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현대와 미래를 이끌어 가는 핵심 산업 중 하나이자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과학 기반 문명의 꽃인 정보 통신 기술.
원래라면 5G라는 이름으로 기술의 발전이 이어져야 했겠지만,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이 세계의 정보 통신 기술 산업의 발전은 완전히 그 명맥이 끊어지고야 말았다.
[ 마나를 활용한 통신 네트워크 체계. 일명 ‘마나 링크’가 전 세계의 통신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나 링크의 보안성과 속도. 그리고 저장 용량까지 그 어느 부분에서도 기존의 기술력으로는 도무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
[ 전 세계의 통신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기존 회선들을 마나 링크로 교체하고 있는 탓일까요? 5G를 비롯한 기존 통신 네트워크의 점유율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매지컬 네트워크의 파괴적인 시장 장악을 우려하며, 기업과 정부에 관련 산업의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
[ 한국의 통신사 3곳의 최근 분기 실적 발표에서 수천억 단위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져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는 매지컬 컴퍼니의 자회사인 매지컬 네트워크가 한국에 한정해서 해당 서비스를 무료로 시작한 이후 대규모 가입자 이탈이 발생한 것이 가장 주요 원인으로 보입니다. 올 한해 영업 손실은 조 단위가 될 것으로 보이며 업계 내부에서는 대규모 구조 조정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통신사들과의 전쟁으로 시작된 변화의 바람.
그것이 기존의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통신 기술의 발전을 끝장내 버리는 결과를 가지고 왔지만, 그 대신 마법을 기반으로 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불러오게 되었다.
“프로젝트.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291번째 실험 시작합니다.”
삼진 그룹의 핵심 연구소이자 마법과 과학이 통합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는 연구 시설.
위대한 진보(The Great Progress).
강원도 산골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는 이곳에서 꼬박 몇 달을 여러 컴퓨터 공학자들과 생활하며 수십,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이어 가며 실험하고 있는 나는 피곤하지만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실험 대상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실험자들의 상태는 어때요?”
“지극히 안정적입니다. 접속을 종료한 뒤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두통과 같은 신체적 부작용을 호소하거나 그런 경우도 없고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상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에 나는 히죽 웃으며 태블릿에 나와 있는 여러 수치를 확인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소장님 말대로 시간 흐름은 원래 시간대의 3배 정도가 딱 적당했나 보네요.”
“허허허. 저야 뭐 정신과 전문의들이 제시한 의견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넉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 연구소장. 그리고 그는 이내 참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비록 그 성능을 3배로 제한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참 대단한 기술입니다. 1시간을 최대 10년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니…….”
고작 1시간을 10년으로 만드는 기술.
자그마치 시간을 87,600배나 뻥튀기해서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이 기술은 가히 일반적인 과학 기술력으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기술이었다.
“에이 뭘요. 실제로 시간을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심상 세계 속에서 그렇게 느끼도록 ‘착각’하게 만든 것뿐인데요.”
이론적으로는 밥 한 끼 먹을 시간을 강산이 한 번은 바뀔 정도의 기나긴 세월로 느끼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그런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감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 성능을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실 시간으로 8시간이 이 가상 세계 안에서는 딱 하루로 떨어지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렇지? 용용아?”
[ 아!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자꾸 말 시키지 마. ]
마나 링크의 핵심 코어이자 전 세계에 방대한 규모로 전개되나 마나 네트워크의 유일무이한 관리자. 마법 AI. 용용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이자 충실한 노예(?)인 그는 지금 순간에도 바쁘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판달리아의 세계를 구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야. 아무리 바빠도 현재 진행 상황 보고는 해 줘야지.”
[ ……. 대략 80% 정도는 구현된 상태야. ]
“그래……? 어디 한번 전체적인 모습만 한번 화면에 띄워 볼래?”
내 말에 커다란 스크린에 나타나는 낯선 풍경의 이미지.
이제는 멸망한……. 용용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판달리아의 세계가 아득히도 머나먼 차원을 넘어서 이 지구에 비록 가상이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최신 CG 기술을 총동원하더라도 감히 구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현실감과 생동감을 선사하는 용용이의 작품. 아무리 막대한 자금으로 수많은 인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심상 세계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슈퍼 마법 A.I. 용용이의 능력을 보며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탄성을 토해 냈다.
거기에 빠르게 비추어지는 숲과 호수. 그리고 사막과 늪지대를 비롯한 온갖 아름답고 기묘한 여러 곳의 장소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들 수밖에 없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압권인 곳은 다름 아닌 어마어마한 크기로 지어진 중세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황성. 황금의 성(Golden Castle)이었다.
“오우, 저 도시는 뭐야? 폼 미쳤는데? 엄청 정성껏 만들었나 봐?”
딱 보기에는 엄청나게 휘황찬란해 보이는 성. 진짜 금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양 빛을 반사하며 황금색으로 주변을 물들이는 그것을 보며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는 그 순간, 용용이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흥, 내가 직접 만든 성이니까 가장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곳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
“뭐?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어떻게?”
[ 그러니까……. 내가 한 4,200년 정도 살고 난 이후였나? 그때 심심풀이로 인간으로 변신해서 유희를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여행 도중에 우연히 무슨 몰락한 왕가의 공주라고 하는 인간을 만났거든? 그래서 그때……. ]
주저리주저리 쉬지 않고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용용이.
마치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수천 년 전, 판달리아 대륙의 절반을 장악하며 어마어마한 패권을 자랑했던 최강의 제국. ‘골든 엠파이어’의 건국 신화였다.
“그러니까……. 지금 용용이 네가 직접 세웠던 그 제국의 황성을 구현했다는 말이지?”
[ 주인이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인간들의 도시로 구현하라며? ]
“그건 그렇긴 한데…….”
뭔가 문득 밀려드는 불길한 생각에 나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야기’ 소재는 뭐로 정한 거야?”
[ 아, 그거? 엄청 많은데 주인이 원하는 걸로 마음껏 골라 봐. ]
꿈과 희망. 그리고 행복과 재미만이 가득한 테마파크.
하지만 인간의 관점과 다르게 용용이가 생각하는 테마파크는 조금 그 궤를 달리했다.
“오크 부족에게 납치된 마을 주민 구출. 트롤 군락지 섬멸. 도시에 숨어든 흑마법사 처단. 역병 창궐. 어둠의 도래. 대륙 전쟁……?”
뭔가 하나하나 범상치 않고 해괴하기까지 한 제목들.
그것들을 살펴본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용용이를 집어 들고 물었다.
“야. 재미있는 이야기들만 엄선해서 알아서 만들어 보랬더니 도대체 뭘 만들고 있던 거야?”
[ 뭐…… 뭐가? ]
“아니, 제목만 봐도 정상이 아니잖아. 이거 도대체 뭐 하는 건데? 자세히 설명해 봐.”
딱 봐도 피와 죽음이 난무할 것 같은 제목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건 내 예상이 정확히 적중했다.
“야! 미쳤어? 무슨 테마파크 만들라니까 죄다 싸우고 죽이는 것밖에 없는 건데?”
제목이 곧 내용 그 자체인 이야기.
어디에 내놔도 곧장 19금 딱지가 붙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그야말로 피가 난무하는 그런 것들만을 골라서 늘어놓은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진심으로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 아니 왜?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
“……. 5살짜리 꼬마애가 잘도 오크들 모가지 썰러 다니겠다.”
인터넷에서 푹 빠져 사는 것 같더니만 꼭 이런 부분에서는 대중적인 인간들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런 거 말고 그 뭐냐, 화려한 무도회나 마을 축제 같은 테마를 가지고 구현해 보라고. 아니면 와이번 같은 거 타고 하늘을 비행하는 체험 같은 것들도 할 수 있게 하면 좋잖아.”
[ 그딴 게……. 재밌다고? ]
대충 예시를 던져 줬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용용이. 하지만 그는 연신 툴툴거리면서도 이내 알겠다고 답했다.
[ 아, 알겠어. 주인이 원하는 게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거라면 만들어 주면 될 거 아냐. ]
[ 그러면, 기존에 만든 건 아예 다 필요 없는 거야? 다 버려? ]
꼬박 몇 달 동안 용용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판달리아의 세상.
비록 그 세상이 본인이 인간으로 변신해 힘숨찐 코스프레를 하며 만들어 낸 제국을 배경으로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험악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묘하게 느껴지는 용용이의 아쉬운 목소리에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아니, 그것도 일단 버리지 말고 계속 만들어 놓고 있어 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딘가 독특한 취향의 인간들한테는 그래도 나름대로 수요가 있겠지 뭐.”
* *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 중 하나로 악명이 높은 액션 RPG 게임. 데드 소울.
유저들을 엿 먹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이 게임은 도처에 잔뜩 깔린 수많은 함정과 예기치 않게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그리고 수십 가지의 패턴을 보유하고 무자비하게 밀려드는 적들의 수로 인해서 클리어가 말도 안 되게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유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아 온 게임이었다.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식으로 적을 해치울 수 있는 높은 자유도와 더불어 완성도 높은 세계관과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거대한 세계에 몰입하고 녹아들 수 있었기에 이 게임은 극악의 진입 장벽에 좌절하며 사라지는 뉴비들도 많았지만, 미친 듯이 파고드는 썩은 물들이 가득 고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 퍼펙트 클리어.]
그리고 그 썩은 물 중에서도 진성 썩은 물인 김유식.
자그마치 10만 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가진 그는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처음부터 끝까지 데드 소울을 생방송으로 클리어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 와……. 저걸 어케 했누?
- 우리 유식좌 폼 미쳤다……. 저게 말이나 됨?
- 모든 지형과 몬스터의 수, 그리고 패턴과 인터페이스 위치까지 싹 다 외우면 쌉가능이지.
- 저게 플레이 타임 10만 시간을 가진 ‘진짜’의 위엄인가…….
- 진짜 저 새끼는 데드 소울 세계로 끌려가도 잘만 살아남을 듯.
- 오늘 처음으로 후원 쏴 봐요. 진짜 대단하시네요.
인간으로서 이룩하기 힘든 업적을 이루어 낸 그에게 진정으로 감탄하며 온갖 찬사를 쏟아 내는 시청자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유식은 너무나도 어두운 표정이었다.
“하……. 오늘 몸이 별로 안 좋아서 방송은 오늘까지만 할게요. 죄송해요.”
팟.
방송을 끄자 밀려드는 고요함.
유식은 그토록 오랜 시간 빠져들었던 데드 소울의 초기 화면만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밀려드는 허무함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 중얼거렸다.
“재미없어…….”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
그토록 재미있었던 게임이 불가능의 한계를 뚫고 나자 하루아침에 흥미를 잃게 되고 느끼는 이 허망한 감정에 그 누구보다 절망하고 있는 그 순간, 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지……?”
평범해 보이는 광고 메시지.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 기존의 게임이 질리셨나요?
“……?”
마치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물어 오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는 그런 유식을 유혹하고 있었다.
- 그렇다면 지금 당장 클로즈 베타에 신청하세요.
- 새로운 세상 속에서 우정, 노력, 그리고 승리를 위한 모험은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이게 무슨……?”
평소라면 콧방귀도 안 뀌고 흘려 넘겼을 광고 메시지.
하지만 지금 그의 심정을 정확히 저격하는 메시지에 유식은 자기도 모르게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링크를 타고 넘어가 신상정보를 입력하며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신청했다.
‘스토리 오브 판달리아’라고 불리는…….
듣도 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게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