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미국의 어느 작은 농촌 마을인 이스트 파크에서 발생한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FBI가 직접 나서며 용의자를 신속하게 찾아내 검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낸 이들은 관련 정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직접 자네가 찾아올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제 막 비행기에 내려서 곧장 백악관으로 향한 나를 피곤한 기색으로 맞이하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요. 오히려 지금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수습하기 어려워질 텐데 이럴 때일수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법이죠.”
“……?”
레너드 대통령에게 아직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는 않았기에 그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미국 내 분위기 좀 훑어봤는데 아주 난리가 났던데요? 어떻게 용의자는 좀 찾으셨어요?”
“다행히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아낼 수 있었네. 문제는……. 그 내용이 외부에 밝혀지기 조금 곤란하다는 점이지.”
범인을 찾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내 앞에 하나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사 당국에서 추정하고 있는 범인의 이름은 파이크 존슨. 자택에서 아버지인 잭 존슨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됐네.”
“흠……. 생각보다 꽤 어린아이 같아 보이네요?”
비쩍 마르고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전형적인 백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파이크. 그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며 중얼거리자 레너드 대통령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놀랍게도 이제 고작 12살짜리 어린아이지.”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12살짜리가 수십 명을 산산이 도륙 내고 무참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레너드 대통령.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직접적인 영상 증거라도 내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믿지 않을 헛소리였지만, 이제 이 세계에서는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FBI에서는 현재 이 아이를 각성자로 판단하고 있다네.”
“각성자요?”
“그렇네. 그것도 지금껏 우리가 찾아낸 그 어떤 이들보다도 강력한 재능과 힘을 보유한 각성자로 보고 있지.”
마법을 배우지 않고도 마나를 이용해 본능적으로 일부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각성자. 이번에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이 12살짜리 어린아이가 각성자라고 한다면 혼자서 이런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는 것도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어떻죠? 이 녀석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어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난 후, 버스를 타고 마을 밖으로 이동한 것은 확인했네. 다행히 그 동선을 파악하는 데 성공해서 현재 조심스럽게 추적 작전을 진행 중이지.”
“그렇군요…….”
“현재 뉴욕행 버스에 타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 곧 목표물이 작전 지점에 진입하면 버스를 멈춰 세우고 검거 작전을 진행할 예정이네.”
“예……?”
수십 명의 특수 부대를 투입해 신속하게 폭주한 각성자를 제압 및 검거……. 부득이한 경우에는 모든 화력을 동원해 섬멸하는 작전을 수립하고 진행 중인 미국. 하지만 그것은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실책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마나도 다룰 줄 모르는 경찰이나 군 병력을 데리고 이 녀석을 상대하라고 보낸 상황이라는 말이죠?”
“그렇네. 하지만 자네가 말한 것처럼 일반적인 각성자는 고도로 훈련된 무장 병력을 상대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고…….”
“일반적인 각성자는 그렇겠죠. 하지만 이 녀석은 아니에요.”
“뭐라고……?”
내 말에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 눈에 이채를 띠며 되묻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가 이 머나먼 미국까지 직접 찾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악마……. 아니, 마족을 상대할 때는 단순한 각성자를 상대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뭐……. 뭐라고……? 아……악마?”
악마. Devil. 惡魔. Diablo.
그 명칭은 정말 다양하지만, 그 어떤 종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반드시 등장하는 존재.
종교마다 발원지와 탄생 시기가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념이 엇비슷하게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이 대우주를 구성하는 절대적인 진리이자 개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소위 천사와 악마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일종의 차원이 있죠. 뭐 천계와 마계라고 대충 부르기는 하는데 강력한 에너지와 사념으로만 구성된 곳이에요.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개념이니 대충 쉽게 말하자면 영혼체(靈魂體)로 존재하는 놈들의 소굴이라고 보면 되죠. 아무튼……. 우리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 바로 그곳을 의미하죠.”
내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수많은 대우주의 진리들. 인간들이 그토록 알아내길 원하던 사후 세계의 비밀들과 더불어 전 세계의 종교인들을 경악하게 만들 만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레너드 대통령은 이 사소한 진실조차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그게 지금 도대체 무슨…….”
한때 청교도의 나라라고 불리던 미국.
비록 예전보다 그 신앙심이 많이 녹슬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지폐에 신을 믿는다는 구절을 적어 놓고 대통령 취임식에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이 나라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 그렇다고 너무 성경 속에 등장하는 천사와 악마를 떠올리면 곤란해요. 물론 그거랑 크게 다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볼 때 둘 다 그냥 순수한 영혼에 빌붙는 기생충 새끼들에 불과한 놈들이니까요.”
“……?”
천사와 악마를 한순간에 기생충 취급하는 내 발언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천사와 악마라고 하는 그 존재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영혼에 끌려 채널링이 이루어지게 되면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빌려주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죠. 보통 그 과정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하기는 하는데,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그때부터는 계약한 인간의 몸을 빌려 그 힘을 직접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것이…….”
우우우웅.
“우리가 소위 흑마력과 신성력이라고 부르는 힘이죠.”
설명과 함께 내 두 손 위에서 일렁거리는 두 개의 상반된 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고 심연 속 공포가 밀려드는 흑마력과 한없이 따스하고 포근한 안정감을 선사하는 신성력. 그 두 개의 힘을 바라보며 레너드 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후…….”
목이 타는지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는 레너드 대통령은 이내 조금은 진정된 눈빛으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네 말은 결국,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이 아이는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라 악마와 계약한 존재라는 말인가?”
“이 파이크라는 아이의 가정 환경만 살펴보면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죠. 원래 마족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끝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을 즐기는 족속들이거든요.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이 아이는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아주 탐스러운 먹잇감이었겠죠.”
“으음…….”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마라는 존재가 현실에 나타났다는 멀린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 악마라는 놈들을 막을 방법은 있나?”
“일단 일반적인 총기로는 불가능하죠. 그리고 단순한 각성자들이나 마법사들로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하게 죽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돼요. 최하급 수준이라면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중급 이상 넘어가면 잿더미가 된 육신도 재생시킬 수 있는 불멸의 특성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거든요.”
최하급 수준이면 어찌어찌 단순한 총탄으로도 상대할 수 있겠지만, 하급부터는 일반적인 병기들로 상대하기에는 그 격을 아득히도 벗어나는 상황.
거기에 상대는 이미 수십 명의 인간을 살해하면서 그 영혼을 흡수하고 있었기에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진행 중인 검거 작전이 아주 위험한 짓이라고 말하려는 거예요. 혹시라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에라도 작전이 실패하고 투입된 인원들이 전부 역으로 당하게 된다면 그건 상대를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밖에…….”
“대통령님. 긴급하게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내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비서실장.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레너드 대통령을 바라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를 의식한 것인지 관련 내용을 언급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괜찮으니 말하게.”
“…….”
“어서.”
대통령의 지시에도 말하기를 꺼리며 주저하던 비서실장은 계속된 그의 재촉에 결국 힘없는 목소리로 작전의 결과를 보고했다.
“해당 용의자의 제압 및 섬멸 작전이 실패했습니다.”
“뭐……?”
방금까지 내가 했던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하게 상황이 흘러가는 사실에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레너드 대통령은 잠깐 침묵하다 다시금 물어왔다.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되나.”
“그것이…….”
“작전에 투입된 1개 소대와 추가로 투입된 경찰 지원 병력도 전부 사망했습니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까지 전부 합산하면 사망자는 모두……. 84명입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현장에 있던 모두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홀연히 사라진 파이크.
12살짜리가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이 학살의 현장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며 레너드 대통령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이들을 모조리 죽인 이후 현재 매우 빠른 속도로 뉴욕을 향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만 30분 뒤에 뉴욕에 당도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며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하며 살육에 전념하는 파이크.
만약 그가 인구가 밀집된 세계적인 대도시인 뉴욕에 당도하게 됐을 때 벌어지게 될 학살극을 떠올리자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창백하게 변했다.
“이제 왜 제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건지 이해할 수 있겠죠?”
단순한 인간으로 보기에는 이미 그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존재.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그 힘을 빌리고 영혼이 완전히 타락하고 잠식당한 이상, 이제 살육만을 탐닉하는 악귀로 전락해 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고작 12살짜리라고 해도 잘못 방치하는 순간 수천……. 아니, 수만 명도 넘는 인간을 죽이는 학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거기에 살육을 이어 가면 갈수록 그 힘이 점점 더 강해져서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수 있죠.”
“돌이킬 수 없는 결과……?”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게 뭐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에둘러 흘려넘겼다.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저 싹수부터 샛노란 녀석을 밟아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죠.”
우우우우우우웅.
악마들의 상극이자 독이나 다름없는 힘.
신성력.
순백의 성스러운 기운인 신성력을 잔뜩 뿜어내며 나는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서실장을 향해 말했다.
“비서실장님. 지금 바로 헬기 하나만 좀 준비시켜 주실래요?”
“예……? 헬기요?”
갑자기 왜 헬기가 필요하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 악마 새끼 사냥하고 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