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총성 없는 자본의 치열한 전쟁터인 주식 시장.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변동성을 자랑하며 수많은 미국의 벤처 회사들이 상장한 세계 2위의 증권 거래소인 나스닥에서 매지컬 컴퍼니가 IPO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 투자사들이 제일 투자하고 싶은 1위의 기업 매지컬 컴퍼니. 미국에 정식 상장하나?
- 매지컬 컴퍼니의 지분 30%가 시장에 풀린다? 지분 확보에 혈안이 된 투자자들.
- 갑자기 급락하는 주식 시장. 원인은 연기금과 대형 투자사들의 현금 확보 때문.
- 마법 관련 산업에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진 매지컬 컴퍼니. 투자 가치는 역대 주식 중 최고.
경제 소식지를 비롯해 전 세계의 주요 매체의 메인을 장식하며 연일 시끄럽게 떠는 매지컬 컴퍼니의 상장 소식. 그리고 그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매지컬 컴퍼니라면……. 무조건 사야 하는 주식 아닌가?
- 당연하지. 팬티까지 다 팔아서라도 무조건 사야 함.
- 저는 이번에 아파트 담보로 해서 대출까지 받아서 살 겁니다.
- 아……. 근데 진짜 궁금하다. 저거 상장하면 시가 총액이 얼마까지 뛸까?
- 글쎄……. 모르긴 몰라도 최소 삼진 전자나 고글은 우습게 넘지 않을까?
어떻게든 돈을 구해 와서 무지성으로 주식을 매수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증권사들과 여러 투자사 사이에서는 상장 절차에 따라 지금껏 제대로 공개된 적 없던 매지컬 컴퍼니의 내부 회계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시작하자 기묘한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영업이익률이 왜 이래? 뭐 잘못된 거 아냐?”
“연간 영업비용이 1,232억 달러……? 도대체 뭐에 이런 무지막지한 비용을 쓴 거지?”
2023년도 기존 연간 총매출 1,232억 3,200만 달러에 영업비용만 1,232억 달러.
순수익이 고작 3,200만 달러로 고작 0.03%도 안 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매지컬 컴퍼니의 터무니없는 실적을 보며 이들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 매지컬 컴퍼니의 재무제표를 보고 있자면 지표들이 하나같이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 회사의 성장률이 무척이나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영업비용과 지출이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늘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부채가 없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사업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현금 흐름이 조금이라도 막힌다면 매우 위험할 정도로 사업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
[ 제가 만약 이 회사의 주인이었다면 당장 CEO랑 CFO부터 내쫓았을 겁니다. 방만한 경영과 자금 운용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 손실이 터무니없는 수준입니다. 설사 지금까지는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어떻게든 경영해 왔다고는 하지만, 어엿한 주식회사로 거듭나려면 분명 합리적이고 더 뛰어난 사람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
[ 매지컬 컴퍼니라는 회사가 가진 잠재성과 그 가치는 분명 매력적입니다만……. 사업 방식을 보면 글쎄요……. 과연 주주로서 이 회사가 진정으로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인지는 조금 의문이 드는군요. ]
회사가 가진 미래 가치와 잠재성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너무나도 공격적인 사업 확장 방식과 자금 운용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 투자사들. 그렇게 수많은 사람과 기관, 그리고 단체들이 매지컬 컴퍼니의 내부 회계 자료를 두고 서로 갑론을박하고 있는 와중에 매지컬 컴퍼니의 기업 설명회(Investor Presentation)의 날이 밝았다.
전 세계의 금융가의 심장부인 월 스트리트.
그곳에 자리한 최고급 호텔 연회장에서 일찍이 모여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휴……. 생각보다 많이들 모였네요.”
“최대한 거르고 선별한 게 이 정도라고요. 다른 곳도 아니고 매지컬 컴퍼니인데 이렇게 많이 모일 수밖에 없죠.”
나를 대신해서 IPO에 필요한 전반적인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고 조율한 아영.
최근 잠도 제대로 못 잔 것처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 옆에 서 있는 그녀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발 저기 단상에 올라가서 필요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멀린 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오늘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융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밖에 없다고요.”
TV나 뉴스에서나 보지 일반인은 살면서 평생 제대로 한번 만나 볼 일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아영의 말에 나는 손에 들린 두꺼운 종이를 이리저리 넘기며 오늘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을 잠깐 훑어보았다.
“흠……. 전 세계의 은행이랑 투자청 쪽 임원들은 죄다 몰려왔네요. 거기 말고도 블루록 같은 헤지펀드나 연기금 쪽 관련자들이 대부분인데……. 그 유명한 투자의 신이라는 우디 버핏이랑 김정희도 와 있네요?”
대부분은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지만, 그 직함만 해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유명한 소위 큰손들이 바글바글한 그 사이에서 나는 매우 친숙한 이름 하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런데 국민연금은 여기 왜 있는 거죠?”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방대한 자산을 굴리는 연기금 중 하나인데 당연히 와야죠.”
“이호준 대통령님한테 웬만하면 건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야기가 잘 전달이 안 됐나?”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자……잠깐만요. 아무것도 아니라니? 지금 저 모르게 또 사고 치려고……!”
“어, 시간 됐다. 저 다녀올게요. 아영.”
내 말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추궁하려던 아영.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다 되어 단상 위로 올라가 버리는 나를 붙잡을 타이밍을 놓쳐 그저 불안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안녕하세요. 투자자 여러분. 저는 매지컬 컴퍼니의 소유주. 멀린입니다. ]
사방에서 느껴지는 수백……. 아니, 수천 쌍의 눈빛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압박감이겠지만,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 매지컬 컴퍼니가 추구하고 있는 최우선 가치는 누가 뭐라 해도 바로 환경 보호입니다. ]
[ 인류가 지금까지 파괴한 생태계를 복원하고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이 번성하고 식생이 생겨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투자를 전 세계에서 이어 가고 있죠. ]
“……?”
[ 매지컬 컴퍼니는 현재 전 세계 89개국에서 자그마치 7,260만 평 규모의 부동산을 매입하고 녹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24,000ha로 여의도의 30배에 달하는 엄청난 면적이죠. 어때요? 일개 기업 하나가 이루었다기에는 엄청난 업적이죠? ]
[ 회사가 설립한 시기부터 제가 지속해서 추진하는 프로젝트. ‘멀린의 정원’이 바로 핵심 사업 중 하나이죠.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우리의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생태계 환경을 세계 곳곳에 구축하고 여러 동식물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
[ 그래서……. 이번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확보하면 그걸로 멀린의 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지금보다 더 대규모로, 그리고 더욱 많은 국가에서 동시에 추진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투자자 여러분 모두가 이 지구의 환경을 살리는 데 일조하게 되는 거죠. ]
환경으로 시작해서 환경으로 끝난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은 묘하게 변해 갔다.
“그러니까……. 지금 투자받아서 한다는 게…….”
“환경 보호라는 소리인가?”
“허…….”
곳곳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한 설명회장.
그리고 그 와중에 대머리의 뚱뚱한 전형적인 백인 중년의 남성 하나가 손을 들어 물었다.
[ 지금 말하는 걸 듣자 하니……. 그 멀린의 정원이라는 사업을 앞으로도 계속 확대하겠다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
[ 네. ]
단 1초의 주저도 없이 즉답하자 그는 또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수익을 위한 사업은 어떤 것을 확장할 생각이죠? ]
[ 지금 명확하게 구상한 건 없지만, 앞으로도 신규 사업은 계속해서 이어 갈 생각입니다. ]
단 한 치의 거짓말도 섞이지 않은 솔직한 답변.
하지만 내 대답에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손을 들고 날카롭게 벼려진 비판적인 질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 사업만 한다면 주주들의 이익을 어떻게 보장하겠다는 건지 의문이군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서라도 이익 극대화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 경영자로서의 책무 아닙니까? ]
[ CEO를 비롯해 회사 내부의 임원진들 대부분이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이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주식 상장 이후에는 회사의 경영인과 임원진을 보다 더 뛰어난 인력들로 교체할 생각이 있습니까? ]
[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마다 그 주변 지역에서 여러 가지 자선 사업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서 이를 축소할 생각이 없습니까? ]
누구보다 가장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민한 투자자들.
그렇기에 이들은 매지컬 컴퍼니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제안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꼭 선을 넘는 놈이 하나 있었다.
[ 제 생각에는 회사 자체가 너무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무능하고 역량이 부족한 CEO. 회사 경영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무관심한 주인. 거기에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상만 가득한 기업 목표까지……. 사실 이러고도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
딱 보기에도 겨우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백인 청년.
이 설명회에 참석해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게 어린 나이의 그는 마이크를 들고 마치 가르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 다른 분들도 말씀하셨듯이, 이제 회사 규모도 커졌으면, 역량이 부족한 CEO는 바꾸셔야 합니다. 옛정을 생각해서 계속 같은 사람을 고집하다 보면 결국 잘나가는 회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둘러봐도 훨씬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 그리고 그 환경 타령도 이제 좀 적당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자선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매지컬 컴퍼니가 환경에 얼마나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 것입니다. 이제는 좀 적당히 하시고 수익 사업에 조금 더 몰두하셔야……. ]
그런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지랄하네. 이 망할 X간 새끼가. ]
[ 예……? ]
필터 따위는 없는 욕설에 일순간 당황한 얼굴로 얼어붙은 그. 그리고 그 순간, 이 기업 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던 기자들이 흥분한 기색으로 미친 듯이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 어딜 가든 너 같은 놈이 꼭 있더라. 자기 잘난 맛에 빠져서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을 자기만 안다고 생각해서 겉멋만 잔뜩 들어서 그렇게 깐죽거리면서 자기가 ‘Young’ 하다고 착각하는 놈들 말이야. 실상은 그저 개념 없고 예의 없는 무례한 건데 말이야.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을 그대로 실천하며 나는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꼭 사람 꼴 받게 하는 소리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고 이내 나의 분노는 이곳에 앉아 있는 모두에게 향했다.
[ 그리고 뭐?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환경 타령도 이제 좀 적당히 하라고? 하여간 여기 있는 놈들은 죄다 똑같은 놈들이야. 네놈들같이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놈들만 그득그득해서 지금까지 이 지구의 환경이 이렇게 형편없는 수준으로 박살 난 거라는 걸 알기는 하냐? 하여간 X간은 어쩔 수 없다니까. 내가 괜히 X간은 전부 XXXX하고 XXXXXXX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니까? ]
매지컬 컴퍼니의 기업 설명회가 한순간에 ‘인간은 왜 X간인가?’의 설명회로 변질해 버린 이 순간. 아영은 지독한 인간 혐오의 장이 되어 버린 이 설명회를 끝내기 위해서 사색이 된 얼굴로 단상 위로 올라와 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멀린 님! 지금 미쳤어요? 투자자들 앞에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 아, 이거 놔요. 아직 다 안 끝났어요. 야. 네놈들이 들이마시는 그 산소가 누구 덕분에 만들어지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이것들이 어디다 대고 환경 사업 적당히 하라 마라야? 기후 위기가 아직도 사기 같아 보여? 어? ]
인간 혐오와 더불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한 나를 보다 못한 아영이 손짓하자 딱 보기에도 커다란 덩치의 경호원 세 명이 몰려와 나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게 지금 사람들 앞에서 무슨 깽판이에요. 창피하게 진짜. 저항하지 말고 얼른 내려와요!”
정말 자기가 다 부끄럽다는 듯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단상에서 어떻게든 나를 내려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미는 아영. 그리고 나는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끌려 나가는 그 와중에도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 꼬우면 사지 말든가. 다 꺼져! 이 개보다 못한 X간 새끼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