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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194화 (194/242)

194화.

“여기는……?”

불현듯 눈을 떠 보니 과거에 본 적 있는 익숙한 공간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무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공간 속에 끊임없이 늘어서 있는 수없이 많은 책장. 그리고 그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무수히 많은 책을 보며 일순간 내가 멍하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그때.

내 뒤에서 낯익은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부터 이럴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너 정말 골 때리는 녀석이었구나?”

“너는……?”

머리부터 눈동자까지 모든 것이 새하얀 은빛으로 빛나는 어린 소녀……. 아니, 소녀의 모습을 한 채로 아득히도 찬란하고 거대한 신성을 품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

이브.

고작 내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은 체구였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버거울 정도로 강력한 영력을 뿜어내는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정말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나와 계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그 하잘것없는 인간의 격으로 신의 권능을 감히 넘보겠다니…….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거 아냐?”

내가 사용한 마법.

엄밀히 따지자면, 분명 마나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마법의 개념 아래에 속해 있는 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서클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태초의 나무. 세계수(世界樹).

판타지나 여러 영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 세계수를 그저 특별한 힘을 품고 있는 무식하게 큰 나무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행성 전체에 그 뿌리를 내리고, 전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 어떠한 메마르고 완전히 그 동력이 꺼져 버린 환경에도 역동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게 만들어 주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

대자연의 근원이자,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유일하게 마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강력하고 거대한 규모의 영자 생성 기관으로……. 세계수는 단 한 줌의 생명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화성을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만들 수 있는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준 전지의 권능에 따르면, 완전히 죽어 버린 행성을 되살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었거든.”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자그마한 일말의 의문만 품어도 정확한 답을 알려 주는 그녀의 힘은 나에게 분명하게 그 길을 제시해 주었다.

감히 한 세기도 살아남지 못하는 비천하고 하잘것없는 필멸자의 격으로도…….

이러한 터무니없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름길을 말이다.

“하…….”

작게 웃으며 답하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브.

그리고 그녀는 이내 품에 꼭 안아 들고 있는 책을 내려다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망할 꼬맹이 새끼가 관장하는 영역에서 태초의 나무로 창세(Genesis)를 일으키겠다니…….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어조로 연신 툴툴거리고 있는 이브.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문제라도 있어?”

“그럼, 문제가 없겠냐? 이건 완전히 ‘법칙’을 벗어나는 행위인데?”

“법칙……?”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이브. 하지만 나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해 줄 생각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알 문제는 아니고. 아무튼, 네 녀석이 저지른 짓 때문에 나도 골치 아프게 생겨 버린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돼. 비록 절멸의 운명을 타고났던 버려진 세계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용인해 버리면 나에게도 꽤 부담 가는 페널티가 돌아오게 생겼거든.”

단순한 유흥거리로 치부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 버린 상황.

그렇기에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이브의 차가운 빛이 감도는 은빛 눈동자를 직시하면서 나는 조금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방법은 많지.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태초의 나무가 그 세계에 뿌리내릴 일은 없으니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머리 아픈 상황은 지금 당장이라도 피할 수 있지.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너라는 변수로 인해서 만들어진 시간선을 모조리 제거할 수도 있고. 또…….”

내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제대로 엿 먹일 방법을 한 12가지는 쏟아낸 이브.

지금껏 과거로 돌아와 수년이 넘게 아득바득 고생하며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마치 우주 속 티끌처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그녀에게 내가 저항할 수단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네가 저지른 이 사고를 용인할 생각이야.”

“뭐……?”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저지른 사고를 용인하겠다는 이브.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내가 전에 말했었지? 내가 너한테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라고?”

멸망한 세계 속에서 너무나도 허무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나에게 갑자기 나타나 그녀가 건넨 제안.

그때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최대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칠 수 있는 깽판은 모조리 치고 다니는 것…….”

도무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지시.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그녀가 내린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해가 잘 안 갔어. 도대체 왜 그 빌어먹을 노란색 멍청이 새끼가 가만히 있던 남의 영업장에 기어들어 와서 온갖 깽판을 다 치고 다니는지 말이야.”

“……?”

복수를 운운하면서 뭔가 잔뜩 화가 난 기색으로 투덜거리던 이브. 하지만 처음 봤을 그때와 다르게 지금의 그녀는 묘하게 장난기 가득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서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더라.”

“지루하고 따분했던 영겁의 시간을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낼 수 있는 유흥거리가 또 있었다니 말이야.”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 내가 온갖 화려한 똥꼬쇼를 다 벌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이브.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지듯이 물었다.

“내가 무슨 네 장난감으로 보이냐?”

“아니? 전혀.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최대한 너를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전혀 안 그런 것 같다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자 이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지금 나에게 ‘반말’을 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는 것만 봐도 모르겠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어엿한 관리자로서의 위(位)를 가진 나는 어지간한 신격도 함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거든? 이 순간을 네 영혼 대대로 영광으로 알라고.”

“……. 참으로 영광이네요.”

고작 반말하는 것 가지고 온갖 유세를 다 떠는 이브의 말에 나는 삐딱하게 비꼬았지만, 그녀는 피식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이번 한 번만큼은 용인해 주겠지만,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또 태초의 나무를 소환하려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 그랬다가는 복수고 나발이고 네 녀석이 있는 우주를 내가 직접 먼지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농담이 아니라 순도 100%의 진심이 담겨 있는 협박.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 터무니없는 경고를 행동으로 옮길 능력을 갖춘 존재였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걸로 내가 할 이야기는 끝났으니 다시 돌려보내 줄게. 네가 있던 우주의 시간은 일시적으로 동결해 뒀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앞으로 한 3달 동안은 그 어떤 마법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둬. 나도 그렇지만 너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 건 아니거든.”

3달 동안 마법 압수라는 벌칙을 부여한 이브.

그리고 이내 그녀의 몸에서 묘한 공명음이 들리더니 나와 그녀가 서 있던 공간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우우우우우웅.

끝없이 펼쳐진 책장들이 굉음을 내며 요동치기 시작하며 무언가 변화를 시작하는 그때, 이브는 나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맞다. 그리고 선물로 이거 하나도 알려 줄게.”

“네 녀석이 있는 세상 말이야…….”

“아직 절멸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20년 후에 핵전쟁과 함께 멸망하게 될 세상.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반쯤 작살 내고 핵무기까지 강제로 모조리 해체하기까지 했는데 아직도 절멸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브의 말에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뭐? 지금 그게 무슨……!”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추궁하려 했지만, 내 물음보다 그녀의 손이 더 빨리 움직였다.

따악.

그렇게…….

자그마한 그녀의 핑거 스냅과 함께 나의 의식은 일순간 또다시 흐려졌다.

* * *

미국의 항공우주국. NASA.

우주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며 수많은 탐사와 우주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국장님. 파이오니어가 화성에 착륙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화성의 궤도를 돌며 정찰과 탐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정찰 위성.

MRO-2(Mars Reconnaissance Orbiter-2).

최근 퇴역한 구형 정찰 위성을 대체하기 위해서 불과 1년 전에 화성에 도착한 이 차세대 정찰 위성에는 매지컬 컴퍼니에서 제공받은 마나 링크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기에 과거 자그마치 40분이 넘는 데이터 전송 지연 시간이 있던 과거와 다르게 실시간으로 모든 데이터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끄응……. 결국 최초의 화성 착륙 기록은 멀린이 가져가고야 말았군.”

인류 최초로 화성에 탐사 로봇을 보내는 데 성공했던 미국.

그렇기에 언젠가는 달에 최초로 착륙했던 것과 같이 화성에 제일 먼저 도착해 성조기를 꽂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국장은 묘하게 아파져 오는 배를 매만지며 연신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정확히 뭘 하고 있나?”

“현재 위성이 해당 지역의 궤도를 벗어나서 관측할 수 없습니다. 다음 가능한 관측 가능 시간은 앞으로 5시간 후입니다.”

어느 한 지점만 감시하는 고정 궤도가 아니라 화성 전체를 탐사하는 이동 위성이기에 파이오니어가 착륙한 지점에 다시 도착하기에는 그 주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그 보고를 들으며 국장은 연신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대체 왜 혼자서 화성에 가기를 그렇게 고집하고 있었던 거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보.

현존하는 그 어떤 우주선보다도 빠른 속도의 항행이 가능한 파이오니어였지만, 그래도 편도로만 꼬박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수하고도 아무런 지원 인력도 마다한 채 화성으로 향한 멀린을 보며 미국은 분명 무언가 커다란 계획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NASA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화성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국장이 수많은 고민과 상념 속에서 잠겨 있는 그 순간, 어느 한 직원의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미친! 크……큰일 났습니다!"

"뭐야?"

"화성에서 대규모 지진파가 감지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진이라니?"

"퍼시비런스 호에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현재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진의 진도는……. 오 맙소사, 측정 한계 초과. 메가 지진(Mega Quake)입니다."

감지 가능한 수치를 넘어서는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는 화성.

MRO-2를 중계기로 실시간으로 화성에 착륙되어 있던 구형의 고철 로봇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NASA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이변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세상에 맙소사……."

"신이시여……."

"아아아……."

화성의 대기권 밖에서 평화롭게 공전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화성의 대지를 카메라에 담는 인공위성.

그리고 그 위성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담기는 화성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파괴적이고, 위협적이었지만, 동시에 역동적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격렬한 지진과 함께 쪼개진 지각의 틈새 사이로 새빨간 용암이 사방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와 황량하게 비추어지던 화성의 대지를 가렸다.

거대한 태풍의 눈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흉포하게 대기가 휘몰아쳤으며.

어디서 숨어 있었던 것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물이 솟구쳐 오르며 푸른빛의 대양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는 화성.

그리고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NASA의 직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기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간 5시간 후…….

이들은 인공위성을 통해서 멀린이 있던 지역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하나의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연신 눈을 비비고 비볐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감히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청명한 초록빛을 뿜어내는 나무.

세계수의 존재를 처음으로 목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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