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미국의 중부에 자리한 어느 평화로운 작은 마을인 이스트 파크(East Park).
전체 인구가 불과 천 명이 안 될 정도로 작은 규모의 평화로운 농촌 마을인 이곳에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은 미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 최근 이스트 파크에서 발생한 대규모 실종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인 경찰들이 오늘 인근 숲속에서 실종된 이들로 추정되는 시신 25구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사망 원인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시신들은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하고 참혹하게 훼손되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경찰 관계자가 언급했습니다. ]
[ 평화롭고 한적한 이스트 파크에서 벌어진 악몽 같은 연쇄 살인 사건. 과연 이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FBI가 공식적으로 이번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으며, 신속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용의자를 신속하게 검거할 것이라며 지역 사회에 약속했습니다. ]
[ 사건이 발생한 이스트 파크를 비롯한 일대 지역에 긴급하게 경찰력을 증원하고 추가적인 범죄의 발생을 막기 위한 수색 및 순찰 횟수를 늘리겠다고 당국이 발표했으며, 일선 학교들은 범인을 검거하기 전까지 긴급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주지사는 지역 사회 전체에 외출을 삼가고 늦은 시간에 밤길을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민 스스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에……. ]
자그마치 수십 명이 실종되고 처참한 몰골의 시체로 발견된 끔찍한 사건.
도무지 같은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수준이었기에 언론이 매일같이 연쇄 살인 이야기를 떠들어 댔고 미국 전체가 흉흉해졌다.
- 도대체 어떤 사이코가 저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 희생된 사람 중에는 이제 9살 어린아이도 있다고 하던데.
- 세상에 맙소사. 진짜 인간이 맞긴 한 거냐.
- 경찰은 이런 미친놈이 언제까지 돌아다니게 내버려 둘 생각이지?
- 앞으로 외출할 때는 총기를 꼭 가지고 다녀야겠는데.
모두가 겁에 질려 얼른 범인을 잡으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살인 사건의 중심인 이스트 파크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검시관이 말하는 걸 엿들었는데, 그 시체들 말이야……. 조각조각 난 부위들을 아무리 맞춰 봐도 심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대.”
“뭐……?”
“진짜야. 내 사촌 형인 프레디가 그 검시관 사무실에서 일하잖아. 경찰하고 이야기하는 걸 옆에서 엿들었는데 분명히 심장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어. 단 하나도.”
“세상에 맙소사…….”
마을의 건장한 남성들이 자주 모이는 술집. 평소에도 떠들썩한 분위기지만 오늘은 마을의 남자가 모두 모인 것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최근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심각한 얼굴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 말이야. 마지막에 본 목격자들 말로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고 하더라.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 이상하게 행동하고 뭔가…….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고.”
“맞아. 안 그래도 요번에 죽은 앤 아주머니도 최근에 뒤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가 자기를 따라오고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
“제이크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야. 갑자기 밤에 잠을 자다가 자기 침실에서 총을 쐈다고 하더라고. 경찰한테 말하기를 잠을 자는데 누군가가 방 안에서 자기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고 말했는데 바로 다음 날 실종됐었지.”
“도대체 우리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시골 마을.
외지인이 들어오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작고 외진 곳이었고,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추리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있나?”
“일단, 시신들의 상태만 봐도 건장한 남성일 가능성이 커. 전기톱이나 쇠톱 같은 도구들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시체들을 처리할 수 있을 만한 비밀스럽고 커다란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겠지.”
“그런 조건이라면 아마 여기 이 술집 안의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겠는데?”
“그러게…….”
“일단 그런 조건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모두 죽일 만큼 마을에 커다란 원한을 가진 사람은 없지 않나?”
“그건 그렇긴 하지…….”
도무지 용의자로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가 한참을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자,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술집 안을 가득 메웠다.
“어이. 거기! 누구 뒤진 이야기로 술맛 떨어지게 하지 말지? 그딴 이야기는 너희들 집에 가서 하라고. 재수 없게 술집에서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이미 잔뜩 술에 취한 듯, 새빨간 얼굴의 중년 남성 하나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외치자 일순간 술집 안이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급속도로 그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뭐야?”
“이 새끼가…….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말이 나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날릴 듯한 기세로 다가가려는 한 청년. 하지만 그런 그를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술집 주인인 마리아였다.
“이봐. 톰. 괜히 일 크게 키우지 말고 그냥 무시해.”
“예……? 아니! 마리아! 그래도 저 자식이 먼저…….”
“저기 너한테 시비 건 사람. 주정뱅이 잭이야.”
“주정뱅이 잭……?”
별명을 듣자 자신에게 시비를 건 사람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톰은 일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잃을 것 하나 없는 만취한 사람과 싸움 붙었다가 피 보는 건 네 녀석이 될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야. 미친놈이 하는 헛소리에 그렇게 하나하나 반응하면 피곤하다. 그냥 무시해야지.”
“…….”
마리아가 무슨 조언을 하는지 깨닫고 입을 굳게 다문 채 흥분을 진정하고 한발 물러서는 톰. 그런 그에게 작게 미소 지으면서 마리아는 잭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잭, 도대체 이 시간까지 술을 퍼마시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건데? 파이크는?”
“흥, 그딴 거 알 게 뭐야.”
“하나뿐인 네 자식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지.”
“제 어미 잡아먹고 태어난 새끼인데 내가 뭘 신경 써?”
그 말에 슬픔과 동정. 그리고 연민이 뒤섞인 복합적인 눈빛으로 잭을 잠깐 바라보던 마리아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거의 내쫓다시피 그의 등을 떠밀며 술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즘은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시기잖아. 일단 너무 늦게까지 여기 있지 말고 오늘은 얼른 집에 돌아가.”
“안 가! 내가 왜 가! 술이나 더 내놓으라고!”
집에 가라는 마리아와 술이나 더 내놓으라고 버티며 실랑이하는 잭.
그런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톰은 자기의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저 사람이 음주운전 사고로 감옥 가지 않았었어?”
“어. 그랬지.”
“언제 나온 거야?”
“한 몇 년 됐지. 톰 네 녀석이 떠나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이니 모를 수도 있겠네.”
담담하게 술잔을 홀짝이며 말하는 마이크. 그리고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터덜터덜 돌아가는 잭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톰은 인상을 찌푸리며 경멸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술 때문에 사람을 죽여 놓고 여전히 술을 마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네.”
“남 일에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러다 총 맞을 수 있으니까.”
잭을 보내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던 마리아는 톰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 한 잔을 채우고는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중얼거렸다.
“애만 불쌍하게 됐지. 아빠 노릇도 못 하는 녀석이 유일한 가족이라니 말이야.”
“…….”
그렇게 조금은 차가워진 분위기 속에서 이스트 파크의 밤은 깊어만 갔다.
최근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대한 실마리는 조금도 찾지 못한 채로 말이다.
* * *
마리아의 술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낡은 오두막.
버려진 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낡아 빠진 그 집을 바라보며 잭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
술기운에 치밀어 오르는 그 강렬한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 파이크였다.
자신의 사랑하던 아내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진탕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 바람에 벌어진 사고로 감옥에서 지낸 9년의 세월.
거기에 술집 주인인 마리아가 언제나 자기가 술을 더는 못 마시게 단골처럼 꺼내는 핑곗거리.
잭에게 있어 아들이라는 존재는 도무지 도움이 되기는커녕 인생에 방해나 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기에 그는 이따금 자신의 울분을 자기 아들에게 풀어내기도 했었다.
“오늘 아주 본때를 보여 줘야겠군.”
주변을 둘러보다 두꺼운 나무막대 하나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어 묘하게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집 안에 들어선 잭은 이내 고함치듯이 아들을 불렀다.
“파이크! 파이크! 이 새끼 어디 갔어?”
이제 겨우 12살의 어린 나이의 소년. 파이크.
건장한 성인인 잭에게 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한없이 부족했기에 언제나 이렇게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돌아올 때면 속절없이 두들겨 맞는 것이 일상이나 다름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무언가 달랐다.
“왔어요?”
영양 상태가 부실해 또래 친구보다 삐쩍 마르고 병약한 모습의 파이크.
언제나 겁에 질려 있고 의기소침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던 그가 오늘은 이상하게 조금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기에 잭은 일순간 당황하다가도 이내 잔뜩 분노하며 손에 든 나뭇가지에 힘을 실으며 소리쳤다.
“이 새끼가 어디 아빠한테 눈을 그렇게 똑바로 뜨고 부라려?”
당장에라도 내려칠 것처럼 나뭇가지를 높이 드는 잭.
하지만, 그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멈추어 섰다. 아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푸푸푸푸푹.
절그럭.
그의 손과 발, 등, 가슴, 허벅지, 허리……. 어디든 가리지 않고 전신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갈고리들이 사방에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잭은 일순간 술에서 팍 깨는 기분을 느끼고는 전신에서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끄……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상황.
하지만 자신의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뜨겁고 축축한 피의 감각과 이 미칠 듯한 고통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에 잭은 도무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잭은 거미 같은 벌레 따위에도 깜짝 놀라며 벌벌 떠는 한심한 겁쟁이였던 파이크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하아……. 역시 아빠가 지르는 비명은 어떨지 기대됐는데 역시 기대 이상이네요. 정말로 제가 지금껏 죽였던 인간들 그 누구의 것보다도 훨씬 더 짜릿하고 황홀해요.”
정말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듯이 그 어느 때도 보지 못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파이크. 그런 그를 보며 잭이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네가…….”
“저처럼 한심하고 나약해 빠진 새끼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요?”
마치 무슨 질문을 하는 건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잭의 문장을 대신 끝내며 파이크는 답했다.
“아빠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잠들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누군가가 제 머릿속에 속삭이더라고요.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자에게 복수할 힘을 갖고 싶지 않냐고 말이죠.”
“…….”
“그래서 그 제안을 수락했죠. 그러니까 정말 이런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손을 휘젓자 사방에서 생겨나는 검은색의 위협적인 기운들.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는 이 갈고리를 만들어 낸 이 기운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파이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겨우 다람쥐 정도를 잡을 정도로 정말 약한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제물’이라고 하는 것들을 바치기 시작하니까 믿을 수 없을 속도로 그 힘이 강해지더라고요. 아빠를 이렇게 꼼짝도 못 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죠.”
“!!!”
제물이라는 말에 잭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다름 아닌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죽이고 태어난 이 저주받은 새끼라는 것을 말이다.
“크크크……. 크흐흐흐흐흐.”
그 사실을 깨닫자 잭은 자기도 모르게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죠?”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
“뭐가 틀린 게 아니라는 말이죠?”
“네놈은 말이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슬슬 의식이 흐려지는 잭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정신을 부여잡고 자신에게 복수를 행하는 파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태어날 때부터 글러 먹은 저주받은 새끼였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기 자식이 자그마치 수십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마라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안도하는 잭. 그런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파이크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얼굴로 작게 미소까지 지으며 중얼거리며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그렇죠. 제 부모님 모두를 잡아먹을 운명을 타고났으니 저주받은 건 분명하겠네요.”
"하지만……. 아빠의 심장을 먹을 수 있는 이런 짜릿한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저에게는 너무 축복 같은 일인걸요?"
퍼어어어억.
그 순간 잭의 전신을 꿰고 있던 갈고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의 몸을 수백 개의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어 버린 집 안.
일반 사람이라면 정신을 놓을 정도로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지만, 파이크는 너무나도 담담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가 바닥에 놓여 있는 잭의 심장을 집어 들고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그러자 파이크의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의 기운이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욱더 충만해지는 그 힘을 한껏 즐기며 몸을 부르르 떨던 파이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미리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는 집을 나섰다.
“이제 슬슬 여길 떠야겠네…….”
전체 인구가 천 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
복수를 끝마친 상황에서 더 이상 머무를 이유는 없었기에 파이크는 집을 나서며 기대감에 잔뜩 부푼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다른 도시에 사는 놈들은 더 맛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