…….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며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 미래를 엿볼 수 없는 자여, 당신은 바라보고 있는 미래는 뭐죠? ]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향해 물어 오는 세계수.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피곤한 얼굴로 짤막하게 말했다.
“이 엿 같은 세상의 결말을 바꾸는 것.”
[ ……. ]
그 말에 침묵하는 세계수.
그리고 이내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모두에게 버림받고 잊힌 세계를 홀로 구원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이라니. 지금껏 제가 봐 왔던 그 어떠한 가혹하고 기구한 운명과 비교해 봐도 진실로 어렵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군요. ]
마치 나를 동정하는 듯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어쩌겠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 ……. ]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꾸하자 침묵하는 세계수. 그리고 그녀는 조금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 비록 제가 그대의 영혼에 새겨진 고통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는 없겠죠. ]
내가 경험해 왔던 모든 과거를 돌아본 듯,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내뱉는 세계수.
그리고 그녀는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말을 빠르게 이어 갔다.
[ 하지만, 그대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응원해 줄 수는 있겠네요. ]
[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울려 퍼지는 강력한 진동.
[ 뭐……뭐야? 이건? ]
경악스러운 용용이의 외침과 함께 세계수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뿌득.
수백, 수천…….
아니, 감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그루의 나무들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처럼 사방에 뿌리내리고 자라나며 한순간에 거대한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이런 미친!!!!!! 저……정령? ]
자연계에 자유롭게 발생하는 무형의 존재이자 그대로를 형상화한 순수한 원소 그 자체인 정령.
이들이 자유롭게 세계수의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용용이는 거의 자지러지듯이 꽥꽥거리며 소리쳤다.
[ 설마 지금……. 이 세계가 정령계와 연결된 거야?! 불가능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오만 호들갑을 다 떨고 있는 용용이.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하늘 위를 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는 미소 지었다.
화성 주위를 맴도는 두 개의 위성.
포보스와 데이모스.
비록 판타지 세계에서 언급되는 전형적인 붉은색과 푸른색을 띠는 달은 아니었지만, 찬연하게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보며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여기를 화성이 아니라 판달리아라고 불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