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국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멀린에 대한 기소를 결정한 검찰.
하지만 그 결정에 대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
- 아니, 저걸 왜 기소함? 멀린이 뭘 잘못했는데?
- ㄹㅇ ㅋㅋ. 돈 먹은 국회의원들부터 싹 다 기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 그 초청연 대표인가 걔는 자기가 구라 치다 혓바닥 날아간 거 아님?
- 누가 칼 들고 거짓말하라고 했음?
- 멀린 처벌 반대 청원 서명 부탁드립니다.
- 이호준 대통령이 나서서 막아야 하는 거 아님? 이걸 그냥 구경한다고?
청문회장에서 보여 준 폭로와 더불어 모든 사건의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대중들은 멀린과 매지컬 컴퍼니를 오히려 피해자로 보며 동정의 시선과 함께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며 검찰의 결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황. 하지만 정치에 이골이 난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조금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 각성자 관리 및 마법 사용에 관한 법률……. 일명 ‘각성자 법’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법률의 첫 번째 위반 대상자로 멀린을 공식 기소하기로 최근 검찰이 발표했습니다. 멀린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아주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이는데요. 과연 검찰은 무슨 연유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
[ 아무래도 상징성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
[ 상징성이요? ]
[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마법이라는 개념이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후 수많은 논쟁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법을 아예 불법화하자는 여론도 많았었지만,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들을 고려하며 결국 제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보완하고 마법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탄생한 법이 바로 ‘각성자 법’이죠. ]
‘각성자 관리 및 마법 사용에 관한 법률’
이호준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이후 수많은 논의와 고심 끝에 만들어 낸 이 법률은 마법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근거로 이용되고 있었다.
[ 멀린이 이번에 저지른 행동은 명백한 그 각성자 법에 규정된 ‘마법 상해죄’에 해당합니다. 특별히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거나 모호한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본인이 직접 그 마법을 걸었다고 밝힌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거의 자백한 거나 다름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아무런 행동도 나서지 않고 있는다면 그것은 나중에 더 큰 논란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
[ 그러니까……. 각성자 법이 그 능력에 상관없이 각성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검찰이 이번 기소를 결정했다고 보는 겁니까? ]
[ 모든 국민이 법과 원칙 아래에 평등하다는 것은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죠. 아마 그걸 알고 있기에 청와대에서도 검찰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형식적인 입장만을 발표하고 침묵하고 있을 겁니다. 마법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절대적인 위상과 영향력을 가진 멀린이 그 대상이라면……. 그 메시지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검찰이 진짜 기소하더라도 분명 솜방망이 처벌로 그칠 것입니다. 만약 정말 준법정신을 내세워 멀린을 처벌하려고 한다면 이미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전쟁에 개입했을 때부터 사전죄를 비롯해 다른 조항으로 일전부터 기소를 진행했겠죠. 전 이번 기소는 국회를 의식해서 하는 일종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의 헌법 기관 중 하나이자 입법부의 심장부인 국회에다가 거짓말 금지라는 거대한 똥을 싸지른 상황. 추후 발생할 논란까지 모두 고려한 이호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아래에 추진된 이 기소의 취지를 이해했기에 나는 검찰에 직접 자수하고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1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초범에 아직 18살의 어린 나이. 거기에 압도적인 사회적 영향력과 기여도. 그리고 본인이 직접 자수했다는 점까지 가능한 모든 감형 요소를 영끌하다시피 해서 내려진 판결.
최종적으로 내려진 판결을 받고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피해 법원을 빠져나와 간신히 차에 오른 나에게 아영은 아무 말 없이 비닐봉지를 하나 건넸다.
“뭐예요? 이게?”
“먹어요. 저기 앞에서 방금 산 두부예요.”
“두부……? 아니 내가 뭐 감옥 갔다 오기라도 했어요? 그냥 재판만 받은 건데?”
“앞으로 죄짓지 말라는 의미니까 그래도 먹어요.”
“아니, 죄로 만든 게 누구인데 그래요?”
“그러니까 불법적인 짓을 하려면 대놓고 하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좀 하세요. 이호준 대통령님의 입장도 좀 생각하셔야죠.”
“어휴……. 그놈의 상징성이 뭔지 원…….”
“그래도 이런 상황일 때는 깨끗하고 당당하게 처리하는 게 좋아요.”
“무슨 상황이요?”
“복수를 시작할 거라면 상대가 트집 잡을 거리는 미리 없애 버려야 한다는 말이에요.”
“엥……?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제가 멀린 님을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어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는 아영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멀린 님은 먼저 누가 건들면 절대 가만있지 않아요. 그 방법이 어떻게 되었든 최소한 수십……. 아니, 수백 배는 더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 버리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함무라비 법전을 실천하는 복수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멀린.
그런 그가 비록 집행유예라고는 하지만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그 원흉이나 다름없는 국회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복수하려고 계획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나 해 보세요. 애초에 그냥 넘어갈 생각도 아니었잖아요.”
“…….”
이미 내가 복수를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아영.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영은 누구보다 저를 잘 알고 있네요.”
“제가 멀린 님 사고 치는 거 하루 이틀 보는 줄 아세요? 이번에는 뭘 하려고 그러는데요?”
“별건 아니고요. 우리 법치주의를 좀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해 보려고요.”
“네……?”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아영. 하지만 그녀는 이어지는 내 설명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하염없이 입을 벌렸다.
“이번에 제가 사용했던 마법진 있잖아요. 비록 국회에 설치한 것은 아영이 하도 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해제했잖아요.”
“그런데요?”
“그래도 그게 생각보다 꽤 활용성이 뛰어나서 그런지 여러모로 관심받았던 거 아시죠?”
“외도가 의심되는 애인들 데려다가 국회 앞에서 추궁하던 일 말씀하시는 거면 알고는 있죠. 그런데 그게 왜요?”
“그 마법진을 전국에 있는 모든 법정에다가 설치해 주기로 했어요. 그걸로 사회봉사 시간 전부 인정해 주겠다고 이미 다 합의 봤어요.”
“뭐……뭐라고요?”
사회 그 어디에서보다 가장 실체적인 진실과 정의의 구현이 중요한 공간인 법원.
하지만 그러한 정의 구현은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판받으면서 느낀 건데 요즘 재판부도 엄청 힘들겠더라고요. 결백한 사람을 악질 범죄자로 몰아가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만드는 무고도 많은데 실제로 죄를 저질러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는 범죄자도 생각보다 가득하고……. 하여간 언제나 진실을 100% 밝혀내고 죄인을 심판하는 건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극한 직업이에요.”
“그래서 생각했죠. 만약 그 누구든 신성한 재판정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검사도, 변호사도, 증인도, 피고인도, 심지어 판사까지. 그 누구도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지 못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없게 강제된다면…….”
“이론상에서나 존재하는 완전한 정의(Perfect Justice)를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게 무슨…….”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거나 혓바닥을 잃거나, 두 선택지 말고는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최악의 법정. 그곳에 자신이 피고인으로 서게 되는 아찔한 상상을 하며 아영은 창백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이호준 대통령이 사법부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 중인 상황이니까요.”
“벌……. 벌써요?”
“네. 생각보다 재판부에서는 엄청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라던데요? 대법원장이 아주 정의 구현을 입에 달고 사는 골수까지 원칙주의자인 인물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지금 당장이라도 설치해 주길 바라는 눈치라고 하더라고요.”
“…….”
그 누구도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완벽한 대의명분을 가진 혁신.
사법부로서도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을 현실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내가 제안한 이 사법개혁은 너무나도 신속하게 사법부 내에서 진행 절차를 밟아 가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이 사실이 발표되면 벌어질 여파를 상상하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아영.
하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사악한 미소를 히죽 지으며 말했다.
“뭘 이거 가지고 그래요. 아직 제 복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예……?”
또 뭐가 남았냐는 듯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영.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용용이를 집어 들고 물었다.
“용용아. 내가 찾아보라고 한 건 다 찾아봤어?”
[ 주인이 말한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찾기는 했는데……. 이게 전부인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네트워크에 남아 있는 건 이게 다야. ]
마나 링크를 통해서 드넓은 정보의 바다를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용용이.
그 어떤 정보에도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는 그 능력을 한껏 활용해서 그가 수집한 정보는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 저지른 범법 행위들이었다.
[ 의원님. 이번에만 잘 도와주신다면, 꼭 섭섭지 않게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
[ 크하하하! 어이! 여기 술 더 가져와! 의원님은 양주 아니면 안 드시는 거 알지? ]
[ 어. 우리 아이가 이번에 서울대에 수시로 지원했는데 말이야. 흠흠……. 잘 부탁함세. ]
[ 그 쥐새끼가 검찰에 허튼소리 하지 못하게 조용히 처리해. 이왕이면 자살로 처리하라고. ]
[ 크흠흠……. 어. 이 사장. 이번에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네. 사과 박스가 아주 묵직하더군. ]
음성. 영상. 문자. 사진, 문서…….
그 종류와 방식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수집된 현직 국회의원들의 비리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한 용용이의 자료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야……. 뇌물수수에 부정 청탁에 음주운전. 횡령, 협박, 심지어 살인 교사까지……. 생각보다 우리 국회에 악질 범죄자들이 잔뜩 깔려 있었네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인간들이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었는지 제가 더 신기할 따름이네요.”
“이게 지금 다 무슨…….”
“뭐긴 뭐예요? 절 엿 먹인 잘나신 우리 국회의원들의 더러운 비리들이죠.”
“아니, 이런 건 또 어디서 난 거예요?”
“어디서 나긴요? 전부 다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들이죠.”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똑똑하고 유능한 킹갓 슈퍼 마법 A.I.인 우리 용용이의 진가를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아영. 그런 그녀의 쏟아지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해 주며 나는 히죽 웃으며 지시했다.
“용용아. 이거 인터넷에 쫙 뿌려 버려. 기자들 이메일로 보내도 좋고, 아니면 그냥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곳들에다가 어그로 낭낭하게 담아서 도배글로 뿌려 버려도 되고. 너 좋을 대로 해.”
현직 국회의원들의 추악한 민낯을 생생하게 그대로 인터넷에 뿌려 버리라는 지시. 그 자료 하나하나가 검찰로서는 도무지 넘어갈 수 없는 명백한 증거물들이었기에 비로소 내 의도를 깨달은 아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잠깐만요.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물들은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을 텐데요……?”
“상관없어요.”
피식 웃으며 용용이를 품에 꼭 껴안은 나는 오히려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신 있으면 신성한 법정에 서서 자신이 지은 죄를 부정해 보라고 하죠. 뭐.”
그렇게…….
한 점의 거짓도 놓치지 않고 정의로운 형벌을 대신 집행하는 전능한 마나의 힘 아래에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그 어디보다도 공정하고 진실하며,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정으로 완전한 정의를 구현하는 기관이 되었다.
거룩한 진실(Holy Truth)의 영역 안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