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1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치러진 입학시험.
하지만 그 시험을 직접 치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대중은 경악했다.
- 시험 시간이……. 1시간이 아니라……. 10년이었다고?
- 그게 중요함? 시험 문제가 아주 악랄하잖아.
- 프로텍트 학파 시험은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1시간 살아남기였다고 하더라.
- 룬어 100만 개 외우다 나온 사람 한 명은 공황장애로 응급실 실려 갔다던데
- 쉬지도 못하고 10년 동안 시험만 봐야 한다……? 난 불가능.
- 그래서 죄다 중간에 포기하고 일어났잖아. 난 처음에 무슨 2분 만에 시험을 포기하고 일어나서 울고 있길래 미친놈인가 했음.
- 너에게는 2분일지 몰라도 걔한테는 한 반년은 되지 않았을까?
10년.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고작 1시간이라는 절대적 시간 속에서 겪어야 하는 시험.
제아무리 좋아하고 즐거운 일……. 아니, 아예 빈둥대고 놀기만 하라고 해도 1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인간인 이상 질릴 수밖에 없기 마련.
어지간한 정신력과 의지가 아니라면 절대 버텨 낼 수 없는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일이었기에 중도에 탈락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기어코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 내는 극소수도 분명 존재했다.
[ 우로보로스가 제3기 입학시험의 최종 합격자를 총 429명으로 확정하고 최종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기존에 뽑기로 발표했던 600명보다는 적은 인원이지만, 우로보로스의 험난하고 고된 교육 과정을 따라갈 기본 자질이 갖추어진 이들만을 선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고 우로보로스 측 관계자가 설명했습니다. 또한, 합격자 429명 중에서 시험을 완전히 통과한 인원은 아무도 없다고 추가로 밝혔습니다. ]
비록 제시된 시련을 완전히 통과한 인원은 아무도 없었지만, 끝까지 아득바득 이를 갈고 10년을 버텨 내 시험을 통과한 429명. 그리고 그 결과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 이번 우로보로스의 합격자가 아프리카 일대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들과 빈곤국 출신들이 대거 편중되어 있어 큰 화제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가장 많은 응시생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은 이번에 합격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전원 탈락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서 분석한 어느 한 심리 분석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
[ 저는 이번에 우로보로스에서 진행된 시험은 본질적으로 어느 한 개인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이에 반응하고 대처하는지를 보기 위한 시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회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당하게 그 시련을 맞서며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죠. ]
[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과 시련이 1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장담하는데 미쳐 버리거나 끝없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나 중간에 포기할 수 있다면 더더욱 말이죠. ]
단 한 마디의 문구만을 외쳐도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상황. 끝없는 고통 속에서 속삭이는 그 달콤한 유혹을 견뎌 낼 수 있는 인간은 극히 드물었다.
[ 한 인간이 가진 극한의 정신력.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의지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시련을 마주할 수 있는 끈기……. 아니, 이 정도면 독기라고 해도 되겠군요. 아무튼 악과 깡으로 잔뜩 채워져 그 어떤 고통과 시련에도 끝까지 버텨 낼 수 있을 만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 설계된 시험이라고 봐야 하겠죠. ]
[ 그렇기에 미국이나 한국, 일본, 독일과 같은 여러 선진국 출신들의 합격률이 낮은 것입니다. 원체 풍족하고 어려움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하는 인구가 대부분이니, 악과 깡이 없으면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험난한 환경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과 경쟁하기 힘들죠. ]
인생의 쓴맛과 매운맛을 덜 본 선진국들에 비해 개도국과 빈국에서의 합격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 특히 한 명의 합격자도 배출하지 못한 미국은 이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고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기에 이번 시험의 결과를 보며 그는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 지극히 악랄하고 잔인한 시험이지만……. 선진국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한 후진국이 가진 강점이자 이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시험이었던 것 같네요.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헝그리 정신이라고. ]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보다는 지독한 독기와 깡다구를 요구한 시험.
하지만 그 방식과 시험 난이도 때문에 온갖 문제를 제기하는 불합격자들의 불만이 쇄도했다.
- 충격! 정확한 사전 안내 없이 진행된 비인간적인 우로보로스의 입학시험. 큰 논란.
-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우로보로스의 응시자들. 이건 시험이 아니라 고문이라 주장.
-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우로보로스를 향한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응시자들. 과연 그 결과는?
여러모로 언론에 오르내리며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는 상황.
하지만, 의외로 이번 시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전 세계의 국가들로부터는 그리 큰 반발이 오거나 항의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뭘 어떻게 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온다고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에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자 아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번에 우로보로스 입학시험에서 사용한 그 물건, 혹시 따로 판매하거나 그럴 수 없냐는 문의가 매지컬 컴퍼니 쪽으로 폭주하고 있다고요. 일반적인 기업에서만 들어오는 것들이면 모르겠는데 각 나라의 외교부에서도 직접 나서서 압력을 넣고 있어서 그냥 무시하기가 곤란해요.”
미국이야 두말할 것 없고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호주, 영국…….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 세계에서 쇄도하는 구매 요청 문의.
도대체 왜 이런 악랄한 고문 도구(?)에 과할 정도의 관심을 가지나 의아할 법했지만, 그 활용성을 생각해 본다면 그 가능성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했다.
- 그런데 저거……. 중요한 시험 전날에 이용하면 진짜 개꿀이겠는데?
- 수능 1시간 전에 쓰면 한 10년 공부하고 시험 보러 갈 수 있겠네. ㅋㅋㅋ
- 만약 저 안에다가 엄청나게 호화로운 별장 하나 만들어 놓고 쉬고 싶을 때마다 이용할 수 있으면……. 아주 천국이겠네.
- 애초에 1시간을 10년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기술임.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사람들이 원하는 즐거운 환상을 체험하게 하고 그걸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고 싶다. 이 말이네요?”
“그렇죠. 아, 조금 음침한 제안들도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건 제 선에서 걸렀어요.”
“음침한 제안이요?”
“별건 아니고요. 어디 동남아 국가 하나에서 이걸로 교도소에서 죄수들 독방에 가두는 처벌을 이걸로 대체하고 싶다며 대량으로 구매할 수 없냐고 물어 왔거든요. 그거 말고도 심문용이나 고문용으로 쓰려고 하는 것 같은 것들은 싹 다 쳐 냈어요.”
“음……. 그렇군요.”
꽤 효과적(?)으로 내가 만든 아티팩트를 활용하려는 제안들.
아영이 건넨 꽤 두꺼운 종이 뭉치를 받아 들고 하나하나 들추어 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이렇다 할 만한 사업 제안서는 딱히 없었다.
“내용들이 대부분 비슷하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일단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괜찮아 보이는 제안은 대규모 전장에서의 훈련 상황이나 화제 및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을 위한 교보재로의 활용. 그리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비행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의 제작 같은 것들이었어요.”
“하나당 100만 달러를 쳐준다는 거 보니 수익적인 측면으로 괜찮아 보이기는 하네요.”
꽤 관대한 값을 쳐주는 제안들로만 엄선하고 또 엄선해 나에게 들이미는 아영.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쵸 그쵸? 그러니까 여기 있는 것 중에서 뭐 하나 해 보자 이 말이에요. 안 그래도 요즘 매지컬 컴퍼니에서 나가는 지출이 무지막지한 상황이라 저도 뭐 하나 새로운 아이템으로 신사업 하나 시작하자고 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자금 상황이 안 좋아요?”
“……. 간신히 수입과 지출을 맞추고 있다고만 해 두죠.”
실질적인 회사의 소유주면서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내 반응에 잠깐 발끈한 것 같은 아영. 하지만 이내 그 화를 꾹 참는 얼굴로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괜히 찾아와서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요? 멀린 님이 환경 보호 부르짖으면서 전 세계에 부동산 매입하고 나무 심고 알박기하는 것만 해도 지금 당장 나가는 지출이 수십조 단위예요. 이제는 뭐 사려고 하면 터무니없는 가격부터 부르는 곳이 허다하다고요. 무슨 우리 회사가 호구도 아니고 원…….”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멀린의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서 지속해서 전 세계의 부동산을 매입하고 녹화 사업을 진행하는 아영. 예전과 다르게 일단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부터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협박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했다.
“아무튼……. 이거 안 하실 거면 멀린의 정원 조성 사업이나 프로젝트 우라노스나 뭐 하나는 포기하실 생각 하세요. 돈이 없어요. 돈이.”
자금 압박에 시달리며 못 살겠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아영.
그런 그녀의 말에 잠깐 고심하며 사업 제안서들을 다시 차근차근 돌아보며 나는 고민했다.
‘이런 것들은 너무 단발적이고 지속성이 없는 것들인데…….’
단가는 높지만, 지속해서 판매하기에는 어려운 내용들. 일반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한 사업이기에 구매 대상이 극소수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이 사업의 기대 매출이 그리 높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내가 하나하나 다 만들어 줘야 한다는 말이지.’
일루젼 학파의 마법 중에서도 꽤 고난도의 마법들이 여러 개가 중복적으로 뒤섞여서 만들어진 나의 비전 마법. 물론, 기본적인 틀은 완성되어 있었기에 그 내용을 바꾸는 것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경지에서도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지금 그럴 정도의 역량을 가진 마법사는 지구상에서 내가 유일했기에 이건 기본적으로 내 시간과 노동력을 어마어마하게 갈아 넣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일루젼 학파의 신입생들이 그럴 만한 수준이 되려면 최소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렇게 된다면……. 한참을 시달리겠네.’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귀찮은 일이 반복되게 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 그렇기에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영은 이미 내가 할 것으로 단정 지은 것 같았다.
“그래도 미국 정부가 요청한 이 군사 훈련용 교보재는 만들어 주는 게 어때요? 이거 만들어 주면 어떻게 잘 설득해서 이번에 미국 정부 소유의 부동산 하나 어떻게 싼값에 넘겨받을 수도 있을 것 같던데.”
머릿속으로 온갖 계산기를 두드리며 기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어 오는 아영.
그렇게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내가 편하면서 돈은 효과적으로 벌어 올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는 그 순간.
우우웅.
전지의 권능이 새로운 정보를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어……?”
“왜 그러세요?”
내가 순간 멍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 오는 아영.
하지만 나는 황급하게 내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용용이를 집어 들고 물었다.
“야. 용용아. 나 물어볼 게 하나 있어.”
[ 응? 뭘 물어봐? ]
갑자기 대화 중간에 자신을 부르자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내가 이번에 만든 마법. 뭔지 잘 이해되지?”
자기도 처음 보는 마법이라고 투덜댔던 용용이. 하지만 드래곤 로드까지 지낸 그 짬바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 헹. 그거야 당연하지.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의 마법은 나에게는 껌이라고. ]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더 물었다.
“그리고……. 네가 살던 판달리아의 세상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지?”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들의 생활 양식이나 풍습은 기억하고 있을 거 아냐.”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이건 무슨 해괴한 소리냐는 듯이 잠깐 침묵하던 용용이는 이내 조금은 불안한 목소리로 답했다.
[ 그렇긴 한데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
용용이의 대답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오케이. 넌 나중에 나랑 따로 이야기하자.”
“……. 뭔가 결정하신 것 같네요?”
“아, 그럼요. 아주 좋은 생각이 났거든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영을 바라보자 그녀는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어왔지만, 이어지는 내 대답에 입을 벌렸다.
“그래서 어떤 사업으로 결정하신 건데요?”
“여기 있는 사업 그 어느 것으로도 안 할 거예요.”
“네……? 그게 무슨…….”
“그 대신, 테마파크 사업이나 하나 해 보려고요.”
“뭐……뭐라고요?”
갑자기 생뚱맞게 테마파크 이야기를 꺼내자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되묻는 아영.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채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용용이의 초록빛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환상의 세계. 판달리아. 그곳의 문물을 자유롭게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모험을 조금은 비싸지만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언제든지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떨 것 같으세요?”
“……?”
전혀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표정의 아영.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 완성된 이 테마파크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한번 디X니를 아예 통째로 씹어 먹는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Metaverse) 테마파크를 한번 만들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