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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162화 (162/242)

162화.

언제나 차가운 북극의 냉기가 휘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

새하얀 눈의 세상 속,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황량하고 고요한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의 한가운데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대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뭐……뭐야? 이게?”

“이건…….”

갑작스럽게 불어닥치기 시작한 세찬 바람.

그리고 이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눈의 폭풍이 자신들이 있는 초소로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초소병들은 당황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 이내 본능적으로 초소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쩌저저저저저적.

한낱 강화 콘크리트와 철판으로 덧댄 것이 전부인 그 초소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온도로 휘몰아치는 냉기의 폭풍을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뭐……뭐야!”

“이게 지금 무슨……!”

한숨 들이마시자 심장이 멈출 것처럼 섬뜩하고 차가운 냉기에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두 군인. 하지만 이들은 하던 말도 다 끝내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대처할 시간도 없이 수 초 만에 온몸의 피가 꽁꽁 얼어붙어 버리는 혹한의 폭풍. 인류가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영하 250도의 냉기는 나름 추위에 강하다고 하는 이 러시아인들에게도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뿌드득. 뿌드득.

피워 놓은 모닥불도, 전기와 가스로 틀어 놓은 히터도, 두꺼운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들어 입은 군복도, 그 어느 것도 막아 낼 수 없는 절대적인 혹한의 추위. 일대의 모든 열에너지를 빼앗아 버리는 이 죽음의 폭풍이 보리스 대통령이 숨어 있는 지하 벙커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피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구구……. 역시 지금 상태에서 8 서클 마법은 에바 참치기는 했네. 한 번만 더 쓰라고 하면 진짜 죽겠다. 죽겠어.”

심장에 단 한 줌의 마력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밀려드는 묘한 탈력감.

일전에 로또 번호 맞히겠다고 7 서클 마법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후폭풍에 나는 정말 다행이라는 눈초리로 씨크릿 쮸쮸 요술봉을 살펴보았다.

“최상급 마나석으로 이 녀석을 미리 개조해 놔서 망정이지, 만약 이 부하를 전부 내 마나 회로로 감당했으면 최소 심장 파열이었겠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운용으로 발생하는 부담 대부분을 감당해 준 최상급 마나석.

그 덕분에 내가 받은 한계 이상의 마법을 사용한 타격은 대충 한 달 정도의 요양 정도로 끝날 수준이었지만, 최상급 마나석은 아니었다.

챙그랑.

마법 한 방에 균열이 나고 깨져 버리며 제 기능을 잃어버린 씨크릿 쮸쮸 요술봉.

아티팩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코어 부분인 마나석이 파괴되며 다시 일개 장난감으로 되돌아온 요술봉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마법 한 방에 천억이라……. 가성비 하나는 더럽게 좋네.”

물론, 그 마법 한 방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정신 나간 독재자 하나를 처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용용이는 정말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정말이지 주인은…….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미친놈이야. ]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넌 또 왜 갑자기 시비야?”

[ 주인이 방금 한 짓.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짓인지를 알기나 해? ]

한 도시와 국가를 절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재해와 재앙에 가까운 힘과 파괴력을 가진 8 서클과 9 서클. 초월 마법이라 불리는 이 경지의 마법들은 사실 인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 마법에 가장 특화된 육체를 지닌 우리도 1,000살은 먹기 전까지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초월 마법인데, 고작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하다못해 종의 한계를 넘어서 마력에 특화된 형태로 바디체인지를 경험하지도 않은 새파랗게 어린 성장기의 육신으로 사용하는 게 말이 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

내가 한 짓이 얼마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지를 설명하며 쫑알쫑알 온갖 질문을 쏟아 내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하긴? 씨크릿 쮸쮸 요술봉을 희생해서 썼지.”

[ 아니, 그니까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마력의 부담을 온전히 마나석으로 전이할 수 있냐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 뭐 특별하게 한 방법이 있을 거 아냐? ]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그 불가능한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낸 나를 보며 약간은 흥분한 듯, 용용이는 드래곤 특유의 그 호기심을 불태우며 집요하게 물어 왔고, 그런 그에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잘.”

[ ……. ]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노오력을 하면 되더라고.”

[ 이런 XXXXX. ]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험악한 욕설을 쏟아 내는 용용이. 인터넷을 통해서 배워 온 듯한, 이 세계의 추잡한 욕설을 써 대며 드래곤의 품격을 한껏 떨어트리는 그를 무시한 채 나는 어느새 잦아든 폭풍과 이어서 눈 앞에 펼쳐진 새하얀 얼음의 세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완전히 얼어붙은 채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러시아 군의 비밀 군사 기지.

지하 속에서 핵무기를 발사하라며 광분하고 있었을 보리스 대통령과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의 최고 지휘부가 모조리 싸늘한 안식을 맞이한 것을 보며 비로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멸망을 불러올 시작점이었던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수십 년 동안 러시아 내부의 권력을 독차지한 독재자였던 보리스 대통령.

후계 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은 러시아의 공고했던 권력 구도에 커다란 공백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왔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지하게 우로보로스 침투 작전을 빌미로 러시아와의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것을 고민하는 미국.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혼란 속에서 권력 공백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롭게 권력을 장악한 러시아의 차기 지도자 자리에 등극한 것은, 바로 러시아 내 석유 재벌 중 하나이자 보리스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올리가르히 세력 중 한 명이었던 구스타프라는 인물이었다.

[ 보리스 대통령이 꿈꾸던 헛된 제국주의의 야망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현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수많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를 일삼았습니다. ]

[ 하지만 보리스 대통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상황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자, 최후에는 핵미사일을 사용해 우리의 수도인 모스크바를 공격하려 했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무차별적인 핵 공격도 감행하려고 했습니다. ]

[ 그렇기에 저는 진정으로 우리 러시아를 위하는 애국자들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어서려던 광인들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애하는 러시아 국민 여러분.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러시아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 가능한 선에서 모든 책임을 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

[ 우리의 자손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이제 우리는 과거의 영광만을 좇는 망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이제 앞을 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도록 합시다. ]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카메라에 대고 공식적으로 이전 정권의 잘못을 시인하며 책임을 지겠다고 구스타프. 그의 성명문 발표를 통해 인류는 지금껏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상황을 처음으로 목도하고 있었다.

한 개인과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평화 협상을 벌이는…….

앞으로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정신 나간 상황을 말이다.

- 와……. 이게 진짜 뭔 일이래?

- 말만 평화 협상이지……. 사실상 항복 아닌가?

- 러시아도 엄청 똥줄 탔겠지. 진짜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니까.

- 그래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하다.

- 멀린이 진짜 핵무기 다 포기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 그걸 러시아가 미쳤다고 받아들이겠냐?

- 하긴……. 그럴 리가 없지.

- ㄹㅇ ㅋㅋ. 진짜 그러면 노벨 평화상 감임.

농담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협상을 벌이기 시작한 러시아의 대표단과 멀린을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온갖 추측을 하며 이목이 쏠린 이 상황 속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러시아 대표단은 그야말로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핵무기 전체를 정말로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자기가 들은 이야기가 정말이냐는 듯이 되묻는 러시아 대사.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제가 무슨 농담 따먹기나 하자고 이곳까지 온 줄 아세요?”

이 세상이 멸망하게 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인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핵무기의 포기가 협상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에요. 애초에 구스타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명분도 보리스 대통령이 핵을 쏘려고 했다는 거잖아요? 변화하자면서 핵은 포기하기 싫다니, 좀 앞뒤가 안 맞지 않아요?”

내가 죽인 보리스 대통령을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고 다니며 권력을 장악한 것에 정당성과 명분을 주장하는 구스타프 대통령.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괜히 사실을 말해 봤자 좋을 건 없었기에 어물쩍 넘겨주던 내가 그 사실을 지적하자 그는 이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무기는…….”

“알아요. 그거라도 없으면 이제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핵보유국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개같이 털리기만 한다. 그래서 핵무기만큼은 절대, 죽어도, 네버 포기 못 한다. 이 말이죠?”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할 말을 대신 해 주던 나는 이내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럼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죠. 미국 역시 핵을 전부 폐기 처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까요?”

“!!!”

내 물음에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랗게 뜬 눈으로 경악하는 러시아 대사. 그리고 그는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미국이 핵무기를 폐기 처분한다니요?”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적국이었던 러시아가 핵을 포기하는데 미국이라고 굳이 핵무기를 유지하면서 예산 쓸 필요가 없잖아요? 애초에 상호 확증 파괴가 가능할 정도로 무식하게 만들어 놓고 비축하는 것도 두 나라뿐이었으니 말이죠.”

이 세계의 종말 엔딩을 끌어내는 원흉인 미국과 러시아.

이 둘 이외에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몇 군데 더 있었지만, 그 수가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정도로 무식한 수준은 아니었고 애초에 이 둘이 포기하면 다른 나라들도 반강제로 비핵화를 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능글맞게 웃어 보이며 속삭였다.

“게다가……. 이제 핵무기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좋게 말할 때 포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

“대사님도 알다시피, 제가 조금 쩌는 것도 아니고 개쩌는 마법사잖아요? 제가 만든 회사에서 최근에 개발하고 출시 예정인 발명품인데 한번 보실래요?”

“이건…….”

나는 스마트폰으로 아영이 보내 준 영상 하나를 보여 주자 처음에는 의아한 눈빛으로 영상을 시청하던 러시아 대사의 얼굴은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게 도대체…….”

공중에 떠 있는 수십 미터 크기의 크리스탈.

일반적인 크기의 마나석과 다르게 특대형으로 만들어진 이 마나석이 수십 발의 미사일들을 막아 내는 그 실험 영상을 보며 입을 벌리며 얼이 빠진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나는 새롭게 출시 예정인 아티팩트의 재원을 소개해 주었다.

“러시아나 미국이 그렇게 좋아하고 자랑하던 ICBM을 비롯해 허가받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나 비행체가 영공을 침입하는 것을 막아 낼 수 있는 방어 아티팩트. 이지스 시스템이에요. 커버리지도 꽤 넓어서 이거만 쫙 깔아 두면 앞으로 핵미사일은 물론이고 우주에서 떨어지는 운석도 걱정할 일 없겠죠?”

핵이고 뭐고 현존하는 미사일 공격 체계를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아티팩트.

그걸 떡하니 눈앞에 들이밀며 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잘 생각해 보고 구스타프 대통령한테 조만간 연락 한번 주라고 전해 주세요.”

“혹시라도 제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때는 제가 직접 만나러 찾아가겠다고 꼭 말해 주시고요.”

“…….”

거의 반협박이나 다름없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는 러시아 대사.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이내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아직 전쟁 끝난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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