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1967년 처음 만들어져 6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던 우주 조약이 오늘 UN의 ‘우주평화적이용위원회’의 표결을 통해 정식으로 개정 절차를 진행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조약의 당사국인 106개 국가 전체가 만장일치로 동의하였으며, 이는 멀린이 UN 본부에서 우주 탐사선 파이오니어를 3년 이후 가입국에 한정해 판매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기에 나타난 결과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평가했습니다. ]
[ 우주 조약의 핵심 개정안에 담기게 될 영토의 점유권과 소유권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행성의 개척 및 생명체 생존에 필요한 환경 구축’입니다. 단순히 먼저 탐사에 성공해서 자국의 국기를 꽂는 것이 아닌, 전초 기지의 건설이나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그 영역만을 제한적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조항을 통해 무분별한 선점과 영토 분쟁을 막고 제한적으로 영토의 영유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미국이 본격적인 달 기지 건설과 희귀 자원의 탐색 및 채굴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달에 매장되어 있는 막대한 양의 희토류 자원을 비롯해 희귀 에너지 자원인 헬륨-3 같은 여러 자원들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입니다. ]
[ 스페이스 S는 미국에 제한적으로 1년 후에 세계 2번째 탐사선인 필그림을 선판매할 것이며, 이후에는 멀린과의 약속한 3년이 지난 후에 조약의 가입국을 대상으로 생산 주문을 받을 것이라고 오늘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어서 여러 국가에서 성토가 흘러나왔습니다. ]
우주 조약의 개정과 동시에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우주 개척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상식의 궤를 완전히도 벗어난 이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반응을 보였다.
- 우주? 화성? 도대체 내가 무슨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거지…….
- 무슨 세상이긴?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꼬맹이한테 휘둘리는 세상을 살고 있지.
- 그 스무 살도 안 된 꼬맹이가 마법의 창시자면 그럴 수도 있지.
- ??? : 화성 내놔.
- ㅋㅋㅋㅋㅋ. 이제는 하다 하다 행성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워 버리누…….
일개 한 개인이 화성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말이 안 됐지만,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은, 그 농담 같지도 않은 그 헛소리가 정말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자네가 요구하던 대로 모든 국가가 화성의 영토를 자네가 선점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동의했네. ]
[ 하지만, 한 가지 자네가 양보해야 할 부분이 있네. ]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나에게 현재 협상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레너드 대통령. 그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평소와는 다르게 직접 나서서 우주 조약의 개정에 나서서 수많은 당사국의 이견을 조율하고 조정하고 있었다.
“양보요?”
갑작스럽게 나에게 양보를 언급하며 조금은 난처하다는 듯이 레너드 대통령은 우물거렸다.
[ 중국이랑 러시아, 그리고 몇몇 국가들이 자기들도 필요하다면 자네가 점유하지 못한 화성의 영역에는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네. 이번 조약의 개정에 들어가게 될 내용 중 핵심인 점유권과 소유권은 ‘행성의 개척 및 생명체 생존에 필요한 환경 구축’을 기준으로 하기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뜻을 절대 굽히지 않더군. ]
화성을 비롯해 다른 행성에서 소유권과 점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
그 기준을 운운하며 화성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고집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죠.”
[ 뭐……? ]
내가 길길이 날뛸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인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고 일순간 멍청한 표정을 짓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조약에서 그렇게 규정하겠다는데 저도 뭐 따라야죠. 최소한 제가 선점하는 것은 인정하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는 만족해야죠.”
결사반대를 외치며 투쟁하는 여러 국가와 어지간해서는 자기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멀린 사이에 끼어 골머리를 오랫동안 앓게 될 것이리라 생각하고 있던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쉽게 일이 풀리는 이 상황에 화색이 된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나와 준다면 훨씬 수월하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겠어. 고맙네. ]
“뭘요. 혹시라도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시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유럽 국가들이 딴맘 품고 일 그르치지 않게 중간중간 내부 단속도 꼭 좀 부탁드릴게요.”
[ 그건 걱정하지 말게. ]
“모쪼록 큰 문제 없이 조약 개정이 잘 마무리가 된다면 제가 대통령님과 미국 정부에 개인적으로 섭섭하지 않게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 드리겠다고 약속드리죠.”
[ 그것 참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군. ]
도대체 무슨 보상을 주겠다는 것인지 묘하게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던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문득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 그래서……. 처음으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기분이 어떤가? ]
스페이스 S가 개발한 첫 번째 우주탐사선 파이오니어.
그 안에 홀로 탑승해 지구를 벗어나 드넓은 우주로의 항행을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 된 나는 레너드 대통령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사실 그렇게 다르지는 않아요.”
인공 중력을 통해서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조성한 우주선의 내부.
그렇기에 무중력 상태에서 허공을 부유하며 온갖 불편한 상황들을 직면할 필요 없이 쾌적한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기에 크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게다가…….
[ 주인, 이제 슬슬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어. 이제 속도를 줄여야 궤도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아. ]
내 옆에 꼭 붙어서 시끄럽게 쫑알대면서 우주선의 조종을 비롯해 모든 관제를 도맡아 하는 용용이가 있었기에 지루할 겨를조차 없었다.
“지금 대통령님과 실시간으로 통화하고 있는 것처럼, 마나 링크를 통해서 아무런 통신 지연도 없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네트워크망과 연결되어 있어서 사실 심심할 겨를도 없어요. 지구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여기서도 빤히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외로움이나 고독함을 느낄 필요도 없이, 마나 링크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지구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대화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나의 상황을 보면서 레너드 대통령은 진심이 가득 담긴 욕망을 드러냈다.
[ 아무리 봐도 마나 링크 시스템은……. 정말 터무니없는 정도로 획기적인 기술이군. ]
마나만 존재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기적인 통신 시스템. 일반적인 전파나 전기 신호가 극복하지 못한 물리적 제약과 한계를 완전히 벗어난 이 마나 링크의 가치를 여실히 깨달으며 그는 연신 입맛을 다셨다.
“미국에 넘겨줄 필그림에도 서비스로 끼워 줄 기술이니까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보다 슬슬 저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또 연락하도록 하죠.”
레너드 대통령과의 통화를 끊자 나의 눈앞에 나타나는 투명한 유리창.
그리고 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붉은색의 거대한 행성을 보며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에는 도착했네.”
태양계의 4번째 행성이자, 지구와 가장 비슷한 외형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화성.
인류의 가장 유력한 식민지 후보 행성이자, 한때 생명체가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완전히 메마른 황폐한 사막으로 알려진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된 나는 지구에서 아쉬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엘런 더스크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 인간은 이런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도대체 왜 따라오고 싶다고 한 건지 모르겠네.”
화성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보였던 엘런 더스크. 언젠가는 인류가 이곳에 진출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그러는 주인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 행성에 집착하는 건데? ]
“뭐가?”
[ 아니, 이 행성은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이잖아. ]
너무나도 단호하게 화성은 죽음의 행성이라고 단정하는 용용이.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마나 때문이었다.
[ 이 행성에는 마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농도가 극도로 적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
[ 판달리아에서도 이러한 무(無)의 공간이 제한적으로 존재했는데, 그런 곳은 어떤 방식으로도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없어. 물론 인공적으로 마나를 공급해서 일시적으로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무한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또다시 0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지. ]
생명체들의 탄생과 죽음. 그 위대한 대자연의 거대한 순환의 고리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마나. 생명의 원천이자 행성 자체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동력이나 다름없는 그 순환의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 화성은, 용용이의 관념으로는 절대로,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살릴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만이 가득한 황폐한 지대에 불과했다.
[ 도대체 주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성을 테라포밍하겠다고 선언한 거야? ]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마법적 지식을 동원해 봐도.
거기에 새롭게 학습한 최첨단 현대 과학 기술을 모조리 총동원해 봐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불가능한 화성의 테라포밍.
단순하게 일부의 영역만을 제한적으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이 아닌, 행성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일개 인간 수준이 이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 창조의 위(位)를 타고난 신성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한낱 필멸의 존재에 불과한 주인이나 내가 감히 시도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의 창조는……. ]
[ 주인이나 내가 계약했던 초월적인 존재들에게나 허락된 영역이니까. ]
테라포밍을 세계의 창조라고 지칭하는 용용이.
그만큼 내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용용이였지만, 나는 그의 말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최대한 행성 중심부에 자리한 평야 지대에 착륙이나 잘해. 괜히 함선 조종 못해서 나 죽이지나 말고.”
[ ……. 쳇. 만날 잔소리야. ]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줘도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린다고 무어라 투덜거리고 있는 용용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함선을 조종해 통해서 화성 중앙부 어딘가에 부드럽게 착륙시켰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굉음을 내며 착륙을 완료한 파이오니어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성에 발을 내디딘 최초의 인간이 된 상황.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그저 금속으로 된 탐사 로봇을 보내고 궤도에 인공위성이나 보내는 게 전부였던 이 미지의 행성에 홀로 서 있는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 속에서 가만히 서 있다 이내 명령했다.
“용용아. 상부의 화물칸 전면 개방해.”
[ ……? 갑자기? ]
수만 개가 넘는 막대한 최상급 마나석이 잔뜩 저장되어 있는 화물칸.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멀린의 정원에서 지금까지 생산했던 마나 에너지의 비축분 대부분이 저장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 담겨 있는 그 마나석이 저장된 저장고를 열라는 말에 용용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군소리하지 말고 얼른.”
[ ……. 알았어. ]
하지만 이어지는 내 재촉에 용용이는 두말하지 않고 함선의 상부를 열어젖혔다.
우우우우웅.
그러자 나의 감각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강대한 마력의 기운.
마나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죽음의 행성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 마나의 위대한 힘을 느끼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호흡을 작게 가다듬고는 말했다.
“용용아.”
[ 엉? 왜? ]
“아까 어떻게 화성을 테라포밍할 수 있냐고 물었지?”
[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
“네 말이 맞아. 일개 인간인 나는 아무리 전지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원천이 없는 이 행성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없어.”
[ ……? ]
화성에까지 와서야 자기 말이 옳다며 말하는 나를 보며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용용이.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소한 생명의 원천이 담긴 씨앗을 심어 줄 수는 있지.”
[ 뭐……? 그게 무슨……. ]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 용용이.
하지만 그는 곧장 일어나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우우우우우우웅.
내가 눈을 감고 온 정신을 집중하자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한 마나석.
수십……. 수백……. 수천…….
하나하나가 원자력 발전소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최상급 마나석이 수만 개가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라 나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그 메마른 대지에 박히기 시작하며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하자 용용이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뭐……뭐야? 이 마법은……? 도대체가……? ]
영겁의 시간 동안 이어져 왔던 드래곤 로드의 지식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마법의 종주이자 최강의 종족이라고 자부하던 드래곤의 지성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마법진.
일개 한 인간이 사용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감히 범접할 수도, 감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지금의 이 상황을 보며 그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 초월 마법……? 아니, 이건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잖아. 이건……. 이건……! ]
우우우우우웅.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의 웃음기도 없이 전력을 다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나는 용용이의 말에 그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전지의 권능이 선사해 주는 미친 듯이 내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무수히 많은 끝없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현실에 구현하며,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그야말로 초월적인 신성을 영득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기적을 감히 인간의 격으로 시도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렇게 수만 개의 마나석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안에 품고 있는 마나를 마치 폭발할 것처럼 일제히 강렬하게 발산하며 그 모든 기운이 정점에 달한 그 순간…….
나는 마법의 발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다 마무리하고는 이내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와 함께 나지막하게 시동어를 읊었다.
[ 멀린의 이름으로 명한다. ]
[ 모든 창생의 시작과 함께 존재하는 태초의 나무여……. ]
[ 지금 이곳을 너의 터전으로 삼고 그 뿌리를 내리거라. ]
그렇게…….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붉은빛 무의 세계였던 화성의 창세기는 시작되었다.
행성의 중심이자, 생명의 원천.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자 수호자인.
거대한 나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