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매지컬 컴퍼니의 대표이사. 이아영.
최근 커다란 논란이 되는 멀린의 정원 개발 사업의 최고 책임자였던 그녀는 청와대에서 긴급하게 날아온 연락에 이호준 대통령과 다시금 얼굴을 마주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와중일 텐데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대통령님.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 지금 분위기에서 이렇게 부르시는 것도 부담스러울 텐데 말이죠.”
“허허허…….”
아영의 말에 약간은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으며 화답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멀린의 정원 개발 사업의 비리 문제에 긴밀하게 얽혀 있는 전직 삼진 그룹의 회장이자 현직 대통령이 현 매지컬 컴퍼니의 대표이사를 만난다는 것은 온갖 구설수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위험성을 고려하고라도 이호준 대통령은 아영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멀린 그 녀석이 이번에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더군…….”
“네……. 그렇죠…….”
[ 수십조가 넘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이 커다란 사업에 콩고물 얻겠다고 달라붙는 기생충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당연히 비리가 없을 리가 없죠. ]
[ 우리 한번 모두가 솔직하게 자신이 깨끗한지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손모가지는 좀 그렇고……. 혓바닥 걸고 한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죠. 돈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
청문회에서 비리가 있었다고 자백하는 것을 넘어서 국회의원들과 같이 자폭을 시전한 멀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핵폭탄을 국회에 던져 두고 가 버렸다.
[ 우리 의원님들. 국정 감사하는데 거짓말하는 놈들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제가 국회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그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드릴 테니, 확실하고 철저한 조사 부탁드립니다. 힘내세요! ]
그 누구든 의도적으로 사실을 감추고 남을 속이려고 할 시에, 대상의 혓바닥이 잘리게 되는 형벌이 가해지는 신성 마법. 거룩한 진실(Holy Truth).
이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마법을 국회 전체에 걸어 두고 사라져 버린 멀린 덕분에 이호준 대통령은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여 버렸다.
“아영 양도 알겠지만, 지금 국회가 난리가 났네.”
“그렇겠죠…….”
“국정 감사는 뒷전이고 지금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 상태야. 그 마법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단 한 발짝도 국회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하더군.”
“혹시 ‘그 사건’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 마법이 효력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말이네. 나라도 겁이 나겠어.”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전부 도망쳐 나오고 아무도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못하게 만든 사건. 그것은 바로 청문회가 끝난 직후 국회 건물 앞에서 기자 회견을 벌이던 초청연 대표의 혓바닥 절단 사건이었다.
[ 우리 초청연은 순수하게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인 청년들의 단체입니다. 매지컬 컴퍼니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돈 때문에 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 커헉! ]
[ 히이이익! 뭐……뭐야 이거! ]
[ 끄으으으으으으읍!! 끄으으으읍!! ]
[ 119! 누가 119 좀 불러 줘요! ]
[ 꺄아아아아악! ]
청문회 때문에 몰려 왔던 기자들을 모아다가 초청연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던 와중에 돌연 혓바닥이 잘려 버리는 충격적인 상황을 그대로 생방송으로 내보낸 방송사들. 그리고 그 그로테스크한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청문회에서 멀린이 밝힌 비리는 한순간에 묻혀 버리게 되었다.
- 뭐야? 혓바닥이 잘렸다는 건 돈 때문에 개발 사업을 방해한 거라는 의미 아닌가?
- 지금 그게 중요함? 거짓말하면 혓바닥이 날아간다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냐?
- 와……. 근데 영상 보니까 진짜 개무섭네. 거짓말하면 경고도 없이 바로 싹둑 잘리네.
멀린이 경고한 그대로 마법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경악한 사람들. 그리고 이들은 이내 아주 위험하고 기발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근데 저거 생각보다 유용할 것 같은데?
- 그렇지? 여친 바람 피우는 거 의심스러울 때 저기 가서 물어보면 될 듯.
- ??? : 오빠. 나 요즘 살쪄 보이지 않아?
- ㅋㅋㅋㅋㅋ. 미친 새끼들. 조만간 국회 앞에 잘린 혓바닥으로 가득하겠네.
- 국회 피바다잼.
농담이 아니라 진짜 국회에 찾아와 자신이 의심하던 일들에 대한 심문과 추궁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그 때문에 이호준 대통령은 추가적인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국회의 출입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 모든 사태가 정리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국회 건물을 포함한 주변 부지 전체에 관계자들을 제외한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
민간인들만을 한정해서 출입을 제한했지만, 진짜 혓바닥이 잘린다는 사실을 알고 아예 국회 주변에 얼씬조차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
그 때문에 현재 국회는 한순간에 거의 해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도 출근하지 않으니 입법부의 기능이 사실상 완전히 마비된 상태나 다름없네. 공무원들도 거의 반강제적으로 출근은 하고 있으나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하더군.”
혹시나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까 무서워 혼잣말도 하지 않고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린 사람들.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만이 가득한 국회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영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으으으으……. 정말이지 이 미친놈이…….”
대한민국의 입법부를 한순간에 마비시켜 버리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버린 멀린.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국회의원들이 자발적으로 국회를 폐쇄하게 만들어 버리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 멀린의 마법이었기에 아영의 얼굴은 새까맣게 죽어 갔다.
“일단, 내가 아영 양을 부른 이유부터 말해 주겠네. 국회의장이랑 양당 지도부가 오늘 나를 찾아왔었네. 현 상황과 관련해서 논의할 게 있다고 하더군.”
“뭐라고 하던가요?”
“대체로 협박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지. 이건 마법으로 의정 활동을 테러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다. 지금 당장 마법을 해제하지 않으면 마법 자체를 아예 불법으로 규정해 버리겠다고도 하더군. 아, 나한테 탄핵당하고 싶냐고 묻기도 했었네.”
멀린한테 싸대기를 제대로 얻어맞고 청와대에 와서 게거품을 물어 댄 의원들. 그런 그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던 이호준 회장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멀린이 저지른 짓 덕분에 그 논의 속에서 몇 가지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는 있었네.”
“합의점이요……?”
“일단, 국회에서는 앞으로 멀린의 정원 개발 사업과 관련해서 그 어떠한 의혹도 제기하지 않기로 했네. 지금까지 확인된 비리와 불법적인 혐의들도 전부 묻어 버리고 그 어떤 경우에도 일절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더군.”
국회의 공격만 없다면 이번 문제를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은 이호준 대통령이 가진 영향력만으로도 너무나도 손쉬운 상황. 그렇기에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아영에게 말했다.
“아마 삼진 그룹이나 매지컬 컴퍼니의 담당자들 몇 명은 기소가 불가피하겠지만, 벌금형이나 집행 유예 정도로 끝날 걸세. 재판부에서도 이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고 검찰에서도 괜히 벌집을 들쑤시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이거든.”
“문제를 만들려는 사람이 없으면 진짜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없는 법이지. 앞으로 멀린의 정원 사업 가지고 시끄럽게 물어뜯을 사람들이 없어질 테니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
이호준 대통령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아영은 이내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힘없이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린이 국회에 걸어 놓은 마법을 해제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런 셈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런 그의 말에 아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그 망할 놈이 연락도 끊고 잠적해서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타나면 제가 한번 잘 이야기해 볼게요.”
용건이 다 끝나서 돌아가려는 아영.
하지만 그런 그녀를 이호준 대통령은 다급하게 붙잡았다.
“그거 말고 멀린에게 전할 이야기가 하나 더 있네.”
“네? 무슨…….”
“그게 말이네…….”
난감하다는 듯이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런 그가 조심스럽게 꺼내 든 이야기에 아영은 너무나도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뭐라고요……?”
“어떻게……. 어렵겠나?”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긴 알겠는데요. 그 인간이 그럴 리가…….”
“그래도 한번 가서 이야기는 잘 좀 전해 보게. 내 부탁함세.”
“…….”
* * *
이호준 대통령과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집무실로 돌아온 아영.
복잡한 심경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멀린이었다.
“아영 왔어요?”
“……. 도대체 뭘 하고 왔길래 몰골이 그 모양이에요?”
온몸이 흙투성이인 채로 돌아와 바닥에다가 흙을 탈탈 털어 대고 있는 멀린을 바라보며 아영은 황당한 눈초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정원들 좀 몇 군데 돌아보고 왔죠. 생각보다 마나의 영향을 잘 받았던데요? 꽤 유용한 녀석들도 많이 생겨났어요.”
“그런가요?”
“네. 이건 요정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식물인데 판달리아에서도 엄청 희귀하게 나오는 녀석이에요. 신체 나이를 20년은 더 젊게 만들어 주는 회춘 물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재료이기도 한데 이게 여기서 나오네요.”
아주 작은 사파이어 같은 푸른색의 열매가 달린 꽃봉오리 하나를 손에 들고 히죽거리고 있는 멀린. 그리고 그는 이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 왔다.
“그건 그렇고……. 아영은 도대체 어디 갔다 왔길래 근무 시간에 이렇게 자리를 오래 비운 거예요?”
“대통령님이 부르셔서 만나 뵙고 왔어요.”
“이호준 대통령이 아영을 불러요……? 왜요?”
“정말 몰라서 물어요……?”
무심코 던진 나의 질문에 관자놀이가 팔 자로 튀어 오르며 싸늘하게 웃으며 묻는 아영. 그리고 이 순간을 통해 나는 그녀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영이 진짜 화가 나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잔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가 분명히 청문회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말했었죠?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에서 일 더 크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요. 현명하게 대처하면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왜 부탁한 적도 없는데 나서서 역대급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냐고요. 지금 국회가 멀린 님의 그 미친 짓 때문에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아세요?”
“이호준 대통령님이 중간에 나서서 중재해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예? 제가 그 비리 사건으로 감옥 가는 꼴을 보고 싶어요? 아니, 제가 무슨 고기 방패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던져 두고 나 몰라라 해 버리면 그게 얼마나 무책임한 짓인지는 알고…….”
“그리고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데요. 제가 요즘 얼마나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
숨을 쉬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속사포로 쏟아 내는 말들의 향연.
평소에는 그래도 어지간한 사고가 아니면 비교적 온순한 아영이었기에 지금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었는지 용용이도 놀란 목소리로 한마디 던질 정도였다.
[ 주인. 저 인간도 화나면 꽤 성질이 있었네. ]
“그러게…….”
단순히 이번 일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여 왔던 모든 울분을 토해 내는 것 같은 아영. 그런 그녀의 잔소리를 잠자코 20분 동안 들어 주던 나는 이게 도무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아영의 말을 끊었다.
“알겠어요. 알겠어. 아영. 이번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진짜요?”
“네. 뭣하면 혓바닥 걸고 해 줘요?”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푸른빛 마나를 끌어 올리자 아영은 이내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 아뇨.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미안하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무슨 부탁이요. 국회에 건 마법 풀어 달라고요?”
“…….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다른 거요.”
“다른 거……? 그게 뭔데요?”
나에게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멀린 님이 아무리 아주 강하고 개쩌는 대마법사라고 해도 엄연히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국민이라는 사실 알고 계시죠?”
“그런데요……?”
“멀린의 정원 개발 사업에 대한 건 그렇다 하더라도……. 그 초청연 대표 혓바닥이 멀린 님의 마법 때문에 잘려 나간 건 알고 있고요?”
자기 스스로 거짓말을 하다 잘려 나간 혓바닥. 그걸 갑자기 꺼내 드는 아영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왜요?”
“그거 관련해서 경찰에서 출석 요구서 나왔어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이호준 대통령이 감옥까지 보내지는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
“가서 얌전히 조사받고 재판받으세요. 또 사고 치지 마시고요.”
“설마……. 이번에도 제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겠죠?”
내 이름으로 적혀져 있는 소환장.
그걸 들이밀며 경찰 조사에 응하며 철저한 준법 시민이 되어 처벌을 달게 받으라며 아영은 묘하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속삭였다.
“이런 씨…….”
오늘따라 촉법소년이었던 시절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